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빨강은 없다 -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2
김경서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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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사로 일하면서 제일 곤란한 지점이 이렇다 할 미술 교양서가 없다는 거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 미술 교양서가 여럿 있지만 대부분 미술사의 흐름을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친다. 미술 ‘지식’이 아니라 미술 ‘관점’을 알려주는 책은 그간 전무했다.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볼까? 시도한 바가 있지만 결과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아직 내 안목이 부족해서인지 ‘관점’을 조목조목 글로 설명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중등미술교육연구회 카톡 창이 들썩들썩했다. 카톡 프로필로만 알고 있는 ‘높은 미술 교사’ 불광중학교 김경서 선생님이 새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링크에서 서평단 신청을 했다. 어서 읽고픈 마음과 달리 책은 빨리 오지 않았다. 각대 봉투 한 장뿐인 부실한 포장 덕에 상단 표지가 찍혀 찌그러졌지만 빨간 쇠라 그림 표지가 참 예뻤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모두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2장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3장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미술교육과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개의 분류가 국민공통기본 교육 미술교육과정의 《체험》, 《표현》, 《감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책은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하다.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분절된 교과서 이미지와 정보가 아니라, 교과서 안을 잇는 뼈대 이론이 책 내부를 관통한다. 즉, ‘흐름’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정보도 담겨 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회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교사와 학생 ‘보라’의 대화를 통해 이 기회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미술교사라면 누구든 속터져하는 “저는 미술에 재능이 없어요” 폭격에 속시원한 대응을 조목조목 서술해두신 것. 

선생님이 만난 청소년들 중에는 자신이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어. 나는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워. 소질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뛰어난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 ‘소질’의 한자는 흴 소(素)에 바탕 질(質)로 꾸미지 않은 바탕 그대로의 성질을 의미해. 그러니까 소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을 말하는 거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소질을 어떻게 온전히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어. 소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더구나 지금은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시대잖아.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거야.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시 베테랑 선배가 최고다, 진짜진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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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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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 작가의 전 작품을 읽는 전작주의(全作主義)’ 요건을 충족하는 첫 저자가 생긴다면 아마 오찬호일 것이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부터 진격의 대학교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등 오찬호 작가의 책을 대부분 읽어왔다꼭 다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어떻게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아마 저자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의 흐름이 비슷해서일 것이다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역시 그랬다공감(共感), 주주루 펼쳐본 책 초반부가 특히 시선을 끌었다
 
어느덧 비혼(非婚)’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대학 때 친구들은 페미닌 스타일로 야단스레 꾸미기 좋아하는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할 거라며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사회생활 친구들은 교사가 일등 신붓감 1위라며 부러워했다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산다일단 혼자다
 
결혼한 친구들은 내가 부럽다고 한다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내가 부럽다고 한다네가 제일 팔자가 좋다고 뭐라 한다이도 저도 어렵다타나베 세이코가 말하지 않았던가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오해받기 쉽다고영오연(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그러나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그러나 또한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그 균형이 어렵다.”라고그들의 힐난에 어려울 때마다 고민해도 답은 하나다정말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오찬호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초반부는 이런 내 결정을 속 시원하게 정리한다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미혼자에서 비혼자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찾아보면 대한민국에서 결혼한다는 것에 어떤 공포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비혼자들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지금은’ 스스로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지만 직전까지는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허우적거렸음을 인정했다자신이 사회적 거세를 당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설마 내가 처음부터 비혼주의자였을까, 나는 그저 타협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만큼 비혼자들은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한 사람이다.” 비혼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불안해했는지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는 고충을 이야기했고자신의 비혼 결정에는 억울하기 싫다라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직 결혼을 전제로 한 남녀관계에서 남자는 갑이다소개팅 첫날에 대뜸 들은 말들은 가관이다. “우리 집은 제사가 아주 여러 번 있어요.” “우리 집은 휴가 때마다 온 가족이 큰 펜션을 빌려서 여행을 가요배 좋아하세요?” “어머니가 귀농하셔서 농사지으세요. 추수철에는 매주 며느리들이 내려가서 일 도와요.” “서울에서 선생님 하시는데 지방(경상도)으로 내려오실 생각이신 거죠?” 그들은 이런 말들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뻔뻔스러운지 인지하지 못했다약간의 성 평등 의식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약간의 타협도 할 수가 없었다고려할 처지도 없었다결론적으로 나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이 책이 ‘부모’를 위한 책임을 고려할 때 나는 벌써 적합하지 않은 독자인 셈이다.   
 
