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소나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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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권영주 역, [속죄의 소나타], 블루홀6, 2017.

Nakayama Shichiri, [SHOKUZAI NO SONATA], 2011.

  한동안 이런저런 바쁨으로 책을 읽지 못해서 이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후속작을 빼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최강과 최악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변호사, 선과 악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법정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과 재미가 있다.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첫 번째,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속죄의 소나타]이다.

  기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지향하는데, 청소년기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성인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다는 설정이다. 일본의 소년법에 관한 논쟁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에서 첨예한 대립과 문제의식으로 관련 법까지 개정했다고 한다. 이 소설 또한 성인이 되기 이전의 범죄 경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시체를 만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p.9)

  아마 가능할 것이다. 미코시바는 그렇게 판단했다. 전에 체포됐을 때보다 자신은 훨씬 영리해졌다. 교묘한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찰관이나 재판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졌다. 법의 파수꾼이 되고자 했던 게 결과적으로 법을 어기는 데 기여한다는 것은 얄궂은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p.17)

  "대외적인 인맥이야 그렇겠지만 선생님은 지하 쪽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으니까요. 우리한테도 유명하시거든요. 무슨 죄목으로 기소되든 반드시 집행유예를 받아 내는 무적의 변호사라고."(p.25)

  미코시바 레이지는 26년 전에 있었던 여아 살해 사건의 장본인이다. 원래 이름은 소노베 신이치로로 당시 14세였던 그는 어린 여자아이를 유인 살해한 후, 토막 내 하나씩 공개했다. 일명 시체 배달부로 불리며, 범죄의 흉악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은폐는 곧바로 드러나고 체포되어 소년법을 적용, 소년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유 설명은 자세하지는 않지만, 소년원에서 마음을 바꾸고 변호사가 되기로 하는 과정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과거가 어떠하든 그는 소년원에서 출소하고 성인이 되어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발목을 잡으려고 해도 그는 변호사로서 법률체계를 이용하여 자기만의 이익을 취한다. 악명 높은 그의 활약은, 경찰에서는 범죄자를 풀어주는 것으로, 범죄자들에게서는 무적의 변호사로 유명하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그의 행동은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시체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법의학 교실의 노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핏기를 잃어 창백해진 피부 밑에서 부패 가스가 발생해 팽창하면서 몸 전체가 속에서부터 부푼다. 이게 파란 도깨비.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위액이 자가 융해를 시작해 단백질을 변질시키면서 그 때문에 온몸이 붉어진다. 이게 빨간 도깨비.

  다시 말해 죽인 녀석이 악귀면 죽은 녀석도 악귀라는 이야기다.(p.38-39)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뭐하네만 변호사가 번창하는 사회는 문제야."(p.56)

  "물론 이슬 먹는 신선도 아닌데 변호사도 먹고살아야지. 남들만큼 금전욕을 보인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야. 어쨌거나 사법고시에 인격이란 과목은 없으니 말이지. 게다가 겨우 1년뿐인 연수 기간에 품격을 기르라는 것도 무리고. 그렇지만 어떤 변호사건 반드시 엄수해야 하는 게 있거든."

  "비밀 유지 의무 말씀입니까?"

  "아니. 마지막 순간까지 의뢰인을 지킨다는 거네. 돈보다, 명예보다, 때로는 법률보다도 의뢰인을 보고, 지구상 모든 인간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의뢰인을 옹호해야 해. 아니면 이 직업이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 의뢰인을 등진 변호사는 결국 법률로 밥 벌어먹는 한낱 장사꾼이네."(p.57)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변호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변호사를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돈과 명예보다 앞서야 하는 법조인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데, 인성과 품격을 포함해서 변호사의 직업의식에 관해 제대로 설교한다. 변호사가 번창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변호사회도 등록할 때 본인의 인격이든 내력이든 사전에 조사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뭐,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란 항목은 없으니 어쩔 수 없나. 개명했으니 체크에 걸리지도 않을 테고. 죄를 뉘우치고 갱생에 힘쓴 소년원생의 성공담이라 볼지, 몰상식한 괴물에서 상식을 체득한 괴물로 성장한 이야기라 볼지는 의견이 갈릴 테지."(p.109-110)

  "한 번 악당은 끝까지 악당이란 겁니까?"

