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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평점 :
나카야마 시치리, 권영주 역, [속죄의 소나타], 블루홀6, 2017.
Nakayama Shichiri, [SHOKUZAI NO SONATA], 2011.
한동안 이런저런 바쁨으로 책을 읽지 못해서 이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후속작을 빼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최강과 최악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변호사, 선과 악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법정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과 재미가 있다.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첫 번째,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속죄의 소나타]이다.
기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지향하는데, 청소년기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성인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다는 설정이다. 일본의 소년법에 관한 논쟁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에서 첨예한 대립과 문제의식으로 관련 법까지 개정했다고 한다. 이 소설 또한 성인이 되기 이전의 범죄 경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시체를 만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p.9)
아마 가능할 것이다. 미코시바는 그렇게 판단했다. 전에 체포됐을 때보다 자신은 훨씬 영리해졌다. 교묘한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찰관이나 재판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졌다. 법의 파수꾼이 되고자 했던 게 결과적으로 법을 어기는 데 기여한다는 것은 얄궂은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p.17)
"대외적인 인맥이야 그렇겠지만 선생님은 지하 쪽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으니까요. 우리한테도 유명하시거든요. 무슨 죄목으로 기소되든 반드시 집행유예를 받아 내는 무적의 변호사라고."(p.25)
미코시바 레이지는 26년 전에 있었던 여아 살해 사건의 장본인이다. 원래 이름은 소노베 신이치로로 당시 14세였던 그는 어린 여자아이를 유인 살해한 후, 토막 내 하나씩 공개했다. 일명 시체 배달부로 불리며, 범죄의 흉악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은폐는 곧바로 드러나고 체포되어 소년법을 적용, 소년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유 설명은 자세하지는 않지만, 소년원에서 마음을 바꾸고 변호사가 되기로 하는 과정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과거가 어떠하든 그는 소년원에서 출소하고 성인이 되어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발목을 잡으려고 해도 그는 변호사로서 법률체계를 이용하여 자기만의 이익을 취한다. 악명 높은 그의 활약은, 경찰에서는 범죄자를 풀어주는 것으로, 범죄자들에게서는 무적의 변호사로 유명하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그의 행동은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시체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법의학 교실의 노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핏기를 잃어 창백해진 피부 밑에서 부패 가스가 발생해 팽창하면서 몸 전체가 속에서부터 부푼다. 이게 파란 도깨비.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위액이 자가 융해를 시작해 단백질을 변질시키면서 그 때문에 온몸이 붉어진다. 이게 빨간 도깨비.
다시 말해 죽인 녀석이 악귀면 죽은 녀석도 악귀라는 이야기다.(p.38-39)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뭐하네만 변호사가 번창하는 사회는 문제야."(p.56)
"물론 이슬 먹는 신선도 아닌데 변호사도 먹고살아야지. 남들만큼 금전욕을 보인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야. 어쨌거나 사법고시에 인격이란 과목은 없으니 말이지. 게다가 겨우 1년뿐인 연수 기간에 품격을 기르라는 것도 무리고. 그렇지만 어떤 변호사건 반드시 엄수해야 하는 게 있거든."
"비밀 유지 의무 말씀입니까?"
"아니. 마지막 순간까지 의뢰인을 지킨다는 거네. 돈보다, 명예보다, 때로는 법률보다도 의뢰인을 보고, 지구상 모든 인간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의뢰인을 옹호해야 해. 아니면 이 직업이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 의뢰인을 등진 변호사는 결국 법률로 밥 벌어먹는 한낱 장사꾼이네."(p.57)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변호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변호사를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돈과 명예보다 앞서야 하는 법조인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데, 인성과 품격을 포함해서 변호사의 직업의식에 관해 제대로 설교한다. 변호사가 번창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변호사회도 등록할 때 본인의 인격이든 내력이든 사전에 조사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뭐,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란 항목은 없으니 어쩔 수 없나. 개명했으니 체크에 걸리지도 않을 테고. 죄를 뉘우치고 갱생에 힘쓴 소년원생의 성공담이라 볼지, 몰상식한 괴물에서 상식을 체득한 괴물로 성장한 이야기라 볼지는 의견이 갈릴 테지."(p.109-110)
"한 번 악당은 끝까지 악당이란 겁니까?"
