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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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현대인들의 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개인들이 하루에 쓰는 이동시간은 전체 중 5%지만, 문명인들이 22%를 소비한다고 한다. 차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교통사고의 위험에 따른 비용, 시간 등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자유를 뺏기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오래된 미래]의 주 무대인 라다크의 삶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고, 자연 친화적이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문명이 개입하면서 부터 그들의 가치관은 급속도로 변하고, 소유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소유물이 많아진다는 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구적인 가치관은 이를 강요한다. 리바이스청바지나, 가전제품이 없는 삶을 가난한 삶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된 미래]를 읽고 가장 놀랐던 것은, 화를 내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이다. 피해를 입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여유이며 복인가? 이러한 정신적인 풍요를 가진 사람들이 서서히 빈곤과 가난에 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 책은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생산력을 가지고 조화롭게 가정을 꾸려나갔던 삶에서...갑자기 환금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가족구성원들...이런 변화들이 문명이라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카드 빚에 허덕이며, 명품 중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결핍의 원인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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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뭉크 다빈치 art 1
에드바르드 뭉크 지음, 이충순 옮김 / 다빈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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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소리가 지르고 싶을 때, 몸 속에 갇힌 모든 우울과 광기를 세상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을 때 뭉크의 그림을 보자. 뭉크의 '절규'는 많은 시인들이 소재로 즐겨 쓸만큼 시적 영감을 주는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이지만, 색의 결을 느끼도록 만들어서 목판의 느낌까지 주는 주황색 하늘과 강물...과감한 사선으로 표현된 다리...그 위에 자신의 양쪽 귀쪽을 감싸 안은 유령같은 사람...이것이 뭉크의 '절규'이다.

뭉크는 81세에 죽었지만, 그 긴 생애동안 정신분열증으로 괴로워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장 힘들었다는 외로운 화가, 그가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회화뿐이었다. 사람들의 소음을 유난히도 싫어했던 그인만큼 '절규'에서도 귀를 막고 있는 형상이 드러나며, 참혹하리만치 암울한 색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색의 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진동을 잡아내듯이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를 매혹시킨다.

이 책은 그림에서 간간히 드러나는 뭉크의 고독한 삶과 삶에 대한 시선을 보여준다. 뭉크의 예술적 삶에 대한 대략적 내용과 그의 일기, 그리고 그의 평생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쉬플러 판사와의 서신, 두 편의 단편들과 그림우화들이 알차게 실려있다.

뭉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기보다는, 뭉크 자신의 글과 작품을 통해 독자 개개인의 판단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거의 매 장마다 실려 있어, 그림과 함께 뭉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 오히려 조금 어려운 부분은 뭉크 자신의 일기부분인데,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듯 하지만, 그 자신의 정신분열증 때문인지 매우 혼란스럽게 기술되어 있다. 도박에 대한 집착같은 부분을 보면, 그도 보통사람들과 다름없는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유명한 그림 '병든 아이'는 뭉크의 죽은 여동생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녀의 옆모습에 드리워진 허무와 쓸쓸함, 그 죽음의 그림자를 잡아낸 그의 관찰력과 여동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키스'라는 목판화인데, 단순한 나무결을 그대로 살린 채 껴안고 키스를 하는 남녀의 몸이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실루엣만을 보여준다. 목판이라서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리고 있으며, 간결한 표현으로 인해 그 애정의 순수함이 잘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사춘기'는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에서 주인공이 집착하는 그림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사춘기'는 주인공의 사춘기와 욕망을 그대로 표현해준다. 침대 위에 않은 나체의 소녀는 매우 도전적이며 반항적인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여자와 아이의 중간시기를 통해 소녀의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둠과 밝음을 묘사하여 우리에게 색다른 아름다움을 만나게 해 준다.

뭉크가 평생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면서도 작품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감정상태나 사고가 너무나 극한을 달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반인들은 극단의 우울이나, 극단의 사고들이 일시적으로 진행될 때조차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 광기를 천재적 작품으로 승화시킨 뭉크의 삶은 얼마나 치열했을 것인가? 책을 읽으며 만날 수 있는 뭉크의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감각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묘한 감각을 얻고, 화가의 내면에 닫힌 세계를 비밀스럽게 열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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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69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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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첫번째 시집이라는 것은, 아직 덜 익은 풋풋함이 남아 있다. 시에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는 듯한 신선함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시인의 시적경향의 방향성을 어느정도 가르쳐 주는 나침반 같은 구실도 한다. 황인숙 시인의 첫시집인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에서는 어딘지 모를 서투름과 더불어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신선한 노력을 찾아 볼 수 있다.

보통 시집의 제목만 보아도 시집이 추구하는 방향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이 시집 제목을 처음 보고 경탄했다.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다니...하늘이 새를 풀어 놓는다는 이야기의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면 얼핏 쉬워보이지만,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시적 감수성과 관찰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 팅! 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요즘 다시 시를 읽으면, 이 시처럼 파르란 느낌의 시들보다는 약간은 쓸쓸한 느낌의 시들이 더 다가온다. 시를 읽을때의 나이와 감성에 맞게 시들은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는데...역시 이 시집도 그러하다.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하지만 난 조금 느끼죠.
이제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아아, 나는
은사시나무숲으로 가고 싶죠.
내 나이가 이리저리 기울 때면.

