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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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처드 브라우티건, 김성곤 역, [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2016.

Richard Brautigan, [THE ABORTION : AN HISTORICAL ROMANCE 1966], 1970.

  미국에서 1970년에 발표한 한 권의 소설, 아주 특이한 도서관의 사서와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의 사랑과 임신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낙태 이야기는 이것을 기념하여 실제로 버몬트 주 벌링턴에 브라우티건 도서관을 세웠다고 한다. 책으로는 출판하지 않은 원고를 받아 보관하는 매우 특별한 도서관이다.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주위 사건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무슨 어마어마한 정치적·문화적 대변인은 결코 아닙니다만, 사회상과 문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_리처드 브라우티건(p.9)

  작가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은, 소설은 단순히 언어의 나열이나 오락적 유희가 아니라 나름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듯싶다. 이것을 뒤로하고서라도 작가의 상상은 어디까지일까? 책을 좋아해서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도서관을 기발한 장소로 바꾸고, 그곳을 찾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기이한 저작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사랑의 행위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또 있을까?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에서 칠 일을 도서관에서 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나와 어려서부터 자신의 신체 발육을 불편하게 여기는 바이다의 사랑놀이는 이것을 엿보는 관음증과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고, 탐미주의에 빠지게 한다. 작가는 여기에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담는다.

  이제 책을 등록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받는 책은 모두 도서관 소장 도서 원장에 등록한다. 거기에는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매해 우리가 기증받은 책의 목록이 다 들어 있다. 그 책들은 모두 원장에 기록된다.

  우리는 책을 분류하는데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나 다른 분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서관 장서 원장에 등록한 다음에는, 그 책을 저자에게 돌려주어 그가 원하는 곳, 또는 그의 필이 꽂히는 서가에 직접 꽂도록 하고 있다.

  책은 어디에 두어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 아무도 그걸 빌려가기 위해 찾아오거나 도서관에 와서 읽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이곳은 다른 종류의 도서관이다.(p.20-21)

  도서관은 샌프란시스코 지진 후에 세워진 노란 벽돌 건물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가 3150번지에 있었다. 비록 우편으로는 책 기증을 받지 않았지만, 어쨌든 주소는 그랬다. 책은 직접 갖고 와야 했다. 그게 이 도서관의 규정 중 하나였다.(p.23)

  공식적으로 사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서른한 살의 남자와 늘 사람들이 성적인 관심을 보인 커피를 잘 끓이는 스물한 살의 여자는...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듯이 뜻하지 않은 임신, 아니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당황한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들도 같은 선택을 하는데, 당시 미국은 낙태 시술이 불법이라서 멕시코로 가야만 한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샌디에이고에 도착,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로 가는 길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여정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다른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내 여자만큼은 아니다. 작가는 이것으로 세상이 아무리 좋게 변한다고 해도 지금의 내 삶만큼은 아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바이다 크레이머의 외모는 남자들 사이에 혼란을, 여자들 사이에 분노를 일으킨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무스].

  저자는 장신에 금발이었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는 긴 노란색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그는 다른 시대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 책은 그가 가져온 세번째인가 네번째 작품이었다. 매번 책을 가져올 때마다, 그는 좀 더 나이 들어 보였고 좀 더 피곤해 보였다. 첫 책을 갖고 왔을 때는 꽤 젊었었다. 책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내 기억에 미국하고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p.29)

  소년은 버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가서 태아와 기타 수술 잔여물을 좌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난 후, 나는 수술기구를 불에 소독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멕시코에서는 물과 불로 행하는 고대의 의식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p.193)

  책의 기증자 사이에 등장하는 저자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작품을 주고 간다. 멕시코에서는 그날 세 여자가 임신중절수술을 받는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이 책을 쓰기 전에 세 권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것이 빛을 보았는지 아니면 변기 속으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투영하고 있다.

