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페이크 1
후지히코 호소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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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를 보다 보면 한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만 파고 드는 내용으로 몇 십권씩 만화를 그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한 문화에 대해 전문가적인 소견과 재미가 더해져, 단순히 만화라기보다 하나의 기록처럼 여겨지는 만화가 있다. 갤러리 페이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특하게 그 문화가 예술 분야라는 점이 흥미를 끈다. 요리문화나...대중 문화에 대한 오타쿠적인 만화는 많은 반면에 고전적인 예술분야에 대한 오타쿠적인 만화는 매우 드문 편이다.

갤러리 페이크를 읽으면서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한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로 서양 예술이나, 일본의 문화가 소개되어 ...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나올 수 있고, 수출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갤러리 페이크에서는 백자와 청자의 대비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의 미적 정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얗고 단아하고 심플한 백자를 좋아하는 일본인과....화려하고 우아하고 귀족적인 청자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는 예술품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기호와 문화적 차이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모나리자에 관한 내용이다. 솔직히 나는 모나리자를 보며 감동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림 자체의 매력 보다는 한 번 도난당했었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미술 수업에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또는 관점에 기대어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하는데...그 대표적인 예가 모나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나리자의 주인공에 대한 여러가지 설과..모나리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이슈를 이용하려는 에피소드는...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고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작가는 예술품의 진정한 가치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술가의 명성과 이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다...

한 예술가의 그림들을 쭉 살펴보다 보면...초기 중기 말기 등...시기별로 주제나 색채, 터치 등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인간이 성숙하면서, 또는 변화하면서 생기는 표현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을 좋아하다보면, 작가의 좋은 작품이나 나쁜 작품이나 그 작가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타인이 매기는 작품의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그 작품에 얼만큼의 애정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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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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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그랬다. 이 작가는 인생을 아는 것 같다고...그냥 그 말을 웃어 넘겼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그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보통 단편 소설은 보통 장편보다는 약간 낮게 취급되지만...이 작가는 그 한계를 넘은 작가 중에 한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저 길이가 짧은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이야기 속에 인생의 핵심을 한토막 툭 잘라 넣고, 거기다 마지막엔 독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마지막 장을 덮고 가슴이 참 아렸다. 정말 잘 쓴 작품이었는데...정말 감동적인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냉철하고 날카로워 내 가슴팍까지 저미는 것이었다. 그토록 선명한 시선으로 이런 작품을 써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표제작에서의 바닷가 까페에 서서 죽기 위해 날아오는 새들을 바라보는 늙은 혁명가의 모습은 마치 작가의 모습처럼 선명하게 내 눈 속에도 각인되었다.

전쟁의 핏자국 속에서 핀 꽃들은 그 상처만큼이나 깊은 잔향을 뿜고 있는 것인지...로맹 가리 역시...유태계 프랑스 인이었다.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고...인간의 뒷면을 보며...살아온 탓일까? 다른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단편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기에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인에게 재산을 넘긴채, 히틀러가 몰락한 것도 모르고 지하생활을 계속하는 유태인의 삶,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했던 독일장교를 숨겨주고 보살펴주며, 독일이 몰락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유태인... 정말 절망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이야기들을...로맹 가리는 참 독특하게 풀어나갔다. 약간은 비꼬듯이, 어떨 때는 순순히, 그리고 천연덕 스러울 만치 작가의 감정을 속이며, 결론을 낸다. 그 결론은 항상 독자들이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정말 내가 인간적으로 살았는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인간들의 비인간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독자들에게 은근히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모순이 숨어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독자들이 자기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이 책은 내 무뎌진 삶을 다시 한번 벼리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났을 때 그 감동을 한달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중학교 때의 순수한 감정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문학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기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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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16 - 완결
마리 오자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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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훈훈하고 따뜻한 만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만화다. 만화라고는 서정적인 한편의 동화같다는 말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수우와 노조미는 모녀이자 동지인 아름다운 가족이다. 특히 수우가 회상하는 아키라와의 과거는 참 아기자기하다. 손수 만든 의자...뜰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태어나지 않은 노조미의 이름을 짓는 어린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보면 절로 예쁜 미소가 나온다. 주인공들 뿐만이 아니라 조연들도 참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들이 많다. 혼자서 노조미를 키우기 위해 취직한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동네 사람들...그리고 아키라의 부모님들까지...그리고...마지막으로 마라무네라는 멋진 남자는 노조미의 아버지가 되어 주기에 충분할만큼 지적이고 매력적인 남자
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이 만화는 수우와 노조미의 고달프지만 아름다운 삶의 역정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 관계와...사랑...그리고 우정...그 다사다난한 모습들을 너무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 만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중에 하나이다. 힘든 삶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이는 만화를 읽다보면... 그 만화를 보는 나까지도 마음이 안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린 노조미의 귀엽고 발랄한 행동은 깜찍하고 귀여워서 자칫하면 쳐지기 쉬운 만화의 포근한 분위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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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제국 - 현대인을 중독시킨 신용카드의 비밀
로버트 D. 매닝 지음,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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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사회라는 말은 아름다운 덫이다. 달콤한 꽃과 꿀로 곤충을 유혹해서 잡아 먹는 식인식물처럼 말이다. 내가 신용 카드를 사용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시간과 돈을 좀먹는 신용 카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실제로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먼저 탄탄한 신용으로 물건을 사고, 다른 여러 가지 혜택도 받으면서, 그 다음달에 결제만 해주면 만사 ok다. 하지만, 이 모든 개인의 소비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나라 또한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핸드폰을 가지며...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일인지도 모르지만...전세계적으로 보면, 이렇게 소비를 장려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경제적 기반이 허술하게 보인다. 컴퓨터나 핸드폰보다, 신용 카드의 폐해는 엄청나다. 한순간에...파산 위기까지 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내 흑자만 기록하던 신용 카드 회사는 드디어...채무자들에게 회수받지 못한 자금 때문에 적자로 돌아 섰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문제들이 돌출되는 것인가? 로버트 매닝이 쓴 '신용카드 제국'은 이미 신용카드가 일반화 되어 있는 미국의 예를 우리에게 사실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빚을 지는 것은 개인의 부주의나 게으름, 능력 부족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로버트 매닝은 그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국가적 틀 속에서의 문제점들을 찾아낸다.

