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그랬다. 이 작가는 인생을 아는 것 같다고...그냥 그 말을 웃어 넘겼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그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보통 단편 소설은 보통 장편보다는 약간 낮게 취급되지만...이 작가는 그 한계를 넘은 작가 중에 한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저 길이가 짧은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이야기 속에 인생의 핵심을 한토막 툭 잘라 넣고, 거기다 마지막엔 독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마지막 장을 덮고 가슴이 참 아렸다. 정말 잘 쓴 작품이었는데...정말 감동적인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냉철하고 날카로워 내 가슴팍까지 저미는 것이었다. 그토록 선명한 시선으로 이런 작품을 써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표제작에서의 바닷가 까페에 서서 죽기 위해 날아오는 새들을 바라보는 늙은 혁명가의 모습은 마치 작가의 모습처럼 선명하게 내 눈 속에도 각인되었다.

전쟁의 핏자국 속에서 핀 꽃들은 그 상처만큼이나 깊은 잔향을 뿜고 있는 것인지...로맹 가리 역시...유태계 프랑스 인이었다.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고...인간의 뒷면을 보며...살아온 탓일까? 다른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단편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기에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인에게 재산을 넘긴채, 히틀러가 몰락한 것도 모르고 지하생활을 계속하는 유태인의 삶,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했던 독일장교를 숨겨주고 보살펴주며, 독일이 몰락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유태인... 정말 절망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이야기들을...로맹 가리는 참 독특하게 풀어나갔다. 약간은 비꼬듯이, 어떨 때는 순순히, 그리고 천연덕 스러울 만치 작가의 감정을 속이며, 결론을 낸다. 그 결론은 항상 독자들이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정말 내가 인간적으로 살았는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인간들의 비인간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독자들에게 은근히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모순이 숨어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독자들이 자기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이 책은 내 무뎌진 삶을 다시 한번 벼리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났을 때 그 감동을 한달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중학교 때의 순수한 감정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문학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기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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