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모중석 스릴러 클럽 40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프레드 바르가스, 양영란 역,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비채, 2016.

Fred Vargas, [DEBOUT LES MORTS], 1995.

CWA 인터내셔널 대거상

  프랑스 소설은 '낭만'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다음으로는 멋쟁이, 로맨스, 유머, 명예,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그리고 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이 되는 지역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면서 생소하고, 뭔가 시대를 이끄는 정신 같은 것이 글 속에 녹아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스릴러와 추리소설에도 해당하는데,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하룻밤 사이에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불안해하는 여인은, 이미 몸이 직감적으로 반응한 것일까? 시적으로 보이는 제목은 치명적인 사건을 암시한다.

  "피에르,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마당으로 걸어들어와 우뚝 서 있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 나한테 설명 좀 해봐요."(p.8)

  "그러니가 우리 사이의 의견 차가 너무 고통스럽고, 연대 차 때문에 도저히 화해가 불가능할 때는 불을 지피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이야?" 마르크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빙빙 돌리면서 결론처럼 못을 박았다.(p.29)

  대표적으로 형사 아담스베르그가 등장하는 시리즈와 성경의 복음서 저자 이름을 따르는 복음서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은 복음서 시리즈의 시작이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직관에 의존하며, 그의 보좌관인 당글라르 형사는 논리를 주장하여 둘 사이 언어의 유희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세 명의 역사 연구가가 분석과 추론으로 단서를 확보하면 전직 형사는 이것을 범죄와 연결 짓는 역할을 하는데, 서로 간 논리의 유희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캐릭터 설정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데, 네 명이 주인공이다 보니 복잡함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캐릭터가 형성되어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표지가 다소 어둡고 침울하여 어찌 보면, 정통 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데... 실제로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다른 재미가 있다. 선입견을 품고 진중하게 접근하면, 상반된 분위기로 살짝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억지로라도 기운을 좀 내야 해. 마태복음."

  "내 이름은 마태복음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젠장!"

  "물론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뭐 대수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때. 마태(Matthieu)복음, 마티아스(Mathias)...... 뤼시앵(Lucien), 누가(Luc)복음...... 거기서 거긴데 뭐.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재미있거든. 이 나이에 복음서 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니, 나 원 참. 그런데 네 번째 사도는 어디 있지? 아무 데도 없군. 글쎄 이렇다니까...... 바퀴가 세 개 달린 자동차, 세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진짜 웃기는군." 방두슬레가 어깨를 으쓱하며 약을 올렸다.(p.63-64)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 마티아스, 마르크, 뤼시양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처럼 35세가 되도록 거의 반백수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로 역사를 전공한 세 사람은 단순히 집값이 싸고, 월세를 분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샤슬가의 낡은 판잣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동거를 한다. 이들은 각각 선사시대, 중세시대, 1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며 학구적인 열정을 불사르고 있고, 때로는 연구의 연대 차로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거기에 마르크의 삼촌으로 대부님으로 통하는, 살인범을 놓아줘서 경찰에서 쫓겨난 68세의 전직 형사 아르망 방두슬레는 멋있는 외모와 핵심을 찌르는 논리로 이들을 압도한다.

  쓰러져가는 판자때기 5층 건물... 1층은 공동공간으로 심각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피우기로 협정한 모닥불 난로가 있다. 2층은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마티아스의 방인데, 그는 원시인처럼 옷을 벗고 있다. 3층은 중세시대를 연구하는 마르크의 방이다. 4층은 1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는 뤼시앵의 방인데, 그는 전쟁놀이에 빠져있다. 마지막 5층은 대부님, 아르망 방두슬레의 방이다.

  판잣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서로 간의 불협화음과 모닥불, 각자의 언어, 건물의 구조, 살인범을 놓아준 대부님의 사연... 등은 앞으로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르게넥도 그렇게 생각해. 소피아 시메오니디스는 굉장한 부자였거든. 하지만 남편은 정치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좌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처지이고...... 그런데 시체가 없잖니, 마르크. 시체가 없으면 살인사건도 없는 거야."(p.127)

  "왜?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하지만 조심해. 잘못하다가는 큰코다칠 테니까. 우리는 아직도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우리 모두가 그렇다니까.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사람들은 미끄러지기도 하고, 아예 풍덩 빠져버리기도 하지.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걸어야 해.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해야 한다고. 미친놈처럼 뛰어서는 절대 안 돼. 내가 이런 소릴 하는 건 말이지, 진흙탕 참호 속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놈에겐 잠깐의 기분전환도 사치라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하지만 렉스는 너무 예쁘고 예민한 데다 똑똑하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은 절대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너는 그저 잠깐 한눈파는 정도가 아니라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 그런데 그건 완전히 재앙이라고, 재앙. 알겠냐, 마르크?"(p.150-151)

  성악가로 오페라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소피아는 하룻밤 사이에 마당 한편에 우뚝 선 너도밤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불길한 생각으로, 그녀는 얼마 전에 집 옆에 있는 쓰러져가는 판자때기로 이사 온 세 명의 젊은이를 찾아가 나무 밑을 파 달라고 한다. 비밀을 조건으로 3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제시하는데, 수렁에 빠져 생활하는 그들은 이 일을 덥석 맡게 된다. 이웃이 되어 친분을 쌓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소피아가 사라진다. 세 명의 역사학자와 한 명의 전직 형사는 머리를 짜내어 그녀의 행방을 찾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 역사에 관한 자부심, 부패 혐의로 쫓겨난 형사는 나름의 통찰력을 보이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역사 연구가와 전직 형사의 조합은 나름의 기지와 재치로 사건의 근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범죄의 발생과 해결보다는, 형성된 분위기와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는 추리소설이다. 영화보다는 시트콤 드라마가 연상되기도 하고... 조금 가볍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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