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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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있기 전날이면 하루 종일 예민하다. PPT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삽입한 동영상이 잘 돌아가는지 열 번은 넘게 재생해 본다. USB 몇 개에 파일을 옮겨놓고도 전전긍긍한다잠을 거의 못 잔다온몸에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로워진다먼 거리 화성까지 가야 하는 스케줄을 앞둔 깊은 밤 펼쳐본 책우울할 땐 뇌과학의 어딘가에서 허탈함으로 빵 터졌다이 책을 내기 위해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그러니까 한 3초 동안그러고는 바로 내가 해야 할 모든 작업과 쏟아야 할 모든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고어느 순간부터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맙소사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몇 주 전부터 오늘까지의 내 모습 아닌가소속 지역 대표(?)로 강의해 달라는 부탁에 잠시 우쭐했다가계속해서 도착하는 피드백 이메일과 추가 정보 독촉 문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불안해하며 겁내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혼잣말은 백 번도 넘게 했다. 물론 분명 괜찮게 할 거다. 그렇다나는 다분히 우울 성향이 가득한 유전자를 타고났다역시 내게도 뇌과학이 필요한 걸까?
 
책의 구조는 단순하다크게 전편과 후편. 1부는 우울증과 뇌신경과의 관계 이론(이해, 인정), 2부는 우울감에서 상승하기 위한 생활 속 구체적인 방법(운동의사결정습관바이오피드백감사사회적 지원전문적 도움)이 담겼다이 중 다섯은 표지에도 간단한 그림으로 강조해 표현했다이렇게 구조가 정확한 책이 좋다저자는 아무래도 괜찮은 사람인 듯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표현은 유머러스하기도 하다그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울증을 앓으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려 노력하는 이들은 꽤 매력적이다
 
내가 생각한 우울할 땐 뇌과학의 핵심은 신경가소성이다뇌가 자주 사용하는 부위를 변화시키고 뇌의 작동 방법을 바꾸어주는 것그래서 하강 나선을 상승 나선으로 바꾸어주는 팁들을 적용해보면 된다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몸의 문제였다무엇보다 움직여야 하고잠을 더 자야 한다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영업용 미소를 항상 띠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목석 그 자체다언제나 눈과 입이 곡선이어야 한다퇴근길에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 일자주 내쉬는 심호흡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은 내내 마음이 좀 텅 빈 상태다잃은 만큼의 만분지 일이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오지 않는다본래 뇌가 지닌 감정적인 성향은 우울증 상태에서 더욱 과장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뇌는 감정 정보를 더 오래 붙잡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 집착하거나 글을 써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과잉된 감정을 주체를 못 해,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어서그런데도 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걸까

엘릭스 코브는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불안증에 걸렸든어딘가 아프든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P.17)라고 말한다. 100퍼센트 믿어지지는 않지만 저자의 다정한 말이 못내 고맙다마음이 배고픈 사람에게는 조그만 애정과 이런 온기가 절실하므로

지금은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도 변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의를 집중하거나 의도적으로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거나 분명한 목적을 품고 감정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모든 일이 뇌를 바꾼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의 정수다.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을 포함해 사람이 하는 모든 경험은 실제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고 평생에 걸쳐 뇌를 리모델링한다는 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의미하는 바다. (P.5)

우울증은 그저 항상 슬픈 상태가 아니다. 대개는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고 느낀다. 희망이 없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예전에 재밌어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음식도, 친구도, 취미도, 기력도 급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기도 힘들다. 어떤 일도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잠들기 어렵고, 잠들더라도 계속 잠든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아픔과 통증을 훨씬 극심하게 느낀다. 집중이 안 되고, 불안하고, 수치스럽고 외롭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P.13)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P.17)

골치 아프게도 우울증은 단순히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기는 하다. 세로토닌 활동이 늘어나면 기분이 더 좋아지고 목표를 세우는 능력과 나쁜 습관을 피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도파민이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즐거워진다. (P.36)

우울증에 걸렸다 하더라도 뇌에 흠이 생긴 게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51)

