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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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픽. 아름다운 가상까지도 선물하고 싶어한 팬들의 사랑, 그 뜨거움과 투명함에 대하여.

✒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아이돌그룹 제로캐럿의 일곱개 이야기와 제로캐럿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쓴 일곱개의 팬픽이 무지개색 책배를 옆에 두르고 원글과 교차된다.
같은존재 다른세상 그 두개의 평행우주를 보여주는것 처럼 두 세계는 허구인듯 실존인듯 거기에 있다.
엔터시장의 명암을 그리기위한 글이라기보다는 그들도 인간이고 긴 인생의 한 순간을 살아간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스타의 20대, 가장 빛나기에 가장 어두운 순간, 우리도 역시 빛과 어둠을 품고 사는 것처럼 다르지 않다고.
✒ 팬들은  아이돌 세계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것을 안다. 팬픽은 사랑하는 나의 아이돌을 내 이야기속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아름다운 가상이라도 선물하고 싶은 팬의 마음으로 썼을것이다. 한 사람을 위한 세계를 구축해가면서 조건없이 사랑하는 열정과 투명함은 그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도 더 순수하다.
​​
​✒ 나는 책 밖에서 책속 두 세상의 이야기가 교차되는것을 보고있다. 이야기가 뜨거워질수록 책배의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일곱색이 합쳐진 빛으로 사랑하고 반짝이던 1~20대의 투명함은 이미 사라졌음을 차갑게 깨달았다. 이젠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뜨뜻미지근한 영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제 그 시절이 나에겐 라스트러브로 기억되겠구나. 아주 조금 쓸쓸한것 같기도 하다.
그 시간을 비켜 지나간 팬도 아이돌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긴 인생의 한 순간을 지나왔으니 남은 생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폭풍을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상처가 아물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뜨거워질 순간이 또 올지도 모를거라고 물색없는 기대를 걸어본다.
​​
✒ 포토카드 모았을때 순서가 중요하지 않듯 이 책은 흰 부분의 제로캐럿의 이야기와 무지개색 책배를 가진 팬픽부분을 따로 모아 읽거나 두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순차적으로 읽어도  무방했다. 하지만 시작은 첫 단원으로.

🔖 스물셋?  제로캐럿이 되었다면 좋았겠지. 스물세살에. 춤을 잘 추는 스물세살이라면, 노래를 잘 하는 스물세살이라면 하고싶은 것을 할 줄 아는 스물세살이면 좋았겠지. 앞으로 내가 뭘 더 할 수 있게 될까 설레는 스물세살이라면. 그러다가 루비나는 문득 서른아홉살에 대해 생각했다. 스물셋보다는 서른아홉에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끝자리가 아홉인 나이는 괜히 더 신경이 쓰인다니까. -p.41

🔖 마린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소중해서 그걸 갖지 못한 사람은 소중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p.112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노랫말 사이에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넣어 부르곤 했다
김다인 사랑해, 이수빈 사랑해, 최마린 사랑해, 송준희 사랑해. 파인캐럿도 목이 터져라 외치던 때가 있었다.
홍재영 사랑해, 제로캐럿 사랑해.
그렇게 외쳐야만 한다고 믿었던 사랑. 그런 사랑들. -.p.167



🔮 피드 여기저기 몃번쯤은 썼을 이야기.
기본적으로 사람을 온전히 믿지 않기에 사람덕질은 안했고 안한다. 아이돌 그룹, 팬픽이 글의 소재라고 하여 (아는바가 없어) 엄청 걱정하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알듯 말듯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팬픽이 드디어 메인출판사로 올라왔구나. 새 지평을 여는 순간에 내가 있는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시리 으쓱 했다. 팬픽의 존재는 알고있었지만 읽어본적은 없다는게 함정.

🔮 케이팝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은 조우리작가님... ​천희란작가님께 리조트회원권 끊어드리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야광봉은 사본적이 없는데 조만간 리미티드에디션으로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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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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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충실한마음#델핀드비강#레모
📍 충실함을 요구하는 사회. 어디에 충실할것인가. 충실함의 본질을 어디서 찾아야하는가.

