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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혼조 마사토, 김난주 역, [미드나잇 저널], 예문아카이브, 2017.
Honjo Masato, [MIDNIGHT JOURNAL], 2016.
일본소설에서 소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이번에는 신문사 기자를 주인공으로, 저널리즘이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매우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완성했다. 특종을 쫓는 사회부 기자의 고뇌는 아주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법정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제대로 일하지 않아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경찰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최근에 가장 욕먹는 직업군 중의 하나는 누가 뭐래도 기자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있듯이 매번 논란은 기자가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있었던가? 신속, 정확, 공정이라는 구호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당분간은 기자를 소재로 하는 소설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기자에게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란 없다고."(p.25)
"분위기만이라도 익혀 둬. 기사 쓸 때, 현장을 보고 안 보고에 따라 전혀 달라지니까. 그럼, 다음으로 가지."(p.26)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는 오류가 있어도 올린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잖아요. 우리는 오보를 내면 사죄를 해야 하고, 책임도 져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례 아닙니까."(p.33)
세키구치 고타로는 주오신문 사이타마현 지국의 현경 담당팀 팀장이다. 한때는 본사 사회부에서 명성을 떨치던 중견 기자였지만, 7년 전에 있었던 유괴 사건에서 오보를 내어 현재 좌천된 상황이다. 기사와 관련된 사람은 진급에서 떨어지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처분을 받았다. 그는 본사에서 내려온 BB(Big Brother)로 후배를 교육하며 나름의 사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7년 전에 일어났던 유괴 사건하고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 취재를 시작한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때도 2인조라고 기사를 쓴 건 우리였고, 하필 그 한 건 때문에 우리가 쓴 기사는 검증도 받을 수 없었고."(p.47)
딸이 죽었다는 오보에 격분한 가족의 분노가 실책을 인정하고 정정 기사를 싣는 정도로 수습될 리 없었다.
-당신들 말이야. 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 딸이 죽었다고 썼느냐고. 딸이 죽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우리 가족 심정이 어땠는지 알기나 해?(p.60)
그 후로 히로후미는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다.(p.61-62)
납치된 여자아이는 이미 죽었다는 것과 범인은 2인조라는 것은 오보였다. 극적으로 범인이 잡히는 바람에 아이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고, 범행은 단독 소행으로 밝혀졌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얻은 결론이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다행히 아이는 살아 돌아왔지만, 잘못된 기사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신문사 기자들에게도 후유증은 컸다. 세월이 흘러 범인은 사형당하고, 사건이 잊혀 갈 무렵... 똑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취재하면서 당시 2인조 중의 살아남은 하나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자네는 세상에서 이제 겨우 잊힌 우리 신문사의 실책을 제 손으로 들추겠다는 말인가?"(p.79)
신문에 있어서 기자는 대체 무엇인가. 다른 신문과 다른 부서의 코를 납작하게 짓뭉갤 만큼 영향력 있는 기사로 경쟁자를 압도한다. 지면이라는 진지(陳地) 쟁탈전이 고스란히 의자 쟁탈전으로 이어진다.(p.101)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온갖 사람들이 취재한 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비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문을 읽는 우리도 쓰여 있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p.112-113)
신문의 지면을 두고 벌이는 사회부와 정치부의 경쟁은, 데스크를 차지하기 위한 진급 경쟁으로 이어진다. 타 신문사보다 한 걸음 앞서서 걸어야 하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경찰과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밑바닥에서 발로 뛰어야 하고,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한다. 단독으로 썼다고 해서 전부 특종은 아니다. 후속으로 인용해서 따라 써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본사와 지국의 자존심 대결이 있고, 하나의 기사를 작성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기자의 눈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러나 출세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신문기자는 끝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정보는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 않아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p.220)
"선배는 왜 저널이라고 해요?"
"많은 진실이 누군가의 사정에 의해서 숨겨지거나 또는 뒤틀리기 때문이야. 그런 걸 한 겹 한 겹 벗겨내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걸 다시 검증해서 자신의 언어로 기사화하는 게 우리들 일이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알죠... 나는 왜 선배가 '저널'이라고 하느냐, 그걸 묻고 있는 거예요. 취재 정신을 말하는 거라면 저널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맞고, 취재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키려면 저널리스트라고 해야 하잖아요. 저널이라고 하면 '일간지'란 의미가 된다고요."
"물론 의미는 그렇지."
"그런데 왜 저널이라고 하는 건데요?"
"그건 우리가 신문기자이기 때문이야. 저널리스트처럼 시간을 두고 상대의 속마음까지 파고들어 모든 것을 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마감이 있고 지면도 매일 만들어야 하잖아. 오늘은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하고 신문을 백지로 발간할 수는 없으니까.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이 상반되는 두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그래서 저널이라는 건가요?"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지... 우리 아버지의 말버릇이었어. 텔레비전에서 저널리스트라는 사람이 나와서, 별다른 취재도 하지 않았으면서 거창하게 말하는 걸 보면 늘 '저 자식, 저널이 아니군' 하고 중얼거렸거든... 진실은 한밤중에 드러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거든. 그래서 매일 밤 집에 돌아가 가족과 단란하게 따스한 밥을 먹는 인간 중에는 제대로 된 기자가 없다고...... 취재라는 명분으로 취재 대상과 술이나 마시고 다닌 아버지의 변명 같은 거였지만."(p.288-290)
"나는 이 세상에 신문기자가 아직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이 보급돼서 신문의 속보 역할이 사라진 건 사실이고, 구독자도 많이 줄었죠. 그러나 아무리 전달 루트가 발달해도, 현장에 나가서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하는 기자가 없으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잖아요... 동감합니다. 언젠가 신문이 없어지는 날이 와도, 어떤 매체에서든 책임감 있게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의 정신 같은 것은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p.393)
명예의 회복보다는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 대학을 졸업하고 산업경제(산케이)신문사에서 20년간 취재 기자로 살다가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는, 기자라는 직업과 기자 정신에 상당한 자부심으로 글을 썼다.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오보를 내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의 기레기들 사이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기자는 과할 정도로 집착하고. 집착하고. 집착한다. 이것이 진정한 저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