사실이런 비혼’ 이야기는 1장부터 6장까지의 대장정 중에 1장 만큼의 내용에 불과하다그러니 2장부터 6장까지의 강요된 모성이상적 육아유해하지만 유용한 사교육 내용은 내가 뼈저리게 실감하기에 어려운 것다만 간접 경험으로 실감할 수 있을 뿐이다간접 경험으로도 결혼과 육아는 숨이 턱턱 막힌다나 같은 이기적 인간개인주의자는 이미 일 년 만에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그래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게 결혼이지만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이제는 설마 자신이 없다하물며 이런 책이야… 더욱 겉돌 뿐내 처지가 1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거지 2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니다결혼과 육아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합리적 사고로 경험한 내용은 조목조목 훌륭하다특히 육아와 사교육으로 이어지는 분석들이 인상적이었다
 
번번이 느끼지만오찬호는 참 글을 잘 쓴다. ‘술술’ 읽히도록 글을 쓴다내가 우연히 그의 책을 읽어온 이유 중 절반은 그것일 듯대단하다늘 오찬호의 신작은 기대만큼이다. 이번에도 베리굿짱짱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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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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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에 대한 이야기다각자의 집을 회복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고 내려오는 이야기다목차는 단순하다먼저 1부 집을 잃다와 2부 집으로》 그리고 3부 세 이야기는 각각 1904년의 리스본, 1938년 포르투갈. 1981캐나다에서 시작되고 다른 부()의 장소를 스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다세 개의 이야기 사이에는 장소와 사람이라는 작은 연결고리가 있어 순차적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고미술 학예사 토마스두 번째 주인공인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세 번째 주인공인 상원 의원 피터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가 가정을 잃었다는 것특히 지극히 사랑하던 아들과 배우자(配偶者)를 잃었다는 것이다이 상실의 이야기로부터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시작되고 멋대로 흘러간다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를 잃고 신에게 대항하듯 거꾸로 걷는다이때 자기 마음을 알아줄 듯한 율리시스 신부의 기록물을 찾아낸다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그의 일기에는 빼곡히 이곳이 집이다라는 말이 적혔다그가 만든 십자고상은 어떠한가그는 이 보물을 찾아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거기 어디 숨어있을 십자고상을 찾기 위해아들을 잃은 토마스와 아들을 잃은 신과그리고 또 아들을 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거기 있다

노년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에게 찾아온 노년의 여인아들을 잃은 충격과 함께 얼마 전 죽은 자기 남편을 부검해달라고 온 여자의 요구는 낯설다왜 그는 이토록 기묘한 일을 해야만 하는가그 역시 상실의 사람이었다

피터는 40년간 함께한 아내를 잃고 아들조차 고난 가운데 편치 못한 상황이다상원 의원으로서 제 역할도 못할 정도로 멘탈이 망가져 어디론가 떠난다그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그러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있는 투이젤루에서 피터가 찾아낸 대상은 누구인가그가 마지막 편안히 정착할 집은 어디(누구)인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 주인공 셋에게 은 각각 사랑하는 이이며사랑하는 이를 완성하는 무엇이면서잃은 사랑 대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온기다
 
다시 그들의 가정(家庭)으로 돌아가자결혼은 자기 둥지를 만드는 것자기 집을 짓는 일이다언제나 내 마음을 안심하고 놓아둘 안전한 집을 짓는 것이다어느덧 결혼보다 동거로 시작하는 커플이 많아졌지만이제까지의 그 어느 시대보다 결혼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왔지만 그래도 나는 결혼만이 줄 수 있는 제약 하나가 아름답다고 믿는다아침이 되면 두 사람이 각자의 일터에 가서 헤어지고 자신의 삶을 살지만밤이 되면 그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것그것처럼 따뜻한 것이 없다
 