  "그게 아냐. 살인을 실행에 옮기려면 아까 말한 대로 이성이니 윤리니 하는 경계선을 뛰어넘어야 해. 그런데 한 번 뛰어넘고 나면 담이 낮아지거든. 엄청난 일인 줄 알았던 범죄가 실은 그냥 잠깐 힘만 쓰면 되더라 하는 걸 알고 나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돼. 불쾌한 이야기지만 한 번 살인을 한 녀석은 아직 죽여 본 적이 없는 녀석보다 살인 행위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어. 살인엔 면역성이 있는 거다."(p.123)

  "형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다 보면 죄를 짓는 자와 아닌 자의 차이가 흐릿하게나마 보여서 말이죠. 그건 이나미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성격이 아닙니다. 자란 환경도 아니에요. 수입이 많고 적은 것도,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영혼의 형태죠."(p.186)

  인간의 갱생은 가능한 것일까? 과거의 어린 살인마가 성인이 되어 변호사가 되었다. 이것을 갱생의 결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악마에게 날개를 달아준 형국은 아닌지? 피해자와 남은 가족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리랜서 기자 출신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 미코시바와 의뢰인의 뒤를 캐다가 해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여기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사이타마 현경 수사 1과의 와타세 반장은 미코시바의 뒤를 쫓는다. 작가의 와타세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법고시는 말이지. 인격은 상관없어. 어때, 재미있지 않냐? 곤경에 처한 사람 돕는 일일 텐데 인간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나처럼 세상 사람들한테 악마라느니 인간이 아니라느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시험 성적만 좋으면 변호사 배지를 받을 수 있는 거다. 일본은 참 좋은 나라라니까."(p.215)

  "거짓말이란 분명히 자기한테 하는 걸 테지. 그러니까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는 녀석은 자기를 계속 속여서 어느새 갱생할 기회를 잃게 돼. 속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러니까 참회를 말로 하지 마라. 행동으로 보여."(p.225)

  "인간이 그렇게 달라질까?"

  "선생님은 달라질 수 있는 인간이랑 달라질 수 없는 인간이 있다고 하셨어."

  "그래? 차이가 뭔데?"

  "과거의 자기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래. 잘 모르겠지만."(p.246)

  "전에도 말한 적 있지. 후회 따위는 하지 마라. 후회해 봤자 과거는 수복되지 않아. 사죄도 하지 마라. 잘못을 아무리 빌어도 잃어버린 생명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 알겠냐. 이유가 뭐든 사람 하나를 죽였으면 그 녀석은 이미 악마다. 법이 용서해도, 세상 사람들이 잊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악마가 도로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속죄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죽은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라. 절대로 편한 길을 택하지 마라. 상처투성이가 돼서 진흙탕을 기어 다니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해라. 자기 안에 있는 짐승을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싸워라."

  ...

  "그렇게...... 그게 대체 언제 끝나는데."

  "네가 죽었을 때지."

  "...... 어이없네. 그럼 자기 인생이 전혀 아니잖아."

  "그래 맞아. 하지만 잊지 마라. 넌 이미 타인의 인생을 빼앗었어. 그러니까 타인을 위해 살아야 보상이 되는 거다."

  "타인을 위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살면 보상할 수 있지. 착각하지 마라. 죄를 갚는 건 의무가 아니야. 죄인한테 주어진 자격이고 권리다."(p.283-284)

  테미스 상은 원래 평등함을 한층 강조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했다는데, 미코시바는 국내 어느 법원에서도 눈을 가린 테미스 상을 본 적이 없다. 대법원 건물이 일그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법률이 말처럼 형평성이 없음을 상징하는 걸까.(p.305)

  시, 군 법원이나 지방법원과 달리 이곳에서는 말소리가 일체 차단된다. 조용한 것만 보면 흡사 예배당 같다. 그러나 이곳에 신은 없다. 자비도 없다. 있는 것은 논리와 전례, 그리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희비극이다.(p.306)

  야쿠마루 가쿠가 그의 소설에서 소년법에 관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가해자와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의 삶을 조망했다면... 나카야마 시치리는 철저히 가해자에게 시선을 둔다. 타인의 삶을 빼앗은 만큼 어떠한 대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말로만 속죄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 자기를 죽이고 남은 생은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 평생 죄를 갚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자기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직접 언급한다. 소년법은 결국 가해자의 몫이다.

