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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것 1
제인 호킹 지음, 강형심 옮김 / 씽크뱅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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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해서는 루게릭 병에 걸린 천재 물리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해 컴퓨터로만 대화할 수 있다는 정도. 범인인 나는 그의 물리학적 업적에 대해 새까맣게 무지하다. 하물며 나는 그가 처음부터 몸을 움직이지 못했을 거라고 매우 섣부르게 단정짓기도 했다. 그래서 그도 건강했던 시절이 있었고 결혼도 했으면 아이도 낳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괜시리 미안해졌다. 나는 책보다 영화 개봉 소식을 먼저 들었다. 예고편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를 짧게 보았는데도 감탄이 나와 영화가 무척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지방에서는 상영관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대형 영화에 밀려 취소가 되어 영화를 놓치고 말았다. 사실 책을 보기 전에 영화 먼저 보려 했었는데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책을 먼저 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책을 다 읽으면 영화를 찾아서 볼 참이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과 25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하다 이혼한 제인 호킹의 회고록이다. 그의 병을 받아 들여 결혼까지 했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거라 사료된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이 둘은 헤어져야만 했을까. 책을 받기 전에 나는 스포일러를 찾았다. 스티븐과 제인을 검색해서 결혼의 말로, 기사와 스캔들로 점철된 파경을 지켜봤다. 나는 이미 해피엔딩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나 역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독한 불신자로서 스스로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의 노부부처럼 죽을 때까지 해로하는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매우 드문 일. 사랑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던 두 천재의 고뇌를 엿볼 수만 있다면 그들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몸이 불편한 이의 사랑은 참으로 지질하다. 자신의 약점으로 상대가 떠날까봐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언제나 상대가 떠날 걸 대비해서 방어적으로 군다. 혹여 다른 이유로 이별을 해도 핑계는 항상 자신의 약점이 된다. 뛰어난 천재인 스티븐은 어쩌면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린 자신의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그였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해도 선뜻 결혼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스티븐은 고향에서 나를 다시 보자 기뻐했다. 나는 스티븐이 우리의 관계를 좀 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미래가 자신이 두려워하는 만큼 최악으로 치달을 필요는 없을 것 이라고 마음을 굳혔는지도 모른다."(p.65) 나는 불안했던 스티븐의 마음과 절망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그저 그의 표정과 말투로 매우 짧게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제인은 스티븐과의 첫만남과 데이트 그리고 결혼까지 아주 담담한 어조로 증언하고 있다. 일부러 과거의 자신과 감정을 떨어트려 이야기하는 듯 매우 건조해서 스티븐과 제인이 열렬히 사랑하는 느낌마저 들지 않았다. 또한 책을 읽으며 제인의 고뇌, 슬픔 등 내적인 갈등이 그리 크게 나와 있지 않은게 매우 아쉬웠다. 화자의 심리상태가 글에 크게 반영되지 않고 그저 역사를 줄줄이 이야기하고 간단하게 감회를 서술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죽음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징후에 매우 가까운 이와 결혼 하겠다고 하는 건 가족들의 허락을 구하기 어렵고 스스로도 정말 큰 결심과 결단을 내려야 했을텐데 아무런 갈등 없이 만나고 결혼으로 바로 직행하는 느낌이 들어 의아했다. 그녀 집안이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던 걸까. 나는 종교가 없고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모든 이를 사랑해야하고 이해해야하는 그런 인류애가 이질적이다.

  또 한가지 궁금했던 점은 나는 몇년 전 일도 가물가물하고 시간순서도 뒤죽박죽인데 어떻게 이렇게 그때 일을 누군가가 말한 내용이나 날씨 등을 무리 없이 말 할 수 있는가이다. 따로 특별히 일기를 쓰거나 해서 기록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감정과 기억은 점차 희미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서 지적한 매우 건조한 문장들은 기억을 떠올리는데 급급해서-사진이나 일기등으로 기억을 떠올리는데 문제가 없었다면- 오래 전 감정은 이미 시들어 사라진지 오래라 당시에는 무수히 아름다운 비유로라도 채울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돌이켜 글을 쓸 때는 그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짧은 문장이 된 건 아닐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제인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눈이 멀지 말고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깨우침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서 그런걸까. 어쨌든 사랑의 과정이 와닿지 않은데 앞으로의 헤어짐에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와 집안일, 여기에 스티븐의 뒷바라지까지. 이런 선택을 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스티븐이 밉고 짜증나고 절망적이어서 모든 걸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나는 제인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그들의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기 전인 1권의 내용만 읽어서인지 제인이 그 시절을 포장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 다른 사람이 삶에 들어오고 둘은 이별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되기까지 매우 인간적인 면모가 2권에서 나오길 바란다. 아직 클라이맥스가 나오지 않아서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면서도 염려된다. 아-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나눴던 간에 궁극적으로 모두 이별하게 되어 있다. 나는 자주 그 생각을 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찌됐든 슬픔이겠지만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기억되길 위해서. 마음이 하루종일 아프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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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스톤 셜록 홈즈 전집 세트 - 전9권 - 개정판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6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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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셜록 홈즈를 들어봤을테다.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인물도 드물듯 하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던 어린 시절, 나는 한때 셜록과 뤼팽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뭔지 모를 으스스한 분위기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셜록과, 정의로운 도둑 뤼팽. 어떤 책에서는 만날 셜록이 한발 늦으면서 뤼팽한테 호되게 당하던데 후에 알고보니 뤼팽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심술이였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가 그닥 좋지 못했는데 모리스가 영국에서 유명한 홈즈를 깍아내리면서 양국의 자존심 대결구도를 만들어 유명세를 취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릴 때는 작가가 누구인지 주의깊게 살피지 않아서 나는 셜록보다는 뤼팽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비현실적인 모험가인 뤼팽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독특한 탐정인 셜록이 더 마음에 든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성인이 되어서 셜록홈즈 전집을 사려고 했는데 번역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제껏 미루어두고 있었다. 이번에 받은 코너스톤의 홈즈는 번역은 차치하고 다른 책에는 들어있는 삽화가 빠져 있어서  매우 아쉽다. 다른 세트보다는 그리 고급스러운 느낌은 부족하나 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처음 셜록 홈즈를 접하는 청소년이나 학생들에게는 좋을 수 있겠다. 

