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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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유키코, 최고은 역, [골든애플], 비채, 2015.

Mari Yukiko, [FUTARI GURUI], 2015.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겨서일까? 어쩌면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요즘에는 무난한 성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좋은 말로 하면 캐릭터이고, 특이한 개성으로 하나하나 맞춰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모난 곳 없이 쿨하게 살려고 하는데, 나를 겪는 사람은 이미 고달파하는지도 모르겠다. 마리 유키코의 소설 [골든애플]은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소재로 해서 8개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을 공부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단편의 제목은 하나하나 정신병리학 증상 용어이다.

1. 에로토마니아(Erotomania)는 색정광, 또는 연애 망상이다. 접촉이 거의 없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연애 감정을 가지는 걸 넘어 자신이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망상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증상으로, 유명인이나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2. 클레이머(Claimer)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부당한 불만을 호소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기업 측에서 은어로 쓰던 용어가 일반화된 것으로 시비가 목적인 '병적인 클레임형'과 보상이 목적인 '공갈형'으로 나뉜다.

3. 칼리굴라(Caligula Effect)는 금지하면 더욱 그 행위를 하고 싶어지는 심리 상태이다. 이를테면 '절대로 보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더 보고 싶어지는 심리를 가리킨다. 하드고어포르노 영화 <칼리굴라>가 일부 지역에서 상영금지처분이나 '절대로 보지 말라'라는 평가를 받은 까닭에 오히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에피소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4. 골든애플 전설은 도시전설 중 하나로, 1970년대에 존재했다는 환상의 탄산음료이다. 발매된 흔적도 기록도 없는데 '골든애플'을 분명히 마시고 봤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는 까닭에 집단 최면, 또는 집단히스테리에 의한 착각, 또는 기억착오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에 정식으로 '골든애플'이 발매되었다.

5. 핫 리딩(Hot Reading)은 영감, 초능력, 점술 등을 보여줄 때 스태프나 탐정을 통해 사전에 상대의 정보를 조사해두고, 마치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상대에 대해 읽어낸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다. 사전 조사 없이 차림새나 말투, 또는 사소한 질문이나 대화를 통해 상대에 대해 알아맞히는 화술은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라고 한다.

6. 데자뷔(Deja Vu)란 기시감으로, 처음 본 풍경이나 사람 등을 전에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끼는 기억착오이다. 피곤할 때 자주 겪는 현상이라고 한다.

7. 갱 스토킹(Gang Stalking)은 집단 스토킹이다. 사람을 고용해 표적에 대한 망상, 악평, 문제 등을 날조하고 연출해서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거나 병원에 입원시키는 행위이다... 단, 피해자의 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 폴리 아 드(Folie a Deux)는 감응정신병, 또는 이인정신증이라고 한다. 망상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거나 같이 생활하다가 정상적인 사람까지 망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분신사바나 악령 퇴치, 사이비 종교에 의한 집단히스테리도 이에 포함된다.

  "아, 네. ......그래서 지금은 패션잡지 <프렌지>의 편집자로 하루나 미사키 작가님의 [당신의 사랑에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바야시 씨가 담당하고 있는 [당신의 사랑에게]는 어떤 소설입니까?"

  "훌륭한 소설이에요.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숭고함으로 가득 찬, 용기와 감동과 빛이 흘러넘치는 대단한 걸작이죠."(p.316)

  각각의 단편은 제목의 영향으로 각각의 사건을 다르게 다루고 있지만, 도쿄 근교의 연립 맨션을 중심으로,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얽히고설킨 인간사를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같이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잡지 <프렌지>에 수록된 연재소설 [당신의 사랑에게]를 읽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숭고함으로 가득 찬 소설이라는 찬사가 있지만, 정작 그 글을 읽는 독자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불행하고 침울하다. 화려한 불빛을 뒤쫓다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한계를 넘어서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멸한다.

  소설가는 사랑하는 마음을 소설로 썼다고 해서 스토커가 휘두른 칼에 찔린다. 유명 백화점의 식품매장에서는 잘린 손가락이 발견되고, 시내의 한 맨션에서는 자꾸만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회사 인터넷으로 올린 소문 하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아내의 존엄사를 두고 남편의 행동이 수상하다. 살인사건의 목격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귀에서 자꾸 지이이익~ 도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패션지에 수록된 연재소설 [당신의 사랑에게]는 무조건 해피엔드로 끝나야 한다.

  살짝 난해함이 없지는 않으나 동시대에 사는 인물과 사건의 연결을 찾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인간의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정신병리학의 증상을 나열하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대인의 압박과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증상으로 나를 진단하기?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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