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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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에 대한 이야기다각자의 집을 회복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고 내려오는 이야기다목차는 단순하다먼저 1부 집을 잃다와 2부 집으로》 그리고 3부 세 이야기는 각각 1904년의 리스본, 1938년 포르투갈. 1981캐나다에서 시작되고 다른 부()의 장소를 스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다세 개의 이야기 사이에는 장소와 사람이라는 작은 연결고리가 있어 순차적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고미술 학예사 토마스두 번째 주인공인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세 번째 주인공인 상원 의원 피터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가 가정을 잃었다는 것특히 지극히 사랑하던 아들과 배우자(配偶者)를 잃었다는 것이다이 상실의 이야기로부터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시작되고 멋대로 흘러간다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를 잃고 신에게 대항하듯 거꾸로 걷는다이때 자기 마음을 알아줄 듯한 율리시스 신부의 기록물을 찾아낸다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그의 일기에는 빼곡히 이곳이 집이다라는 말이 적혔다그가 만든 십자고상은 어떠한가그는 이 보물을 찾아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거기 어디 숨어있을 십자고상을 찾기 위해아들을 잃은 토마스와 아들을 잃은 신과그리고 또 아들을 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거기 있다

노년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에게 찾아온 노년의 여인아들을 잃은 충격과 함께 얼마 전 죽은 자기 남편을 부검해달라고 온 여자의 요구는 낯설다왜 그는 이토록 기묘한 일을 해야만 하는가그 역시 상실의 사람이었다

피터는 40년간 함께한 아내를 잃고 아들조차 고난 가운데 편치 못한 상황이다상원 의원으로서 제 역할도 못할 정도로 멘탈이 망가져 어디론가 떠난다그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그러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있는 투이젤루에서 피터가 찾아낸 대상은 누구인가그가 마지막 편안히 정착할 집은 어디(누구)인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 주인공 셋에게 은 각각 사랑하는 이이며사랑하는 이를 완성하는 무엇이면서잃은 사랑 대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온기다
 
다시 그들의 가정(家庭)으로 돌아가자결혼은 자기 둥지를 만드는 것자기 집을 짓는 일이다언제나 내 마음을 안심하고 놓아둘 안전한 집을 짓는 것이다어느덧 결혼보다 동거로 시작하는 커플이 많아졌지만이제까지의 그 어느 시대보다 결혼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왔지만 그래도 나는 결혼만이 줄 수 있는 제약 하나가 아름답다고 믿는다아침이 되면 두 사람이 각자의 일터에 가서 헤어지고 자신의 삶을 살지만밤이 되면 그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것그것처럼 따뜻한 것이 없다
 
이 따뜻함을 잃었을 때어떤 사람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거기 가면 이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듯이누군가는 복수를 위해누군가는 회복을 위해누군가는 알 수 없는 이유로얀 마텔의 서사 기법을 굳이 이름하자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일 터이 때문에 이 소설은 상징으로 가득 차고 명확하지 않은 해석과 해석 사이에서 독자는 헤맨다착각과 또 다른 착각애매함 가운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안개처럼 뿌연 이야기 가운데 얽히고설킨 생과 사신과 신앙그리고 믿음사랑과 상실인간과 동물의 아이디어가 읽혔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로 오독(誤讀) 한 건지 좀 걱정된다그러나 잘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다운 것이 환상의 세계다잘못 해석해서 더 재미있는 것이 이러한 세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세 주인공에게 미지의 세계이며 환상의 장소다그러나 3부에서의 피터가 침팬지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올랐을 때 그는 의외로 실망한다거기 올라가 봐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그가 간절히 원한 것임이 분명한 일은 마침내 그곳에서야 일어난다그가 늘 오도와 산책하며 오르내리던 그곳에서
 
