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샘터 2016.10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1. 빨갛다. <샘터 10월호>를 보자마자 들었던 감상. 가을이구나 정말. 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석이 코 앞이었음에도 가을이 왔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샘터 10월호> 표지를 보자 실감이 났다. 벌써 가을이 됐구나 하고.
#2. 가을. 은 어쩐지 그 단어 자체로도 쓸쓸하다. 좋게 말해 가슴이 차분해지고, 나쁘게 말해 기분이 가라앉는다. 추위와 싸우느라 정신없는 겨울에 못할 "벌써 한 해가 다 갔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나는 뭘 했지?" 하는 감상을 지겹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선하고 여유로운 계절이라 그런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는.
#3. <샘터10월호>의 특집은 "첫사랑에게 쓰는 편지" 였다. 흐-음. 첫사랑이라. 사랑을 믿지 않는 나로써는 인연이 닿는 모슨 사랑이 첫사랑이다. 조금씩 나를 깍아내고, 깍아낸 만큼 버리고, 버린 만큼 메꿔놓고... 매 사랑이 나한테는 새로운 도전이고, 두려움이고, 체념이었다. 음... 풋풋함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역시 초등학교 다닐 적이었을지도?
#4. <샘터9월호>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샘터10월호>에서도 내 마음을,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글귀가 있어 가슴 깊이 공감하며 안도했다. 나에게만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지는 않구나 하는 안도. 배우 황인영의 인터뷰 속에서 그녀가 말했다, "왜 나한테만 한꺼번에 불행이 닥치는 거지?" 숨통이 조금 트일만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목에 달라붙고, 그걸 겨우 밀쳐내고 나면 또 다른 손이 달라붙는 것 같던 길고도 짧았던 시간동안 암막 커튼을 쳐놓은 캄캄한 방 안에 웅크리고 누운 내가 맥없이 울면서 했던 생각을, 화려한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예쁘고 당당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여자도 했다니. 한참을 그 구절에 시선을 둔 채 가만히 숨을 쉬었다.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불행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어느 날 문득 거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렇게 이겨내고 새로이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동지의식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끼고 동시에 부러움도 느꼈기 때문이다.
#5. 여러가지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정말로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 올린 것 같은 그 한 구절에 가장 깊고 강하고 마음이 쏠렸기 때문에 이번 호 리뷰는 이정도에서 마치고 싶다. 괜스레 더 길어지면 한 때 나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에는 어찌어찌 극복하여 또다른 일상과 욕심을 만들었던 그 생각이, 그 구절이 퇴색 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남는 것을 두고두고 손쉽게 찾아 보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던 취지에 걸맞추려면 이쯤에서 줄여야지. 백자, 천자를 적어도 저 주황색 구절 하나만큼 내 가슴에 파고들 말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