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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ㅣ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2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토할 것처럼 많이 한 소개팅에서 한 번도 멀쩡한 인간을 못 만나봤다는 내게 사람들은 늘 뭐라고 한다. 눈이 높아서라는 둥, 현실을 모른다는 둥. 그 나이에 사랑이란 감정은 없다는 둥 다양한 말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내 비현실성을 뭐라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라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하는 말은 비슷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나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문제는 ‘현실’이다. 이제는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인생 과제를 수행하려면 급하기 그지없으니 ‘현실’에 맞는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연애도 결혼도 안 되는 거다. 직업과 재산 조건과 자녀 계획보다 내 본질을 먼저 알아봐 달라는 조건을 거니 이건 될 수가 없는 거다. 기질과 현실의 비극이지.
『그 남자네 집』에서 내게 벼락처럼 다가온 두 가지는 ‘구슬’과 ‘현실’이다. 비현실적인 ‘그 남자’가 박완서의 본질을 알아보고 붙여준 별명과, 현실적인 ‘은행원 남편’이 준 경제적 안정감. 그 두 가지는 천칭의 반대 방향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다 결국 ‘현실’의 승리로 끝난다.
박완서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남자가 ‘구슬 같다’고 표현했던 생기를 보고 싶어서다. 정말이다. ‘구슬 같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남자는 대체 얼마나 박완서의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던가. 한편 박완서의 바가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편의 무거운 단단함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신 방에서 사는 것도 사랑이지만 박완서 같은 사람이 정말 만족했을까. 물론 그래서 박완서가 첫사랑을 만나러 나가는 일탈을 하지만. 그것도 잔인한 비극으로 돌아서는 이건 대체 뭘까. 사람이 사람에게 인생이 사람에게 어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게다가 ‘카멜리’라 불리는 춘희의 이야기는 비참했다. ‘현실’ 때문에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장녀의 흔한 이야기. 그 현실에 양공주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러니 박완서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건가. 딱 치고 빠질 줄 잘 아는 박완서가? 그것도 결국 현실을 다루는 문제가 아닌가.
대체 ‘현실’이라는 건 뭘까. 현실이 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뒤로하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결혼을 하는 걸까. 현실이 얼마나 대단한 거기에 박완서같이 감수성 넘치고 똑똑한 사람도 자기를 ‘구슬 같은 여자’라고 말하던 부잣집 어린 남자를 뒤로하고, ‘골이 비었거나 무식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은행원과 결혼한 걸까? 아직도 여기 답을 못 찾아 답답해하는 나는 철이 들려면 멀었던가, 친구들 다 품절되고 후배들도 거의 다 결혼해가고, 돌아온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는 지금까지도 허우적거리는 나의 결혼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