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2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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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것처럼 많이 한 소개팅에서 한 번도 멀쩡한 인간을 못 만나봤다는 내게 사람들은 늘 뭐라고 한다. 눈이 높아서라는 둥, 현실을 모른다는 둥. 그 나이에 사랑이란 감정은 없다는 둥 다양한 말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내 비현실성을 뭐라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라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하는 말은 비슷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나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문제는 ‘현실’이다. 이제는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인생 과제를 수행하려면 급하기 그지없으니 ‘현실’에 맞는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연애도 결혼도 안 되는 거다. 직업과 재산 조건과 자녀 계획보다 내 본질을 먼저 알아봐 달라는 조건을 거니 이건 될 수가 없는 거다. 기질과 현실의 비극이지.

『그 남자네 집』에서 내게 벼락처럼 다가온 두 가지는 ‘구슬’과 ‘현실’이다. 비현실적인 ‘그 남자’가 박완서의 본질을 알아보고 붙여준 별명과, 현실적인 ‘은행원 남편’이 준 경제적 안정감. 그 두 가지는 천칭의 반대 방향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다 결국 ‘현실’의 승리로 끝난다.

박완서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남자가 ‘구슬 같다’고 표현했던 생기를 보고 싶어서다. 정말이다. ‘구슬 같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남자는 대체 얼마나 박완서의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던가. 한편 박완서의 바가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편의 무거운 단단함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신 방에서 사는 것도 사랑이지만 박완서 같은 사람이 정말 만족했을까. 물론 그래서 박완서가 첫사랑을 만나러 나가는 일탈을 하지만. 그것도 잔인한 비극으로 돌아서는 이건 대체 뭘까. 사람이 사람에게 인생이 사람에게 어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게다가 ‘카멜리’라 불리는 춘희의 이야기는 비참했다. ‘현실’ 때문에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장녀의 흔한 이야기. 그 현실에 양공주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러니 박완서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건가. 딱 치고 빠질 줄 잘 아는 박완서가? 그것도 결국 현실을 다루는 문제가 아닌가.

대체 ‘현실’이라는 건 뭘까. 현실이 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뒤로하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결혼을 하는 걸까. 현실이 얼마나 대단한 거기에 박완서같이 감수성 넘치고 똑똑한 사람도 자기를 ‘구슬 같은 여자’라고 말하던 부잣집 어린 남자를 뒤로하고, ‘골이 비었거나 무식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은행원과 결혼한 걸까? 아직도 여기 답을 못 찾아 답답해하는 나는 철이 들려면 멀었던가, 친구들 다 품절되고 후배들도 거의 다 결혼해가고, 돌아온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는 지금까지도 허우적거리는 나의 결혼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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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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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연애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내 영혼의 연애소설’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라고 말할 테다. 그러나 이제는 한 문장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내 영혼을 가장 아프게 한 연애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 치고는 너무 평이한 가독성에 신나서 읽다가, 주인공 스티븐스의 집사(직업) 의식과 영국 귀족의 엘리트 문화, 당시 세계의 패권과 영국을 둘러싼 서유럽의 외교 상황, 스티븐스의 자아 죽임(생각하지 않음?), 품위에의 신념을 생각하며 인간성과 사회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뒤집어졌다. 이건 남과 여의 이야기였다. 슬픔의 총을 맞은 듯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큰 슬픔이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영국 외교의 숨은 실력자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일하는 수석 집사장이다. 일 잘하고 책임감 넘치는 총무(하녀장?) 켄턴 양과 티격태격하며 일과 마음을 맞춰간다. 이미 한참 전에 노처녀 대열에 들어온 켄턴 양은 일에 대한 태도나 절제 등의 기질이 비슷한 스티븐스에게 호감을 갖고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만, 자기감정보다 일이 먼저인 스티븐스는 켄턴 양을 놓치고 만다. 심지어 켄턴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겠다 선포하고 울고 있을 때도, 그녀의 눈물을 뻔히 알면서도 일을 우선하느라 외면한다. 이건 일 때문에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와도 똑같다. 이미 한번, 소중한 기회를 놓쳤는데도 또다시 극적인 기회를 알면서도 보내버린다.

