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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내게 ‘연애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내 영혼의 연애소설’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라고 말할 테다. 그러나 이제는 한 문장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내 영혼을 가장 아프게 한 연애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 치고는 너무 평이한 가독성에 신나서 읽다가, 주인공 스티븐스의 집사(직업) 의식과 영국 귀족의 엘리트 문화, 당시 세계의 패권과 영국을 둘러싼 서유럽의 외교 상황, 스티븐스의 자아 죽임(생각하지 않음?), 품위에의 신념을 생각하며 인간성과 사회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뒤집어졌다. 이건 남과 여의 이야기였다. 슬픔의 총을 맞은 듯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큰 슬픔이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영국 외교의 숨은 실력자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일하는 수석 집사장이다. 일 잘하고 책임감 넘치는 총무(하녀장?) 켄턴 양과 티격태격하며 일과 마음을 맞춰간다. 이미 한참 전에 노처녀 대열에 들어온 켄턴 양은 일에 대한 태도나 절제 등의 기질이 비슷한 스티븐스에게 호감을 갖고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만, 자기감정보다 일이 먼저인 스티븐스는 켄턴 양을 놓치고 만다. 심지어 켄턴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겠다 선포하고 울고 있을 때도, 그녀의 눈물을 뻔히 알면서도 일을 우선하느라 외면한다. 이건 일 때문에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와도 똑같다. 이미 한번, 소중한 기회를 놓쳤는데도 또다시 극적인 기회를 알면서도 보내버린다.
달링턴 경은 나름대로 영국의 외교를 위해 독일과의 관계를 잘 해 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 독일 나치에 경도되어 정치인으로서 주인으로서 인간으로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자기 생각은 최대한 누르고 주인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는 스티븐스나, 주변에 휘둘리는 주인 달링턴이나 똑같다. 달링턴은 가고 새 주인이 왔다. 미국인 패러데이는 합리성에 입각하여 하인들 수를 경제적으로 재구성하고, 수고한 스티븐스에게 포드 자동차를 내주며 휴가를 준다. 여기서도 일만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마침 도착한 켄턴 양의 편지를 읽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함께 일하자 제안하기 위해서. 편지에 쓰인 “내 인생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유용하게 채울 것인지 비록 알지 못하지만…”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는 문장을 붙들고서. 분명 그녀는 절망감으로 이 편지를 썼다 믿으며, 그녀의 결혼이 불행했다는 걸 예감하며. 그리고 먼 길을 떠나 여섯째 날에 지금은 벤 부인이 된 켄턴 양을 드디어 만난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이 문장에 닿는 순간 감정이 폭발해 곡을 하며 울었다. 인간의 타이밍이라는 게 너무 잔인해서,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이라니. 슬프고 허망하고. 게다가 폭발한 감정을 곧 추스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정의 행복을 비는 남자라니. 이건 슬퍼도 너무 슬프다.
켄턴 양은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안다” 했지만, 나는 그녀가 그 순간까지도 전혀,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바로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 가출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바로 얼마 전에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딱 열흘만 먼저, 켄튼이 가출했던 날에 스티븐스를 만났다면 정말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타이밍이란 게 짧아도 너무 짧다. 이걸 맞출 수 있는 이 인간 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이 타이밍을 맞출 수 없어서 수많은 사랑이 시치미 아래 묻힌다.
가정해본다, 스티븐스가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라는 말을 실제 소리 내어 켄턴 양에게 했다면. 정말 켄턴 양이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다”라고 이야기했을까? 나는, 내가 켄턴 양이었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었을까.
만약 언젠가 내게 기회가 온다면 훌륭한 문학 같은 사랑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삼류 연애소설 같을지라도 모든 걸 버리고 만나는, 지질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지지고 볶는 사랑이면 좋겠다. 서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알면서, 한번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상상해 왔으면서, 소리 없이 점잖고 아름답게 인사하며 뒤돌아서는 사랑은… 너무 슬프다. “이제 헤어지면 오래도록 다시 못 보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린 오래도록 다신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혹시 다시 못 보게 될까 싶어” 같은 말들이 아프게 오간다.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내내, 여운이 차갑고 오래 길다. ‘남아있는 나날’ 영화에서처럼 비에 물씬 젖은 듯, 너무 외롭고 허망하고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