✒ 이혼가정의 아이 테오, 심각한 우울증환자 테오의 아버지, 아버지에게 적대적인 어머니, 가정폭력의 피해자 선생님 엘렌, 그녀의 정신적파트너 유부남 프레데리크, 테오의 친구 마티스, 알코올중독자의 딸이자 마티스의 엄마 세실, 교육받은 중산층의 남성이자 또다른 어두운조각을 숨긴 빌리암이 이 책의 주 등장인물이다. 빌리암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 모두가 원치 않는 일들을 겪어 자신의 의지 밖의 일로 상처받고 좌절한다. 모두가 자신에게 휘두를수도, 상대에게 휘두를 수도 있는 숨겨둔 칼날을 가지고 산다.
✒  자신의 본질/자아를 파악하기 힘들고 부모 혹은 성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혹은 미성년자들은 3인칭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수 있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 그 본질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1인칭 화자로 적음으로서 시선의 대비감을 주었다. 화자의 이동이 꼭 책임비율 크기가 타인(3인칭)에게서 나(1인칭)에게로 옮겨오는 것 같아서, 이제는 3인칭시선으로 관조하며 책임에서 한발짝 떨어져있기 힘들 나이가 되었음을 시선의 이동에서 느끼고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그런면에서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나이를 더 먹을수록 책장을 넘기기 힘들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생에 남긴 족적이 많을수록 더 많은 영향력이 생기니까.
​​
​✒ 광물 한조각이 표지에 자리잡았다. 움직일때마다 다른 색으로 다른 모양으로 빛난다.
광물구성요소를 열심히 외우던 학생시절에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 속에 있는것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들인데, 어떤 압력과 열을 받았는지, 어떤비율로 조합되었는지, 얼만큼의 강도로 결합되었는지로  쓰임이 달라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이름이 붙여진다. 그 쓰임과 가치와 이름은 인간의 기준이지 광물의 기준은 아니지않냐며 광물은 이용당한거라고 수업시간 내내 공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시간에 졸면 쫒겨나기 때문에 한 공상이었지만 이제사 들여다보면 인간의 충실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충실함은 나의 것이지만  어떤 각도로 어떤 빛을 받느냐에  보여짐이 달라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선악이 갈리고 이름이 붙여지리라.
내가 저 광물임은 변함이 없을텐데 나에게 붙는 이름표는 수십가지겠지
✒ 감정에 충실하다 직책에 충실하다 가정에 충실하다 본분에 충실하다 상대에게 충실하다
다양한 충실함들은 대부분은 요구받는 충실함이다. 결국 나를 살게 하는것은 요구받는 충실함이 아니라 나의 본질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품은 벼려진 칼날에 나와 당신이 피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본질을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게 주어졌던 오늘 일들의 처분들이 나에게 충실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의 야근일수도, 누군가에게는 매출의 하락으로, 누군가에게는 쓰일만한 자료가 되어 빠른 판단에 도움이 될수도, 혹은 퇴사의 이유가, 권고사직의 근거가될수도 있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괴롭다. 어떤 일을 행할때마다  기준은 내가 되어야한다는것은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은 이것이 옳은것인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영원히 괴로워할것같다. 인생이란게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원판돌리기를 행하고 끊임없이 원판돌리기의 피해자가 되는것일까

🔖 보지 않겠다고 거부했지만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아주 멀지 않은 곳에 묻혀있던 것이 마침내 튀어나올 때의 평온함과 최악임을 드러날 때 느껴지는 안도감. 낯설다. -p.112

🔖 그렇다. 우리는 악인이다. 틀림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쉼없이 협상하고 양도하고 타협하며 자식들을 보홓고 부족의 법칙을 준수하고 얼버무리고 작은 음모를 꾸민다. 그런데 언제까지? 언제까지 상대의 공모자가 될 수 있찌? 언제까지 상대를 따라야하고 상대를 보호하고 감싸고 나아가 알리바이로 사용되야 하는 걸까? -p.131

🔖 어른이 되는 수고가 정말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할머니 말마따나 손톱만큼의 가치라도 있을까? -p.144
🔖 알코올성 혼수상태. 그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그 소리를, 약속을 좋아한다.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이 사라지는 순간. 어김없이 지워지는 순간이라는 약속. -p.146


🔮이 책의 등장인물중에 본인의 악함을 인식하고 행하는 자는 유일하게 빌리엄이다. 가장 선망되는 곳에서 사는 사람. 자신이 행하는 악이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 상처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받는 동시에 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피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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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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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책 시리즈인데, 내용은 태평양.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책.

