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지영, [살인자의 쇼핑몰 1], 자음과모음, 2020.

모처럼 읽은 국내 미스터리이다. 강지영의 소설 [살인자의 쇼핑몰]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이다. 도서를 영화로 만드는 경우 내용을 줄여서 각색하는 게 일반적인데,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해서 오히려 내용을 덧붙여서 각색했다. 내용의 줄기는 같지만, 드라마가 좀 더 볼거리를 제공한다. 독특한 캐릭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데, 170여 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아쉽다.

"잘 기억해. 무는 개는 짖지 않아. 그건 짖게 만들면 더 이상 물 수 없단 뜻이기도 해. 개를 짖게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 놈 앞에서 내가 강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거든."

삼촌은 수첩에 뭔가를 끼적거리며 내게 말했다.(p.8)

지안에게 있어서 정진만은 이상한 삼촌이다. 대머리에 덩치가 큰 털보 아저씨이고(드라마에서는 배우 이동욱을 캐스팅해서 말끔한 모습을 보여준다. 독서의 괴리감, 이질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사라졌다가 20년 만에 돌아왔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아빠와 엄마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삼촌과 단둘이 살게 된다. 글은 간결한데, 드라마를 먼저 보아서인지 화면의 이미지가 글과 글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진짜 같은 가짜 손을 파는 삼촌, 전설의 타짜였던 삼촌, 뜨거운 추탕을 훌훌 불어 삼키는 삼촌, 주먹처럼 커다란 유부초밥을 만드는 삼촌, 영안실에 누워 있는 삼촌. 그 모든 삼촌이 각자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p.32)

대학생이 된 지안은 삼촌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는다. 삼촌이 운영했던 잡화상-인터넷 쇼핑몰을 물려받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몰랐던 비밀이 있다. 더헬프닷컴 뒤에 감춰진 머더헬프닷서클은 킬러와 연쇄살인범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무기 밀매를 하는 공유 공간이다. 저격은 레드, 독살은 블루, 스파이는 퍼플, 뒤처리는 옐로, 그리고 지안은 그린으로 등록되어 있다. 쇼핑몰을 이용하는 회원은 누구도 그린 코드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지만, 진만이 죽었다는 소문에 약탈자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가던 무수한 밤길이 어쩜 그리도 평안했는지, 당신을 추행한 남자가 단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게 정말 우연인지. 평범한 여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그쪽은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p.75)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불안감... 지안의 뒤에는 늘 삼촌이 있었다. 쇼핑몰의 창고를 두고 벌어지는 공방전에서도 지안은 보이지 않는 삼촌의 도움을 받는다. 액션과 스릴, 깔끔하면서 충격적인 전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살인자를 위한 쇼핑몰이라는 설정은 신선하고, 주인공의 성장, 엉뚱하면서 발랄한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국내 미스터리의 도약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 재능
피터 스완슨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터 스완슨, 신솔잎 역, [살인 재능], 푸른숲, 2024.

Peter Swanson, [A TALENT FOR MURDER], 2024.

오랜만에 읽은 영미 스릴러이다. 내가 느끼는 영미 스릴러는 맥거핀과 가족 중심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매번 장황한 헛발질에 지치고, 늘 같은 주제에 질렸다고 해야 하나... 한동안 외면했다. 피터 스완슨의 소설 [살인 재능]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호기심과 등장하는 인물의 일대기적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단 한 번의(누군가는 네 번이라고?) 반전은 아주 충격적이었고...

[살인 재능]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푸른숲, 2016.)과 [살려 마땅한 사람들](푸른숲, 2023.)에 이어서 '릴리 킨트너'와 '헨리 킴볼'이 등장하는 시리즈 세 번째이다. 간혹 이전의 사건을 회상하는데,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반가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지난 일정을 되짚다 남편이 출장을 갔던 도시마다 피해자가 모든 젊은 여성인 미해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미친 거야?" 마사가 물었다.(p.81)

공립 도서관에서 일하는 마사 래틀리프는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외판원으로 교육용 자료를 판매하는 앨런 페랄타는 출장이 잣고, 알아갈수록 낯설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고, 그날은 냉정하고 무자비한 표정을 보았으며, 그가 갔던 도시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괜찮은 남자인데, 혹시 그는 연쇄살인마인가? 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결혼 후 리스트를 정리해 보니 22번의 출장에서 6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확인하지 않은 일로 결혼 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대학원 때 친구였던 릴리 킨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희생자의 정보를 모아 공유하고, 현장에서 뒤를 밟고... 실제로 그가 머물렀던 도시에서 같은 날 미해결 사건이 일어났고, 사망한 피해자는 전부 몸을 파는 여성이었다.