우울증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병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도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과 아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고독을 바라는 상태는 우울증에 걸린 뇌가 보이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 운동하지 않는 상태를 고착시키는 것처럼 고독을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을 더 고착시킨다. 이 책이 주는 뇌 과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희망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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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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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교육과정단 하나뿐인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워 수능을 보고 근현대사를 얕게 배운 세대가 나다변명 같지만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느라 물리와 지구과학근대사를 배우지 못했다언제나 역사는 내 구멍이다그러니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 만만했을 리가결코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하나하나 치밀하게 짚어간 것도 아닌데도 낯선 사람과 사건들이 페이지를 넘기는 데 걸리적거려 고생해야 했다
 
이충렬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평전 작가다유려한 글줄뿐 아니라 인물의 생을 짜임새 있게 설명하는 구조가 그의 최고 장점이다간송 전형필(김영사),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등은 예술 애호가와 예술가의 삶을 균형 있게 묘사한 전기다

과연 그답게 사료조사의 밀도가 대단했다다만 평전(評傳)이 한 인물의 생애를 한 권에 담았다면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은 꼭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짜임새를 발휘하기에 미진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처음 보는 그림과 작가들저자가 기를 쓰고 수집한 당시 사진과 보조자료는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작년에 서울역사박물관이나 덕수궁미술관에서 본 전시가 그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았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읽으며 새로운 화가를 여럿 발견했지만 굳이 가장 인상적인 화가를 하나 꼽자면 엘리자베스 키스(Eizabeth Keith, 1887~1956). 스코틀랜드인 키스는 먼저 일본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들른 한국에 반했다. 이즈음은 3.1운동 이후, 한국인의 존엄과 강인함이 생생하게 드러나던 시기였다. 그녀는 한국 사람에게 애정을 느꼈다. 직접 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짜 삶을 이미지화했다. 이후로도 자주 한국을 방문하며 독신으로 살면서 우리나라 아이들을 애정 어린 필치로 담았다.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도 꼿꼿이 자존심을 드러내는 나이 든 부인, 빚을 지고 도망간 아버지 때문에 눈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지켜온 궁중예복을 입은 프린세스, 비단신과 나막신을 만들던 갖바치의 모습을 수채화와 연필 스케치, 판화로 그린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감리교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의 어머니 집에 머물던 키스는 그러한 인연으로 홀이 시작한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을 그리기도 한다. 세 번이나 그린 그녀의 그림은 전 세계에 조선 고유의 실 이미지를 제공한다. 
 
처음엔 오리엔탈리즘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여성이 낯선 나라를 사랑했던 것은. 그러나 어떻게 보아도 그녀의 그림은 정성 그 자체다. 시혜나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닌 친밀함과 성실. 친밀한 재료와 소박한 기법이 키스의 부지런한 손길을 더 돋보이게 한다. 특히 그녀가 담은 조선의 여자와 어린이들은 연약하나 어리석지 않다, 부러지지 않으며 탄력 있다. 오래전의 그녀가 지금 역시 고마웁다. 
또한 반가웠던 것은 《이쾌대전》, 《변월룡전》, 《신여성 도착하다》 등 덕수궁미술관에서 보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그림들을 책으로 다시 만난 것. (물론 이 책이 전시보다 먼저 나왔다.) 좋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복이다()은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더 생각한다자료 수집 능력 없이는 좋은 저자가 될 수 없다고이건 성실함과는 또 다른 능력이다인연(因緣)의 영역이고 인복(人福)의 문제다내게도 치밀한 자료와의 인연이 간절하다언제나 이충렬은 상상 이상이다,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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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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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자 밥 먹는다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당시 근무하던 회사 사장님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전혀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장래성 없는 사원 취급을 했다얼마나 기가 질렸는지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그야말로 나 홀로 또라이가 문제가 되던 시절이다. 십년도 훨씬 넘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혼밥’, ‘혼술’, 혼닭’, 혼행’, ‘혼영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왔다. 명실공히 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나는 혼자다출근시간과 일하는 시간퇴근시간을 제외하면 늘 혼자다심지어는 점심시간마저도 부러 외톨이다사람들과 부대끼며 급식소에 있는 것보다 홀로 50분을 보내는 것이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그 시간에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두유를 털어마시고 커피를 탄 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책과 수저를 표지로 한 일인분 인문학은 처음부터 바로 내 이야기였다.
 