이 따뜻함을 잃었을 때어떤 사람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거기 가면 이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듯이누군가는 복수를 위해누군가는 회복을 위해누군가는 알 수 없는 이유로얀 마텔의 서사 기법을 굳이 이름하자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일 터이 때문에 이 소설은 상징으로 가득 차고 명확하지 않은 해석과 해석 사이에서 독자는 헤맨다착각과 또 다른 착각애매함 가운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안개처럼 뿌연 이야기 가운데 얽히고설킨 생과 사신과 신앙그리고 믿음사랑과 상실인간과 동물의 아이디어가 읽혔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로 오독(誤讀) 한 건지 좀 걱정된다그러나 잘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다운 것이 환상의 세계다잘못 해석해서 더 재미있는 것이 이러한 세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세 주인공에게 미지의 세계이며 환상의 장소다그러나 3부에서의 피터가 침팬지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올랐을 때 그는 의외로 실망한다거기 올라가 봐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그가 간절히 원한 것임이 분명한 일은 마침내 그곳에서야 일어난다그가 늘 오도와 산책하며 오르내리던 그곳에서
 
그렇다면 이것이 믿음인가간절한 소망나의 안식이 나의 일상 가운데 이루어지리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든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모든 죽음은 살해로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죠바로 자신의 죽음 말이에요그게 우리의 운명이에요.” 확실한 건 딱 하나이 운명뿐이다이 운명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도 믿음에도 슬프도록 절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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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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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은 한 번 스치기만 해도 벌건 상처를 입힌다내게는 비호감에 가까울 정도로 아픈 제목굳이 들추어보지 않아도 아이에게 남았을 끔찍한 상처를 읽는다역시 그렇다이 책의 주제는 아동 트라우마그중에서도 학대의 기억이다물론 작은 트라우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그러나 영아기와 아동기는 결정적 시기다이 시기에 인체는 급성장을 이룬다그 몸에 지령을 내리는 뇌 역시도
 
개로 길러진 아이는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아동 트라우마 아카데미 선임 연구원인 브루스 페리가 자신의 임상 케이스를 엮은 책으로뇌과학을 근거로 한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끔찍한 체험으로 이미 변형되거나 미성숙한 아이의 뇌는 차후에 교정하기가 너무나 어렵다이전의 학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공격적회피성 행동을 보였고특히 방치 아동은 감정의 교류가 불가능한 부작용을 보였다심각한 경우에는 의학적 치료나 교정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뇌가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번번이 자극적인 용어에 시선이 걸린다. ‘소시오패스’ 이들의 지적 능력은 대개 뛰어나다사회적 상호작용을 쉽게 기억한다겉으로 보기에 사회생활을 잘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오직 이득만을 계산할 뿐이다이 이득이 그들을 휘두를 때 사람을 끔찍하게 해치기도 한다이들은 현재의 과학심리학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아이의 뇌 성장에는 생후 3결정적 시기가 중요하다.’ 생후 3년간 성인 두뇌의 85퍼센트까지 자라나는 이 뇌는 이 시기 적절한 자극을 순차적으로 받지 못하면 들쑥날쑥 불완전하게 자라날 뿐이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교과서적 지식이란 말이 정확한 게실제로 나는 이 정보를 가정 교과서를 통해 배웠으며 이후 삼십 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이 지식은 명확하나 내 반응은 어떠한가나 역시도 가끔 묻는다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거지왜 이렇게 외로워하는 거지왜 이렇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거지왜 이 말에 필요 이상으로 상처 입는 거지왜 저 말에 욱하는 거지… 물 흐르듯 살아가다가 편안함 대신 툭거슬리는 어떤 반응이 뛰어나올 때 나는 묻는다나에게 이와 관련된 상처가 있었던가?
 
비교적 평탄한 환경에서 자라난 나조차도 겪어온 크고 작은 상처를 확인한다그러니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어떠할까브루스 페리가 만난 아이들은 어렵게 상담을 결정한다그들에게 치료를 결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의사조차도 신뢰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그나마 이 임상 사례에 실린 아동들은 대부분 성공 케이스다기를 쓰며 자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은 완벽히 편안해질 수 없다불에 덴 듯한 고통이 뜨끔한 고통으로 줄어들 뿐이다언제나별수 없이, 평생 자기 상처를 확인하며 살아가야 한다그런 그들에게 사회적 관계에서 보통의 반응을 기대하는 게 정당할 리 없다그걸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그러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그들의 이마에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그러니 정답은 하나다그저 일단 따뜻할 뿐그 누구라도
 