달링턴 경은 나름대로 영국의 외교를 위해 독일과의 관계를 잘 해 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 독일 나치에 경도되어 정치인으로서 주인으로서 인간으로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자기 생각은 최대한 누르고 주인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는 스티븐스나, 주변에 휘둘리는 주인 달링턴이나 똑같다. 달링턴은 가고 새 주인이 왔다. 미국인 패러데이는 합리성에 입각하여 하인들 수를 경제적으로 재구성하고, 수고한 스티븐스에게 포드 자동차를 내주며 휴가를 준다. 여기서도 일만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마침 도착한 켄턴 양의 편지를 읽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함께 일하자 제안하기 위해서. 편지에 쓰인 “내 인생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유용하게 채울 것인지 비록 알지 못하지만…”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는 문장을 붙들고서. 분명 그녀는 절망감으로 이 편지를 썼다 믿으며, 그녀의 결혼이 불행했다는 걸 예감하며. 그리고 먼 길을 떠나 여섯째 날에 지금은 벤 부인이 된 켄턴 양을 드디어 만난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이 문장에 닿는 순간 감정이 폭발해 곡을 하며 울었다. 인간의 타이밍이라는 게 너무 잔인해서,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이라니. 슬프고 허망하고. 게다가 폭발한 감정을 곧 추스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정의 행복을 비는 남자라니. 이건 슬퍼도 너무 슬프다.

켄턴 양은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안다” 했지만, 나는 그녀가 그 순간까지도 전혀,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바로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 가출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바로 얼마 전에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딱 열흘만 먼저, 켄튼이 가출했던 날에 스티븐스를 만났다면 정말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타이밍이란 게 짧아도 너무 짧다. 이걸 맞출 수 있는 이 인간 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이 타이밍을 맞출 수 없어서 수많은 사랑이 시치미 아래 묻힌다.

가정해본다, 스티븐스가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라는 말을 실제 소리 내어 켄턴 양에게 했다면. 정말 켄턴 양이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다”라고 이야기했을까? 나는, 내가 켄턴 양이었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었을까.

만약 언젠가 내게 기회가 온다면 훌륭한 문학 같은 사랑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삼류 연애소설 같을지라도 모든 걸 버리고 만나는, 지질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지지고 볶는 사랑이면 좋겠다. 서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알면서, 한번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상상해 왔으면서, 소리 없이 점잖고 아름답게 인사하며 뒤돌아서는 사랑은… 너무 슬프다. “이제 헤어지면 오래도록 다시 못 보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린 오래도록 다신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혹시 다시 못 보게 될까 싶어” 같은 말들이 아프게 오간다.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내내, 여운이 차갑고 오래 길다. ‘남아있는 나날’ 영화에서처럼 비에 물씬 젖은 듯, 너무 외롭고 허망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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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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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에 성공한 후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이전에 가르치던 여학생 SY의 연락이 왔다. 언제나처럼 애교 넘치는 수다가 끝난 후 SY는 말했다. 너무 성실해서 피곤하기까지 했던 선생님 수업에서 잊지 못하는 건 하나라고. 언젠가의 쉬는 시간, 언제나처럼 책을 보는 선생님이 신기해서 놀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공부는 평생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한다.

『지성만이 무기다』는 각오하고 시작한 성인의 공부, 평생 해야 하는 유일한 생의 무기를 다룬다. 이 ‘공부’에 필요한 도구는 100퍼센트에 가깝게 ‘책’이다. 생(生)에의 무기인 지성과, 그 핵심인 공부를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접근성이 좋은, 묵직한 종이 뭉치, 책인 것이다.