-[잠자는 숲]의 마지막 부분

내가 서평을 쓸 때마다 시의 전문, 또는 부분을 인용하는 것은...시에 대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치장을 해도...시란 읽는 사람에 따라, 또는 읽는 사람의 그 당시 상황이나 생각에 따라 다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마지막 행이다. 나이가 이러저리 기운다는 이미지가 얼마나 모호하며 얼마나 정확한지...그 모순되는 의미들을 시 한 행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감동적이다.

싱싱한 양배추같이 앳띤 나이와 중후한 낙엽같이 은근한 나이의 중간을 이렇게 지칭한 것이 아닐까. 이 표현은 바람에 흔들리는 시간과 같이 한가한 느낌과 쓸쓸한 느낌 또는 반짝이는 느낌을 준다. 2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내 텅 비어 있는 마음과 점점 힘들어지는 생활을 선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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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216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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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튀는 언어…황인숙시인의 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퍼득거리는 날것처럼 힘차게 움직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 날것이여.
날 것, 날것, 날것들이여.
나를 두들겨, 깨뜨려,
내 안의 날것을, 아직 그런 것이 있다면,
깨어다오.
이 허위인 삶을
쪼고, 쪼고, 물어 뜯어다오.

요즘 서울은 장마철 폭우가 한참이다. 몇몇 가구는 침수도 되고 산사태도 났다 하지만, 나에게 장마란 슬레이트 지붕을 힘차게 두드리는 막대 같은 빗줄기다. 힘차게 드럼을 두들기듯, 축 늘어진 정신을 두들겨 패듯, 쾅쾅거리는 빗소리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황인숙의 시도 나를 이렇게 화끈하게 통통 튀게 만든다. ‘구름을 터뜨리고 햇빛이 과즙처럼 튄다’라고 신나게 말할 수 있는 시인과 함께 허무한 먼지로 뒤덮인 세상을 팡팡 두드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하지만 마냥 신나게 소리 지른다고 해서 뿌리 깊은 허무가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시인의 어조가 아무리 신나고 화려하다고 해서 즐거운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해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인의 다른 시집보다는 훨씬 무거운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집의 첫 장에 나오는 [영혼에 대하여]라는 시를 살펴보자.

영혼이라는 게 몸 안에서
불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아. 영혼이든 뭐든.

나는 영혼이
나뭇가지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바람이라면 좋겠다.

시인은 바람 같은 영혼을 꿈꾼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이다. ‘인생이란! 고단하지 않으면/ 구차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시인의 말처럼...바퀴살처럼 빠르게 굴러가는 생활 속에서는 깨어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다. 그러나 황인숙시인의 시는 삶에 대한 회의나 불만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얼음과 먼지’로 되어 있는 인간에게서 ‘보드랍고 말랑한/발갛고 따끈한 그런 기운’, 즉 생명의 힘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면 늘 기대가 된다. 먼지같이 부유하는 뿌연 삶을 얼음처럼 차갑게 고정시켜 놓은...그의 언어들이 내 삶에 통통 튀는 상쾌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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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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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에 대학에 들어와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시집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 입에 올리는 책이라 어쩐지 의무감에서라도 읽어야 할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 내에 자주 가던 서점에 가서 한참동안 서서 이 시집을 뒤적였다. 시집 전체의 분위기는 결코 단순한 서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함민복의 이미지가 눈가의 촉촉한 물기같은 서정성으로 다가온 이유는 '선천성 그리움'이라는 시 때문이다.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흔한 연애시와는 격이 다른 순수시이다. 표면적인 주제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고, 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이지만, 이 시를 한꺼풀 벗겨보면, 끝끝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또 즐겨 노래한 것은 어머니라는 소재다. 어쩌면 이만큼 흔한 소재도 없다 싶지만, 옷고름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게 하는 언어적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어머니를 소재로 한 시중에 [눈물은 왜]라는 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시는 시라고 하기 보다는 짧은 에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산문에 가깝다. 어머니와 설렁탕을 먹는데...주름살이 패인 어머니가 소금을 많이 넣어 짜다고 주인에게 다시 받은 설렁탕 국물을, 다 큰 자식의 투가리에 부어주는 모습을 정겹게 비춰주고 있다.

함민복의 시는 단순히 서정성만을 담보하고있지만은 않다. 두번째 시집인 '자본주의의 약속'에서 보여주는 사회비판적 측면을 떠올리게 하는 시 [아남 내셔널 텔레비젼]이나, [자본주의의 주련]을 보면 물기 넘치는 감수성에 젖어 있던 날 선 이성이 눈뜨게 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건 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끓이고 끓여서 나온 생의 진국이 느껴지는 시편들이다. [긍정적인 밥]같은 시에서는 자신의 시집이 한그릇 국밥만큼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 바라는 시인의 소박한 모습이 나타난다. [달의 눈물]과 같은 시에서는 산동네에서 내려오는 하수도 물소리를 소재로 하여 자신을 더럽히면서도 누군가를 깨끗이 씻어내리는 그 소리에 가슴이 젖는 순수한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집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꽃]의 첫 연은 제목으로 인용된 구절이다.(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 왜 이런 제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있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경계란 무엇을 말할까?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경계는 분단의 경계뿐만 아니라 안과 밖, 전생과 내생... 어쩌면 부자와 빈자의 경계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이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이 간절히 원하는 바가 드러난다. 우리 민족의 눈물이 메마르는 날이 경계가 무너지는 날인 것이다. 함민복의 시세계는 참 여러 갈래인 듯 하면서도 하나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 사고에 경계를 지우는 것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그 경계를 벗도록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르고 연한 제 속살까지 내주는 것이다. 어머니의 모성이나 선천성 그리움까지 죄 남김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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