  단어 선택의 신중함으로 진중함이 있다. 문장이 좋아서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고...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서 매력적이고, 반전과 뒷이야기의 마무리가 흥미롭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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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 종활 사진관
아시자와 요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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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자와 요, 이영미 역, [아마리 종활 사진관], 엘리, 2017.

Ashizawa You, [AMARI SHUKATSU SHASHINKAN], 2016.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태어나는 순간만큼 중요한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시자와 요의 소설 [아마리 종활 사진관]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영정사진과 관련된 네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활'이란, 일본어로 '인생을 마무리 짓기 위한 활동'의 줄임말(終活, 슈카쓰)이다. 죽음과 연관되어 사진관을 찾은 이들은 모두 미스터리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데, 영정사진으로 그간의 오해와 원한을 풀어가는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이다.

  첫 번째 유언장

  십이 년 만의 가족사진

  세 번째 유품

  두 번째 영정사진

  각각의 사연이 흥미롭지만, 그보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 매우 돋보인다. 이야기의 시점을 제공하는 구로코 하나는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다. 한때는 유명한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였으나 할머니의 수수께끼 유언을 풀기 위해 사진관에 왔다가 인연을 맺는다. 나가사카 유메코는 종활 코디네이터로, 재정관리와 함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무뚝뚝하면서 신비감이 넘치는 카메라맨 아마리와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견습생 도톤보리가 나온다. 등장인물의 성격이 워낙 개성 있어서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당신의 '종활'을 책임지고 도와드립니다!(p.14)

  "그런데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보면, 자칫 영정사진은 뒤로 미뤄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말이죠. 돌아가신 후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족들의 눈에 띄며 고인의 인상을 결정짓는 게 바로 이 영정사진입니다."(p.83)

  "조금 전에도 영정사진을 찾느라 고생한 적이 있다고 손을 드신 분들이 계셨지요. 영정사진을 제대로 준비해두지 않는다는 건, 가족에게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영정사진을 찾아 허둥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강제로 안기는 일이 돼버립니다. 아쉬움 없는 나다운 엔딩을 위해 한 발 앞서 여러 준비를 해두신다고 해도, 만약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화룡점정이 빠진 셈이라고 할까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인생의 마지막에 수많은 분들이 보게 될 자신의 사진이 납득할 수 없는 사진이라면, 본인과 가족의 슬픔이 더하지 않을까요?"(p.84)

  아마리 종활 사진관은 영정사진을 전문으로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 떠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쉬움이 없는 나다운 엔딩!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유언장 작성, 법률적인 절차, 장례와 묘지, 마지막 정착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꼭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영정사진이다. 영정사진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의 혼란스러움, 영정사진은 고인을 회상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아마리 종활 사진관은 상조회사와 법률사무소 등과 연계하여 종합적인 종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칠 종'자에 '활동' 할 때 '활'을 붙여서 '종활'이에요. 인생을 아쉬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예를 들면 유산 상속과 관련된 확실한 유언장을 마련한다거나 묘지를 준비한다거나 원하는 장례식에 관해 가족에게 의견을 전해두기도 하죠. 그중에, 조금 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생전사진이라고 부르는데, 자기 영정사진을 살아 있는 동안 찍어두는 활동도 포함돼요."(p.174)

  "내가 죽은 후,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고 싶진 않아요. 가장 소중한 게 뭔지도 몰랐던 때보다는 머리칼이 빠졌어도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p.237)

  아마리 종활 사진관에 오는 이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이고, 또 어떤 이는 이미 떠난 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한다. <첫 번째 유언장>은 생전에 퀴즈를 좋아했던 할머니가 엄마에게만 유산을 남기지 않아서 유언장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사진관을 찾는다. <십이 년 만의 가족사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 삼 대가 서먹한 사이로 관계가 틀어져 있는데,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모였다가 오해를 풀게 된다. <세 번째 유품>은 임산부와 남편이 찍힌 사진을 발견하는데, 가족사진이 아니라 영정사진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무엇인가? <두 번째 영정사진>은 젊은 여자와 한 번, 아내와 한 번... 두 번의 영정사진을 찍은 남자의 이유가 있다.