『지성만이 무기다』의 가장 중요한 줄기는 ‘읽기’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생각하는 것은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읽기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뇌의 작동이며, 의지를 가지고 지속하는 반(反) 본능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부는 ‘탐구’에 가깝다. 이런 면에서 현재 나의 독서법에 시사점이 크다. 지금 나의 독서는 탐구라기보다 취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적극적으로 힘겹게 읽고 있지 않다. “탐구가 인생을 재미있게 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우수한 책이다. 책의 재미란,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이끌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면서 탐구의 복잡한 길을 더듬어 결국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지평에 서게 해주는 것에서 생겨난다.”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이름은 사실 낯설었다. 책의 후반부 경 『초역 니체의 말』을 썼다는 정보를 얻고서야 ‘아하!’하며 그의 이야기가 맞아떨어졌다. 한편 공부를 도와줄 메모나 노트법의 이야기도 곁가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문득 떠오르는 것을 짧은 문장으로 자질구레하게 기록하는 니체의 메모법이며 한편 그의 철학을 자기의 문장으로 바꾸어 읽는 이해 방법이다. 즉, 이 책에서도 결국 ‘읽기’와 ‘쓰기’가 모두 들어있다. 하긴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한 몸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외에도 유학 상황이나 벼락치기 상황에서의 공부법, 재능에 대한 이야기, 시간과 행동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성인의 공부’는 ‘인식의 변화’다.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이 변하고, 인격이 변용되는 이유는 그 책에 의해 인식, 즉 사물을 보는 방식이 훨씬 크게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당초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생물이 아닐까.”

이 책의 ‘읽기’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하나 꼽자면 ‘정독(精讀)’이다. “그런 수준으로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환상밖에 생기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많이 읽을수록 이해력과 통찰력이 늘어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역시나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최소한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다고 양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한 권의 책을 시간을 들여 정독精讀해야 한다. 정독한다는 것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에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펼치고, 인명이 나오면 인명사전을 펼치며, 모르는 도구나 식물이 나오면 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용어의 의미를 하나씩 확인한다. 그러면서 책의 여백에 기록하고, 표현의 의미를 조사하며, 종합적으로 문체, 즉 문장의 특징을 토대로 작성된 글의 사상적 핵심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시대 배경까지 캐내는 것이다.” “이런 정독은 반드시 우수한 지도자 밑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루에 열 줄에서 몇 십 줄 정도밖에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린 행보는 처음 한두 달뿐이다. 미리 조사한 지식이 축적되고 뒷받침되다 보면 점점 가속이 붙어 반년에서 1년 정도면 한 권의 정독이 끝날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정독은 이토록 부담스럽다. 나처럼 에너지가 부족한 인간은 시라토리 하루히코법 정독은 엄두도 안 난다. 책을 들추다가 현기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 내 손사래를 어떻게 아는지 저자는 벌써 적어두었다. “이런 정독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우선 하나의 일과 진득하게 마주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배양해 준다.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양서로 여기는 고전을 100권 아니 50권을 정독하지 않고 평범하게 읽는다고 치자. 물론 감동과 발견, 경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특별한 체험도 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경제활동으로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기에 반드시 이런 체험을 해야만 한다. 앞으로 그런 독서 체험이 여러 방면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더 천천히 짚어가며 읽기를. 책 읽는 일은 본능에 반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제대로 읽고 싶다면 힘들게 읽어야 한다. 내가 변할 수 있다면 그건 힘듦을 딛고 읽어가는 하루하루일 것이다. “요컨대 정독이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책이라는 나뭇가지를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상과 문화로서의 나무 전체를 조감하는 읽기 방식이다. 그래서 정말 성가시게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요령 좋은 읽기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1년에 걸쳐 정독한다면 다음에 읽는 책부터는 꼭 정독해야만 하는 부분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 저자의 독자적인 사상에 대한 조사 정도만 필요하다. 게다가 책을 읽는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진다. 결과적으로 한결같이 일반적인 독서 방법만 따르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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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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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놀라는 내 의외의 취향이 ‘스릴러’다. 공포영화는 하나도 못 보는 주제에 스릴러 일본드라마는 밤을 새워 본다. 소설도 마찬가지. 두세 달에 한 번은 꼭 스릴러 소설을 찾아볼 정도로 이 분야는 내 킬링 타임이다. 물론 굳이 사서 보지 않고 빌려 본다는 데 양심 없는 취향인 건 맞지만, 불량식품이 온몸으로 당겨올 때처럼 스릴러가 찌릿찌릿 당겨올 때가 있다. 오늘처럼.