우리는 늘 급하다먹고사는 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도책을 덮으며 나는 내 마음도 먼저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있다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수이 아물지 않는다뇌의 푹 꺼진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나에게나 타인에게나 차근차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지금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천천히원래 그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한 것은 하나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따뜻한 울타리와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고 싶다는 것뿐아이거나 어른이거나 어떤 방식으로건 내가 결정한 관계라면 그렇게 해 주고 싶다나 하나라도 그런 환경이 되어 주고 싶다나 하나라도 백 명의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이 되어 주고 싶다이 마음이 거짓이지 않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나는 이 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가장 좋은 치료는 치료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대신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치료사와 아이숙모와 겁에 질린 소녀조용한 텍사스 경찰과 흥분하기 쉬운 소년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다윗 파의 악몽 후 가장 회복이 빨랐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은 아이도수용소에서 우리와 가장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도 아니었다바로 사건 후 가장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으로 가게 된 아이였다그것이 여전히 다윗 파의 방식을 믿는 가족이든 코레시를 완전히 배척하는 보호자든 마찬가지였다사실 심각한 트라우마 피해 아동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아이의 삶에서 관계와 질의 수를 증가시켜 주는 것이다또한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심지어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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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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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디낡은 누런 표지를 한 지와 사랑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서재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둥지를 틀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데미안보다 먼저 내 손에 쥐인 헤세의 책. 당시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고려하던 내게 이보다 더 먹음직한 책이 있었으려나. 초반부는 밋밋했고 중반부는 힘겨웠으며 후반부가 놀라웠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후반부 대화들이 예리했다. ‘이런 게 예술인가?’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원래 제목이 내 기억을 일깨우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3일 출장의 밤, 서늘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번역의 문제였을까, 편집의 문제일까. 같은 원본을 어떻게 어레인지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알맹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름답다, 반짝인다. 너무나 미묘하다고 탄식하며 책장을 덮었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수도 중인 나르치스는 젊은 골드문트를 만나 바로 알아본다, 그와 자신은 동지(同志)라는 것을. 두 사람은 각기 이성과 열정으로 대비되는 인간이었으나, 둘 다 고귀한 성품을 지니고 재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운명이 선택한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재능은 칼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각기 다른 재능을 주지만 이 재능이 칼이라는 속성은 다르지 않다. 재능있는 인간은 이 칼을 다루어야 하기에 아프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피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재능이다. 그러기에 재능이 큰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러므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르치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기 자신의 숙명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숙명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사람의 영혼을 잘 읽어내는 나르치스는 이 친구가 자기 인생의 한 토막을 잃어버린 그런 유형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P.67)” 그러니 골드문트의 진실을 안 이상 그를 그냥 둘 수 없다. 골드문트가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를 일러줄 수밖에. 이에 모르고 있던 골드문트의 감각은 열린다. 골드문트는 풍부한 감성과 영혼을 타고난 강한 인간에게 볼 수 있는 온갖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가의 기질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어떻든 골드문트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타고난 존재였기에 쉽사리 불붙고 자신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운명이자 행운이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었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타고난 그는 꽃향기라든가 떠오르는 태양, 말이나 새의 비상, 음악 같은 것을 너무나 깊이 체험하고 사랑할 줄 알았다.(P.61)”
 
골드문트는 떠난다. 본성을 시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감각의 극한을 실험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여자를 만나고 희롱하며 사랑의 달콤함을 따먹고 죽음과 비참과 좌절을 경험한다. 방탕과 자유를 기뻐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기사의 성에서 머물다 유혹한 큰딸 리디아와 작은딸 율리아의 이야기, 거절된 쾌락을 경험한 이야기가 골드문트 방랑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번에도 나는 이 부분이 불편했다. 그가 건드리고 떠난 여자들의 이후 모습은 어땠을지, 가부장에게 학대당하지는 않았을지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 안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없을 때에도 뮤즈의 존재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의 누가 내게 뮤즈가 되어주기를 청했을 때의 불쾌함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불편해했다. 물론 골드문트가 남성으로 설정된 인물이어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유혹하고 실망하고 떠나버리고 경멸하는 대상이 너무 많은 수의 여성이었을 때, 이 짧은 시간의 만남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무리 시대나 설정의 한계라 해도, 비유나 상징으로서의 의미라 해도 여성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나중에 골드문트가 만드는 예술 작품의 뮤즈로 여성이 소비된 건 아니냐는 항의를 자신 없는 목소리로 지른다.
 