  번역자는 이 소설을 '잃어버린 목가적 꿈과 기계문명 속 메마른 현실에서 좌절하는 현대인의 이야기'(브라우티건 도서관의 뜻을 기리며 p.233)라는 틀에서 보는데... 세상하고 단절된 도서관은 전원에서의 삶을 의미하고, 도서관에서 나와 쇠로 만든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수술 도구를 사용해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낭만적·목가적 꿈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나 상징을 찾기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초점을 두었는데,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비교하여 정신적인 빈곤에 허덕이는 시대라서 굳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시대정신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장르소설을 패러디했다고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이마저도 고전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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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모중석 스릴러 클럽 40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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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바르가스, 양영란 역,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비채, 2016.

Fred Vargas, [DEBOUT LES MORTS], 1995.

CWA 인터내셔널 대거상

  프랑스 소설은 '낭만'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다음으로는 멋쟁이, 로맨스, 유머, 명예,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그리고 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이 되는 지역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면서 생소하고, 뭔가 시대를 이끄는 정신 같은 것이 글 속에 녹아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스릴러와 추리소설에도 해당하는데,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하룻밤 사이에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불안해하는 여인은, 이미 몸이 직감적으로 반응한 것일까? 시적으로 보이는 제목은 치명적인 사건을 암시한다.

  "피에르,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마당으로 걸어들어와 우뚝 서 있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 나한테 설명 좀 해봐요."(p.8)

  "그러니가 우리 사이의 의견 차가 너무 고통스럽고, 연대 차 때문에 도저히 화해가 불가능할 때는 불을 지피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이야?" 마르크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빙빙 돌리면서 결론처럼 못을 박았다.(p.29)

  대표적으로 형사 아담스베르그가 등장하는 시리즈와 성경의 복음서 저자 이름을 따르는 복음서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은 복음서 시리즈의 시작이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직관에 의존하며, 그의 보좌관인 당글라르 형사는 논리를 주장하여 둘 사이 언어의 유희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세 명의 역사 연구가가 분석과 추론으로 단서를 확보하면 전직 형사는 이것을 범죄와 연결 짓는 역할을 하는데, 서로 간 논리의 유희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캐릭터 설정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데, 네 명이 주인공이다 보니 복잡함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캐릭터가 형성되어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표지가 다소 어둡고 침울하여 어찌 보면, 정통 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데... 실제로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다른 재미가 있다. 선입견을 품고 진중하게 접근하면, 상반된 분위기로 살짝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억지로라도 기운을 좀 내야 해. 마태복음."

  "내 이름은 마태복음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젠장!"

  "물론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뭐 대수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때. 마태(Matthieu)복음, 마티아스(Mathias)...... 뤼시앵(Lucien), 누가(Luc)복음...... 거기서 거긴데 뭐.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재미있거든. 이 나이에 복음서 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니, 나 원 참. 그런데 네 번째 사도는 어디 있지? 아무 데도 없군. 글쎄 이렇다니까...... 바퀴가 세 개 달린 자동차, 세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진짜 웃기는군." 방두슬레가 어깨를 으쓱하며 약을 올렸다.(p.63-64)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 마티아스, 마르크, 뤼시양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처럼 35세가 되도록 거의 반백수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로 역사를 전공한 세 사람은 단순히 집값이 싸고, 월세를 분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샤슬가의 낡은 판잣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동거를 한다. 이들은 각각 선사시대, 중세시대, 1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며 학구적인 열정을 불사르고 있고, 때로는 연구의 연대 차로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거기에 마르크의 삼촌으로 대부님으로 통하는, 살인범을 놓아줘서 경찰에서 쫓겨난 68세의 전직 형사 아르망 방두슬레는 멋있는 외모와 핵심을 찌르는 논리로 이들을 압도한다.

  쓰러져가는 판자때기 5층 건물... 1층은 공동공간으로 심각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피우기로 협정한 모닥불 난로가 있다. 2층은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마티아스의 방인데, 그는 원시인처럼 옷을 벗고 있다. 3층은 중세시대를 연구하는 마르크의 방이다. 4층은 1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는 뤼시앵의 방인데, 그는 전쟁놀이에 빠져있다. 마지막 5층은 대부님, 아르망 방두슬레의 방이다.