  영정사진을 둘러싼 네 가족의 미스터리는, 결국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갈등을 해소하고 독자에게 따뜻함을 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서 숙연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가벼움과 따뜻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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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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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이혁재 역, [살인의 문②], 재인, 2018.

Higashino Keigo, [SATSUJIN NO MON], 2003.

  사람은 어떻게 살인자가 되는가? 작가는 한 인간이 몰락하는 과정과 이것을 뒤에서 교묘히 조종하는 악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살인의 문②]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악연의 불행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다지마 가즈유키는 구라모치 오사무와 관계된 일에는 항상 뒤가 구리고 끝이 좋지 않았다. 친구를 향한 원한의 살기...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지만, 살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타이밍을 계산 중이다. 어떻게든 그를 만나서는 안 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꼭 그가 있다. 직업을 구하는 일, 여자를 만나는 일... 불행한 결혼생활까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늘 상상에 그쳤다. 행동으로 옮길 만큼의 살의가 끓어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살인에 흥미가 있었고 구라모치를 죽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도 왜 나의 증오는 살의에 이르지 못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늘 후지타가 떠올랐다. 그의 내면에는 어떤 증오가 있었기에 나를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을까. 살의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면 무언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p.23)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그래서 끓어오르는 살의에도 이번이 아닌 다음으로 막연히 기회를 미룬다. 가진 것을 전부 잃었을 때, 비로소 이것을 실행에 옮긴다. 아직 가진 게 남아서일까? 다지마는 구라모치의 말솜씨에 놀아나고 이용당한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입에 넣고 체한 기분, 그런데도 끝을 보기 위해 단숨에 책장을 넘기는 매력이 있다. 소설은 갈등의 연속이다.

  증오가 살의로 바뀌는 그 한계점을 넘어서면 아무리 애써도 생기지 않던 진정한 살의가 싹틀 것이다.(p.120)

  그러나 이번에 새로 싹튼 의문은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말로 그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전에도 몇 번인가 구라모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갖가지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기는 바람에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잘한 일이었을까. 만약 어느 시점엔가 그를 죽였다면 지금처럼 괴로움을 당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저 원칙에 불과한 것 아닐까. 경우에 따라서는 죽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예를 들면 전쟁. 전쟁은 사람을 죽이라고 국가가 명령하는 것이다. 또 정당방위라는 법률도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당하다고 할지 누가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미래의 위험을 예상해서 죽여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p.123-124)

  어린 시절에는 게임장에서 돈을 쓰게 하고, 내기 오목판에서 호구로 삼고, 저주 편지를 보내고, 좋아하는 여자를 죽게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다단계 회사의 바람잡이 노릇, 노인을 속이는 방문판매, 좋아하는 여자를 또다시 가로채고, 주식과 부동산 조작, 결혼과 이혼에 관여하는 등... 다지마의 살의는 한계점에 다다른다. 글을 읽으면서 마지막이 궁금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통쾌한 복수극이냐? 아니면 답답함의 끝이냐?

  "다지마 씨, 동기가 있다고 반드시 살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형사가 가르치듯이 말했다.

  "동기도 필요하겠지만 환경이나 타이밍, 그 당시의 기분 같은 것들이 모두 맞아떨어졌을 때 사람은 살인을 저지릅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바로 그 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계기가 없으면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죠. 아, 물론 통과하지 못하는 편이 낫지만 말입니다. 그런 문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는 게 좋아요."

  "살인의 문이라......"(p.312-313)

  악연, 원한, 살의, 살기, 도화선, 한계점, 타이밍, 동기, 기분, 계기... 살인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야기는 악연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구라모치에게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향한 질투가 있었고, 성공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내버릴 돌이 필요했다. 승부를 걸어야 할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상대가 바로 다지마였다. 그리고 결과는 둘 모두에게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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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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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이혁재 역, [살인의 문①], 재인, 2018.