역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최고의 아름다움은 후반부다. 만신창이가 된 골드문트를 구하러 온 나르치스, 수도원장이 되어 그에게 예술작품을 만들 환경을 마련해주는 나르치스. 그는 예술 자체에 복종했다. 예술은 얼핏 보면 정신계의 여왕 같지만, 실은 하찮은 것들을 너무 많이 필요로 했다. 예술을 하려면 안정된 작업 공간이 있어야 했고, 작업 도구와 목재, , 물감 따위가 필요했으며, 노동과 인내가 요구되었다. 그는 숲에서 누리던 거친 자유를 예술에 바쳤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 위험을 즐기는 짜릿한 쾌감, 안빈낙도의 자부심을 모두 바쳤다. 그러고도 그는 숨을 죽이고 화를 삭이며 자꾸만 새 제물을 바쳐야만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골드문트지만, 그렇기에 나르치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나르치스 없이는 골드문트는 놀라운 결실을 맺지 못했을 터이므로. 예술가의 삶은 세상에서 유리하다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실 파악에 능한 스폰서가 꼭 필요하다. 나르치스같은 든든한 보호자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나르치스의 섬세한 질문에 골드문트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견고히 정립해 간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어느 것 하나 줄 긋지 않을 곳이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정확히 인식하지 않았지만, 서로 만나지 않았던 시간에도 그들은 서로 생각하며 서로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도록 살아왔다. 존재만으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사람. 그게 그들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자네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네의 학식 때문이 아니라 평정한 마음 때문일세. 자네의 초연함과 평화가 부럽네.”
나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 골드문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아. 물론 평화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그런데 자네는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공부할 때 싸우는 모습도, 기도실에서 싸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 자네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은 좋아.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자네의 경우도 그래.” (P.446)
 
골드문트처럼 살기 바랐지만 그리 못할 거였다면 차라리 나르치스처럼 살아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헤세의 예술론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진짜 예술은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헤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골드문트의 삶을 옹호하고 있지만, 한편 나는 나르치스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 역시 같은 본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기를 쓰고 감추며 투쟁한 사람. 공부실에서 기도실에서 입을 꾹꾹 틀어막으며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투쟁이 예술을 얻으려는 감각의 투쟁, 선을 넘기는 모험보다 어찌 부족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져버린 골드문트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자신이 끝내 갖지 못할 것에 전혀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 그릇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관점,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관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간과 운명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인간은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고, 그리스어를 배우며, 관능을 억제하고, 속세에서 달아나도록 창조되었는가? 애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쾌락과 본능, 핏빛으로 물든 악, 죄와 육욕, 절망에 빠지는 천성으로 창조하신 것은 아닐까?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수도원장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어쩌면 골드문트의 삶이 더 유치하다거나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실제 세상에서 발을 빼고 깨끗한 삶을 살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상의 화원을 꾸며 놓고 안전한 화단 사이로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거니는 것보다, 어쩌면 차라리 현실의 고통스러운 흐름과 혼돈에 빠져들어 죄를 범하고 그 쓰라린 결과를 받아들이는 편이 결국 더 용감하고 숭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덜거리는 신발을 신은 채 숲 속을 헤매며 큰길을 따라 걷고, 햇볕을 쬐고 비를 맞으면서 배고픔과 가난에 절어 시달리기도 하고, 쾌락의 기쁨에 차서 즐기다가는 고통스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고 더 용감하며 더 숭고한 것이리라.
 
고귀한 일을 해낼 운명의 인간은 인생의 피비린내 나고 혼돈스런 세상 밑바닥 깊숙이 빠져들어 먼지와 피가 잔뜩 묻어 더러워지더라도 하찮아지거나 저속해지지 않고, 자기 내부의 신성한 불꽃을 꺼뜨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골드문트의 영혼에서는 성스러운 불빛과 창조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승자는 나르치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애초에 하느님은 인간을 육욕과 애욕에 빠지는 존재로 만들었다. 죄에 절어 쾌락에 탐닉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몇몇만이 예술가가 된다. 그건 선택된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다. 그런 골드문트의 종점이 되어준 건 나르치스뿐이었다, 그는 죽음에 가까이 간 골드문트가 만든 조각 앞에서 자기가 추구하던 진리가 예술로 다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친구에게 감탄한다. ()도 사랑도 하나가 되었다. 골드문트는 떠나고 마지막은 나르치스가 남았다. 

그러나 무엇이라 말해도 너무나 슬프다. 나는 합일하기는커녕 지()에도 사랑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인간, 모든 것이 네 선택이었다 혹은 네 운명이었다 말해도 슬프기 그지없다. 나는 이 정도의 인간임에 비참하지만 한편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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