📍 황제 플로린 퀴에크의 명에 따라 역사학자 보그단 마텔이 로마니와 퀴에크왕조의 역사를 적은 책이다.
여기까지 읽은 자에게 영광을!!! 

✒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로마니가 유럽의 집시라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 문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르면 중반까지 뭔말인가 싶음)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속에서 집시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각 나라가 이용하고 치워버릴 말로 사용되었다.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도 살아남은 모든곳의 로마니 혈족들은 또다시 땅을 찾아 헤메지만 그들의 개인적 욕망에 존재도 흐려지고 나치에게 똑같이 박해받던 유대인은 나치가 유대인을 박해했던것마냥 로마니(집시)들을 차별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맞물리게 이야기를 엮어나가며 작가는 역사기록물의 형식을 취하고 기록 대상을 희화화했다. 집시들의 대표자를 황제로 칭하고 대관식을 거창하게 그려내고, 집시의 일방적인 요구를 국가간의 외교처럼 서술한다. 그러면서도 괄호 안에는 문맹인 황제에게 말하기는 꺼려지는 사실들을 모아 적어넣는다 (황제가 문맹이기때문에 소리내어 읽지 않으면 황제가 알수 없다는 설정) 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의 복잡한 관계속에서 이들이 어떤 이유로 박해받고 이용당하고 잊혀져갔는지 절박하고 슬프고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그린다
✒그들만의 왕국, 그들만의 나라, 그들만의 소멸, 아무도 알려 하지 않는 그들만의 기록
어릿광대의 과장된 웃음을 닮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은 당신에게 박수를


🔖 역사에 가정을 매다는 행위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 p.25

🔖 균형을 자의적으로 조절할 순 없다. 목적을 방법보다 앞세우고 싶지 않을뿐더러 원인을 결과로 간주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역사를 완성하지만 그런 역사는 결코 변증법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신념을 밝히는 것으로 ..... - p.29

🔖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 p..68
🔖 수천년동안 전염병과 가뭄 굶주림에도 거뜬히 살아남은 그들이 나치의 수용소에서만큼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던 까닭은 인간의 범죄가 자연의 섭리보다도 더욱 잔악하고 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치보다 나치의 부역자들이 더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나치를 찾아내고 없애는 건 쉽지만, 그들에게 부역한 뒤에 자신의 죄악을 숨긴 ㅐ 피해자들 사이에 숨어버린 자들을 없애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세계에서 로마니는 영원한 박해와 차별을 피할 수 없다 - p.73

🔖 어제의 삶은 오늘의 실수와 후회로 파괴되었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내일이 기약되어 있으며, 꿈 때문에 인간이 퇴화하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 p.91

🔖 거짓은 그걸 말하는 자의 확신 속에서 널리 유포되고, 나중에 그걸 누가 최초로 발설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대중은 그걸 진실로 받아들인 뒤 이를 부정하는 자들과 투쟁한다 - p.101

솔직하게 내 취향인 책인데, 어렵다고 하시는분들은 많은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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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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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인. 부서진 영혼. 열여덟.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오늘을 찢어버리고싶다

​​✒ ​책 한장 들어 옮기는데 3분이 걸리면, 20분을 토해내듯 울고 10분을 숨을 고르면서 또 한장을 들어 옮겼다.
퉁퉁부은 눈, 잠긴 목소리 풀어헤친 두루마리 휴지 앞에서 제야는 나의 감기가 되었다. 일주일째 폭포처럼 쏟아지던 눈물과 콧물을 변명해줄 감기가 되어 그렇게 일주일을 밤마다 앓았다​



​✒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폭력의 형태와 그 폭력에 상처받은 제나의 모습을 일기의 형식을 빌어 적어내려간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린 여자에게 내보이는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 심지어 가족에게도 위로는 커녕 침묵을 요구받는다. 살아온 열여덟의 생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고통받는 동안 가해자는 시의원으로 가장으로 혈육들 사이에 자리잡고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따라다니고 가족에게도 지워져가는 피해자는 스스로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사회가 보내는 상처도 평생을 가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형제인데' 따위의 위로같지않은 말은 상대를 위로하는 행위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 되보려고 피해자를 무간지옥 바닥으로 다시 던지는 가장 대표적인 폭력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아니. 시간이 지나서 존재가 사라지면 해결이 될 뿐이다. 천륜은 그래서 양날의 검이다. 