국민들의 부채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국가의 부채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국가는 신용카드 회사의 무분별한 카드 발급을 막지 않는가? 그리고 카드라는 것이 현대판 고리대금업이라는 점을 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가? 이때까지의 삶 속에서 경험으로 알듯이, 기업과 정부가 우리편이었던 적은 없다. 국가는 개인, 그리고 사회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매닝은 수많은 실례를 들어서 신용 카드 회사의 집요한 공략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그리고 그 수많은 빚을 떠안는 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돈을 벌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카드 회사들은 그 학생들의 남은 삶 중의 일부를 이미 탐욕스럽게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빚 때문에 가족들이 떠나고 버림받은 가장, 또는 부모님에게 카드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고민끝에 자살하는 자녀들...

카드를 노리는 수많은 범죄들...또한 카드빚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채무자들...사회는 점점 '신용 사회'라고 불리는 지옥으로 변해간다.

소비 심리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와 그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 욕망은 잘 다스리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믿어서는 안된다. 진실로 그 속을 들여다 보았을 때...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알아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소비 심리, 욕망 때문에 건전한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소비를 방관했으면서도, 무조건 개인들을 법이나, 규범으로 소외시키는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읽고, 단순히 신용 카드 때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만 읽을 것이 아니라, 현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그리고 신용 카드 사회라는 허구의 환상이 어떻게 몰락해 갔는지 미리 예측해가며 자신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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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하는 요리사
뤽 랑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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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하는 요리사'를 읽고 나서, 작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하지만...알 수 없었다. 백민석의 '목화밭살인사건'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더 뛰어나다.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어딘가 인간적인 면이 결핍되어 있다. 그래서 더 두려운 존재이다. 도덕이나 양심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아니면 자기 자신을 너무 믿는 것이 문제인가...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는 기계적인 냄새가 난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그 사람들을 지배하는 쾌감을 느낀다던지...자기 나름의 잣대로 사람을 죽이면서도 죄책감도 없다. 그리고 계산적인 측면도 강해서....교도소 폭동이 잘 보이는 집을 공개해 돈을 벌기도 한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을 보면 무식한 사람도 아니면서 뭔가 비정상적인 면모를 보인다.

현대인들을 보면, 어떤 측면으로 상대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삐뚤어진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심하지만 않으면 상관은 없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면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타인을 파괴하거나, 장악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만큼 모순되는 일이 있을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는 이해하기가 힘들지만...대충 현대인들의 이런 모순성을 그려내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소재의 괴팍성이라든지, 낯설음...그리고 인물의 괴이함은 이런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기 보다, 오히려 주제 외의 다른 부분들에 더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왠지 씁쓸하고 미묘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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