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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ㅣ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구월 초순에 쓴 글이다.
1.
전작 <헌법의 풍경>을 읽고나서, 아주 제대로 충격 받았더랬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읽었다.
전작만한 충격파는 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ㅡ.ㅡb
부제가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인데, 말 그대로 사법 패밀리들이 어떻게 성벽을 쌓고 그 속에서 지네들끼리만 해쳐먹는지, 그리고 그런 해쳐먹는 구조가 워낙에 일상사이다 보니까, 이것이 나쁜 것인지조차 모르는 판검사들을 보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에 앞서, 썩어도 이렇게 썩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든다. 저자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외치지만 또 나 역시 저자의 그런 희망에 일면 동의하지만, 이 정권 아래서는 그런 희망의 꽃이 피기는 요원하고, 다음 정권때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어거지로 가져본다.
2.
그리고 저자 역시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의 신성가족'임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곳이 있는 데.
책 322쪽에 이런 애기가 나온다.
[ 우선 시민들 입장에서는 판검사들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중략) 일단 용감하게 "판사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 "검사님, 제 얘기도 좀 들어주시죠"라고 말을 붙이면 의외로 판검사들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그렇게 했더니 판검사들이 자꾸 무시한다고요? 그럴 때는 편지를 쓰십시오.
...............(중략) 법률용어를 못 쓰니까 수준이 낮을 수는 있어도 "진실이 들어 있고, 원통함이 들어 있고, 억울함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걸 판검사가 읽으면 반드시 먹혀들게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문제가 되는 문구는 법률용어를 못 쓰니까 수준이 낮을 수는 있어도라는 문구다.
저자가 앞에 있다면 물어 보고 싶다.
"아니, 법률용어가 일상용어보다 수준이 높다고 누가 그래요?"
"식민시대 때 왜놈들 말(한자로 된)을 그대로 우리말 독음으로 읽은 법률용어가,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비문 투성이인 법률용어가, 일상용어보다 수준이 높다고 누가 그래요?"
설사 법률용어가 수준이 높다면 그 수준을 정하는 근거는 무언가? 또 그 수준을 결정하는 건 누군가? 누가 그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저자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말 속에서 저자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임을 그리고 그 일원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면 내가 과민한 걸까?
그래서일까? 저자가 '팔로역정, 법조인이 이겨내야 하는 여덟가지 유혹'편에서 첫 번째로 꼽은 것이 '새로운 언어로의 입문'인데, 이 새로운 언어 즉 법률용어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 법률용어를 누구나 쉽게 그 뜻을 알수 있도록 고쳐나가야 하겠다는 의지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다만 '새로운 언어'는 어렵고 이 언어로 씌어진 사법시험은 더 더 더 엄청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 언어로 소통하는 신성가족이 되는 것은 무지무지무지하게 어렵다는 것만을 강조한데 그친 것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책들이 좀 더 많이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비록 책으로나마 신성가족의 성벽을 넘어서 소통을 하다보면, 후일, 얼굴을 마주하고 차 한잔 나누면서 얘기하는 날도 오지 않겠는가. 그 날이 오면 신성가족이란 높은 성벽도 사라지고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