​✒ 그 고통을 짊어지고 ​제야는 내일을 보며 달려가는데 내 안의 제야는 아직 열병중이다.
지구 자전축이 움직여 작은곰자리 알파별이 거문고자리 알파별로 북극성이 옮겨질 일만 이천년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보다 더 오래걸려서 우주의 위아래가 뒤바뀔 시간이 지나면 화석처럼 열병의 상처가 남을것이다. 뒤집어진 의자로 모든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카시오페이아의 형벌, 아무도 대신해주지 못하는 형벌. 나만 아는 형벌. 그 벌의 시간을 혼자 짊어진 후에야 환상통에 매일을 괴로워할 흉터 하나 남는다. 지구인들은 별자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 노래하지만 형벌을 받는 카시오페이아는.
그래도 살겠지. 영겁의 시간 모든걸 짊어진 채 제야는. 제야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 친인척 성폭력 피해자인 제나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폭력의 모습과 그 폭력에 상처받은 제나의 모습을 일기의 형식을 빌어 적어내려간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린 여자에게 내보이는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 심지어 가족에게도 위로는 커녕 침묵을 요구받는다. 살아온 열여덟의 생의 모든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고 고통받는 동안 가해자는 시의원으로 가장으로 혈육들 사이에 자리잡고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따라다니고가족에게도 지워져가는 피해자는 스스로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사회가 보내는 상처도 평생을 가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형제인데' 따위의 위로같지않은 말은 상대를 위로하는 행위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 좀 되보려고 피해자를 무간지옥 바닥으로 다시 던지는 가장 대표적인 폭력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아니. 시간이 지나서 존재가 사라지면 해결이 될 뿐이다. 천륜은 그래서 양날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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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고통을 짊어지고 ​제야는 내일을 보며 달려가는데 내 안의 제야는 아직 열병중이다. 
지구 자전축이 움직여 작은곰자리 알파별이 거문고자리 알파별로 북극성이 옮겨질 일만 이천년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보다 더 오래걸려서 우주의 위아래가 뒤바뀔 시간이 지나면. 화석처럼 열병의 상처가 남을것이다. 카시오페이아의 뒤집어진 의자로 모든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형벌, 아무도 대신해주지 못하는 형벌. 나만 아는 형벌. 그 벌의 시간을 혼자 짊어진 후에야 환상통에 매일을 괴로워할 흉터 하나 남는다. 지구인들은 별자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 노래하지만 형벌을 받는 카시오페이아는. 
그래도 살겠지. 영겁의 시간을 지나도 제야는. 제야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 감히 작가님께 감사를 말한다.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때만큼 주저하셨다는 작가의 말처럼 제니도 승호도 이모도 없었을 이 시대의 숨죽인 제야들에게 함부로 위로의 말을 적지 않으셨음을. 어줍잖은 위로가 그들의 심장에 얼음송곳을 들이미는 것이라서 나를 모를 곳으로 떠나야했던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주셨음을 감사한다. 열일곱의 제야가 서른다섯, 서른아홉, 마흔일곱, 쉰아홉살의 제야가 되어 어디선가 살아남게 해주신걸 가장 감사한다. 수많은 제야를 살아남게 해주셔서 감사한다. 


🔖 내게 모든걸 떠밀고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 지금의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 -P.49

🔖 어릴때는 밤하늘이 마냥 천국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저곳에 지옥도 섞여 있는 것 같다고 제야는 생각했다  -P.58
🔖 우리에겐 각자의 그늘이 있지. 그 그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그 그늘이 그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P.72

🔖 나는 은비를 잃었어. 잃었고, 잃었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살았어. -P.79

🔖 마음을 쓰는거야. 억지로 하는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161
🔖 내겐 눈과 귀가 하나씩 더 생겼구나. 남들에게는 없는 조직이 하나씩 더 생겨서, 그 일을 겪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P.163
🔖 이모가 내게 젊다고 했을때 나는 두려웠다. 젊음은 좋은건가. 젊음은 위험하다. 나는 내가 어리지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모르겠다 그런 모든 형용사에서 벗어나고싶다.-P.172
🔖 제야는 많은 것을 그깟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고 제일 먼저 자기를 그렇게 만들었다 -P.190

🔮제출용일기, 나만의일기, 그렇게 일기를 두번쓰던 제야처럼, 이 책 만큼은 나의 독후감을 한번 더 쓰련다. 물론 나만의 독후감이니까.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않고 아무도 탓하지 않겟지 
🔮 새벽 한시. 제야를 보내줘야겠다. 안녕.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니까 어디선가 꼭 살아남아. 나는 여기서 살아남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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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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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과거#은희경#문학과지성사
📍 1970년말, 그들의 다름과 섞임을 바라보는 두 시선의 온도차. 