간만에 소름 끼치는 스릴러 소설을 잘 읽었다. 제목부터 유치하고 적나라하기 그지없는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표지를 펼친 자리에서 끝냈을 정도로 몰입감 갑.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무엇보다 잔인한 묘사가 너무 구체적이고 디테일해서 읽기 힘들었을 정도. (윽윽 우웩) 특히 마지막 1/5지점은 반전에 반전… 근 오륙 년간 읽었던 스릴러 중에서 최고의 결말이라고 본다.

주인공은 ‘개구리 남자’라는 연쇄 살인범이다. 이 범죄자의 프로파일링은 말할 것도 없이 정신이상자,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양의 범죄현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해자의 공통점을 어찌 찾을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게다가 하루빨리 범인을 잡으러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이 더 힘 빠지는 건, 이 범죄자를 잡더라도 정신이상을 문제로 처벌을 하지 못하고 곧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압축하면 결국 세 가지야. 애증, 돈, 광기. 이 중 애증과 돈은 용의자를 좁히기가 수월해. 그 사람이 죽어서 웃을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 그런데 광기는, 이건 골치 아파. 용의자를 압축할 수가 없어. 그때는 우범자를 늘어놓고 골라내야 하는데 모수를 최대한 크게 잡아야 돼. 정신 이상자들 모두 동기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범인을 잡아도 상대 정신이 온전치 않으면 39조로 결국 무죄가 되잖아요. 뭔가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어. 일단 기소는 검찰 측 일이야. 우리 일은 어디까지나 범인을 검거하는 거고. 그리고 설령 유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범인이 체포된 시점에서 세상의 안녕이 유지돼.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커. 절대 허무하지 않아.”

고테가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지만 납득하지는 못했다. 분명 범인을 체포하면 세상은 안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 범인이 형벌을 면하고 담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공포는 재개된다. 더구나 과거의 사건을 완전히 잊고 평온한 세상 그 어두운 곳에서…….

내 마음이 걸린 이 소설의 특징은 ‘피해자의 무해함’과 ‘범죄자의 무자비함’을 대비하여 잔인함을 증폭시킨다는 것. 특히 피해자를 대하는 가까운 주변인의 태도가 사실적이어서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내가 순간 떠나면 나를 이토록 안타까워해줄 이가 누구일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떠올려줄지.


“실례지만 형사님……, 여자 친구 있으세요?”

“……네?”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냐고요.”

“그게 뭔 상관입니까?”

“없다면 제 마음을 이해 못 하실 겁니다. 정말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였다면 설령 연이 끊기더라도 행복을 바라죠. 앙심 같은 건 품지 않습니다.”

담담한 말투가 오히려 강인한 의지를 풍겼다. 일부러 들으란 듯 쳇 하고 혀를 차지만 가쓰라기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다.

“제 생각만 한 걸까요……. 네, 분명 그런 거죠. 레이코가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채근하는 게 솔직히 싫고 무서웠어요. 당장 결혼해서 뭘 얻고 잃을지 순간적으로 계산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의 문제였고 함께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토라지고 화내도 저한테는 소중한 여자였어요. 화내는 얼굴, 우는 얼굴, 모두 좋아했어요……. 착한 여자였어요. 길에서 휴지나 전단지를 나눠 주는 사람을 보면 꼭 인사하면서 받곤 했어요. 무시하면 나눠 주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판 남이고 그 사람한테는 일일 뿐인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있었어요. 태어나고 자란 나가노의 하늘은 아주 높았는데 도시의 하늘은 낮아서 짓눌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아, 아이를 좋아했어요. 공원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지었어요. 남의 애 아니냐고 하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애는 모두 귀엽다고, 아이가 귀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레이코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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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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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그 해에 유난히 ‘30대’를 제목으로 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에게 서른 살에게 답하다’, ‘서른 무렵’ 등등... 제목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서른을 위해 나왔다. 그러나 십 년 후 마흔이 된 해에는? 유난히 ‘40대’를 타깃으로 한 책이 많이 등장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마흔에 대하여’, ‘마흔 공부법’, ‘마흔에게’...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흔 즈음의 세대가 책을 읽는 마지막 세대라는 게 아닐까?

