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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의 소설은 즐겁지 않다. 오히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다. 현실의 한 부분 중에서도 삶의 가장 남루한 상처를 치밀하게 파헤치는 문장과 이야기들은 자꾸 고개를 돌리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한 두장을 읽고 덮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기뻤던 것은, 내가 이 상처들을 이겨내고 흉터로 가다듬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과 하나가 되는 첫걸음이다. 또한 나의 상처를 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부처'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소설이다. 모든 면에서 철저한 남편은 알고 보면 온 몸이 화상으로 얼룩진 환자였다. 아내는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 남편을 받아들여 결혼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고슴도치같은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그런게 아닐까...서로 알아가고,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다가도, 그 상처가 너무 미워 더이상 만날 수 없어질 때...그때가 바로 헤어짐의 순간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그 상처라는 사실을...작가는 알고 있다. 사랑으로 연결된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 법칙은 유효하다. 심지어 가족들의 관계에서는 '애증'이라는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 남게 된다.
쉬운일은 아니었다.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한강의 소설이 우울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납덩이와 같은 무거운 문장들을 하나 하나 책 위에 펴 놓고....이 한 권의 소설책으로 생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