  판잣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서로 간의 불협화음과 모닥불, 각자의 언어, 건물의 구조, 살인범을 놓아준 대부님의 사연... 등은 앞으로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르게넥도 그렇게 생각해. 소피아 시메오니디스는 굉장한 부자였거든. 하지만 남편은 정치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좌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처지이고...... 그런데 시체가 없잖니, 마르크. 시체가 없으면 살인사건도 없는 거야."(p.127)

  "왜?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하지만 조심해. 잘못하다가는 큰코다칠 테니까. 우리는 아직도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우리 모두가 그렇다니까.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사람들은 미끄러지기도 하고, 아예 풍덩 빠져버리기도 하지.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걸어야 해.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해야 한다고. 미친놈처럼 뛰어서는 절대 안 돼. 내가 이런 소릴 하는 건 말이지, 진흙탕 참호 속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놈에겐 잠깐의 기분전환도 사치라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하지만 렉스는 너무 예쁘고 예민한 데다 똑똑하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은 절대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너는 그저 잠깐 한눈파는 정도가 아니라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 그런데 그건 완전히 재앙이라고, 재앙. 알겠냐, 마르크?"(p.150-151)

  성악가로 오페라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소피아는 하룻밤 사이에 마당 한편에 우뚝 선 너도밤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불길한 생각으로, 그녀는 얼마 전에 집 옆에 있는 쓰러져가는 판자때기로 이사 온 세 명의 젊은이를 찾아가 나무 밑을 파 달라고 한다. 비밀을 조건으로 3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제시하는데, 수렁에 빠져 생활하는 그들은 이 일을 덥석 맡게 된다. 이웃이 되어 친분을 쌓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소피아가 사라진다. 세 명의 역사학자와 한 명의 전직 형사는 머리를 짜내어 그녀의 행방을 찾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 역사에 관한 자부심, 부패 혐의로 쫓겨난 형사는 나름의 통찰력을 보이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역사 연구가와 전직 형사의 조합은 나름의 기지와 재치로 사건의 근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범죄의 발생과 해결보다는, 형성된 분위기와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는 추리소설이다. 영화보다는 시트콤 드라마가 연상되기도 하고... 조금 가볍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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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5 - 뭐야뭐야? 그게 뭐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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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마키(ms-work), 장선정 역, [콩고양이⑤ 뭐야뭐야? 그게 뭐야?], 비채, 2016.

Nekomaki(ms-work), [MAMENEKO VOL.5_NANINANI? KORE NAANI!], 2015.

  야생 동물이나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의 곁에서 함께 살아온 동물의 습성은 그것에 맞게 진화한듯하다. 어떤 모습이든 사람의 눈에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마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때로는 신경을 자극하는 일을 벌이지만, 곧이어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으로 벌점을 만회한다. 나름의 생존 전략인 듯이 밀고 당기는 것을 아는 녀석들이다. 콩고양이 시리즈 다섯 번째는 '뭐야뭐야? 그게 뭐야?'라는 절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 같은 부제를 달고 있는데, 호기심 많은 고양이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시바견 두식이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콩고양이​① 팥알이와 콩알이], 비채, 2014.

  [콩고양이​② 밥 먹어야지~], 비채, 2016.

  [콩고양이​③ 야! 야! 야!], 비채, 2016.

  [콩고양이​④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비채, 2016.

  [콩고양이​⑤ 뭐야뭐야? 그게 뭐야?], 비채, 2016.

  반려동물의 습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고양이의 영악함과 개의 순수함으로 묘사한다. 1권에서 지인의 권유로 삼색 털 암고양이 팥알이와 검은색 수고양이 콩알이는 한 식구가 된다. 2, 3권에서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한 녀석들은 뜻하지 않은 사고뭉치가 되어 마담 북슬의 심기를 건드리고, 급기야 집에서 쫓겨날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딸인 고양이 주인과 할아버지인 내복씨의 관심과 사랑으로 무사히 가족으로 정착한다. 4권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자신을 고양이로 알고 있는 시바견 두식이가 들어와 새로운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집동자귀신 아저씨로 불리는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춰지는데... 5권에서 아버지는 까칠한 고양이보다 충성스러운 개가 더 좋다고 한다. 실제로 두식이를 향한 숨은 애정이 드러난다.