(대개 여자분들인) 그런 우리의 문학 아이돌을 꼽자면 단언컨대 시인 중에서는 박준, 오은, 황인찬. 소설가 중에서는 김금희, 최은영. 평론가 중에서는 미안하지만 딱 하나뿐, 신형철이다. 그렇다, 바로 이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저자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덮은 후 당장 독서대를 꺼내들었다. 필사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아름다운 글줄들 때문에. 문장의 장단을 살폈고, 쉼표와 마침표를 찍는 부분, 쌍따옴표와 홑따옴표를 찍는 부분을 살폈다. 열심히 쓰고 또 써도 책장은 넘어갈 기미가 안 보였다. 아름다운 경구로 사람을 호리는 재능이 있는 이 평론가는 이번에도 홈런을 쳤다. 어디 나뿐인가, 각종 SNS를 통들어 이 책을 필사하는 사람이 엄청나다. 포스팅으로 치면 셀 수 없는 인기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가냘픈 등허리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안 보이는 날이 없다. 책이 나온 게 넉 달도 전인데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른다.

서문에서부터 나는 저자의 슬픔에 대한 ‘태도’에 반했다. 읽다보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신형철의 이런 ‘착함’을 위선적이라며 싫어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악보다는 위선이 100만 배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아무리 나쁜 게 섞여 있다 해도, 나쁜 걸 그대로 노출하는 솔직함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선의 탈이 훨씬 덜 해롭지 않느냐는 게 나의 주장. 내 삶의 태도 역시 그러하므로 나는 언제나저자를 옹호한다. 쓰다 보니 ‘슬픔’에 대한 글이 많았다는 저자의 의견에도 손뼉을 치며 동의한다. 나도 그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정심 많은 성실한 모범생 기질이 국내 책 시장의 마지막 세대(?)인 40안팎의 세대와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자연히 우리들의 아이돌이 될 수밖에.

누가 뭐라 해도 국내 책 시장에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신형철 정도의 문학 상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최고의 칭찬이다. 세상에 평론가의 평론집을 국문과 대학생이나 문학도가 아니라 일반 독자가 사 보다니! 아무리 평론가와 대중성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2019년의 이 시기, 한국 독서시장에서 ‘대중성’을 겸비한 예술가는 대단한 거다. 신형철의 힘은 그렇게나 크다.

몇 년 전 연재한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 이것들은 또다시 하나의 책으로 묶일 예정이라고 하니, 나는 아마. 다시 또 그의 책을 찾아 읽지 않을까. 칭찬하는 일이 평론가의 일이 아니라 해도, 칭찬하는 평론은 나의 취향인 탓에 나는 이 저자의 책을 닮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이가, 그에게 슬퍼할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슬플 때 함께 있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것뿐인데. 이건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니라 절실한 이야기라는 것. 진실로 강조컨대 나는, 너무나 그러하다.

“아내 신샛별 평론가의 조언 덕분에 책의 구조와 제목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의 글들을 읽어주었고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에게. 대체로 내 삶을 이해하고 버텨내기 위해 쓰인 글들이어서 내 글의 시야는 넓지 않고, 살아낸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나의 책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의 책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가끔 무언가를 용서받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문장을 아직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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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neeyre 2019-01-17 02:02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좋아서 필사도 하고 있어요^^ 진짜 아름다운 글들이죠. 읽는 데마다 좋은 꿈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