사실 일인분 인문학의 내용은 내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다만 박홍순은 나날이 그림과 철학사회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방법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최근작이 어김없이 그림으로 가득한 책들이다그의 글처럼 여유를 가지고 슬로 슬로 하게 유럽 미술관 앞에 호텔을 잡고 샅샅이 그림을 훑을 수 있는 삶이 지극히도 부럽다그의 예전 저작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던 그림들이 많이 빠지고 이제는 색다른 그림들이 책을 채우고 있다자신의 자리에서 프로가 된 사람은 다른 분야에도 재빨리 프로가 될 수 있음을 또 확인한다구석구석 그림을 잘 주물러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고갱에 대한 그의 긍정적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솔로로 살면 슬로로 산다는 4장에 여러 가지 의미로 공감했다. ‘솔로는 세상의 과제에 맞출 필요가 없다바쁜 세상의 흐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된다벌이를 조금 포기하면 효율성과 속도에서 떨어져 마음껏 숨을 고를 수 있다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선택인가당장 나라도 서울의 직장을 포기하고 산골짜기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조용히 살라고 하면 펄쩍 뛸 테니다만 언제든 지금 일을 그만둘 수 있음을현재의 벌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인지하고 차후 홀로 설 준비를 찬찬히 하고 있다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질적 준비도

저자 박홍순은 이 책으로 혼자를 택한 사람들의 능동적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내게 너무 늦게 온 것 같다돌아돌아 나는 혼자의 의미를 성실히 빚어왔고 혼자인 자부심을 그득 채웠다아주 오랫동안 자발적 외톨이로 살아온 내게 고독은 이미 충분하다외톨이 생활만큼은 프로 중의 프로다저자는 혼자가 더욱 충만하다 말하지만 나는 글쎄…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다가도 얼핏 쏟아지는 공허는 인간에게 교감(交感)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순간이나마 마음이 녹는 순간이 필요하다나머지 시간을 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같은 식탁에서 일인분씩 만나는 이인분 혹은 삼사인분의 인문학도 분명 필요하다. 


단언컨대 내가 가장 공허하고 비참했을 때는 어른들의 압력으로 소개팅을 수행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단 한 번도 어김없었다타인의 억지와 세상의 틀에 나를 끼워 맞추려 자신을 가장했을 때였다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나 말고 어떤 것도 나를 인정할 수 없음을 너무 잘 안다저자는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세우려는타인 속에서도 외롭지 않은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능동적인 한 명에게 우리는 더 관대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그런데 사실... 그들이 내게 관대하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냥 나인 것으로 남은 생은 충분하다이것이 외톨이의 자부심이며 내가 끝까지 온전히 홀로일 이유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유인이다. 자유인이란 자기 운명의 주체가 자신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중략) 혼족의 시간이 자기를 위한 시간의 확대로, 나만의 고독과 침묵으로, 나만의 독서로, 나만의 성찰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인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P.36)

독서의 과정은 고독하다. 책과 단둘이 마주보고 실마리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놈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세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실마리만 던져놓곤 한다. 작고 희미한 실마리를 붙잡고 혼자서 자기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고독한 독서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생생한 현실 위에 세운다. (P.74)

오히려 혼자 내적으로 충만함을 갖추는 법을 깨우칠 때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예민한 감지기를 갖추고 있다.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시간으로 낭비하려 하지 않는다. (P.182)

전업 방식의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자기만의 창의적 성과가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 그 자체로 생계가 가능한 상태에 이른 극소수만 전업 형태를 가질 수는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견디라고 하면 안 된다. 또한 예술가 스스로도 이러한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립은 예술가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 조건이다. (P.271)

그(니어링)는 너무나 많은 것이 낭비되는 현대인의 일상과 현실에 회의를 갖는다. 특히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생활 유지에 할애하면서 에너지와 재능을 낭비하는 삶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져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며, 관습에 얽매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순응과 예속을 떨치고 자기 삶을 보다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보람차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P.281)