 

 

 

 

 

  어린 고양이 팥알이와 콩알이는 바나나 상자에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두 녀석은 내복씨의 소중한 가발을 망가뜨리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눈에는 여전히 귀엽다. 산책에 흠뻑 빠진 두식이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공원에서 만난 다른 개 곤타의 간식을 부러워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개의 본능인가? 슬리퍼를 물어뜯더니 이번에는 땅속에 감춘다. 섭씨 36도의 여름 더위는 사람만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열사병을 조심해야 한다. 숨은 아버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두식이, 엄마와 아빠는 마트의 애완동물 코너에서 두식이의 예쁜 비옷을 산다. 안경남은 신발에 개 접근 방지 스프레이를 뿌리고... 할아버지가 양말로 만든 고양이 인형은 인기이다. 워낙 잽싸게 움직여서 사진 찍기 어려운 녀석들... 두식이는 안경남의 소중한 피겨를 파묻어서 방에 출입 금지이다. 목욕은 싫어하지만, 물놀이는 환장하고... 오랜만에 엄마 고양이 마론을 만나 감격한다.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모르고 소식을 궁금해하는데, 역시 이 장면은 가슴 찡하다. 두식이를 입양할 새로운 가족을 찾았지만, 아버지는 괜히 못마땅하게 여긴다.

  센티멘털한 감성을 지닌 시바견 두식이는 개구쟁이 고양이 틈에서 잘 적응한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런데 주인공이 콩고양이에서 점점 시바견으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어쩌면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중간에 들어온 두식이의 활동이 돋보인다. 실제로 한동안 고양이의 매력에 취해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개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엉뚱한 매력의 발산, 발랄하고 개성 있는 이야기, 예쁜 그림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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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4 -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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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마키(ms-work), 장선정 역, [콩고양이④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비채, 2016.

Nekomaki(ms-work), [MAMENEKO VOL.4_MAMENOSUKE DE GOZARU!], 2015.

  일본은 고양이하고 잘 어울리지만, 시바견의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의 누렁이와 비슷해서 아주 친근한데, 뭔가 일본다움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익숙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네코마키의 콩고양이 시리즈 네 번째, 이번에는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라는 심상치 않은 부제가 달렸는데, 어린 고양이 콩알이와 팥알이가 사는 집에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다.

  두식

  기르던 주인이 돌아가셔서

  안경남이 데려온 누렁이 시바.

  강아지 때부터 고양이와 살다보니

  자신이 고양이라고 생각함.(p.205)

  국내 번역에서 두식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붙였을까? 원작하고는 다른 이름일 텐데, 하는 짓이 이름하고 딱 어울리는 절묘한 작명이다. 두식이는 누렁이 시바견으로 아는 할머니의 가정에서 고양이와 함께 길러졌다. 그래서 엉뚱하게 시바견이지만, 자신을 고양이라고 믿고 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키우던 고양이는 입양되었지만, 두식이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아 임시로 맡겨진다. 온종일 집안을 들쑤시는 두 녀석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비 오는 날의 개구쟁이들은 떨어지는 빗방울마저 신기하다. 심심한 것은 못 참아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안경남이 두식이를 데려오지만, 역시 집안의 최종 결정권자는 마담 북슬이다. 고양이처럼 자란 두식이는 키우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모르고 여전히 그리워하는데, 가슴 찡한 장면이다. 개밥보다 고양이 참치를 더 좋아하고... 콩알이와 팥알이 그리고 두식이는 할아버지 가랑이 사이에 붙어 있다. 물웅덩이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하지만, 목욕을 싫어한다. 고양이의 정체성을 가진 두식이는 지금까지 산책의 의미를 몰랐는데, 산책은 개 신나는 일이다. 서로 핥아대서 침 범벅이 되고, 매미 껍질을 홀딱 먹어 치우고, 나름의 더위를 나는 법이 있다. 비단잉어와 거북이 10마리로 마당 연못에 늘어난 식구들, 두식이의 고민... 두식이는 새로운 입양 가족이 생겼지만, 애석하게도 고양이가 아니라 개의 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비둘기 가족의 어린 새끼들은 비행연습을 한다.

