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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톡스
윤영 지음 / 스토디오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의 극 초반부에 나오는 설정부터 아주 흥미롭다. 주인공 '김제리'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공무원인데 그가 하는 일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면서도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게 되는 '감정'을 조사하는 일이다. 그는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과 용의자들을 조사하며 타인의 감정을 물어 뜯는 일들을 보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배경은 주인공의 자유분방하고 방탕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성격과 오묘하게 어우러져 읽는 사람에게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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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워낙 음침한 애여서 잘 기억도 안 나는데요 쌤."
"별생각 안 드는데요. 썜, 저 공부하러 가야 돼요."
"걔네 엄마가 걔 괴롭힘 당해서 죽은 거 아니냐고 학교 와서 막 소리 질렀잖아요. 진짜 개무서워. 아 근데 걔 솔직히 당해도 싼 애 아닌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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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사람의 감정을 주축으로 삼는 만큼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만큼 적나라한 감정들이 드러난다. 무언가 뒤틀렸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의 삶에서 돌부리처럼 계속 머뭇거리게 만들고, 때론 넘어뜨리기까지 하는 그런 감정들이.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권태와 피로에 찌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마비시키는 '무감정약'이 암암리에 퍼져나간다. 그 약은 다른 마약들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큰 의존성, 중독성을 갖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가슴속에 묵직하게 똬리를 튼 감정을 일시적으로 도려내 한결 이성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살 수 있다는 그 해방감에 한 번 약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약을 다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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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감정을 쏟는 김제리 같은 사람은, 타인에게도 같은 걸 바래. 너도 나한테 감정적인 유대를 바라잖아. 난 그걸 해줄 수 가 없는데... 완벽히, 해낼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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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소설의 주요 키워드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 너무 생생해 몰입되는 소설이다.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절망.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만족에 대한 갈증, 가까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그만큼 자신을 여겨주지 않는데서 오는 고통. 이런 감정의 표현들은 소설의 조미료가 되어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마약 범죄의 실상을 너무나 잘 반영해 이것 하나로도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으나 인물들의 과거사와 그 인물들 간의 뒤섞인 감정들을 이렇게까지 잘 표현해낸 작품은 또 본 적이 없기에 더 기억에 새겨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