이 모든 방법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집단이나 타인에 의해 일을 박탈당할 우려가 적기 때문에 외부 압력으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거나 활동에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큰 규모의 직장에 취업했을 때보다 확실히 수입이 적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박한 생활에서 만족을 구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결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기의 만족을 풍요로운 소비와 풍요로운 정신에서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 (P.283)

소로우가 보여준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출발점부터 과정,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개인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국가나 다수에 의해 무력화될 수 없는 존재다. 개인의 동의에 의해서만 국가나 정부는 정당화된다. 시민 불복종은 주체로서의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양심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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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글쓰기
류대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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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이란 말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 한 사람의 안팎을,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좁고 깊으며 넓고 얕은 단어다. 한 사람을 모두 표현할 수 있으면서 한 사람을 제한할 수도 있는 단어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만난 빨간 책, 『사적인 글쓰기』는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기 매력을 뽐냈다. 자기(自己) 글쓰기를 열망하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물론 나 역시 그중 하나다. 

 
‘사적인’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인 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글쓰기 재능도 없는 주제에 나는 왜 쓰고 싶어 하는가. 그런 나는 무엇에 대해 쓰고 싶은가. 나는 왜 글을 못 쓰고 있는가. 왜 이 몸이 글쓰기를 시작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장소 탓인가 시간 탓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정녕 게으른 성격 탓인가를 먼저 쏟아내게 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점검하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 ‘나’를 아는 일에 제일 도구는 ‘글쓰기’라고. 일단 쓰기 시작하면 ‘나만의 글쓰기’가 시작되고 이 글쓰기가 다음엔 나를 움직일 거라고.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다. 먼저 자기 알기, 다음에 편견 없애기, 실제로 자기 글쓰기 스타일 만들기다. 4부의 부록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저자가 조언한 글쓰기 예시다. 무엇보다 3부의 ‘글쓰기 비법’을 기대했는데, 이런... 저자는 정직했다, 글쓰기에는 콕콕 집어 족집게가 없었다. 그저 매일의 성실함,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 쓰고 또 쓰는 것. 어떤 방법으로 어떤 도구를 쓰던지 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내게 가장 잘 맞는 방법과 도구와 시간과 마감과 언어 감수성을 찾아가면 된다. 이 지난한 과정은 ‘온몸으로 글쓰기’ 그것뿐이다. 
 
저자는 ‘사(私)적인’ 글쓰기에 ‘공(公)적인’ 글쓰기를 대비시키기도 하고 긴밀히 연관시키기도 하면서 언제든 사적인 글쓰기가 공적인 글쓰기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때 제일 먼저 내게 떠오른 것은 책(冊)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밑줄을 긋게 되고, 밑줄을 발췌하고 인용하다 보면 글을 옮기게 되고, 글을 옮기다 보면 자기 생각을 더하여 글을 쓰고 싶어진다. 대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이 쌓이고 구석구석 짜임새 있게 견고해진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글을 더 쌓고 싶어진다. 이렇게 삶이 쌓이면 글이 되고 수북한 글이 정제되면 책이 된다. 책을 읽으면 글을 쓰게 되고 글을 성실히 쓰다 보면 밀도 높은 저자가 나온다. 
 
서평(書評), 즉 북리뷰는 사적인 글쓰기와 공적인 글쓰기를 오가는 대표적인 쓰기 종류다. 『사적인 글쓰기』의 저자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평범했던 국어 선생님이 (자기만의 마감을 설정하고 사적인 글쓰기를) 15년째 (지속했으며) 매년 1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파워블로거가 되고 작가의 길을 택하기까지” 사적인 글쓰기가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글쓰기가 생각을 바꾸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목하 강조하지만, 시간과 생활에 쫓기는 직장인일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드라마틱한 저자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아주 먼 옛날, 책과 글은 소수가 독점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특권이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적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지식이 대중화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했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읽고 쓰는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쓰는 인간’이 대세가 된 거죠. 이제,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이기적인 글을 써 보면 어떨까요.” (류대성,『사적인 글쓰기』, 휴머니스트, 2018,  P.8) 


『사적인 글쓰기』를 읽는 동안 ‘나의 사적인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를 고민했다. 나는 내 마음과 맞는 파장을 찾고 싶어 글을 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드러내고 나의 취향을 자랑하고 싶다. 누구에게 이해받기를 원하기보다 나와 맞닿는 사람을 찾고 싶어 글을 쓴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사적인 것에 맞닿는다고 믿는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것이 내 글쓰기의 이유다. 아 참, 나는 새 노트북을 사기 위해서도 글을 쓴다. 노트북이 빨리 쇠할 만큼 열심히 글을 써서 신상을 사려는 속셈.

