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혼조 마사토, 김난주 역, [미드나잇 저널], 예문아카이브, 2017.

Honjo Masato, [MIDNIGHT JOURNAL], 2016.

  일본소설에서 소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이번에는 신문사 기자를 주인공으로, 저널리즘이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매우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완성했다. 특종을 쫓는 사회부 기자의 고뇌는 아주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법정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제대로 일하지 않아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경찰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최근에 가장 욕먹는 직업군 중의 하나는 누가 뭐래도 기자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있듯이 매번 논란은 기자가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있었던가? 신속, 정확, 공정이라는 구호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당분간은 기자를 소재로 하는 소설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기자에게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란 없다고."(p.25)

  "분위기만이라도 익혀 둬. 기사 쓸 때, 현장을 보고 안 보고에 따라 전혀 달라지니까. 그럼, 다음으로 가지."(p.26)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는 오류가 있어도 올린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잖아요. 우리는 오보를 내면 사죄를 해야 하고, 책임도 져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례 아닙니까."(p.33)

  세키구치 고타로는 주오신문 사이타마현 지국의 현경 담당팀 팀장이다. 한때는 본사 사회부에서 명성을 떨치던 중견 기자였지만, 7년 전에 있었던 유괴 사건에서 오보를 내어 현재 좌천된 상황이다. 기사와 관련된 사람은 진급에서 떨어지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처분을 받았다. 그는 본사에서 내려온 BB(Big Brother)로 후배를 교육하며 나름의 사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7년 전에 일어났던 유괴 사건하고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 취재를 시작한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때도 2인조라고 기사를 쓴 건 우리였고, 하필 그 한 건 때문에 우리가 쓴 기사는 검증도 받을 수 없었고."(p.47)

  딸이 죽었다는 오보에 격분한 가족의 분노가 실책을 인정하고 정정 기사를 싣는 정도로 수습될 리 없었다.

  -당신들 말이야. 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 딸이 죽었다고 썼느냐고. 딸이 죽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우리 가족 심정이 어땠는지 알기나 해?(p.60)

  그 후로 히로후미는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다.(p.61-62)

  납치된 여자아이는 이미 죽었다는 것과 범인은 2인조라는 것은 오보였다. 극적으로 범인이 잡히는 바람에 아이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고, 범행은 단독 소행으로 밝혀졌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얻은 결론이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다행히 아이는 살아 돌아왔지만, 잘못된 기사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신문사 기자들에게도 후유증은 컸다. 세월이 흘러 범인은 사형당하고, 사건이 잊혀 갈 무렵... 똑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취재하면서 당시 2인조 중의 살아남은 하나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자네는 세상에서 이제 겨우 잊힌 우리 신문사의 실책을 제 손으로 들추겠다는 말인가?"(p.79)

  신문에 있어서 기자는 대체 무엇인가. 다른 신문과 다른 부서의 코를 납작하게 짓뭉갤 만큼 영향력 있는 기사로 경쟁자를 압도한다. 지면이라는 진지(陳地) 쟁탈전이 고스란히 의자 쟁탈전으로 이어진다.(p.101)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온갖 사람들이 취재한 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비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문을 읽는 우리도 쓰여 있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p.112-113)

  신문의 지면을 두고 벌이는 사회부와 정치부의 경쟁은, 데스크를 차지하기 위한 진급 경쟁으로 이어진다. 타 신문사보다 한 걸음 앞서서 걸어야 하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경찰과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밑바닥에서 발로 뛰어야 하고,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한다. 단독으로 썼다고 해서 전부 특종은 아니다. 후속으로 인용해서 따라 써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본사와 지국의 자존심 대결이 있고, 하나의 기사를 작성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기자의 눈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러나 출세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신문기자는 끝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정보는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 않아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p.220)

  "선배는 왜 저널이라고 해요?"

  "많은 진실이 누군가의 사정에 의해서 숨겨지거나 또는 뒤틀리기 때문이야. 그런 걸 한 겹 한 겹 벗겨내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걸 다시 검증해서 자신의 언어로 기사화하는 게 우리들 일이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알죠... 나는 왜 선배가 '저널'이라고 하느냐, 그걸 묻고 있는 거예요. 취재 정신을 말하는 거라면 저널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맞고, 취재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키려면 저널리스트라고 해야 하잖아요. 저널이라고 하면 '일간지'란 의미가 된다고요."

  "물론 의미는 그렇지."

  "그런데 왜 저널이라고 하는 건데요?"

