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혼자 밥 먹는다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당시 근무하던 회사 사장님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전혀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장래성 없는 사원 취급을 했다얼마나 기가 질렸는지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그야말로 나 홀로 또라이가 문제가 되던 시절이다. 십년도 훨씬 넘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혼밥’, ‘혼술’, 혼닭’, 혼행’, ‘혼영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왔다. 명실공히 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나는 혼자다출근시간과 일하는 시간퇴근시간을 제외하면 늘 혼자다심지어는 점심시간마저도 부러 외톨이다사람들과 부대끼며 급식소에 있는 것보다 홀로 50분을 보내는 것이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그 시간에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두유를 털어마시고 커피를 탄 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책과 수저를 표지로 한 일인분 인문학은 처음부터 바로 내 이야기였다.
 
사실 일인분 인문학의 내용은 내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다만 박홍순은 나날이 그림과 철학사회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방법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최근작이 어김없이 그림으로 가득한 책들이다그의 글처럼 여유를 가지고 슬로 슬로 하게 유럽 미술관 앞에 호텔을 잡고 샅샅이 그림을 훑을 수 있는 삶이 지극히도 부럽다그의 예전 저작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던 그림들이 많이 빠지고 이제는 색다른 그림들이 책을 채우고 있다자신의 자리에서 프로가 된 사람은 다른 분야에도 재빨리 프로가 될 수 있음을 또 확인한다구석구석 그림을 잘 주물러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고갱에 대한 그의 긍정적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솔로로 살면 슬로로 산다는 4장에 여러 가지 의미로 공감했다. ‘솔로는 세상의 과제에 맞출 필요가 없다바쁜 세상의 흐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된다벌이를 조금 포기하면 효율성과 속도에서 떨어져 마음껏 숨을 고를 수 있다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선택인가당장 나라도 서울의 직장을 포기하고 산골짜기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조용히 살라고 하면 펄쩍 뛸 테니다만 언제든 지금 일을 그만둘 수 있음을현재의 벌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인지하고 차후 홀로 설 준비를 찬찬히 하고 있다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질적 준비도

저자 박홍순은 이 책으로 혼자를 택한 사람들의 능동적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내게 너무 늦게 온 것 같다돌아돌아 나는 혼자의 의미를 성실히 빚어왔고 혼자인 자부심을 그득 채웠다아주 오랫동안 자발적 외톨이로 살아온 내게 고독은 이미 충분하다외톨이 생활만큼은 프로 중의 프로다저자는 혼자가 더욱 충만하다 말하지만 나는 글쎄…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다가도 얼핏 쏟아지는 공허는 인간에게 교감(交感)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순간이나마 마음이 녹는 순간이 필요하다나머지 시간을 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같은 식탁에서 일인분씩 만나는 이인분 혹은 삼사인분의 인문학도 분명 필요하다. 


단언컨대 내가 가장 공허하고 비참했을 때는 어른들의 압력으로 소개팅을 수행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단 한 번도 어김없었다타인의 억지와 세상의 틀에 나를 끼워 맞추려 자신을 가장했을 때였다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나 말고 어떤 것도 나를 인정할 수 없음을 너무 잘 안다저자는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세우려는타인 속에서도 외롭지 않은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능동적인 한 명에게 우리는 더 관대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그런데 사실... 그들이 내게 관대하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냥 나인 것으로 남은 생은 충분하다이것이 외톨이의 자부심이며 내가 끝까지 온전히 홀로일 이유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유인이다. 자유인이란 자기 운명의 주체가 자신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중략) 혼족의 시간이 자기를 위한 시간의 확대로, 나만의 고독과 침묵으로, 나만의 독서로, 나만의 성찰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인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P.36)

독서의 과정은 고독하다. 책과 단둘이 마주보고 실마리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놈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세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실마리만 던져놓곤 한다. 작고 희미한 실마리를 붙잡고 혼자서 자기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고독한 독서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생생한 현실 위에 세운다. (P.74)

오히려 혼자 내적으로 충만함을 갖추는 법을 깨우칠 때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예민한 감지기를 갖추고 있다.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시간으로 낭비하려 하지 않는다. (P.182)

전업 방식의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자기만의 창의적 성과가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 그 자체로 생계가 가능한 상태에 이른 극소수만 전업 형태를 가질 수는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견디라고 하면 안 된다. 또한 예술가 스스로도 이러한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립은 예술가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 조건이다. (P.271)

그(니어링)는 너무나 많은 것이 낭비되는 현대인의 일상과 현실에 회의를 갖는다. 특히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생활 유지에 할애하면서 에너지와 재능을 낭비하는 삶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져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며, 관습에 얽매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순응과 예속을 떨치고 자기 삶을 보다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보람차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P.281)

이 모든 방법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집단이나 타인에 의해 일을 박탈당할 우려가 적기 때문에 외부 압력으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거나 활동에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큰 규모의 직장에 취업했을 때보다 확실히 수입이 적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박한 생활에서 만족을 구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결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기의 만족을 풍요로운 소비와 풍요로운 정신에서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 (P.283)

소로우가 보여준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출발점부터 과정,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개인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국가나 다수에 의해 무력화될 수 없는 존재다. 개인의 동의에 의해서만 국가나 정부는 정당화된다. 시민 불복종은 주체로서의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양심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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