내가 사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물로 치자면 분명 책이 으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간 책을 아끼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던가, 부끄럽도록 미미하다. 표현 없는 사랑은 죽은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사적인 글쓰기』를 덮은 후 나의 목표는 ‘세 권 읽으면 한 권이라도 리뷰 써 보기’다. 그간 읽는 데 비해 쓰는 데 너무 게을렀다. 삶은 이렇게도 조금씩 변한다. 사적인 글쓰기는 생활에 있으므로, 이것이 내게는 내 마감을 설정하고 써야 하는 사적인 글쓰기의 실제다.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적인’ 영역에서 찾아왔다. 어쩌면 글쓰기가 그런 한켠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적인 글쓰기는 일단 자기만족, ‘읽고 쓰는 삶’은 허영처럼 보이지만 한편 그럴듯하다. 읽고 쓰며 오직 나답게,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좀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사적인 글쓰기가 곧‘에세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에세이는 문학의 한 갈래지만 허구와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실제 세계를 다룬다. 이것이 에세이가 시나 소설과 다른 점이다. 사적인 글쓰기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에서 에세이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범위는 사적인 글쓰기가 훨신 넓다. (P.84)

사적인 글쓰기는 내용 면에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일상생활, 주변 사람, 여행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사건, 정치뉴스, 경제상황, 문화 트렌드 등 공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사적인 글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주관적 생각과 감정을 쓰면 사적인 글이 된다. 이것이 발표 매체에 따라 공공성과 책무를 띠고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면 공적인 글이 된다. (P.85)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일은 의식 세계를 넓히는 과정이다. 새로운 어휘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경이로움이다. 낯선 말, 모르는 단어, 익숙지 않은 개념을 기록해 보자.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도 좋고, 그러한 표현을 보았을 때 바로 밑줄치고 메모하는 방식도 좋다.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방을 매혹시키는 사람도 있지만, 어눌한 말투로도 감동을 주는 이도 있다. 말하는 사람의 깊이와 넓이는 재치 있는 감언이설보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단어, 비유적 표현, 이해하기 쉬운 예를 활용해야 한다. 더 많이 읽고 기록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사람의 언어 세계가 풍부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P.123)

언어 감수성을 예민하게 벼리고 싶다면 시집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가장 세련되고 정선된 언어의 정수를 시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시인은 어떤 사람보다도 모국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알았다. 틈틈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단어의 개념을 확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연습을 한다면, 당신의 글쓰기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P.127)

사실 첫 문장은 두 번째 문장을 읽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문장이 세 번째 문장으로 자연스레 이끌어 준다면 좋은 글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글이, 첫 문장만 인상적이거나 마지막 문장만 그럴듯한 글보다 더 낫지 않을까? (P.140)

삶이 곧 글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는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해야 가능하지만, 삶의 경험을 편안하게 풀어내는 글쓰기는 지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도입부와 마무리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본문의 내용과 밀접하게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연결 고리를 만들고 유기적으로 엮기만 하면 된다. 억지로 꾸미고 과장하지 않아도 당신 이야기는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P.145)

요약은 전체를 통찰하는 안목을 길러 준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부분을 바라보면 의미가 보다 풍부하게 느껴진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해하고 분석하지 못하면 요약은 불가능하다. 핵심과 주변을 구별하고 전체 구조를 알아야 가능하다. 텍스트의 의미와 글쓴이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해야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요약은 독자가 글쓴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며, 글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연습이다. (P.174)

