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
컬린 토머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컬린 토머스, 김소정 역,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 북스코프, 2008. 

Cullen Thomas, [BROTHER ONE CELL by Cullen Thomas], 2007.

 

  감옥과 문학의 연관성... 감옥은 어떠한 작가적 영감을 주는 곳인가?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미국 청년의 조금 특별한(?) 한국 방문기이다. 아니 한국의 감옥 체험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1990년대 중반에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과 한국의 교도소에서 3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비록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낯선 외국인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과 더구나 감옥이라는 생소한 곳에서의 생활은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가왔다.

 

  감옥을 소재로 한 문학이 나를 굴복시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 것은 그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경험을 적은 글이건 감옥 문학 속에는 똑같은 반향이 담겨 있다. 조지 잭슨의 편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30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담은 만델라의 회상록, 앙리 샤리엘의 [빠삐용], 브라이언 키넌의 [악의 요람], 굴락에 관한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회상... 이 모두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동방에서 돌아온 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쟁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힌 마르코 폴로는 감방의 갈라진 틈으로 루스티첼로에게 자신이 겼었던 경험담을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이런 글들을 읽는 동안 나도 내 경험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들에게서 진정한 형제애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내가 읽은 모든 것 가운데 최고에 속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p.312-313)

 

  컬린 토머스는 1970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빙햄튼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스물두 살이던 1993년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왔다. 흔히 말하는 학원가의 외국인 강사로 일하다가 1994년 필리핀 여행을 한다. 그는 외국인 친구들이 마약을 몰래 들여와 한몫 챙기는 것을 보고 여행 중에 해시시를 구매하여 우편으로 발송한다. 서울의 우체국에서 소포를 찾으려다가 잠복하는 형사에게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수용된다. 서울 구치소를 거쳐 의정부 교도소와 대전 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되는데...

 

  오래전 선인(仙人)이 세운 나라 한국은 내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실제로 무엇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지만 맹렬한 힘으로 나를 산산이 부수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밀어붙였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한국이 내게 알려주었다. 한국은 내가 얼마든지 실패할 수도 있는 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세상사에 정통한 지혜로운 어른이 아니라 고작 스물세 살짜리 미숙한 청년이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내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그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p.14)

 

  순진하고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청년은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고향에서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는데... 자유롭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타임스 구인 광고를 통해 한국에 오기까지, 7개월간의 무료한 강사 생활, 외국인 친구들과의 대범한 일탈, 체포와 재판의 과정, 그리고 수감 생활과 그가 만난 사람들...

 

  한국 사람들 중에는 여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인들이 사회 계층을 엄격하게 따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 사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 같은 사고방식은 수백 년 동안 좁은 땅에 살면서 유교라는 막강한 권력 아래 형성된 가치관이었다.(p.77)

 

  감옥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죄수들은 초라하고 악하고 기이한 인생 속에서 결국 패배한 자들일 거라는 내 선입견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빌리는 원칙이 분명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말과 사고방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빌리는 언제나 우리들의 경험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애썼고 그 덕분에 우울해할 틈도 없었다. 나도 그처럼 고개를 똑바로 들고 내 상황을 받아들인 다음 당당하게 맞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p.126)

 

  "돈이 있어야 해. 돈이 없으면 힘도 가질 수 없어."

  호세의 진지한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마약을 몰래 들여온 이유도 결국은 돈 때문이며 이곳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돈 때문에 잡혀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돈과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제소자보다 내가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다른 제소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나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고 나는 그저 실수를 한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더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의 중산층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니 얼마든지 다른 삶을 택할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을 위해 범죄를 저지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죄를 저지른 것은 순전히 내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였다.(p.136-137)

 

  한국인들은 결코 밥을 혼자 먹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라면을 끓여 혼자 작업대에 앉아 먹고 있으면 그들은 의아해하면서 다가와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왜 혼자서 먹는지 묻곤 했다. 어쩌면 그들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 한국인 재소자들은 함께 노래했고 함께 편지를 썼으며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녔다. 그들은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주었고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서로 면도도 해주고 족집게로 다른 사람의 털을 뽑아주기도 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목욕탕에 온 사람들이 서로 등을 밀어주는 모습도 자주 봤고 지하쳘에 앉을 자리가 없으면 대학생 같은 젊은이가 친구의 무릎에 앉아 있는 모습도 자주 봤다. 기이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자란 문화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에 나는 어느 정도 부러움까지 느꼈다. 그것은 그들의 동지애였고, 형제애였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가족의 일원이고 전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의 행동방식과 사고방식을 알고 있다는 보편적인 자신감과 단체로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기꺼이 맺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확신과 저력은 우리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미국인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에게는 자신들이 그저 같은 국가를 공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국민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런 확신은 자부심과 애국심, 배타성을 낳고 나아가 동질성의 힘,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p.366-367)

 

  그가 만난 한국은 유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완전히 경직된 사회였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겉치레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다. 강압적인 심문은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백인이고 미국인이기에 그나마 나은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그는 이방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가고, 다른 수감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이해하고 성장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사회나 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고 싶다면 감옥 안의 사회를 살펴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대로 교도소를 살펴보는 이가 있다면 그 안에서 수많은 빛과 미덕, 인간애, 품위, 고통을 나누는 모습, 심지어 평화까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제가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한국 교도소는 저를 철저히 겸손하게 만들었고 새사람이 되게 해주었으며, 그리하여 더 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되게 해주었습니다.(p.8-9)

 

  탁월한 리더십과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주목받는 시대에 한 외국인의 실패담은 그리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다른 문화와 가혹한 환경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생존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처절한 경험은 문학의 옷을 입고 진솔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가 겪은 3년 6개월의 시련은 한국을 좀 더 제대로 알게 해주었으며, 인간과 인생에 관한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좋은 시설의 미국 교도소보다 추위와 더위의 고통에도 한국 교도소에서의 수감이 더 좋은 기회였음을 말한다. 그의 글을 통해서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배타성을 어떻게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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