앞부분은 스티븐 킹의 소설 [별도 없는 한밤에](황금가지, 2015.)에 수록한 단편 '행복한 결혼 생활'(영화 <굿 메리지>의 원작)하고 매우 유사하다. 스티븐 킹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면, 피터 스완슨은 결정적 순간에 인물이 등장하고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져 영화보다 미드 시리즈를 보는 기분이다.

그 사람들의 이름과 각각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를 리스트에 적어 속을 파낸 존 클리버의 양장본 속에 숨겨두었다. 그 리스트는 그의 필생의 업적이자 그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었다.(p.180)

그는 원칙이 있었다. 그와 피해자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도 있어선 안 되었고, 그의 이름이나 인상착의가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이 원칙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

마찬가지로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원칙은 그가 저지른 살인 사건이 실제 있었던 일과는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작위 살인이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키도록 만들어야 했다.(p.184)

인간이 가진 수많은 재능 중에서 하필이면 살인 재능이라니? 어린 시절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방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아무런 감정 없이 시작한 범행은 세월이 흐르며 스물여섯 명의 희생자를 기록한 전리품을 갖게 되었다. 우월감으로, 그만의 재능과 원칙으로, 절대로 발각되지 않은 범죄를 저질러왔으나... 그는 복수심과 새로운 재미를 위해서 좀 더 대담한 범행을 계획한다.

"상대가 누구든 높은 기대를 갖는 건 잘못된 거지만, 난 그래도 가족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한테는 그런 것 같아. 결국 인생에 뭐가 더 있겠어? 일과 가족밖에는."(p.291)

"글쎄. 내가 한 일은 살인이고, 그건 딱히 특별하지도, 딱히 드물지도 않은 거야.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에서는 말이야. 아니 어떤 종의 역사든."

"훌륭하게 해냈을 때는 특별해지는 거지."(p.295)

결국은 꼬리잡기 식의 추격전과 가족에 관한 메시지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범죄, 신분 세탁, 인터넷 검색을 통한 정보 수집... 등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그럼에도 개개인의 인생사를 비중 있게 다루어서 흥미로웠다. 스티븐 킹의 묵직한 전개와 피터 스완슨의 섬세한 전개가 대조되는데, 담백한 재미와 깨알 재미를 비교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전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멜리 노통브, 이상해 역, [푸른 수염], 열린책들, 2014.

Amelie Nothomb, [BARBE BLEUE], 2012.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혹시나 하고 읽었지만, 역시나였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푸른 수염]은 프랑스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를 모티브? 오마주? 하고 있다. 여러 차례 결혼했던 푸른 수염의 귀족 남성은 결혼식을 올리며 새 신부에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준다. 하지만 지하실의 한 방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 그와 결혼했던 여자들의 시체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p.13)

파리 7구의 호화 저택이 월세 5백 유로에 나온다. 벨기에 여자이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사튀르닌은 파격적인 조건을 보고 지원한다. 광고대로 고급스러운 집이지만, 이전에 살았던 8명의 여자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집 주인인 돈 엘레미리오는 품격을 중시하는 에스파냐 귀족으로 가톨릭 신자이고, 세상을 따분하게 여기며 20년간 외출하지 않은 남자이다. 그는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강단 있는 여자와 특이한 남자의 아홉 번째 동거가 이루어진다.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

"궤변이네요."(p.79)

"좋소. 내가 당신 말대로 했다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래도 그들은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끝내는 열쇠를 찾아냈을거요. 내가 어떻게 하든 그들이 암실에 발을 들여놨을 거라는 얘기요. 그 경우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아무것도."(p.82)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내면, 자기만의 암실이 있다.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하고, 선을 넘으면 즉시 폭발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절대로 들일 수 없는 방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를 찾으려고 세를 놓는 중년 남자와 연쇄살인범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세를 사는 젊은 여자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열지 말라고 하는 문을 기필코 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 탐욕, 반항의 심리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사랑에 빠지는 귀족 남자와 결코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 평민 여자는... 다른 본성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지는 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나마 설명이 크게 어렵지 않은 형식의 기적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전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처럼 나중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사랑은 이성에 대한 가장 거대한 도전이다.(p.105)

사랑하는데, 결국은 죽이는 부조리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 네 시 블루 컬렉션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멜리 노통브, 김남주 역, [오후 네시], 열린책들, 1999.

