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선을 긋다
긋다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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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몸이 아프고 체력이 달리면 사회화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성격이 나오게 된다. 일단 나부터도 체력이 방전되고 슬슬 몸이 아파지기 시작하면 평상시에는 우는소리 아쉬운 소리 잔뜩 해가며 유들유들하게 넘길 수 있었던 사소한 요구와 부탁에도 한숨부터 나오는걸. 그러니 입원 기간 내내 온몸이 아파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환자들이나 그런 가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보호자들의 오락가락한 감정 기복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사회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한정된 시간 안에 여기저기서 일감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것들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쳐내거나 미룰 수 없는 일들일 때면 극도로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부터도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일감 속에서 더해지는 사소한 요구와 부탁에 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오고 퉁명스러운 단답형의 대답이 먼저 튀어나가는걸. 그러니 가장 바쁜 시간에 직장 내 선후배 또는 동료 직원들에게서 툭툭 튀어나오는 사회화되지 않은 날선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머리는 이해는 하지만, 마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런 적 있는걸', '아프니까', '바쁘니까',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해야 하니까' 등등.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반복해서 중얼거렸던 그 대리 변명들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순간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그렇지 경력이 얼만데', '아픈 게 벼슬이야?', '자기만 바쁜 줄 아나?', '마음이라도 곱게 써야 하는 거 아냐?', '눈이 없나? 바쁜 게 안 보이나?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왜 내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하지? 내가 무슨 맥가이버인 줄 아나?', '왜 나만 뛰어다녀야 돼?', '내가 만만해?' 등등. 점점 날 선 불평불만들이 먼저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점점 드러나면 슬슬 깨닫게 된다.


'내가 또 선을 넘었구나' 내가 마땅히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그어놓았던 선을 슬그머니 내 발로 지워버렸다는걸.


평생을 회피형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수많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마주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차고 올라오는 불합리함을 한숨으로 꾹꾹 눌러 삼키며 이번만 참자하는 마음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게 차라리 더 심신의 피로가 덜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다가 여러 번 앓아누운 이후로 조금씩 바뀌어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아니오', '못 하겠습니다',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나만 사회화가 덜 된 걸까? 남들은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이번에 <나를 위한 선을 긋다>라는 도서의 서평단 모집 공고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하게 된 것도 딱 그런 상황에 처해있을 때였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인간관계 관련 도서들이 주었던 깨달음이 흐릿해져서 다시금 상기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한 바로 그때.








엄청난 비법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내 맘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상황들 속에서 저자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색색의 그림들과 함께 담담하게 적혀있는 것을 차분하게 읽어 가다 보니 세상이, 사람들이 유독 나에게만 막 대하는 것 같다는 날 선 생각이 유들유들 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일지라도 글줄을 따라 읽는 게 정말 힘들다. 이 책은 한 장에 3~4개의 큼직한 그림과 함게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은 짧은 글이 담긴 단순한 구성을 갖고 있다. 호흡이 길지 않은 그림 에세이를 무심하게 보다 보면 마음이 슬슬 누그러지고, 그 즈음 각 장 끝에 자리한 짧지만 훨씬 묵직한 에세이를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읽게 된다. 그렇게 두어 번 반복하다 보니 억울함으로 들끓던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오늘도 또 한 사람이 그 모든 불합리함과 억울함을 묵묵히 견뎌내고 자신의 글 밥으로 삼아 덤덤하게 '그땐 그랬지' 식으로 풀어냈다. 그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 속도로 흘러가니까 나도 또 이 시간만 견뎌내면 덤덤하게 풀어낼 수 있겠지.


어쩌면 이다음에는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어제는 못했던 '잠시만요' 소리를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은 못했던 '여기까지입니다' 소리를 내일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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