"그게 아냐. 살인을 실행에 옮기려면 아까 말한 대로 이성이니 윤리니 하는 경계선을 뛰어넘어야 해. 그런데 한 번 뛰어넘고 나면 담이 낮아지거든. 엄청난 일인 줄 알았던 범죄가 실은 그냥 잠깐 힘만 쓰면 되더라 하는 걸 알고 나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돼. 불쾌한 이야기지만 한 번 살인을 한 녀석은 아직 죽여 본 적이 없는 녀석보다 살인 행위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어. 살인엔 면역성이 있는 거다."(p.123)
"형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다 보면 죄를 짓는 자와 아닌 자의 차이가 흐릿하게나마 보여서 말이죠. 그건 이나미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성격이 아닙니다. 자란 환경도 아니에요. 수입이 많고 적은 것도,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영혼의 형태죠."(p.186)
인간의 갱생은 가능한 것일까? 과거의 어린 살인마가 성인이 되어 변호사가 되었다. 이것을 갱생의 결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악마에게 날개를 달아준 형국은 아닌지? 피해자와 남은 가족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리랜서 기자 출신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 미코시바와 의뢰인의 뒤를 캐다가 해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여기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사이타마 현경 수사 1과의 와타세 반장은 미코시바의 뒤를 쫓는다. 작가의 와타세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법고시는 말이지. 인격은 상관없어. 어때, 재미있지 않냐? 곤경에 처한 사람 돕는 일일 텐데 인간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나처럼 세상 사람들한테 악마라느니 인간이 아니라느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시험 성적만 좋으면 변호사 배지를 받을 수 있는 거다. 일본은 참 좋은 나라라니까."(p.215)
"거짓말이란 분명히 자기한테 하는 걸 테지. 그러니까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는 녀석은 자기를 계속 속여서 어느새 갱생할 기회를 잃게 돼. 속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러니까 참회를 말로 하지 마라. 행동으로 보여."(p.225)
"인간이 그렇게 달라질까?"
"선생님은 달라질 수 있는 인간이랑 달라질 수 없는 인간이 있다고 하셨어."
"그래? 차이가 뭔데?"
"과거의 자기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래. 잘 모르겠지만."(p.246)
"전에도 말한 적 있지. 후회 따위는 하지 마라. 후회해 봤자 과거는 수복되지 않아. 사죄도 하지 마라. 잘못을 아무리 빌어도 잃어버린 생명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 알겠냐. 이유가 뭐든 사람 하나를 죽였으면 그 녀석은 이미 악마다. 법이 용서해도, 세상 사람들이 잊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악마가 도로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속죄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죽은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라. 절대로 편한 길을 택하지 마라. 상처투성이가 돼서 진흙탕을 기어 다니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해라. 자기 안에 있는 짐승을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싸워라."
...
"그렇게...... 그게 대체 언제 끝나는데."
"네가 죽었을 때지."
"...... 어이없네. 그럼 자기 인생이 전혀 아니잖아."
"그래 맞아. 하지만 잊지 마라. 넌 이미 타인의 인생을 빼앗었어. 그러니까 타인을 위해 살아야 보상이 되는 거다."
"타인을 위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살면 보상할 수 있지. 착각하지 마라. 죄를 갚는 건 의무가 아니야. 죄인한테 주어진 자격이고 권리다."(p.283-284)
테미스 상은 원래 평등함을 한층 강조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했다는데, 미코시바는 국내 어느 법원에서도 눈을 가린 테미스 상을 본 적이 없다. 대법원 건물이 일그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법률이 말처럼 형평성이 없음을 상징하는 걸까.(p.305)
시, 군 법원이나 지방법원과 달리 이곳에서는 말소리가 일체 차단된다. 조용한 것만 보면 흡사 예배당 같다. 그러나 이곳에 신은 없다. 자비도 없다. 있는 것은 논리와 전례, 그리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희비극이다.(p.306)
야쿠마루 가쿠가 그의 소설에서 소년법에 관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가해자와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의 삶을 조망했다면... 나카야마 시치리는 철저히 가해자에게 시선을 둔다. 타인의 삶을 빼앗은 만큼 어떠한 대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말로만 속죄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 자기를 죽이고 남은 생은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 평생 죄를 갚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자기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직접 언급한다. 소년법은 결국 가해자의 몫이다.
단어 선택의 신중함으로 진중함이 있다. 문장이 좋아서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고...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서 매력적이고, 반전과 뒷이야기의 마무리가 흥미롭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