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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상점 - 당신의 상처를 치유해드립니다
변윤하 지음 / &(앤드) / 2022년 1월
평점 :
이번 학기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의도적으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참 많이도 가졌었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딴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택한 방법은 오디오북, 특히 소설류를 1.8배속으로 들으면서 걷는 것이었다. 나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끄러운 두 귀에 정신을 집중하면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거지? 싶어 내가 기억하는 부분부터 다시 듣기를 반복하다 보니 학기가 끝날 즈음에는 오디오북으로 소설책을 듣는 것에 제법 취미가 붙었다. 그렇다 보니 소설류를 종이책으로 읽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인공 여리에게는 그림자가 세 개가 있다. 곤란하게도 그 그림자들은 여리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여리는 늘 시선을 땅바닥에 두고 살아왔다. 혹시라도 누가 알아차릴까 봐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그늘 속으로만 숨어다니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기로 결심한 순간 홧김에 그림자 두 개와의 연결 고리를 날카로운 돌로 찍어 끊어버렸다. 그렇게 여리에게는 그림자가 하나만 남았다, 남들처럼. 그런데 이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과 다르게 색이 옅은 게 회색빛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 겹쳐지기라도 하면 빨려 들어갈 듯 흩어지기도 해서 영 시원찮았다. 여전히 여리는 자신의 그림자가 남의 눈에 띌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런 여리에게 자신이 버린 그림자들이 자신과 묘하게 닮은 여자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찾아와 자신들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여리가 온전한 그림자를 가질 수 있도록 함께 그림자 상점에 가달라는 부탁을 했다. 여리는 한 때는 자신의 그림자였던 유나와 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 여정에 함께 하게 된다.
사람에게 그림자가 세 개라니? 흥미로운 설정이다 싶었다. 게다가 그 그림자를 끊어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끊어진 그림자가 어째서인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사람처럼 살기도 한다니?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중간부터 나온 달 호텔은 2019년에 유행했던 호텔 델루나가 생각나기도 했고, 그보다 훨씬 전에 세상에 나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여리와 해우의 그 관계는 딱 치히로와 하쿠의 관계 아닌가?! 싶었다. 주인과 닮은 외양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림자들의 세계는 평행세계관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아쉬움이 남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도 2부를 기대하기 딱 좋았다.
혹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온전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지, 건강한 색을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해볼 마음이 들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