  "그건 우리가 신문기자이기 때문이야. 저널리스트처럼 시간을 두고 상대의 속마음까지 파고들어 모든 것을 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마감이 있고 지면도 매일 만들어야 하잖아. 오늘은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하고 신문을 백지로 발간할 수는 없으니까.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이 상반되는 두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그래서 저널이라는 건가요?"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지... 우리 아버지의 말버릇이었어. 텔레비전에서 저널리스트라는 사람이 나와서, 별다른 취재도 하지 않았으면서 거창하게 말하는 걸 보면 늘 '저 자식, 저널이 아니군' 하고 중얼거렸거든... 진실은 한밤중에 드러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거든. 그래서 매일 밤 집에 돌아가 가족과 단란하게 따스한 밥을 먹는 인간 중에는 제대로 된 기자가 없다고...... 취재라는 명분으로 취재 대상과 술이나 마시고 다닌 아버지의 변명 같은 거였지만."(p.288-290)

  "나는 이 세상에 신문기자가 아직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이 보급돼서 신문의 속보 역할이 사라진 건 사실이고, 구독자도 많이 줄었죠. 그러나 아무리 전달 루트가 발달해도, 현장에 나가서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하는 기자가 없으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잖아요... 동감합니다. 언젠가 신문이 없어지는 날이 와도, 어떤 매체에서든 책임감 있게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의 정신 같은 것은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p.393)

  명예의 회복보다는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 대학을 졸업하고 산업경제(산케이)신문사에서 20년간 취재 기자로 살다가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는, 기자라는 직업과 기자 정신에 상당한 자부심으로 글을 썼다.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오보를 내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의 기레기들 사이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기자는 과할 정도로 집착하고. 집착하고. 집착한다. 이것이 진정한 저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언수, [설계자들], 문학동네, 2010.

  소설 [뜨거운 피](문학동네, 2016.)를 아주 재미있게 읽어,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은 김언수의 작품이다. 띠지를 보니 "누가, 너에게, 설계를, 가르쳤지?"와 "언제나 핵심은 총을 쏜 자가 아니라 총을 쏜 자 뒤에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국내 소설로는 드물게(?) 청부살인을 소재로 하는데, 영화 <회사원>(2012.)이 연상되기도 하고...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었다.

  래생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 아니라면, 쓰레기통에서 태어났거나.(p.35)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생각이냐?"(p.38)

  주인공의 이름은 래생(來生)이다. 한자의 의미하고는 다르게 그는 청부살인을 한다. 태어난 다음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어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에서 자랐다. 개들의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암살자, 청부업자, 추적자, 사냥꾼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는 영감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고, 죽이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털보가 카트를 끌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느리고 낙천적인 발걸음. 욕심도 조바심도 내지 않는 털보의 발걸음이 래생은 늘 부러웠다. 털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큰 건수가 있다고 섣부르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이 작은 애완동물 화장장을 굴리면서 조금씩 돈을 번다. 시체를 태워서 털보는 두 딸을 키웠다. 큰 딸은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다. "적게 먹어야 오래가지. 애들 뒷바라지하려면 몇 년은 더 버텨야 하는데." 털보는 무서움을 탄다. 돈이 좀 급하다고 찜찜한 물건을 받는 일도 없다. 그래서 평균수명이 턱없이 짧은 이 바닥에서 털보가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다.(p.45-46)

  털보네 애완동물 화장장은 밤에는 타깃이 되어 죽은 시체를 처리하는 곳이다. 시신을 은밀하게 화장하기 원하는 청부업자 대부분은 이곳을 이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털보는 죽이고 은폐하는 일을 하면서 두 딸을 키웠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누군가를 살리고 키우는 일을 한다. 일상적이면서 뭔가 내막이 있는 설정이 돋보이는데,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상황부여는 매우 특이하면서 인상적이다.

  설계자들에게 용병과 암살자들은 일회용 건전지 같은 것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늙은 자객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설계자들에게 늙은 자객이란 그저 불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잔뜩 품고 있는 곤혹스런 물집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방전된 일회용 건전지를 소중하게 보관하지 않는다.(p.55)

  살인청부업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독재와 군부 시절이 끝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전에는 눈엣가시 같은 사람을 지프에 태워 남산으로 끌고 간 뒤에 두들겨 패도 찍소리 못하던 무지한 시대였다. 하지만 자신을 도덕적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같은 일은 사라졌다. 그래도 누군가를 죽여야 하지 않는가... 살인청부는 국가가 설계자를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기업형 암살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는데, 너구리 영감은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설계자들도 우리 같은 하수인들일 뿐이야. 의뢰가 들어오면 설계를 하지. 그 위에는 설계자를 설계하는 놈이 있겠지. 그 위에는 그놈을 설계하는 또다른 설계자가 있을 거고. 그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결국 뭐가 남을까? 아무것도 없어. 맨 위에 있는 것은 그냥 텅 빈 의자뿐이야." 래생이 말했다.

