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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인간은 들은 대로 달라진다. 아나는 지금까지 줄곧 틀렸다는 말을 들어왔다.- <베어타운> P.113 -
(중략)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트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 <베어타운> P.155 -
(중략) ...다른 선수들에게 얘기하는 건 전혀 상관없어요. 엄마한테 아무 말씀 하지 마시라고요! 제가 어마 일을 대신하면 엄청 화를 내시거든요!
- <베어타운> P.209
#1. <오베라는남자>로 데뷔한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신작을, 그것도 서점에 깔리기 전에 받아서 읽어 볼 수 있다는 말에 매료되어 신청했던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받게 되었다. 한 손에 들리는 책은 가벼운데 두께가 상당해서 이걸 언제 다 읽지...? 읽을 책이 많은데... 설마 이렇게 연달아 서평단이 될 줄은 몰랐잖아! 하며 허둥지둥 시작했던 책 읽기는 점점 더 많은 불편한 공감을 남기며 순식간에 끝이 났다.
#2. 베어타운이라는 숲 속 깊숙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유일한 자랑거리는 <청소년 아이스 하키단>뿐이다. 그나마 주민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책임져주던 공장이 정리해고 끝에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근래들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청소년 아이스 하키단의 재능과 승리 뿐이다. 특히 캐빈! 아이스 하키팀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캐빈은 거의 마을 사람들의 구세주다. 그리고 그의 단짝이자 빙판 위의 깡패 벤야민. 두 친구는 특히 빙판 위에서는 백전백승의 능력자들이다. 전국 청소년 아이스 하키 대회 준결승을 승리로 이끈 그 날, 캐빈은 술과 약에 취해 마을 소녀 중 하나이자 청소년 하키단의 단장인 페테르의 딸 마야를 강간하게 된다. 마야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소년 아맛에 의해 그 악몽같은 현장에서 벗어나게 된 마야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부모님께 털어놓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등에 가득 업은 채 승승장구하던 캐빈의 인생에 처음으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3. 처음에는 이 책이 그저 특별할 거 없는 산 속 작은 마을을 자신의 땀과 재능으로 부흥시키는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스포츠에 관한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첫 장이 십대 청소년이 다른 십대 청소년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로 시작 되었을 때, 스포츠 선수의 재능과 노력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가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캐빈의 그 뻔뻔함에는, 마을 사람들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분노에는 내 자신의 일인 양 내 딸의 일인 양 화가 났다. 매 장이 끝날 때마다 '~했어야 했다' 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끝나서 혹시나 이 소설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 아니라 비극 스릴러 소설인 건가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아무리 결말이 궁금해도 그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읽는 속도를 빨리 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4. 베어타운의 중점은 아이스 하키라는 스포츠이다 보니 마을의 중심은 남자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역할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베어타운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아무도 그 점의 이상함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나고 자라 베어타운으로 들어오게 된 마야의 엄마 미라의 경제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용히 힐난했다. 소설 초반부에 자꾸만 드러나는 워킹맘의 고뇌에 '워킹우먼'인 나는 많은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 나라는 페미니즘과 여혐으로 얼마나 시끄러운가. 그리고 동시에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남성 독자들은 미라의 이 고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5. 첫 등장 했을 때는 정말 '밥맛'에 '구제불능'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국'에 '매력덩어리'가 된 캐릭터들이 몇 명 있다. 캐빈의 단짝 친구인 벤야민이 그랬고, 아맛의 진정한 친구가 된 '보보'가 그랬다.
#6.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이 다음 소설에 등장하는 식이라고 한다. 베어타운 청소년들의 미래를 예고편처럼 보여주며 끝났던 만큼 다음 작품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게 될 지 슬며시 기대하며 책장을 덮었다.
다산책방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