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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빨강은 없다 -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고 32
김경서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중등교사로 일하면서 제일 곤란한 지점이 이렇다 할 미술 교양서가 없다는 거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 미술 교양서가 여럿 있지만 대부분 미술사의 흐름을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친다. 미술 ‘지식’이 아니라 미술 ‘관점’을 알려주는 책은 그간 전무했다.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볼까? 시도한 바가 있지만 결과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아직 내 안목이 부족해서인지 ‘관점’을 조목조목 글로 설명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중등미술교육연구회 카톡 창이 들썩들썩했다. 카톡 프로필로만 알고 있는 ‘높은 미술 교사’ 불광중학교 김경서 선생님이 새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링크에서 서평단 신청을 했다. 어서 읽고픈 마음과 달리 책은 빨리 오지 않았다. 각대 봉투 한 장뿐인 부실한 포장 덕에 상단 표지가 찍혀 찌그러졌지만 빨간 쇠라 그림 표지가 참 예뻤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모두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2장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3장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미술교육과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개의 분류가 국민공통기본 교육 미술교육과정의 《체험》, 《표현》, 《감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책은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하다.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분절된 교과서 이미지와 정보가 아니라, 교과서 안을 잇는 뼈대 이론이 책 내부를 관통한다. 즉, ‘흐름’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정보도 담겨 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회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교사와 학생 ‘보라’의 대화를 통해 이 기회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미술교사라면 누구든 속터져하는 “저는 미술에 재능이 없어요” 폭격에 속시원한 대응을 조목조목 서술해두신 것.
“선생님이 만난 청소년들 중에는 자신이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어. 나는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워. 소질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뛰어난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 ‘소질’의 한자는 흴 소(素)에 바탕 질(質)로 꾸미지 않은 바탕 그대로의 성질을 의미해. 그러니까 소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을 말하는 거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소질을 어떻게 온전히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어. 소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더구나 지금은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시대잖아.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거야.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시 베테랑 선배가 최고다, 진짜진짜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