글쓰기는 알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의 시선을 갖는 일이다. 영혼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고백이다. 경험한 것, 아는 것, 생각한 것, 느낀 것 이상을 쓸 수 없다는 자명한 논리 앞에 모든 허세와 거품과 가면은 무력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P.201)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면서 신경 써야 하는 점은, 구조와 내용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과 감정의 변화다. 헝클어진 생각과 혼란스런 감정으로 글을 완성하기는 어렵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두려움 없이 쏟아 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완결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고 정리해야 한다. 하나의 단락에 하나의 중심 생각만 쓰는 연습을 하자. 단락의 분량과 길이가 다른 단락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는지 점검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살피자. 통일성 있게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당신의 글은 잘 정리된 생각과 감정의 고백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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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 꽃 같은 말만 하라는 세상에 던지는 뱀 같은 말
조이스 박 지음 / 스마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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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 정년퇴임하신 교수님 한 분이 나에게 경악하신 적이 있다. “백마 탄 기사나 기다리는 줄 알았더니 보기와 다르네.”라고. 그분이 기대하는 나는 고분고분한 ‘여자애’ 였으므로 그 애가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놀라시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때의 내 나이가 서른이 한참 넘었다는 게 함정. 늘 겪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 자아가 있는 여자는 세상 살기 불편하다. 조이스 박의 말을 빌리자면 “내게 백 개 혹은 천 개의 얼굴이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보이라고 강요받는 것 같아 싫었다.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수용하겠다는 세상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방법이 없었다. 이십 대의 나는 자아를 감추거나 죽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야 덜 미움받고 지낼 수 있었으므로. 그래야 괴롭힘당하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그 과제는 내게 현실이었다. 살기 위한 하나의 가면이었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좋아한다.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뼛속 깊이 겪었다. 꿈을 이야기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상황은 아프다. 죽도록 노력하고 가까스로 정착한 나는 행복한 미래를 믿지 않는다. 이 험한 한국에서 여자의 삶은 더욱 그렇다. 성별 간 임금 격차뿐 아니라, 직장 내 지위 보유 역시 여자는 형편없다. 몸으로 마음으로 잘 살아남은 롤모델의 여자는 몇 보이지 않는다. 몰락(沒落) 하지 않으면 다행, 현재를 유지하기만 해도 선방(善防)이다. 여자의 현실은 이렇게 각박하다.
그런 내게 동화(童話)라니,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다. 그런데도 동화를 매개로 한 에세이를 집어 든 것은 저자에 대한 신뢰였다. 모든 재료는 장인의 손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명장(名匠)은 명품(名品)을 만든다. 저자는 꿈틀거리는 표현력을 가졌다. 새빨간 장미처럼 강렬하고 달빛 아래 서늘한 칼날 같은 글들이 예쁘다. 피처럼 붉고 가시처럼 뾰족해서 불편하다. 추천사를 쓴 황정산의 말이 정확하다. “조이스 박의 글은 불온하고 불온한 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남성들은 반성하고 여성들은 각성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게 된다.”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에게 꼭 맞는 글을 뱉어낸다. 그리고 저자는 여성으로서 자기 고통을 여성의 동화를 빗대어 풀어낸다. 이건 치유라기보다는 그녀 본성에서 나오는 애정이다.
조이스 박이 이야기하는 모든 동화는 ‘본질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핵심엔 사랑과 슬픔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먹먹하다. 생에 뒤통수를 맞고 가시덤불로 이끌리며 상처투성이로 살았던 모든 이에게 뿌연 안개를 내뿜는다. 나는 다시 고백한다. 삶은 너무도 슬프고 투명하고 날카로운 것이며, 그래서 아름답다는걸. 한편 세상이 가시투성이이므로, 사람은 상처받지 않으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읽는다. 생명에 있어 완전(完全) 함은 상처투성이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살아 있다면 아직은 괜찮은 거다. 정말로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그렇게 살아가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거치며 스스로 변한다.”(P.106)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여러 번,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에게 있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사랑에 목숨을 걸도록 배우고 길러진 여자아이에게. 모든 여자들은 “동화 속의 왕자님은 현실에 없는 거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다. 가족이 아니라도 사회로부터 백만 번을 듣는다. 첫 번째로는 ‘눈을 낮추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너는 동화 수준이다’라는 의미이며, 세 번째는 ‘너는 현실을 모른다’는 말이다. 모두 여자의 자아와 지적 능력을 폄하하는 의미다. 여자의 생의 목표는 왕자라는 편견이다. 생의 여정에 있어 ‘사랑’을 중심에 둔다면 일견 맞는 소리다. 모든 것을 가진 왕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를 그녀가 왕자로 만들어줄 수 있을 테니.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여자는 사랑 때문에 자신을 잃는다. 시간과 영혼을 내어주어야 할 때도, 손발을 잘라주어야 할 때도 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성숙(成熟)을 전제로 하는 사랑의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는 사랑으로 죽었다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 “미모가 존재가치의 최고라 설파하는 여성관이 내어주는 독사과를 먹고 기어코 죽는다. 죽었다가 그 독사과를 내뱉을 때 비로소 진정한 파트너를 만난다. 죽은 존재여도 상관없다며 부둥켜 안아주는 대상을 비로소 만난다.”(P.178) / “남자야, 나를 사랑하거라. 난 죽었다 살아났느니 네가 함부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자체로 난 소중하고 아름다우니, 남자야 이제 날 사랑하거라.”(P.178)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를 사랑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가부장제에 복무하는 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꼭 이성애가 아니어도 사랑은 본질 중의 본질인데. 저자의 이야기가 울림이 있는 것은 현실에 기댄 사랑의 실패와 사랑의 성장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한 사람의 됨됨이를 휘저어 다시 담금질하는 강렬한 시험이기 때문이다.”(P.133) / “사랑은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지만, 죽어서 우리 뒤에 남는 건 그래도 사랑뿐이다.”(P.109) / “사랑은 그래 봤자 고작 2%의 힘이다. 그 2%에 기대어 능히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2%에 자신을 의탁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는 이룬 것이 너무 많고, 자칫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그 2%에 자신을 내주기가 너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심장조차 녹이 슬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심장이 녹슬기 전에 한 번 더 사랑해야 한다. 생이 허락한다면.

