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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같은 저자의 책 <자비를 팔다>를 읽은 후 바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자비를 팔다>를 읽을 땐 그 내용은 차지하고,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해 어쩐지 낡고 녹슨 면도기로 면도하는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술꾼의 해장술 같이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그래서 술술 읽어 내려갔다. 아마도 번역의 문제이지 싶다. 이토록 재기 넘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저토록 투박한 글을 썼다고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먼저 소크라테스의 말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나는 죽음과 신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 역시 모른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시작을 어렸을적 경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 외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1. 지은이가 어린이었을 때 그의 과학 선생이자 성경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힘세고 너그러운 분인지 이제 알겠죠?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와 풀을 초록색으로 만드셨어요. 우리 눈에 가장 편안한 색깔 말이에요. 만약에 식물들이 전부 자주색이나 오렌지색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히친스 왈 : 우리 눈이 자연에 적응한 것이지 자연이 우리 눈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 아닌가.
2. 조물주의 창조물에 불과한 자신이 조물주의 뜻을 안다고 주장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억지로 꿰어맞추려고 헛되이 애쓰며 거짓으로 겸손한 척하는 성직자 혹은 신자들.
3. 암흑시대에 종교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안내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눈먼 사람이 최고의 안내자인 것처럼, 그는 주변 지리를 앞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낮이 왔을 때 눈먼 노인을 안내인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하인리히 하이네 <사상과 착상> -
4. 유일신을 믿는 3대 종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비참한 존재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이 종교들은 끊임없는 복종, 감사, 두려움을 가르친다.
5. 성경이 인종청소, 인신매매, 노예제도, 신부 값, 무차별적인 학살 등의 근거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우리가 성경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교앙 없고 조잡한 인간이라는 포유류가 엮어 놓은 책이니까 말이다.
6. 고대 캄보디아의 왕들은 메콩 강과 바삭 강이 매년 갑자기 범람해서 서로 하나가 되어 엄청난 수압에 의해 물길이 거꾸러 거슬러 올라가 톤레삽 호수로 다시 흘러들어 가는 날짜를 알아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신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가 나타나 강물을 향해 거꾸로 흐르라고 명령하는 의식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홍해의 기적을 일으킨 모세도 그 장면을 보았다면 그저 압만 딱 벌렸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왕은 이 자연현상을 이용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7. 어떤 사람이 잔혹한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바탕에 신앙이 깔려 있을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반면, 신앙이 있는 사람이 인류애의 편에 설 확률은 기껏해야 동전던지기의 확률이다.
8. 자선사업이나 구호 사업이 등장하기 이전에 종교는 선한 모범에 의해 널리 퍼진 것이 아니라 성전과 제국주의라는 구식 방법의 부속물로서 전파되었다.
9. 종교는 아무리 유순하게 굴더라도 결국은 '전체주의적' 해법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해법에 따르면 믿음은 어느 정도 맹목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은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의 모든 측면을 더 높은 존재의 영원한 감시에 맡겨야 한다. 이 끊임없는 감시와 복종은 대개 무한한 앙갚음의 형태를 띤 두려움에 의해 더욱 강화되며, 사람들에게서 항상 최고의 품성만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10. 어린이 마음에 충격을 주는 종교라면 결코 믿을 수 없다. - 토마스 페인 -
11. 아인슈타인은 어떤 랍비의 물음에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간여하는 신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신'만을 믿는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12. 유일신, 그가 악을 막을 의지가 있으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가 능력은 있으나,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적이다.
그가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 에피쿠로스 -
13. 토마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에 관흔 글을 쓴 뒤, 그 글이 그대로 자기 글 중에서는 나은 편에 속한다고 겸손을 떨면서 하나님이 직접 살펴보실 수 있게 그 글을 노트르담 제단 위에 놓았다.
어쨌든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자신의 글에 좋은 평을 내려 주셨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자신의 글이 하나님에게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주장한 사람은 역사상 토마스 아퀴나스 뿐이다.
14. 성 아우그스티누스는 방황하는 유대인 이야기와 유대인이 나라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의를 보여주는 거라며 몹시 즐거워 했다.
15. 철학은 종교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연금술이 효력을 다한 곳에서 화학이 시작되고, 천문학이 점성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처럼.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보다는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