Higashino Keigo, [SATSUJIN NO MON], 2003.

  모든 살인은 이유가 있다... 라는 한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한 남자의 인생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는다는 것... 이것을 실행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살인이 있는 곳에는 분명히 나름의 이유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살인의 문①]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악연의 연결고리가 삶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악의 화신인 남자와 평생 그에게 농락당하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 증오로 쌓인 원한은, 결국 살인의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될까?

  "그건 말이지, 치과는 죽음과 무관하기 때문이야. 충치로 사람이 죽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잖니. 하지만 중병에 걸린 환자의 배를 갈라 병든 부분을 잘라 내는 엄청난 수술을 한다고 치자. 환자가 살아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의사의 심정이 얼마나 괴롭겠니. 그리고 자칫하면 환자의 가족에게 크게 원망을 들을 수도 있고 말이야...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논리로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다. 어쨌든 사람의 죽음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아.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으니까."(p.11)

  "맞아. 사람도 마찬가지야. 고장 나지 않아도 언젠가는 배터리가 떨어져서 멈추는 거야. 그게 바로 노쇠란다. 사람이 장난감과 다른 점은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사람도 결국 기계를 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도 별게 아니구나 싶었다. 망가져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p.32)

  인간의 죽음에 관한 두려움은, 죽음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교가 사후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증명된 것은 없다. 단지 추측만 있을 뿐...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고, 또 죽음과 연관된 일을 꺼린다. 다지마 가즈유키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이다. 의사이지만, 죽음과 무관한 분야... 인간의 질병을 고치면서 죽음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가 죽음을 처음으로 본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집안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소문,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별, 학교에서의 따돌림, 아버지의 외도...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감탄한 것은 살의가 그토록 오래 지속됐다는 점, 그리고 그 살의를 실행에 옮긴 그녀의 냉정함에 대해서다. 그때까지 내게 살인 욕구의 이미지는 폭발적이며 비교적 단기간에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 동기가 생기면 곧바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살인이란 이른바 '욱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에 걸쳐 복수의 불꽃을 태우고, 수십 일에 걸쳐 상대를 죽이는 그 집념에는 경외심마저 생겼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어떤 기분이 들까.(p.58)

  만날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했다. 이 녀석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되새겼어야 했다. 그러나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그와 만날 약속을 한 후였다. 고백하자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심정을 토로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좋았다. 한마디로 외로웠다.(p.327)

  우발적 살인이라는 게 있을까? 구라모치 오사무는 사람을 이용하는, 태생부터가 그랬다. 친구를 게임장으로 데리고 가서 돈을 쓰게 하고, 내기 오목 도박장으로 끌어들여 호구로 삼고, 저주 편지에 이름을 써서 살기 편지를 23통이나 받게 했다. 어쩌면 집안이 몰락한 것도,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그의 저주로부터 시작된 기분이다. 전학해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여자 친구를 빼앗기고, 성인이 되어서는 다단계와 의심스러운 투자회사에 엮이게 한다.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향해 격양된 마음과 살의를 품고 있다. 그간의 경험으로 최소한 그와의 관계를 끊어야 하는데, 악연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살인의 전조... 악연, 증오, 살의의 대서사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2권이 기대된다.

  그동안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적을 만들지 않는 인간관계로 살았다. 그래서 크게 원한을 쌓거나 원수가 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살기를 품는 대상도 없었고... 아무래도 내가 한두 가지 손해를 보면, 그것으로 관계를 끝냈기 때문이리라. 인생의 교훈은, 가지 말아야 하는 곳은 절대 가서는 안 되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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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밀리언셀러 클럽 69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 조영학 역, [코로나도], 황금가지, 2007.

