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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ㅣ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역시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답게 문장 자체가 굉장히 딱딱하고 건조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려하고 감정 표현이 풍부한 문장에 비해 읽기가 꽤 까다로웠다. 또 이 소설은 장소가 바뀔 때마다 그 장소에 대해 설명을 세세하게 한다. 그건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인물 묘사는 그나마 나았지만, 장소를 세부적으로 묘사할 때, 내가 그 시대에 안 살아서인지 아니면 그 시대 그 시절의 가구나 벽지에 내가 무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가는 열심히 상세하게 묘사했지만, 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그 배경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책에 몰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홀리듯이 읽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참을성을 발휘해서 독파하기는 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가 작가가 묘사하는 그 시대 그 시절의 건물 모습, 가구나 비품들, 그 외 갖가지 것들을 머릿속에 완전히 그려놓는 데는 실패했을지언정 이 소설에서 일관되게 풍겨 오는 그 어떤 분위기는 충분히 날 소설 속 세계로 데려가, 그 속에 동화되게 만들기에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그 어떤 분위기란 무엇인가? 바로 어둠침침하고 무겁게 내려앉은 사회와, 비정하고 부패한, 그 시대 ,그 시절 또는 그곳에서 인생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결말의 약간의 경악스러움은 내가 방금 말한 그 어두운 소설 속의 분위기와 함께, 내가 느낀 작가의 (어떤 면에서는) 장황스런 배경 묘사의 지루함을 상쇄시키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