나는 조이스 박을 잘 모르지만 그녀가 택한 글이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아마 겉치레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포근하고 따뜻한 휘장을 두르는 일을 잘 못하고 사회성이 뛰어나지 못해 손해 보는 사람에 가까우리라 생각한다. 마치 내가 그런 것처럼. 사람을 사랑하지만 사람을 피하면서 자기 애정을 내비친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고 이번 택한 것이 그녀의 동화다. 그 글줄들이 그렇게 시원한 것은 같은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이 닮았기 때문이리라, 사랑과 슬픔을 받들어 모시는 마음이. 저자의 샤프한 말이 뭉툭한 내 마음을 대신하여 설명한다, “능히 사랑하지 못해 수이 빛나지 못하나, 차마 사랑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마침내 빛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나는 믿는다.” 뭐라 더 표현할 수 없다. 먹먹하다.

덧) 표지부터 내지까지 알곡처럼 빼곡히 들어선 삽화가 놀랍다.
Daniel Egnéus(다니엘 이그네우스)의 표지를 비롯해 Nadezhda Illarionova(나제즈다 일라노료바), Kay Nielsen(케이 니얼슨), John Bauer(존 바우어), Arthur Rackham(아서 래컴)의 아름다움은 화가 날 정도.


"이따금 삶에 내몰려 정신없이 질주할 때, 아니 질주하지 않으면 이 삶을 버틸 힘이 없어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욕망에 나를 내주고 그 힘에 실려 달리다가 멈출 때, 문득 목도한다. 어두운 숲속을 생채기 투성이로 달리던 늑대 인간 하나가 차마 자신을 못 이겨 하늘의 달빛을 보며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모습을. / 소망은 아득하고 욕망은 강렬하다. 소망은 실낱같고 삶은 지랄 맞다. 인간만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머리를 가진지라, 달을 보며 표효한다."(P.193)

"햇빛처럼 빛나고, 달빛처럼 빛나며, 별빛처럼 스스로 빛을 낸다는 것은 내면의 자기 인정과 존중의 힘이 묵직한 닻처럼 드리워졌을 때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다."(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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