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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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7-200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최종전까지 이어진 맨유와 첼시의 치열한 우승 레이스 끝에,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최근 4시즌 동안 맨유와 첼시는 두 번씩의 우승을 나눠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다소 비약하자면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맨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 층을 보유한 팀이고, 첼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갑부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오는 22일에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사상 최초로 잉글랜드 팀끼리 맞붙게 되었고, 그 두 팀이 바로 맨유와 첼시라는 사실은 그러한 비약을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어쨌거나, 바야흐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성시대라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굳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매치 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몇 년간 유럽대회에서 잉글랜드 클럽이 이룩한 성과와 유명선수들의 잇따른 프리미어리그행 소식은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만든 두 축은 역시, '세계화'와 '자본주의'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최근의 위축된 축구 이적시장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자금으로 이적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잉글랜드 클럽들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전세계로 방영되는 프리미어리그의 인기에서 비롯된 해외자본의 대대적인 투자인 까닭이다.

사실 이 책에서도 일부 지적하듯이,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축구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이 영국의 훌리건을 '문명의 수치'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 축구는 훌리건들의 폭력과 광기에 몸살을 앓아야 했고, 심지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헤이젤 참사'와 '힐스브로 참사'로 인해 몇년간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대회 참가가 제한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위기를 기화로 하여 영국 축구는 거대 자본을 끌어와 축구장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테일러 리포트'로 대변되는 영국 축구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의 세계적 확대와 자본의 결합이 더욱 공고하게 맞물리면서 오늘날 프리미어리그는 유례없는 성공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성공이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밝은 면이라면, 그 반대쪽에 자리한 어두운 면이 없을 수 없고,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어두운 면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프리미어리그가 세계로 퍼지면서 함께 흘러 들어간 영국 훌리건 문화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든가,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민주적 행태를 주창하는 세계화 이론에도 불구하고 셀틱과 레인저스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이 근절되지 못하는 현상이라든가, 혹은 우크라이나의 카르파티 구단이 유럽세계와 유럽의 축구구단이 보여주는 '하나의 세계' 모델에 집착하여 나이지리아의 흑인 선수를 영입했음에도 상이한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것 등의 사실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카르파티의 주장인 유리는, "역사상 카르파티 최고의 순간들은 구단이 모두 지역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통일된 구단이었을 때 일어났죠."라고 말하는데, 이는 축구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명제로 새겨들을 만하다.

한편,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도 심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유벤투스는 승부조작과 연루된 파문으로 세리에B로 강등되는 일이 있었다. 유벤투스는 아넬리가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유벤투스의 부정은 곧 아넬리가의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따르면, 잔니 아넬리의 조부는 언젠가, "기업가란 원래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재력과 권력과 축구는 공고하게 얽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현 AC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르수코니의 재력과 권력이 어떤 식으로 AC밀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또 반대로 AC밀란에 대한 팬들의 애정이 어떻게 베를르수코니의 정치권력으로 연계되는지를 통해서 자본과 얽매인 축구의 폐해를 드러내 준다. 또한, 브라질에 만연한 축구계에서의 부정부패를 자본주의가 몰아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었음에도, 그것이 결국 실패하고 오히려 브라질 축구를 더욱 위축시킨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축구에 가져다 준 달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음울한 실패와 충돌 또한 자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는, 저자가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도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대단히 흥미롭고 현장감 있게 펼쳐진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저자는 축구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 대단히 혼란스러운 일이지만, 불행히도 결코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암울한 현상들이 존재함에도 '세계화'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 것은 무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냉철한 저널리스트가 다분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모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저자가 감상적으로 변하는 부분, 다시 말해서 저자가 '세계화(혹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애써 잊게 되는 부분은 이 책에서 두 가지 정도로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매력'에서 바르샤의 민족주의를 다루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문화 전쟁'에서 세계화에 따른 미국의 문화 분열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바르샤가 세계적 상업주의에 빠지지 않고, 축구를 폭력과 광기로부터 구해낸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바르샤의 가치를 옹호하는데, 그와 관련된 사례들은 대단히 낭만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어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미국의 문화 분열 내용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세계화'의 적이 미국이라는 항간의 인식에 대해 반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고, 더욱이 별다른 진지한 접근도 없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저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그가 바르샤의 팬이라는 것과 그의 조국이 미국이라는 사실과 결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감상적인 면모는 저자가 관찰한 많은 현상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는 주요원인으로 지적할 만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이 일관된 하나의 주제로 엮이지 못하고 독자에게 다소의 혼란스러움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놀랍고 흥미로운 고찰이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대인의 축구에서부터 이란의 축구까지 파고드는 저자의 광범위한 접근은 그 자체만으로도 꽉 찬 지적 포만감을 주며, 궁극적으로 저자의 고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가 우리네 안방까지도 깊숙이 침투한 오늘날, 그 화려한 이면을 잠시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넘치도록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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