  "그 의자에도 분명 누군가가 앉아 있겠지."(p.93-94)

  암살자의 뒤에는 언제나 설계자가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암살자는 늘 설계대로 움직여야 한다. 설계를 변경하거나 설계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을 어기면 응분의 대가가 따르는데, 암살자만 따로 처리하는 청소부가 있다. 그런데 래생의 변기에서 소형 폭발물이 발견된다. 그는 설계된 것일까?

  래생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 살아야지.' 한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마도 한자 말이 맞을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진짜 사내는 빈속에 잭 다니엘을 처마시고, 변기 위에서 고양이처럼 울다가, 부엌칼을 손에 쥔 채 죽는 것이다.(p.102)

  하지만 이 설계의 출발지가 어디인지. 이 설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자도 이 설계의 정확한 실체를 모를 것이다. 설계자들의 세계에선 아무도 필요 이상의 정보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보를 많이 가질수록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지해야 한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몰라야 한다. 그냥 죽여버리면 되는데 무엇하러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고민하겠는가. 그러니 모두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울타리 속에서만 꼼지락거리며 일을 한다. 그 작은 울타리들이 모여서 터무니없이 크고 복잡한 커넥션과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힌 설계가 탄생한다.(p.126-127)

  "가장 오래된 인류의 두개골에는 창으로 찔린 자국이 있지. 창녀와 포주는 농부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직업이고,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아들이 한 일도 살인이었지. 그 이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오로지 전쟁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었지. 문명이건 예술이건 종교건 하다못해 평화도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니? 이것이 인간이란 종이야. 인간이라는 종은 처음부터 서로를 끊임없이 죽이면서 살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거지. 살인자의 편에 기생하거나 아니면 상대편을 죽이거나. 그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인류는 그런 아포토시스로 지금까지 버텨왔던 거야. 그게 이 세계의 참모습이지. 인간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고. 그것을 멈추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결국 누군가는 포주와 창녀와 청부업자 노릇을 하며 살겠지. 웃기게도 그래야 세상이라는 수레바퀴가 또 돌아가는 거거."(p.212-213)

  "사는 것도 다 그래. 인생 뭐 별거 있나? 이렇게 냄새나고 온갖 추잡하고 불결한 것들과 얽히고설키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그런대로 먹고살 만해. 때때로 맛도 있고. 어떤가? 이쯤에서 돌아서면 난 참 좋을 것 같은데, 이따금 여기 들려서 소주나 같이 한잔하고." 희수 영감이 타이르듯 말했다.

  "칼 뽑고 나왔습니다." 래생이 비장한 톤으로 말했다.(p.318)

  글을 쓰다 보니 [뜨거운 피]와 [설계자들]은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늙은 보스와 평생 그의 손과 발이 되어 따르는 주인공, 시대의 변화로 내리막을 걷는 조직과 주인공의 인생, 거대한 경쟁 조직의 등장과 압박, 주인공은 뛰어난 실력을 지녔고 그가 상대하는 인물은 더 뛰어난 실력자이고,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나와 독립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머무를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고... 또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이 아니던가... 삶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막연하고... 또 모든 것을 설계로 보기에는 삶이 피로하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숨은 세력이 있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언수, [뜨거운 피], 문학동네, 2016.

  조직폭력의 탄생과 그들의 생리... 건달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평소에는 무엇을 먹고살까? 입에 의리를 달고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는... 현실하고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영화 같은 소설 김언수의 [뜨거운 피]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990년대 초반 부산에 있는 가상의 도시 '구암'을 배경으로, 짜임새 있는 한 편의 한국형 누아르를 완성한다.

  구암(拘巖)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p.9)

  건달은 닥치고 그저 쥐죽은듯이 조용히!(p.12)

  "개폼을 잡다가 죽은 거지. 건달이 쓸데없이 똥폼을 잡으면 그렇게 한 방에 훅 가는 기라."(p.19)