  콩고양이와 두식이가 사는 집은 인간계와는 다른 작은 우주이다. 1, 2, 3권을 읽고 중간에 다른 시리즈인 [고양이와 할아버지​①, ②](미우, 2016.)를 읽었는데, 어린 고양이가 더 작아진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작가는 작정이라도 한 듯이 고양이의 매력에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개의 매력을 더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 짓게 한다. 솔직히 개처럼 행동하는 고양이를 개냥이라고 하는 말은 들었어도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개는 처음인데, 두식이는 이름하고 어울리는 절묘한 행동을 보여준다. 발랄하고 개성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사각사각 연필로 그린 그림은 정감있게 다가온다. 일본 특유의 정서를 엿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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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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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 이영미 역, [침묵을 삼킨 소년], 예문아카이브, 2016.

Yakumaru Gaku, [A DEWANAI KIMI TO], 2015.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소설가에게 있어 평생의 주제와 만나는 일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주인 시즈카), 한눈팔지 않는 소설이다... (오사와 아리마사), '만약 나였다면'이라는 생각이 소설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확인했다... (온다 리쿠), 소년범죄와 소년법이란 민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주제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교고쿠 나쓰히코).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의 심사평이다. 이보다 더 야쿠마루 가쿠와 그의 소설 [침묵을 삼킨 소년]에 관해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로의 데뷔 10년을 맞이하면서 발표한 작품은 여전히 미성년자의 범죄와 처벌에 관한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처음으로 읽은 것은 [천사의 나이프](황금가지, 2009.)이다. 일본에서 십삼 세 미만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엄벌 파와 보호 파의 대립을 내용으로 하는데, 피해자의 상황과 가해자의 처지를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최근에 출간한 [악당](황금가지, 2016.)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가해자는 이름과 사는 곳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벌로 보호를 받는데, 피해자의 시선으로 과연 그들이 갱생하여 속죄의 삶을 사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가해자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어쨌든 중대 사건이라 피해자와 같은 반 학생들이나 보호자분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분에게 얘기를 들어보고 있습니다. 화요일 아침에 다마 호수 주변에 있는 잡목림에서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피해자는 히가시무라야마 시에 사는 후지이 유토 군. 사인은 가슴을 칼에 찔린 출혈사였습니다."(p.25)

  만약 쓰바사가 살해당했다면, 나는 얼마나 괴로움에 몸부림칠까.

  오열을 억누르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피해자인 후지이 유토는 월요일 저녁 5시 30분경에 어머니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 후로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휴대전화로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아서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수색 중이던 경찰에 의해 유토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월요일 밤에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쓰여 있었다.(p.32)

  요시나가 게이치는 호무라 건설회사의 제2기획팀 팀장이다. 아내와 이혼했고, 하나뿐인 아들은 아내와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 몇 가지를 물어본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같은 반 학생이 살해된 채 발견되어 수사 중이라고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먼저 아들의 안위가 걱정이다. 다음으로 내 아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아들은 용의자로 체포되고, 언론은 벌떼처럼 몰려든다. 소년법의 적용으로 구체적인 신원은 보도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이미 얼굴 사진에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이 이입되어, 만약 당신이 가해자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체포된 이유도 안 알려 주고, 아들도 못 만나게 하는 게 당연하단 말입니까?"

  "체포 단계에 있는 피의자는 변호인 외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단, 구류 후에는 원칙적으로 변호인 이외의 면회도 허용됩니다."

  "구류란 건?"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한 시점에서 사십팔 시간 이내에 수사해서 조서를 꾸미고, 피의자를 검찰관에게 송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검찰관은 이십사 시간 이내에 재수사를 하고, 재판소에 구류 신청이라는 걸 합니다."(p.83)

  "국선과 사선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나요? 돈이 들고 안 드는 점 말고."

  요시나가가 묻자, 나가토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열의나 역량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거나?"

