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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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그 해에 유난히 ‘30대’를 제목으로 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에게 서른 살에게 답하다’, ‘서른 무렵’ 등등... 제목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서른을 위해 나왔다. 그러나 십 년 후 마흔이 된 해에는? 유난히 ‘40대’를 타깃으로 한 책이 많이 등장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마흔에 대하여’, ‘마흔 공부법’, ‘마흔에게’...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흔 즈음의 세대가 책을 읽는 마지막 세대라는 게 아닐까?

(대개 여자분들인) 그런 우리의 문학 아이돌을 꼽자면 단언컨대 시인 중에서는 박준, 오은, 황인찬. 소설가 중에서는 김금희, 최은영. 평론가 중에서는 미안하지만 딱 하나뿐, 신형철이다. 그렇다, 바로 이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저자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덮은 후 당장 독서대를 꺼내들었다. 필사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아름다운 글줄들 때문에. 문장의 장단을 살폈고, 쉼표와 마침표를 찍는 부분, 쌍따옴표와 홑따옴표를 찍는 부분을 살폈다. 열심히 쓰고 또 써도 책장은 넘어갈 기미가 안 보였다. 아름다운 경구로 사람을 호리는 재능이 있는 이 평론가는 이번에도 홈런을 쳤다. 어디 나뿐인가, 각종 SNS를 통들어 이 책을 필사하는 사람이 엄청나다. 포스팅으로 치면 셀 수 없는 인기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가냘픈 등허리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안 보이는 날이 없다. 책이 나온 게 넉 달도 전인데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른다.

서문에서부터 나는 저자의 슬픔에 대한 ‘태도’에 반했다. 읽다보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신형철의 이런 ‘착함’을 위선적이라며 싫어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악보다는 위선이 100만 배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아무리 나쁜 게 섞여 있다 해도, 나쁜 걸 그대로 노출하는 솔직함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선의 탈이 훨씬 덜 해롭지 않느냐는 게 나의 주장. 내 삶의 태도 역시 그러하므로 나는 언제나저자를 옹호한다. 쓰다 보니 ‘슬픔’에 대한 글이 많았다는 저자의 의견에도 손뼉을 치며 동의한다. 나도 그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정심 많은 성실한 모범생 기질이 국내 책 시장의 마지막 세대(?)인 40안팎의 세대와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자연히 우리들의 아이돌이 될 수밖에.

누가 뭐라 해도 국내 책 시장에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신형철 정도의 문학 상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최고의 칭찬이다. 세상에 평론가의 평론집을 국문과 대학생이나 문학도가 아니라 일반 독자가 사 보다니! 아무리 평론가와 대중성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2019년의 이 시기, 한국 독서시장에서 ‘대중성’을 겸비한 예술가는 대단한 거다. 신형철의 힘은 그렇게나 크다.

몇 년 전 연재한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 이것들은 또다시 하나의 책으로 묶일 예정이라고 하니, 나는 아마. 다시 또 그의 책을 찾아 읽지 않을까. 칭찬하는 일이 평론가의 일이 아니라 해도, 칭찬하는 평론은 나의 취향인 탓에 나는 이 저자의 책을 닮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이가, 그에게 슬퍼할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슬플 때 함께 있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것뿐인데. 이건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니라 절실한 이야기라는 것. 진실로 강조컨대 나는, 너무나 그러하다.

“아내 신샛별 평론가의 조언 덕분에 책의 구조와 제목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의 글들을 읽어주었고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에게. 대체로 내 삶을 이해하고 버텨내기 위해 쓰인 글들이어서 내 글의 시야는 넓지 않고, 살아낸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나의 책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의 책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가끔 무언가를 용서받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문장을 아직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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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neeyre 2019-01-17 02:02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좋아서 필사도 하고 있어요^^ 진짜 아름다운 글들이죠. 읽는 데마다 좋은 꿈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