 

 

 

✒ 예쁘고 아름다운 문장만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아니다. 내 심연까지 바라보는 냉정함이 외려 꾸며낸 가면 뒤 진짜 나를 대면하게 한다  ​
그녀는 내 오랜 친구이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작가의 마지막 말 '이 망할 장편은 어떻게 써야할까' 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내 심연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너의 수긍과 방관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구나
그럼 너의 회피와 변명은 무엇이니

✒ 40년 전 한 여자대학교의 기숙사
김유경, 최성옥 양애란 오현수, 송선미 이재숙 김희진 곽주아 이경혜. 공유점이라고는 같은 대학이란것 뿐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랜시간 후 한 사람의 소설로 쓰여진다. 소설속 이야기는 분명 그때 기숙사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지만 주인공이 기억하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쓰여졌다.


​✒ 대부분의 과거회상글처럼 그땐 다 그렇게 살았어, 다 그렇게 살았으므로 내 삶은 적당히 온당했다로 끝맺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 살았으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예쁘고 아련한 과거기억속의 내가 했던 선택 혹은 회피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시점의 서술로 더 확실하게 말해준다. 내 기준으로 편집되고 유기된 과거는 옳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다방과, 음악과, 그때의 분위기의 묘사들이 많다. 실제로 어떠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길다면 긴 4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1970년 중후반을 살던 글 속 인물들에게는 과거의 엄마가, 내 현재가, 엄마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담겼다.
등장인물 대부분 내 주변의 누군가와 닮았고, 그 인물들 중  최성옥과 송선미가 자꾸 마음에 쓰였으며 그 인물중 하나에 나를 투사해 글을 읽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김희진과 닮았다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김희진같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한걸음 떨어져서 보니 등장인물의 부분 부분을 내가 다 가지고 있더라. 나는 누군가에게 김희진이, 오현수가 김유경이 이재숙이 될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나를 그냥 나로 여기는 사람은 있긴할까. 그건 오로지 나 자신뿐일까

 

✒ '**+하다' 와 '~랄까' 같은 국적모를 표현 하나 없이 정갈하고 매끄럽다. 과거회상에 감정과잉의 자기연민도 없다. 지지부진한 전개도 부사가 난무하는 묘사도 없다. 모든것이 적절하고 적당하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여성 어른의 소나무와 같은 글.  균형잡힌 도자기와 같은 아름다움. 그럼에도 글로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다. 한국현대소설에서 이런 작가가 또 있을까.

종장엔 목이 메고 눈이 뜨끈해져 새벽녘 책을 닫고도 한참을 가만가만 감정을 골라내야했다.

 

 

 

(책속 문장)

 

​🔖 남자의 외모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지성인의 양심과 진실함에 더 가치를 두는 현명한 여성이어야하며 그 현명함 안에는 남자들이란 타고나기를 여자의 외모를 따지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움도 포함되어야했다 "그러니까 결국 예쁘고 똑똑한 여자를 찾는다는거야? 남자쪽은 전혀 아니면서?"
내가 잠시 속도를 늦춘것은 남자들이 원한다는 현명함의 뜻을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자의 지성은 남자를 보필할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고 여자가 남자를 능가할 만큼 눈치가 없으면 진정으로 똑똑한게 아니라는 뜻 아닌가 - P.81
🔖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 P.112
🔖 모성과 처녀성이 다 있는 여인상이라는게 무슨뜻이야? 남자가 원할때 무조건 자주는게 모성인데, 같이 자는 여자가 또 순결해야한다는거야? 그래서 모성을 발휘해 남자들과 쉽게 자고 그러면서도 순결함을 잃지 않는 여자를 창조한거래? 예쁜 여대생으로? - P. 254
🔖 젊고 희로애락이 선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 P. 277
🔖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 P.281
🪔 떠오른 시 하나
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은희경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다작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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