  요즘들어 셜록 홈즈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소재가 고갈되고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데에는 위험 부담이 따르니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자는 심사인 듯 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인공인 영화 속 셜록 홈즈는 몸싸움에 능하고 능글능글한 모습으로, 드라마 엘리멘트 리에서 여자인 루시 리우가 왓슨으로 변주되어 나온다. 이 나름대로 재미있긴 하지만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을 현대식의 맛깔나게 재해석 한 건 영국드라마 '셜록' 아닐까 싶다. 드라마 셜록을 보고 난 후 오랜만에 '주홍색 연구'를 읽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눈짓, 몸짓, 표정 등등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소설과 드라마 속에서 홈즈가 사람을 두고 분석해서 어떠한 사람인지 유추해 내는 건 똑같은데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여간 불편하지 않을까. 소설 속 홈즈는 그나마 신사인데 비해 드라마 속 홈즈는 여과없이 생각이 나오는 데로 말을 뱉으니 내가 아무리 셜록을 좋아해도 나를 까뒤집으면 얼굴이 불그락푸르락이 될 성 싶다. 하지만 셜록의 추리력도 영국을 기반으로 할 때 빛이 나겠지. 미드 속 셜록도 영국을 한참 떠나면 바뀐 영국에 적응하기 위한 기한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가 한국에 왔을 때 과연 그의 추리력이 빛을 발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셜록은 범죄 연구에 도움이 되는 과학에 대해서는 깊게 알고 있으나 그 외의 상식에는 무지해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영드 '셜록'의 홈즈는 '이성'이야 최우선이라는 소신하에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를 거부하며 산다. 영드의 홈즈는 소위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는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이가 바로 '왓슨'이다. 사실 '왓슨'은 코난 도일의 페르소나이다.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후가 나뉘듯이 '셜록 홈즈'는 왓슨과 셜록이 만나면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셜록이 왓슨을 만나기 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셜록과 왓슨의 신나는 모험은 모두 왓슨의 기록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둘이 무척 잘 어울리고 애틋해서 셜록은 동성애자고 왓슨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뜬끔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미드에서도 그들만의 흐믓한 장면으로 끈적한 브로맨스를 꿈꾸는 몇몇 셜록키언들은 환호성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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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 셜록 팬들에게 유명한 우리나라 OCN … 아니 게이씨엔의 예고편을 감상해보겠다. 이것말고도 여러 버전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길 권한다.

  주홍색 연구에서 셜록과 홈즈가 첫 대면을 한다. 오랜만에 읽으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홈즈의 추리력보다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살인범의 사연에 더 눈길이 갔다. 예전에는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말의 헛점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사형제도도 반대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죽였다면 나라도 복수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우리나라 법은 쓸데없이 범죄자들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듯 해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은 점점 잔악해지고 있다. 사형제도가 범죄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조사도 있으나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는 똑같은 벌을 받아야 한다. 사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가장 큰 형벌은 반성, 참회겠지만 인성을 잃은 동물에게 그걸 바라는 건 사치일 듯 하다.

