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용을 보여 주는 거울 -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5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탱 파주, 배형은 역,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 내인생의책, 2013.

Martin Page, [TRAITE SUR LES MIROIRS POUR FAIRE APPARAITRE LES DRAGONS], 2009.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어서 크게 고민한 때가 있었다. 5년 전 엄마의 죽음으로 심리 치료 상담을 해야 하고, 아침에는 기르던 개가 죽었다. 의사인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는지 잠옷 차림으로 진료를 하고, 무엇보다 첫사랑의 실연은 열네 살 소년의 마음을 괴롭힌다. 마르탱에게 몰아친 상실의 아픔이다. 지금은 첫사랑이 언제?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나이에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마르탱 파주의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을 읽었다.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에 대하여]는 다니엘 아리스가 [회화의 역사]에서 인용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학자 파올로 토스카넬리가 쓴 신비서의 제목이다...(p.4)

책을 읽을 때마다 제목에 집중한다. 작가는 조금 특이한 제목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 의미를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어느 신비서에서 인용했다는 것, 아름다우나 제대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 용과 거울은 등장하지 않고 은유적 표현이라는 것... 우울한 위트가 넘치는 짧은 소설이다.

마리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마리의 머리칼은 다른 여자애들의 머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 애의 몸짓은 조금 느리거나 조금 빠르다. 고양이 눈을 가진 마리에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어도 절대 그 속에 섞여 들지 않는다.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피처럼 주위로부터 도드라져 보인다. 마리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의 초록빛이 가시고 하늘의 푸른빛은 바래며 비도 촉촉함을 잃는다. 마리는 특별한 동시에 자연스럽기 그지없다.(p.15)

주인공 마르탱은 작가의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경험을 기록한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라고 한다. 전부 상상이고, 단지 그 시절의 감정이라고 한다. 아무튼, 마르탱의 삶에 고양이 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마리가 들어온다. 같은 반,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도서관에서 마리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한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지만, 당황과 충격... 서투른 사랑은 60분을 넘기지 못한다.

"있잖아, 우리는 아무래도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속의 원자 폭탄이 하나하나 차례로 터지며 나를 가루로 만들었다. 내가 말했다.

"아."

마리는 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다. 이것이 내 첫 번째 러브 스토리다. 이게 마지막이면 좋으련만.(p.19-20)

(나도 제일 듣기 싫었던 말...)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마리는 60분 만에 사랑 고백을 철회하고 떠나간다. 마르탱의 이별, 아픔, 위로와 성장에 관해서이다.

우리 개는 활기차고 충직했으며 행복한 삶을 누렸다. 오늘 아침 개가 죽은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개 때문만이 아니라 사라져 버린 마리의 사랑 때문에, 엄마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때문에, 썩어가는 이 집 때문에, 살짝 제정신이 아닌 아빠와 쉽지 않은 게 분명한 미래 때문에.(p.28)

"내가 나비라면 마리와 사귄 시간이 진짜 멋졌을 텐데."

나는 펄럭펄럭 날갯짓을 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역시나 내 개그는 실패였다.

내가 노렸던 포인트를 바카리가 이해하고 다른 애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나비의 수명은 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야. 그러니까 만약 마르탱이 나비였다면 마리와 사귄 시간은 정상 범위에 들어갈 거라는 얘기지."(p.49)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돌아다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주 궁금해하곤 했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지켜 준다. 엄마는 늘 곁에 있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 라든가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것들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하지만 엄마의 자리가 비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빈자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나와 함께할 것이다.

마리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일은 좀 다르다. 마리가 남긴 빈자리는 계속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사라짐, 사라지고 말 사라짐이니까. 몇 주, 몇 달 뒤면 내 사랑의 슬픔은 다 나을 것이다(설사 그때를 오늘은 떠올리기 어렵다고 해도).(p.74-75)

엄마를 잃었고, 개를 잃었고, 마리를 잃고... 언젠가는 아빠도, 친구들도 잃게 되겠지... 이별과 상실의 아픔, 그리움... 후회와 원망, 슬픔... 그리고 이런 게 모여서 나를 만드는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