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공감 안 되는 거였어? - 현직 대중문화 기자의 ‘프로 불편러’ 르포, 2021 청소년 북토큰 선정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년 세종도서 하반기 교양부문 선정作 파랑새 영어덜트 2
이은호 지음, 김학수 그림 / 파랑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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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인권과 관련된 이슈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여성 인권 뿐 아니라 아동 인권, 외국인 인권, 노인 인권, 장애인 인권 등등. 넘쳐 나는 관련 기사들을 보면 하나같이 암담하다 못해 슬플 정도인데 관련 도서들 중에 쉽고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 서술하고 있는 책을 찾기가 어려워 아쉬워 하길 반복하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제목부터 맘에 쏙 든 책의 표지 속 여자의 삐딱한 표정과 자세가 내 속마음 같아 서평단 신청을 했고 다행히 먼저 읽어볼 기회가 얻었다.

 작년까지 한국에서 소문 자자했던 영화 11편과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편견과 차별' '언급'해주며 왜 그 '일상적인 혹은 자연스러운 장면' '불편'하다는 건지 알려주는 방식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별걸 다 불편해하네.'

 저자는 이제까지 일상화된 편견과 차별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분명 이렇게 반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문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거기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것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며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언급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답하는 저자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매 순간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그런 식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매번 '이제까지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불편하다고 소리를 내는 게 정말 더 좋은 일일까? 안 그래도 갈등과 대립이 넘쳐 나는 세상에 괜한 소란 거리를 더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타당한 걸... 어떻게 절충점을 찾을 수는 없는 걸까? 아 머리 아파! 나한테는 너무 벅찬 문제야!' 라고 매번 갈팡질팡 하던 끝에 짜증을 내고 말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모른 채 소비하던 때로는 못 돌아가니 대신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자리를 지켜야지.

 어느 날부터 책 속에서,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가사 속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의식 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 것 같다. 처음에는 이제까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그 모든 일상적인 컨텐츠들을 소비해왔다는 게, 나의 그런 무심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용히 그것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너무 반복되니까 불편함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불편함을 깨달아버린 사실에 한탄하기도 했다. 나 하나 이런다고 유난 소리나 듣지 달라지는 건 없는데... 세상은 둥글게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주변에 이렇게 불편한 게 넘치면 어쩌라는 건가.

 분명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넘쳐 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시도도, 자신과 다른 시각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지고 있어 숨통이 트인다. 이 책의 저자처럼 대신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 덕분에 조금씩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대표 되는 인종 차별.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게 바로 '블랙 페이스black face(얼굴에 어두운 분칠을 해 흑인을 흉내내는 것)'이다. 왜 이 분장이 잘못되었는가 하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하던 시기의 미국에서 백인 배우들이 이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하고 코미디 쇼 무대에 등장해 흑인 노예의 삶을 희화화하는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우스갯거리로 삼은 것도 문제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렇게 함으로써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확산시킨 데다가 유머니 조크(농담)이니 하면서 당시의 백인들에게 노인 제도의 잔인함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금기시 된 것이다. 

 작년에 아프리카의 장례 댄서들을 패러디한 관짝소년단 논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우리나라 코미디 쇼에서도 흑인 분장을 하고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 이후에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어눌한 한국어를 흉내내는 개그가 대유행을 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흑인을 보기가 참 힘들다. 그렇다 보니 '인종차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흑형'이나 '흑누나'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단지 그 말을 흑인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또한 편견이다. 백인을 향해 '백형'이나 '백누나'라고는 부르지 않으니까. 이를 심리학에서는 '긍정적 선입견'이라고 부르는데, 얼핏 칭찬처럼 보이는 편견이다. 그리고 이 경우가 더 어렵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꺼낸 화자는 자신의 기준에서 칭찬이라고 혹은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꺼낸 말인데 청자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에 앞서 무안함을 느끼며 오히려 청자를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짝소년단의 패러디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가나 댄서들도 있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며 불편함을 표시한 샘 오취리도 있듯이 화자의 의도와 청자의 반응이 늘 일대일로 상응하지는 않는다. 결국 개개인이 예민하게 스스로를 점검해야 괜한 오해도 피할 수 있는 세상인 듯하다.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장이었던 이 이야기의 주요 포인트 '둔감하게 만들다'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책에서 짚어주는 모든 편견과 차별은 잦은 노출로 둔감해진 '원래 다 그런 거'다. 설사 '원래 다 그런 거' 라고 해서 그게 정말 옳은 것일까? '아 나 원래 연락 같은 거 잘 안 해. 싫으면 헤어지던가' 라고 말하는 연인이 좋은 연인이 아니 듯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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