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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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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의 지옥설계도

아름답지만 잔혹한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

 

 

 

 

 

 

 

 

 

 

 

 

 

 

 

 

*

 

  나는 이 책을 몇장 넘기고 이렇게 생각했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네. 수사관이 나오네. 추리 소설인가? 다음 장으로 넘겨보니, 새라 워튼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 미녀삼총사의 화려한 액션 장면처럼 그 사람들을 순식간에 처리해 버린다.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국제적인 사건인가? 어느 정도 액션도 포함되어 있는 스릴러인가?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설의 흐름이 내 뒷통수를 때렸다. 구급차의 환자실에서 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의 한명이 불쑥 허무맹랑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강화인간이니, 천사장이니, 창조천사니, 능천사니, 천사, 천사, 천사 이야기였다. 그래서였나? 지옥설계도. 순간적으로 책의 제목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 소설이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사관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걸음씩 다가갈때마다 그 실체가 더욱 독특하게 다가왔다. 별종. 그러니까 딱 이 단어가 내가 이 책에 대해서 느끼는 감상에 가깝다. 일단 천사니, 강화인간이니까지 떠들어댄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여태까지 등장했던 소재들과 그렇게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 소설을 별종으로 취급하는 것은 보다 그 소재들을 적응시키는데 이전들의 것과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사관이 사건을 조사하는데 스마트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쓰는 것과, 책이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 마다 그려진 삽화는 보다 그 느낌을 명확하게 전달해 준다. 그 삽화는 스마트폰과 날개, 칼이 합쳐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이 권력, 힘을 상징한다면 스마트폰은 기술, 디지털, 정보, 네트워크, 날개는 천사, 선, 그 이상의 것으로 그 둘을 연결시켜준다. 

 

  이 소설에서는 두가지의 세계가 공존한다. 한 세계는 현실 세계로 수사관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어떠한 범국가적인 조직의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세계는 최면의 세계로 중세의 모습을 한 그곳에서는 반란군이 혁명을 이끌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펼쳐진다. 그것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현실세계에서는 스마트폰, 칼, 날개가 그려진 삽화가 등장하고, 최면의 세계에서는 방패와 칼, 날개가 그려진 삽화가 등장한다. 스마트폰과 방패라. 중세에서 칼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방패라면, 현대에서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인가? 무한한 정보, 기술, 과학? 하지만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칼이 존재하는 것은 현재나 과거나 미래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날개를 부러트리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날개 역시 항상 존재한다.

 

  이 책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칼과 날개, 이 두가지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공존한다. 이중적이다. 선과 악이 바로 그런 모습일까? 책의 표지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표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네모난 정육면체가 눈을 속이고 있다. 기묘하게 틀이 꼬여 있어서 전혀 존재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틀에는 Inferno라고 적혀있다. 스페인어, 독일어, 포루투갈어로 지옥이다. 아마도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단어일 것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표식은 아주 철학적이다. 어쩌면 이중적일 수도 있고, 모순적일 수도 있다. 악마 안에 천사가 있고, 천사 안에 악마가 있다.

 

  나는 책에서 등장하는 몇 안되는 삽화가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는 독특한 소재의 조합을 이용해 복잡한 사건들과 다양한 인물들을 연결하여 두 세계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폭이 방대하고, 이해하가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또한 추리, 판타지, 스릴러, SF를 부분부분 취합해 독특한 장르를 이끌어 간 이인화 작가만의 실험적인 면모도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이 책을 별종으로 느끼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책의 주제는 여타 판타지, SF 소설과 비슷하게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흐름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책에서 뚜렷하게 등장하는 몇 가지 상징과 선과 악이라는 절대성과 모호성을 동시에 가지는 가치가 주는 철학적 사고는 책을 보다 심오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책은 별났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나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금 판단하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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