  구암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만리장의 주인은 손영감이다. 과거 구암의 해변은 일본인이 자주 찾는 관광명소였다. 해방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찾는 이가 뜸한 그렇고 그런 바다이다. 조부는 야쿠자가 운영했던 이 호텔을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손에 넣었다. 하지만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정치깡패로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는 호기롭게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어이없이 죽임을 맞았다. 그래서일까? 구암의 주인인 손영감은 몸을 사린다. 바짝 엎드려서 남이 보기에 돈이 될까 싶은 일만 골라서 하기에 아무도 구암의 바다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흔! 깡패짓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라고 희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하나에도 마흔둘에도 별수없이 깡패짓을 해야 할 것이다. 열여덟에 이 바닥에 들어와서 이 나이를 처먹도록 아직 집 한 칸도 장만 못했다. 결혼도 못했고, 모은 돈도 없었다. 모은 돈은커녕 도박빚만 잔뜩이었다. 이 짓을 때려치우고 나가서 먹고살 만한 마땅한 기술도 없었다. 설령 다른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새로 시작할 것인가. 마흔, 변두리 지역 깡패들의 중간 간부,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 집 한 칸 없이 호텔방에 빌붙어 살며 부하들 몰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전과 4범의 사내. 그게 희수의 현주소였다.(p.54)

  희수는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으로 구암의 에이스이다. 가난한 달동네에서 자란 예쁜 여자아이는 인생의 한계에 이르면, 무능한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판다. 그런 시절에 씩씩한 사내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열여덟에 주먹세계에 발을 들인다. 구암에서 손영감의 손과 발이 되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그는 이제 마흔이 되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 한 칸 없이 잔뜩 빚만 진 나이든 인생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어디서 칼 맞기 전에 한몫 잡아 이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한다.

  영도는 부산 폭력조직의 본거지였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건달들로 출발해서 오십 년 가까이 부산을 지배해온 전국구 규모의 조직이었다. 부산에 있는 폭력조직들의 1세대는 대부분 한국전쟁 때 급격히 늘어난 피난촌인 남부민, 초방, 아미, 완월, 감천, 영도 같은 곳에서 탄생했는데, 그중에서도 영도가 가장 컸다. 그러니 부산의 수많은 조직들이 어떤 이름을 달고 있건 어떤 형태를 하고 있건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남부민, 초장, 아미, 완월, 감천, 영도 같은 곳이 나올 것이다. 영도는 항구를 지배했고 그 항구로 한국전쟁과 월남전 때 물밀듯 들어온 미군 군수물자를 팔아치우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항구를 통해 러시아 마피아들과 연줄이 닿아 있었고 일본의 야쿠자들도 지속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영도는 허름한 구암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스케일이 큰 조직이었다.(p.67)

  과거 조직 간의 날 선 다툼에서 모두가 죽어 나갈 때도,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부분이 잡혀 들어갈 때도... 손영감은 살아남았고, 구암의 바다는 손씨 가문이 팔십 년을 지켜온 곳이다. 그런데 뿌리 깊고 규모가 큰 영도에서 구암의 바다를 넘본다는 소문이 있다. 큰 조직이 아무리 탐나도 흘릴 피에 비하면 계륵과 같은 곳인데, 마음먹고 덤비면 구암의 바다를 못 먹을 것도 없지만 이유와 명분이 궁금하다.

  "니는 너무 멋있으려고 한다. 건달은 멋으로 사는 거 아니다. 영감님에 대한 의리? 동생들에 대한 걱정?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하는 평판? 좆까지 마라. 인간이란 게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 별로 훌륭하지 않은 게 훌륭하게 살려니까 인생이 이리 고달픈 거다. 니가 진짜 동생들이 걱정되면 손에 현찰을 쥐여줘라. 그게 어설픈 동정이나 걱정보다 백배 낫다. 니는 똥폼도 잡 손에 떡도 쥐고 싶은 모양인데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우리처럼 가진 게 없는 놈들은 씨발 정신이 있어야 한다. 상대 앞에서 배 까고 뒤집어지고, 다리 붙잡고 울면서 매달리고, 똥꼬 핥아주고, 마지막에 추잡하게 배신을 때리고 우뚝 서는 씨발 정신이 없으면 손에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멋있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로 씨발놈이 이기는 거다."(p.305)

  희수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만리장 지배인이라는 허울 좋은 딱지뿐이다. 생기는 건 아무것도 없이 잡부처럼 손영감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일이다. 늙고 겁 많은 노인과 발 빠르고 머리 좋은 놈들 사이에서 호구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늙은 여우 곁을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따로 오라는 곳으로 갈 것인가? 희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심상치 않다. 왜 하필 이때인가? 누군가 손영감과 희수를 떼어놓으려는 계략은 아닐까...

