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첫번째 시집이라는 것은, 아직 덜 익은 풋풋함이 남아 있다. 시에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는 듯한 신선함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시인의 시적경향의 방향성을 어느정도 가르쳐 주는 나침반 같은 구실도 한다. 황인숙 시인의 첫시집인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에서는 어딘지 모를 서투름과 더불어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신선한 노력을 찾아 볼 수 있다. 보통 시집의 제목만 보아도 시집이 추구하는 방향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이 시집 제목을 처음 보고 경탄했다.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다니...하늘이 새를 풀어 놓는다는 이야기의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면 얼핏 쉬워보이지만,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시적 감수성과 관찰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보라, 하늘을.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아무도 엿보지 않는다.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얏호, 함성을 지르며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팅! 팅! 팅!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요즘 다시 시를 읽으면, 이 시처럼 파르란 느낌의 시들보다는 약간은 쓸쓸한 느낌의 시들이 더 다가온다. 시를 읽을때의 나이와 감성에 맞게 시들은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는데...역시 이 시집도 그러하다.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혀는 말라 있어요.하지만 난 조금 느끼죠.이제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정의를 내려야 하고밤을 맞아야 하고새벽을 기다려야 하고.아아, 나는은사시나무숲으로 가고 싶죠.내 나이가 이리저리 기울 때면. -[잠자는 숲]의 마지막 부분내가 서평을 쓸 때마다 시의 전문, 또는 부분을 인용하는 것은...시에 대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치장을 해도...시란 읽는 사람에 따라, 또는 읽는 사람의 그 당시 상황이나 생각에 따라 다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마지막 행이다. 나이가 이러저리 기운다는 이미지가 얼마나 모호하며 얼마나 정확한지...그 모순되는 의미들을 시 한 행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감동적이다. 싱싱한 양배추같이 앳띤 나이와 중후한 낙엽같이 은근한 나이의 중간을 이렇게 지칭한 것이 아닐까. 이 표현은 바람에 흔들리는 시간과 같이 한가한 느낌과 쓸쓸한 느낌 또는 반짝이는 느낌을 준다. 2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내 텅 비어 있는 마음과 점점 힘들어지는 생활을 선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