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신노 다케시, 양억관 역, [연애의 품격], 윌북, 2012.

Shinno Takeshi, [KOI SURU KUKOU APOYANG2], 2010.

  설마 했는데, 내용이 이어지는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읽을 것을... 제목만으로 단순히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익숙한 인물이 연이어 등장하는 게 아닌가... 반가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연애의 품격]은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샐러리맨 소설로 [공항의 품격](윌북, 2012.)의 뒤를 잇고 있다. 나리타 공항에 입점해 있는 다이코 투어리스트의 현장 사무소를 배경으로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리고 있는데, 전작의 경우 상황 설정이나 가벼운 문체 그리고 유머 코드가 맞아서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더구나 나름의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뒤늦게 발견한 후속작이라니...

  "엔도 군, 아포양이란 말 알아요?"

  ...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공항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다. 원래는 투어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 공항 사무실에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슈퍼바이저를 칭찬하는 의미로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항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인간을 뜻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이에서는 입에 담지 않는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늘 의식하고 있지만.(p.16)

  본사에서 전도유망한 생활을 하다가 한직으로 밀려나 오게 된 현장 사무소의 아포양... 과거 호황기에는 여행의 출발점인 공항에서 여객을 무사히 출발시키는 전문가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거품이 사라진 시대에는 경쟁에서 밀려 미래가 불투명한 자리이다. 전작에서 엔도 게이타는 하루아침에 공항이라는 낯선 환경에 놓이고, 6년을 사귄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 등 절망의 상황에서 일을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공항에 부임한 지 1년이 지나고 중간 관리자가 되어 후임자를 지도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좀처럼 쉽지 않다. 전임자도 이렇게 답답한 기분이었을까?

  "에다모토 씨, 우리 회사에서는 아일랜드라는 호칭이 있는데 알아요?"

  ...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에다모토에게 나는 방긋 웃어 보였다. 아일랜드는 남쪽 섬의 리조트에 머물다가 머리가 멍해진 채로 돌아와서 일본의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하는 사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에다모토의 늘어진 시간 관리 능력도 아일랜드 현상이라 할 것이다.(p.17)

  괌 지점의 현지 스태프로 일하다가 온 에다모토 하사오는 30세 동갑내기이다. 여객에게 인기가 있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데다 실수가 잦고 무엇보다 일 처리가 늦는다. 일에 대한 열정이나 접객 태도는 좋은 편이나 감독자로서 제 몫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작가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상황 설정으로 다시 만난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엔도를 공항 근무로 좌천시킨 본사의 트러블 과장이 소장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무사히 OJT(On the Job Training, 직장 내 교육)와 여객 접대를 끝낼 수 있을까?

  테러리스트와 아일랜드

  공항 베이비

  런치 전쟁

  태풍의 공항

  연애하는 공항

  나의 스위트 홈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샐러리맨 소설'이라는 분류가 있나 보다.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리더십이나 자기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이 책에서는 정규직 사원의 감정과 계약직 사원의 고뇌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이익 창출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사람다움이라는 가치의 대립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뒤돌아보게 한다. 무슨 거대한 국제 분쟁이나 거창한 기업의 합병을 다루기보다는 말단 조직에서 일어나는 하루하루의 일상이고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엔도 군은 행복한 겁니다. 정사원이면서 능력도 있으니까 불안하지 않겠죠. 난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해서 괌으로 갔지만 평생 살 곳도 아니고 해서 처음부터 다음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번에 나리타에 온 것도 그래요.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니고 나이 들어서까지 교대 근무를 할 수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다음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예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누군가가 바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돼요. 어쩔 수 없이."(p.56)

  "그렇다고는 하지만 너무 잔소리를 하면 긴장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되는 거야. 그냥 지켜보면 저절로 나아지기도 해. 자네 OJT 시절 때 아마이즈미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아?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p.76-77)

  "보통 회사원들이라면 퇴근하는 길에 동료들과 같이 식사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시간을 잡기가 힘들어요. 아침반이 끝나면 너무 시간이 일러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니까 다시 나오기가 싫어지고, 오후반일 때는 먹고 나면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휴식 시간의 식사는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한 소통의 자리예요.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자리기도 하고요."(p.142-143)

  나는 하마 코가 정말 부러웠다. 죽었지만 그의 뜻을 이어줄 사람이 있다. 나카진은 대의명분이라고 말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일을 했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고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만일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서 없어진다면, 또는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긴다면 내 일을 이어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에다모토의 OJT라든지 내 반을 이어받을 사람이야 있을 테지만, 내가 지향하는 일이라든지 업무에 대한 태도라든지, 그런 것은 공항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에다모토에게조차 영향력이 없다.(p.193-194)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머지 않아 이 공항 사무실은 사라져. 다이코 에어포트 서비스 아니면 다른 센딩 회사든 어딘가에 위탁하게 될 거야."

  "예? 그래서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잖아요."

  "서비스의 문제가 아냐. 돈 문제지."(p.238-239)

  이마이즈미가 공항 사무실을 떠날 때면 늘 언제든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 돌아올 장소가 없어진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돌아올 장소, 그러나 그건 장소가 아니다.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카운터에 있는 에다모토, 시노다, 모리오를 보면서 깨달았다.(p.265-266)

  마음이 불편한 것은 공항에서 일을 하며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에다모토의 마음에 아름다운 뭔가를 남겨주지 못했다.

  "엔도 잘못이야."

  "맞습니다."

  "엔도 잘못이야."(p.285-286)

  잘 다녀오시라 말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했지만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어떻게 해도 여행을 즐길 수 없는 여객은 출발시키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 아포양 이마이즈미의 신념이다.(p.305)

  "반드시 출발하게 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야 해. 어떤 경우에도. 이거, 잘못된 생각인가? ... 즐기느냐 즐기지 못하느냐는 그다음 문제죠. 그 사람을 만나 확인해봐야 해요. 만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설득해서 출발하게 해야 하고요. 그렇지 못한다면, 에다모토 씨는 공항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p.379)

  테러리스트와 이름이 똑같은 남자,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임산부, 점심 식사에 목매는 여직원, 태풍으로 혼잡한 공항, 절대 떠나서는 안 되는 승객과 꼭 출발해야 하는 승객... 여행의 출발 공항에서 여객을 직접 만나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의 일을 하는 아포양...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지만, 문제가 생긴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진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포양의 신념! 글을 읽으면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 같은 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사소한 것은 잠시 뒤로하고... 그게 뭐가 중요한데... 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세상에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소한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이 중요한 것은 잘할 수 있을까? 돈이 중요하지만,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에도 아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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