Dennis Lehane, [CORONADO], 2006.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 소설집 [코로나도]이다. 다섯 개의 단편과 2막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더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지럽고 복잡함을 넘어서 난해함이 발목을 잡는다. 스릴러라면 앞으로 전개될 사건과 사고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데, 문학성으로 기웃거려 거부감이 든다. 스티븐 킹도 아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닌 어정쩡한 원고 습작을 읽은 기분이다. 미드 <환상특급>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재미와 감동은 없다. 최근에 출간한 [우리가 추락한 이유](황금가지, 2018.)에서도 비슷한 느낌인데, 역시 모든 작가는 순문학을 동경하는 것인가 보다. 실망감을 치유하기 위해 [미스틱 리버](황금가지, 2005.)나 [살인자들의 섬](황금가지, 2004.)을 읽어야겠다.

  들개사냥

  ICU

  코퍼스 가는 길

  독버섯

  그웬을 만나기 전

  코로나도 - 2막 연극

  시작은 그냥 평범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에덴, 도시 개발을 앞두고 개떼의 문제가 제기된다. 고속도로까지 몰려나와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은 사냥꾼을 고용한다. 월남전에 다녀온 엘진과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향에 남은 블루, 둘은 친형제처럼 자라났고... 블루가 들개사냥을 시작한다. 그런데 둘 사이에 난데없이 여자 문제가 일어난다. 어린 시절에 같이 자란 쥬얼... 이미 결혼한 그녀는 엘진과 바람을 피운다. 블루는 그녀를 짝사랑하는데, 과도한 집착과 허황한 희망은 두 남자와 한 여자를 파멸로 몰고 간다. 희망에 관한 부정적인 묘사는 어둡고 무겁다.

  너무 늦게 온 희망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희망이란 젊은이와 아이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다 자란 어른인데, 더욱이 블루처럼 평생 그런 것을 알지도 못했고 바라지도 않은 사람에게 찾아온 희망이란, 언제나 활활 불타오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피를 하얗게 태워버리고 끝내 추악한 흔적을 남기고 마는 것이다.(p.63)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대니얼을 찾고 있다. 대니얼은 무슨 연유로 대학 졸업과 15년의 경력을 잃고 취업 인터뷰를 해야 한다. 다시 모든 게 정상으로 복귀된다 해도 결국은 혼자이다. 그는 쫓아오는 사람을 피해서 종합병원으로 숨어든다. 여기에는 원인도, 이유도, 결말도 없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장면의 변화도 없고... 지루함만 있다.

  대니얼은 전쟁영화를 보며 이곳이 안전한 방공호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병원은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자유, 자신감, 때로는 살겠다는 의지까지 말이다. 이곳은 각박한 세계다. 아마도 중환자 대기실 최초의 비극은 각박함일 것이다. 아무도 남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으니......(p.88)

  나와 친구들은 라일 비뎃의 집으로 갔다. 이스트레이크 고등학교 풋볼팀으로 마지막 시합에서 우승했다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대학 스카우터의 눈에 띌 기회를, 꿈을 그가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집은 비어 있었고, 우리는 무엇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박살 내놓았다. 그때 라일의 여동생 룰린이 들어오고... 그녀는 우리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망가진 냉장고 위에서 균형을 잡는 동작은 사실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집 안에 네 명의 침입자가 있고, 집은 그들에 의해 박살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냉장고 위에 올라가 발레 자세를 취했으며 그로 인해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상황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 때문에 난 정신이 혼미할 지역인데 말이다.(p.103)

  독버섯을 먹고 정신이 혼미하면 이런 기분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을 잃어간다. 이것 또한 작가의 의도?

  KL은 그들이 독버섯이라고 부른다. 지네 게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지네들을 쏘려고 하면 자꾸 버섯들이 떨어져 시야를 방해한다고 했다.

  지네를 쏜 총알이 가끔은 버섯에 맞기도 한다는 뜻이다.(p.127)

  아버지가 감옥으로 와서 나를 태운다. 머리에 총알을 맞고 잡힌 후에 47개월 동안 감옥에 있다가 출소하는 날이다. 잡히기 전의 기억,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찾으려고 기억을 되짚어간다. 그웬을 만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어서 페이지가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웬을 만나기 전 넌 네가 누군지 몰랐다. 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웬을 만나고 넌 비로소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웬이 떠나자 넌 다시 방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p.160)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는 그웬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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