  희수가 아미를 쳐다봤다. 싸움에선 그토록 용맹무쌍하던 아미가 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스무 살엔 희수도 아미 같았다. 감정에 수분이 가득해서 무엇이든 쉽게 끓어올랐다. 뭐든 지금보다 더 슬펐고 더 분했고 더 불쌍했고 더 그리웠다. 그 뜨거운 것들이 전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p.465)

  등장인물의 성격이 돋보이고, 지역 건달의 현실적인 묘사가 아주 흥미롭다. 조직폭력은 아니고 나도 스무 살의 나이에 뜨거운 가슴으로 산 적이 있다. 피 끓는 열정으로 달렸고... 때로는 무모함으로 넘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경험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겠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현실에 안주하는 나이라서 변화를 두려워하여 그때처럼 호기롭지는 못하는데, 하는 일만큼은 열정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도 뜨거운 피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B의 재산 은닉 기술 - 이명박 금고를 여는 네 개의 열쇠
백승우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승우, [MB의 기술], 다산지식하우스, 2018.

  그동안 TV에서 방영하는 탐사보도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은 좋아해도 책으로는 찾아 읽지 않았다. 화면 영상의 편리함과 인터넷 검색의 효율성으로 굳이 책을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각인되는 책의 효과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밝게 미래지향으로 보아야 하는데, 어떤 음모론이나 회의론에 빠져서 염세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향한 지나친 욕망으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사는 오늘의 역사도 같은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데, 인간의 추악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류는 절대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워왔다. 그래서 통치자의 힘을 분산하고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도 안심할 수 없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감시와 견제를 하고 있다. 행정부 외에 입법부와 사법부, 이것을 지켜보는 시민단체와 언론... 지난 10년 동안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분이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 이명박의 금고를 여는 네 개의 열쇠... [MB의 재산 은닉 기술]을 읽었다.

  기자 한 사람이 모든 의혹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순 없다. 구석구석 빈 곳도 많다. 사실과 사실의 섬, 그 사이의 망망대해는 함께 건넜으면 한다. 여기 네 개의 열쇠가 있다. 이명박과 이명박 일가의 '돈' '땅' '다스' '동업자'가 열쇠다. 네 개의 열쇠는 결국 우리가 몰랐던 이명박의 재산으로 안내할 것이다.(p.9)

  은닉한 불법적인 재산을 찾기 위한 네 가지 열쇠는 돈-땅-다스-동업자이다. 대통령 아들의 전셋집, 청와대에서 나온 자금, 비밀금고, 돈줄, 친인척과 측근, 그리고 거짓말까지... 국격을 이야기하고 역대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해온 그분이 구속되었다. 이 책은 그 이전에 나와서 그분의 실체를 까발린다. 14대와 15대 국회의원, 32대 서울특별시장,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도곡동 땅, 다스, BBK... 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의혹...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갖가지 의혹은 넘쳐난다.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취재 기자의 몸부림은 좋은(?) 결실을 보기 바란다. 이런 글이 왜 좀 더 빨리 나오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켈러의 예수, 예수 -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팀 켈러, 윤종석 역, [예수, 예수], 두란노, 2017.

Timothy Keller, [Hidden Christmas], 2016.

  12월, 눈 내리는 계절하고 어울리는 책을 따뜻한 봄날에 읽었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우리 주위에선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찬송가와 성탄을 알리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세상의 평화를 기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를 외면하고 있다. 이제는 연인의 사랑과 상업성을 배제하기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날이다.

  어둠 속의 불빛을 강조하는 풍조는 세상의 희망이 세상 바깥에서 온다는 기독교의 믿음에서 기원했다. 또 선물을 주는 행위는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께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예수님은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인간으로 오셨다. 어려운 형편의 이웃을 향한 관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회 상류층이 아니라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셨음을 환기시켜 준다. 우주의 주인께서 인류의 가장 작고 소외된 이들과 같은 처지가 되신 것이다.(p.12-13)

  이 모두가 가슴 뭉클한 주제지만, 사실은 양날을 가진 검이다. 예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너무 눈멀어 있어 스스로는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인간이 되어 죽으신 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 다른 식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으니 우리도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고전 6:19 참조). (하나님처럼) 크리스마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경이롭고 더 치명적이다.(p.13)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5)

  선지자의 예언으로 오신 예수님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태복음 1:1)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태복음 1:18-20)

  구원자이고,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1-23)

  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상한 행위와 성취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로 시작된다. 바로 겸손히 구하는 일이다. 그러면 시간이 가면서 우리 안에 생명과 기쁨이 자라는데, 역시 평범하다 못해 거의 따분한 실천들을 통해 자란다. 매일 순종하는 것,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섬기는 것, 환난 중에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등이다. 이렇게 조금씩 믿음이 자라면서 우리 삶의 기초는 기쁨의 지하수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간다.(p.214)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성경에서 찾다... 매년 묵상하는 말씀이지만, 올해는 집중적으로 몰아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영적인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