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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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역무원이 10살 남짓한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두 발목을 희생한 사건이 있었다. 사회면 기사가 자살이다, 카드빚이다, 살인이다 하는 끔찍한 이야기로만 도배되는 시점에서 정말 가슴 훈훈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왜 이 어린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까? 자신의 업무였기 때문에? 아니면 어린이를 구해준 후에 보상받기 위해서? ...... 이 책은 이런 선행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변을 던져준다. 사람이 유전적으로 이기적이라면, 이런 미담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그가 구해준 어린아이의 부모에게서는 감사 인사조차 없었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자식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 크게 다쳤는데도 불구하고...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담고 있다. 인간이란 철도직원처럼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도 있으며, 아이 부모처럼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사회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매트 리들리가 궁금해했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전개한다. '죄수의 딜레마'나 '게임이론' 등을 통해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또는 협력에 따른 이득이 충분할 경우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증명했다.

더욱 커다란 인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서로 배타적이 될 수도 있고,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 자신의 유전자를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취한다. 유전자는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무척 이기적이다. 예를 들어 정자들은 수억마리이지만 일반 정자들은 생식능력이 있는 정자가 빨리 달려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싸우거나 얇은 막을 형성한다. 이처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정자들은 협력관계를 통해 최대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유전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다른 정자가 들어오면 그 정자와 싸워서 죽이기도 한다.

인간들의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이익이 사회적 이익과 일치하는 것을 원한다. 특히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친한 친구가 자기에게 잘해주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면에 그 친구에게 자신도 잘해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 득이되는 행동을 했을 때, 자신에게도 그만큼 가치가 돌아오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인간의 이기적 유전자가 발현되는 확률보다 이타적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철도직원의 보상에 대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철도직원은 사회에 득이 되는 행동을 했지만, 개인으로써는 장애를 안게 되었다. 또한 이익을 준 당사자에게서는 감사인사도 받지 못했으니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어떤 올바른 행위에 의한 보답이 정당한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도덕적 측면에서나 사회 발적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저자 또한 인간이 상호관계에 의해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존속해왔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방향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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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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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은 즐겁지 않다. 오히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다. 현실의 한 부분 중에서도 삶의 가장 남루한 상처를 치밀하게 파헤치는 문장과 이야기들은 자꾸 고개를 돌리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한 두장을 읽고 덮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기뻤던 것은, 내가 이 상처들을 이겨내고 흉터로 가다듬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과 하나가 되는 첫걸음이다. 또한 나의 상처를 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부처'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소설이다. 모든 면에서 철저한 남편은 알고 보면 온 몸이 화상으로 얼룩진 환자였다. 아내는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 남편을 받아들여 결혼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고슴도치같은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그런게 아닐까...서로 알아가고,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다가도, 그 상처가 너무 미워 더이상 만날 수 없어질 때...그때가 바로 헤어짐의 순간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그 상처라는 사실을...작가는 알고 있다. 사랑으로 연결된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 법칙은 유효하다. 심지어 가족들의 관계에서는 '애증'이라는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 남게 된다.

쉬운일은 아니었다.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한강의 소설이 우울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납덩이와 같은 무거운 문장들을 하나 하나 책 위에 펴 놓고....이 한 권의 소설책으로 생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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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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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 중에 최초로 읽어본 작품이다. 아는 분이 선물해 준 책이었는데, 그분은 르 클레지오의 열렬한 팬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은 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단지 좀 특이한 여성에 관한 성장소설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 특이함 또한 주인공의 자의식이 풍부하고 자유로우며 편견이 없는 전형적인 프랑스적 사고에 따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주인공이 검은 피부의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침묵'이라는 산문집을 읽고 감동을 받은 후, 다시 읽어보니 분명히 작가의 문장에서 이 여성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감수성이 느껴졌다. 르 클레지오의 문장은 포도가 영그는 뜨거운 프랑스의 하늘의 강렬한 햇살처럼 선명하며, 포도주처럼 진한 향기가 있다. '침묵'이라는 산문집을 읽고 작가의 끝도 없는 사색의 공간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이미 확인을 했었다.

<황금 물고기>는 한 여성의 자의식을 따라가면서 쓰여진 소설이다. 여성의 시선이 성장하면서 더욱 아름다워지고, 결국 '황금 물고기'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성숙해가는 모습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마음을 회화로 표현하는 듯한 서술방식은 르 클레지오만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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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art 003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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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다. 일반적인 평전이라기 보다 아름다운 언어로 비단을 짜듯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을 그려내 줄 것이라는....믿음. 르 클레지오의 언어적인 깊이가 깊은 탓도 있지만, 두 화가의 사랑이 세기의 사랑이라고 불리워도 될만큼 워낙 독특했기에 이 책을 펴면서 한 점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남미의 문학, 남미의 시, 남미의 그림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사실 이 책 또한 우리나라의 누군가가 이들에 대해 쓴 글이 아니라 번역해서 다른 한 나라를 다시 거쳐오지 않았는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타이틀은 아직까지는 낯설다.

사실 나는 디에고보다 프리다의 그림에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이 책을 사서 프리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그녀의 그림이 주는 섬뜩한 여성성, 피, 두려움, 폐쇄성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르 클레지오는 프리다의 그림이 '디에고'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는 디에고가 사회주의자였으며, 멕시코의 전통적인 역사와 삶을 표현해냈으며, 피카소와 친분이 있었으며, 세계가 좁은 듯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라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프리다에 대해서는, 그녀의 삶이 워낙 폐쇄적이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디에고'였다는 것,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으며, 예민하고 감수성이 강한 프리다가 디에고를 사랑하는데 있어 어떤 정신적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르 클레지오는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프리다의 감정에 대해 상상해서 풀어 쓰고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책은 전체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둘의 만남 이전부터, 멕시코의 사회적, 정치적 변동 시기에서 '디에고'나 '프리다'의 정치적인 신념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림들이 충분히 실려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디에고의 벽화나 프리다의 자화상이 충분히 실려 있어서 시기에 따른 그림의 변화를 확연히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책에는...프리다와 디에고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동시에, 더욱 목마르게 만들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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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이면우 지음 / 북갤럽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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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읽고 느꼈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대시의 독자로써 이만큼 '가난'이 높고 맑은 경지에서 순화된 모습을 띈다는 것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옛 사람들의 시가 아름다웠던 것은 그들의 삶과 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시가 조화롭다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 있을까? 기교를 숨기고 소박하고 반듯한 정신을 앞세운 이면우 시인의 시는 언제 읽어도 아름답다.

'가난'을 말하면서도 늘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면우의 시는 그 길의 중앙에 서 있다. 이 시집은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보다 더 서정적이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자연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이면우 시인은 가난한 삶에 대해 노여워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자연의 생물들이 삶에 순응하듯이 곧고 반듯한 정신을 가다듬는다.

시집 열권이 팔려 겨우 4, 5천원짜리 밥 한끼 사먹을까 말까인데, 이 고운 시편들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감동과 부끄러움은 값을 따질 수 있을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그는 가족들을'나만 믿는 입들', '나만 좇는 따스한 눈빛' 이라고 어여쁘게 표현한다. 그 마음가짐이 어찌나 눈물겨운지 내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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