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차 교육과정단 하나뿐인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워 수능을 보고 근현대사를 얕게 배운 세대가 나다변명 같지만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느라 물리와 지구과학근대사를 배우지 못했다언제나 역사는 내 구멍이다그러니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 만만했을 리가결코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하나하나 치밀하게 짚어간 것도 아닌데도 낯선 사람과 사건들이 페이지를 넘기는 데 걸리적거려 고생해야 했다
 
이충렬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평전 작가다유려한 글줄뿐 아니라 인물의 생을 짜임새 있게 설명하는 구조가 그의 최고 장점이다간송 전형필(김영사),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등은 예술 애호가와 예술가의 삶을 균형 있게 묘사한 전기다

과연 그답게 사료조사의 밀도가 대단했다다만 평전(評傳)이 한 인물의 생애를 한 권에 담았다면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은 꼭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짜임새를 발휘하기에 미진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처음 보는 그림과 작가들저자가 기를 쓰고 수집한 당시 사진과 보조자료는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작년에 서울역사박물관이나 덕수궁미술관에서 본 전시가 그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았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읽으며 새로운 화가를 여럿 발견했지만 굳이 가장 인상적인 화가를 하나 꼽자면 엘리자베스 키스(Eizabeth Keith, 1887~1956). 스코틀랜드인 키스는 먼저 일본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들른 한국에 반했다. 이즈음은 3.1운동 이후, 한국인의 존엄과 강인함이 생생하게 드러나던 시기였다. 그녀는 한국 사람에게 애정을 느꼈다. 직접 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짜 삶을 이미지화했다. 이후로도 자주 한국을 방문하며 독신으로 살면서 우리나라 아이들을 애정 어린 필치로 담았다.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도 꼿꼿이 자존심을 드러내는 나이 든 부인, 빚을 지고 도망간 아버지 때문에 눈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지켜온 궁중예복을 입은 프린세스, 비단신과 나막신을 만들던 갖바치의 모습을 수채화와 연필 스케치, 판화로 그린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감리교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의 어머니 집에 머물던 키스는 그러한 인연으로 홀이 시작한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을 그리기도 한다. 세 번이나 그린 그녀의 그림은 전 세계에 조선 고유의 실 이미지를 제공한다. 
 
처음엔 오리엔탈리즘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여성이 낯선 나라를 사랑했던 것은. 그러나 어떻게 보아도 그녀의 그림은 정성 그 자체다. 시혜나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닌 친밀함과 성실. 친밀한 재료와 소박한 기법이 키스의 부지런한 손길을 더 돋보이게 한다. 특히 그녀가 담은 조선의 여자와 어린이들은 연약하나 어리석지 않다, 부러지지 않으며 탄력 있다. 오래전의 그녀가 지금 역시 고마웁다. 
또한 반가웠던 것은 《이쾌대전》, 《변월룡전》, 《신여성 도착하다》 등 덕수궁미술관에서 보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그림들을 책으로 다시 만난 것. (물론 이 책이 전시보다 먼저 나왔다.) 좋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복이다()은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더 생각한다자료 수집 능력 없이는 좋은 저자가 될 수 없다고이건 성실함과는 또 다른 능력이다인연(因緣)의 영역이고 인복(人福)의 문제다내게도 치밀한 자료와의 인연이 간절하다언제나 이충렬은 상상 이상이다, 존경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