  "한데 뭉뚱그려서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습니다. 국선이라도 열의가 있고,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가 많이 계세요. 저도 국선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만, 국선의 단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변호사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겠죠."(p.86)

  당장 체포된 아들은 면회할 수 없고, 경찰은 수사상의 이유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소년 사건에 강하고, 가해자의 측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 변호사를 찾는다. 국선과 사선의 차이, 법의 집행 절차, 선임 비용, 변호 전략, 앞으로 해야 할 일...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 특히 매스컴의 집요함은 일상생활마저 위태롭게 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간절함이 잘 드러난다.

  "가정재판소는 소년을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소년의 갱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을 내리는 곳이므로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소년이 사건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사실관계를 놓고 시비를 가리는 활동을 합니다만,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는 경우는 소년의 재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본인이나 보호자, 가정재판소가 하나가 되어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할 면에서도 그것이 성인 사건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p.88)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모두 가정재판소로 송치되며, 소년심판에 의해 처분이 결정된다고 한다. 소년심판은 방청인이 있는 형사재판과 달리 재판관과 가정재판소 조사관, 부첨인, 보호자가 모인 자리에서 진행된다.

  ...

  살인이나 상해 등의 사건에서는 피해자나 유족이 소년심판을 방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좀 더 살펴 나가자, '역송(逆送)'이라는 낯선 말이 나왔다.

  살인 같은 중대 사건인 경우, 가정재판소에서 다시 검찰로 송치될 수 있다는 말인 듯했다. 범행을 일으킨 시점의 나이가 열네 살이면 역송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소년도 성인과 똑같이 일반 법정에서 판결을 받게 된다고 한다.(p.97-98)

  일본에서 미성년자의 범죄는 성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그 후에는 가정재판소로 보낸다. 사건의 수사는 성인하고 똑같이 철저하게 하고 법의 심판은 가정재판소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기에 무거운 형벌보다는 갱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에 재기해서 남은 인생을 올바로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그래서 다른 재판하고는 다르게 조사관, 부첨인, 보호자 외에 방청인은 없다.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희생자의 유가족에게는 처벌이 아쉬울 수 있다.

  "재판관뿐만 아니라 조사관도 심판에 출석하죠?"

  "네. 재판관을 대신해서 가정재판소의 조사관이 쓰바사 군이나 보호자와 면회를 하죠. 동시에 소년감별소의 담당 공무원도 쓰바사 군에 관해 조사해서 감별결과통지서라는 걸 작성하고, 그것을 근거로 가정재판소의 조사관이 소년조사표라는 자료를 심판에게 제출하게 되죠. 그것이 심판 결과를 크게 좌우해요."(p.199-200)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 형사법의 변호인과 소년법의 부첨인 역할은 매우 비슷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른 면이 있어요."

  "무슨 뜻인지?"

  "변호인은 오로지 피의자나 피고인의 대리인으로서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소년법의 부첨인은 가정재판소나 소년감별소와 협력해서 앞으로 소년이 확실하게 갱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죠."

  ...

  "빨리 사회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호소할 수도 있고, 반대로 소년원 같은 시설에서 확실한 교육을 받는 편이 낫다고 호소할 수도 있어요. 어쨌든 소년심판은 소년을 벌하는 장이 아니라 소년의 미래를 고려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장이니까요. 따라서 부첨인도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관대한 처분만 요청하지는 않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첨인과 보호자의 역할이 비슷하니까 보호자에게도 부첨인이 될 권리를 인정해 주는 거 아닐까요."(p.235-236)

  기자가 집과 회사에 찾아와 사건이 주변에 알려진다. 아내를 대신하여 집안의 물건을 처분하고 퇴거 절차를 밟는데, 제값을 받지 못해도 오히려 미안하다. 아들은 가정재판소로 송치되어 소년감별소에 수용된다. 가정재판소 조사관과 면담해야 하고,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에게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지 고민이고... 살인자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체포부터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로서 가해자인 아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또한, 보호자로서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뭘 해야 할까? 숨은 진실을 찾는 부성애는 애처롭고,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은 부담이다.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건! 시간을 되돌리기를 양쪽 다 바라지만, 현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뿐이다. 갱생의 의지와 희망... 그동안 소년법의 악용과 법의 빈틈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법의 본심을 전달한다. 정답이 없는 소재를 가지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데, 작가는 그 일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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