  법 테두리 밖의 종교단체에서 만들어 놓은 제도에 발목이 묶인 아버지와 딸이 있다. 모르몬교에 대해서는 간혹 범죄 드라마나 소설에 나와서 접해 본 적이 있다. 메디컬 드라마였는데 부모가 모르몬교였다. 딸은 모르몬교에서 빠져나왔는데 사고로 의식불명이었다. 수혈만 하면 살 수 있었는데 법적 보호자인 부모가 수혈을 거부해서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드라마 속 의사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 설왕설래 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좀 충격을 받았는데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생명보다 계율이 먼저라는 그들의 소신이 이해가 안됐다. 아마 평생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하다. 또한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이다. 나는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축 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어처구니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목사, 즉 뱀같은 혀를 갖은 인간을 맹신하는 일부 교인들을 나는 혐오하는 편인데 소설 속의 타락한 모르몬교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이 믿는 신은 어디로 갔는가. 당신이 믿는 게 정녕 신인가. 아버지와 딸, 딸을 사랑한 청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면 소설 읽는 재미가 반감되겠으니 이 정도만 언급해야 겠다.  짧은 순간의 사랑에 평생을 다 바쳐 복수를 완성시킨 남자의 인생이 측은하고 안타깝지만 죽은 여자가 과연 그걸 원했을런지는 알 수 없다. 문득 복수도 자기만족이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셜록이 그토록 타인에게 무관심해진건 사람의 어두운 심연을 꿰뚫어 비관적으로 변해서인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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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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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다닐때 날마다 일기 검사를 했다. 나는 일기 쓰기가 귀찮아서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매일 의미 없는 비슷한 이야기만 썼다. 후에 일기쓰기 숙제가 글쓰기 연습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열심히 하지 않았던 기억이 후회로 덮어졌다. 감수성이 또래보다 앞서가던 친구들은 선생님께 보여주는 일기와 자기만 아는 일기를 따로 쓰며 이중생활을 했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스스로와의 비밀스러운 대화였을까.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SNS에 일기를 쓴다. 자신의 무얼 보고 어떤 음식을 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낱낱이 모르는 사람들도 볼 수 있겠끔 인터넷 상에 올려놓는다. 보는 사람들을 의식한 나머지 하루의 이야기를 포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작 마음 바닥 가까이의 이야기는 쓰지 못하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나 또한 블로그에 일상의 글을 올리면서도 인터넷 상의 일상들은 그저 이야기일 뿐 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기는 어두운 곳에서 몰래 훔쳐보고 훔쳐써야 할, 유창한 말과 글이 아닌 더듬거리며 드러내놓기 망설이는 언어일 듯하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부부에게 딸이 있는데 사위 될 사람과 장모가 불륜을 저지른다. 이렇게 적으니 삼류 이야기일 듯 하지만 인물의 심리 묘사나 심리전이 뛰어나서 흡사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또한 사위될 이와 장모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과감히 넘어서기까지는 남편과 아내사이 아슬아슬한 욕망의 줄타기와 듣도보도 못할 기상천외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습게도 책 속의 부부는 일기를 못보게 숨겨놓으면서도 상대가 자신의 일기를 훔쳐 읽을 것이라 예견하고 또 원한다. 그리고 부부 사이임에도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일기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표출한다. 남편은 여자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음욕이 강하여 늙은 자신이 그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여성은 조신하고 기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남편과 섹스에 대해 대화하기를 매우 꺼려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미친듯이 탐하고 사랑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몸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에 극도로 혐오한다. 이 부부의 은밀한 성생활를 쓴 일기를 교차하며 보여주고 원초적 욕망만이 가득한 인간들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에둘러 보여준다. 에둘러 보여준다고 표현한 건 아내와 남편의 일기만으로 벌어진 일들의 유추해야 하기에 일기에 나오는 사위될 남자인 '키무라'와 딸 '토시코'가 당최 무슨 생각으로 이 부부의 위험한 게임에 합류했는지 알 수 없다. 남편은 질투심으로 성욕과 정력을 되살리기 위해 키무라를 이용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의도를 모른 척 젊은 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했다. 책 속 일기의 내용은 서로가 볼 것을 예상하고 썼기에 어떤 면이 '진심'인지, '진실'로 이 가정에 일어난 일은 무엇인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비록 마지막 장에서는 아내가 이제는 남편이 읽지 못할 일기장에 그의 부재를 빌려 낱낱이 고백하지만 남편의 고백을 우리는 읽지 못한다. 읽으면서 제일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들의 딸인 '토시코'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남편이 될 키무라와 어머니의 정사를 만류하지 않고 되려 적극적으로 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책이 발표될 당시로써는 굉장히 파격적인 결말도 동화 속 이야기의 뒷이야기처럼 그들의 나중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열쇠는 딱 맞는 자물쇠가 있어야 제 구실을 하고 자물쇠 역시 그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 열릴 수 있다. 너무나도 다른 기호를 가진 이들이 부부가 되어 성의 문을 열지 못한 게 비극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남편은 구식열쇠로 맞지 않는 자물쇠(아내)를 열기 위해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아갔고 '키무라'는 신식열쇠로 어쩌면 '토시코'와 아내를 동시에 농락한 만능키였는지 모르겠다. 열쇠는 상당히 많은 것을 상징하는데 남자의 성기 뿐 아니라 인간 내면에 숨겨진 성적 욕망을 열고 싶어한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비밀을 열기 위해서는 어쨌든 열쇠는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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