Amelie Nothomb, [LES CATILINAIRES], 1995.

중쇄를 찍고, 영화로 만들고... 유명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쩜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취향의 문제인지, 너무 늦게 읽은 것인지, 신격화해서 독서를 강요당한 기분이고, 인기와 재미의 상관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서 내용은 알고 있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었다. 하긴 예전에는 이런(?) 글이 유행했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p.9)

자아 성찰에 관해서인가? 아멜리 노통브는 벨기에 사람으로, 일본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그래서 소설 [오후 네시]는 프랑스 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오후 네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라는 설정은 아주 흥미로운데, 시종일관 불청객의 상징성을 찾으려고 했다. 침입, 공허, 심술, 고문... 그렇다면 나의 일상에서 오후 네시의 불청객은? 배고픔, 외로움, 고혈압, 정서적 갈증... 또 뭐가 있으려나.

하루에는 각 시간대별로 독특한 리듬이 있었다. 저녁나절은 길고 안온했고, 아침나절은 짧고 희망이 넘쳤다. 오후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고통이 시시각각 심해져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4시가 되면 시간은 진창 속에 처박히는 것이었다.(p.95)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던 에밀은 예순다섯 살, 은퇴를 하면서 아내인 쥘리에트와 한적한 시골집으로 이사한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 함께한 부부는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이서 호젓하게 지내고 싶었다. 꿈꾸던 삶이라고 여겼는데, 베르나르댕이라는 이웃집 남자가 찾아온다. 나이 많은 뚱뚱한 의사, 유일한 이웃, 그는 매일 오후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우리집에 들어와 안락의자에 앉아서 "그렇소"와 "아니오"로 일관하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간다. 악몽의 시작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르나르댕의 압박을 받으며 보낸 두 달의 세월이 뭔가를 부숴버린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p.165)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오후 네시의 방문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처음에는 사소한 물음이 시간이 지나자 언어학-철학-분류학-생물학적 담론이 펼쳐지는데, 예의를 차리며 살아온 부부에게 거절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에 맞춰서 외출하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안을 강구하지만, 고통은 더해가고 결국에는 폭발한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한 번만 하고 말진 않아. 어떤 사람이 어느 날 한 행동은 그 사람의 본질에서 나온 거야. 인간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살아가지. 자ㅇ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야. 살인자들은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연인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지."(p.226)

회복은 쉽지 않다. 알게 모르게 무언가 달라졌다. 딱히 관련되지 않은 지식의 나열,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 뚝 부러지듯이 끝나는 결말은 허무하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거절은 비매너라는 것을, 예의와 격식으로 이웃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도움이 필요한 이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문명인이라서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뭔가 답답하고, 난해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한 마디로...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는 먹먹함을, 소설 [채식주의자](창비, 2007.)는 혐오감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을씨년스러움을 느낀다. 굳이 계절적인 분위기를 따진다면, 지금부터 읽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솔직히 어렵다! 그래서 블로그와 인터넷 서점의 리뷰를 살펴보았는데, 대부분은 별 다섯 만점에 별 다섯 평점이다. 시를 다 이해하고 읽은 것인가? 나는 왜...? 어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소설 [소년이 온다]와 연관해서 읽어야 한다고 하고... 아무튼,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삶의 결이 달라서 고도로 압축한 시인의 언어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곱씹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저녁 잎사귀 p.70)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어떤 꿈은 양심처럼

무슨 숙제처럼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거울 저편의 겨울 2 p.97)

새벽에 들은 노래 / 피 흐르는 눈 / 저녁의 소묘 / 거울 저편의 겨울... 어둡고, 붉고, 회색빛으로, 음산하다. 오랜 아픔을 간직한듯하고, 혁명적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의 남미를 여행할 때 이 책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고, 피 흐르는 언어가 있다.

한강의 시에서는 마치 그녀의 소설 속 고통받는 인물들의 독백인 듯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이 흐르고 피가 흐른다. 육체의 아픔을 노출시키며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p.143)

그녀의 소설을 읽고, 그녀가 읽은 책을 따라서 읽고, 평론을 수집하고, 삶을 흉내 내다보면... 그리고 100번을 노래하면, 의미를 알 수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