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도바 순이치, 나계영, [오심], 씨엘북스, 2012. 

Doba Shunichi, [MISS JUDGE], 2011.

 

  스포츠에는 도전이 있고, 승리가 있고, 사연이 있고, 감동이 있다. 그래서 창작의 좋은 동기가 될 것 같지만,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연쇄 살인, 밀실 트릭, 납치 유괴, 사회 문제... 등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가 야구와 만난다면? 그것도 팀이나 선수의 대결이 아니라, 선수와 심판의 대결이라면? 조금은 발칙하고 무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도바 순이치의 [오심]은 악연으로 맺어진 고등학교 선후배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구심으로 만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미스터리 드라마를 완성했다.

 

  오만함을 덕지덕지 처바른 듯한 상대방의 말투에 긴장한다. 뒤돌아보기 전에 '침착해!'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동요하지 마라. 평소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p.21-22)

 

  심판은 단지 심판일 뿐이다.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직업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다짐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버적거리는 불쾌한 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p.25)

 

  다치바나 요시키는 강속구를 구사하는 화려한 투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프로에 진출한 이후 정확한 제구력으로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기복 없는 활약을 해왔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2선발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스프링 캠프를 마치고 드디어 일본에서 양키스와 개막 2연전을 하는 날, 그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난다.

 

  맘대로 쓰라지. 분노야말로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게다가 그라운드에 나오면 자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퇴장!"이라는 말을 할 권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심판은 야구의 전능한 신이 된다.(p.93)

 

  그렇기에 심판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확실하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명선수조차 낯빛을 살피는 심판이. "녀석을 열 받게 하지 마"라고 누구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심판이. 선수를 능가하는 존재라면 역시 심판만이 떠올랐다.(p.94)

 

  다케모토 하야토는 한때 십 년에 한 명 나오는 인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목받는 투수였다. 고교부터 대학까지 1선발로 눈에 띄는 선수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11년 전, 그날의 악연만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이 마운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텐데... 야구를 그만두고 10년이라는 험난한 시간을 견디고서야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심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스트라이크존은 규칙상 엄격하게 정해놓았지만, 실제 운용은 룰북과는 딴판이다. 특히 높낮이는 룰북의 내용을 비웃는다. 투수가 떨어지는 공을 많이 던지고 이에 맞추어 타자도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보니 스트라이크존이 눈에 띄게 아래로 이동했다. 실제로는 허리에 찬 벨트가 상한선이고 하한선은 정강이 한가운데 즈음이리라. 일본 프로야구보다 꽤 낮은 감이 있다. 그리고 다치바나는 아직 그 스트라이크존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코스를 엄밀히 확인해야 한다.(p.57)

 

  2구가 방금 전에 볼이라는 판정을 받은 공과 같은 코스로 들어왔다. 미트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인 코스다. 그러나 화이트삭스의 포수는 질리지도 않고 미트를 비틀었다. 곧바로 볼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불만을 토로했다.

  "들어갔잖습니까?"

  "자네가 미트를 움직였으니 볼이야."(p.140-141)

 

  선발 투수는 로테이션으로 등판하고, 심판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를 합쳐서 50개 구장의 경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특정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특정 심판이 구심을 보는 일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개막전 일구에 대한 의심스러운 판정으로 민감한 일본인 투수의 심리적인 문제와 결합하여 시즌 전체를 지배한다. 마운드에 오르는 제구력 투수는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로 약간의 차이를 주어 타구가 빗맞게 유도한다. 때로는 꽉 찬 코스로 승부하기에 스트라이크존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같은 코스의 공에 대한 판정이 달라진다면? 투수는 흔들리고 더는 던질 곳이 없다. 그리고 시즌 내내 슬럼프와 겹쳐 악몽에 시달린다. 그때의 일구는 오심인가? 오심이 아닌가?

 

  마운드에 있는 투수보다 내가 더 잘 던졌다.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무엇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 그날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격렬한 세월을 보내며 이날을 기다려왔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무조건 "퇴장!"을 외쳤다. 작가는 세심한 글솜씨로 두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던지는 자의 처지에서 그리고 바라보고 판정을 내리는 자의 처지에서... 과거 이 둘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소설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팩트와 픽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야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제공한다. 심판, 선수, 감독, 언론에 대한 상황묘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탁월하고, 야구의 매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작품에 대한 불만은 없으나, 다만 번역이 조금은 깔끔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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