그렇다면 이것이 믿음인가간절한 소망나의 안식이 나의 일상 가운데 이루어지리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든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모든 죽음은 살해로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죠바로 자신의 죽음 말이에요그게 우리의 운명이에요.” 확실한 건 딱 하나이 운명뿐이다이 운명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도 믿음에도 슬프도록 절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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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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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은 한 번 스치기만 해도 벌건 상처를 입힌다내게는 비호감에 가까울 정도로 아픈 제목굳이 들추어보지 않아도 아이에게 남았을 끔찍한 상처를 읽는다역시 그렇다이 책의 주제는 아동 트라우마그중에서도 학대의 기억이다물론 작은 트라우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그러나 영아기와 아동기는 결정적 시기다이 시기에 인체는 급성장을 이룬다그 몸에 지령을 내리는 뇌 역시도
 
개로 길러진 아이는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아동 트라우마 아카데미 선임 연구원인 브루스 페리가 자신의 임상 케이스를 엮은 책으로뇌과학을 근거로 한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끔찍한 체험으로 이미 변형되거나 미성숙한 아이의 뇌는 차후에 교정하기가 너무나 어렵다이전의 학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공격적회피성 행동을 보였고특히 방치 아동은 감정의 교류가 불가능한 부작용을 보였다심각한 경우에는 의학적 치료나 교정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뇌가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번번이 자극적인 용어에 시선이 걸린다. ‘소시오패스’ 이들의 지적 능력은 대개 뛰어나다사회적 상호작용을 쉽게 기억한다겉으로 보기에 사회생활을 잘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오직 이득만을 계산할 뿐이다이 이득이 그들을 휘두를 때 사람을 끔찍하게 해치기도 한다이들은 현재의 과학심리학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아이의 뇌 성장에는 생후 3결정적 시기가 중요하다.’ 생후 3년간 성인 두뇌의 85퍼센트까지 자라나는 이 뇌는 이 시기 적절한 자극을 순차적으로 받지 못하면 들쑥날쑥 불완전하게 자라날 뿐이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교과서적 지식이란 말이 정확한 게실제로 나는 이 정보를 가정 교과서를 통해 배웠으며 이후 삼십 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이 지식은 명확하나 내 반응은 어떠한가나 역시도 가끔 묻는다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거지왜 이렇게 외로워하는 거지왜 이렇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거지왜 이 말에 필요 이상으로 상처 입는 거지왜 저 말에 욱하는 거지… 물 흐르듯 살아가다가 편안함 대신 툭거슬리는 어떤 반응이 뛰어나올 때 나는 묻는다나에게 이와 관련된 상처가 있었던가?
 
비교적 평탄한 환경에서 자라난 나조차도 겪어온 크고 작은 상처를 확인한다그러니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어떠할까브루스 페리가 만난 아이들은 어렵게 상담을 결정한다그들에게 치료를 결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의사조차도 신뢰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그나마 이 임상 사례에 실린 아동들은 대부분 성공 케이스다기를 쓰며 자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은 완벽히 편안해질 수 없다불에 덴 듯한 고통이 뜨끔한 고통으로 줄어들 뿐이다언제나별수 없이, 평생 자기 상처를 확인하며 살아가야 한다그런 그들에게 사회적 관계에서 보통의 반응을 기대하는 게 정당할 리 없다그걸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그러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그들의 이마에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그러니 정답은 하나다그저 일단 따뜻할 뿐그 누구라도
 
우리는 늘 급하다먹고사는 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도책을 덮으며 나는 내 마음도 먼저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있다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수이 아물지 않는다뇌의 푹 꺼진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나에게나 타인에게나 차근차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지금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천천히원래 그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한 것은 하나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따뜻한 울타리와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고 싶다는 것뿐아이거나 어른이거나 어떤 방식으로건 내가 결정한 관계라면 그렇게 해 주고 싶다나 하나라도 그런 환경이 되어 주고 싶다나 하나라도 백 명의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이 되어 주고 싶다이 마음이 거짓이지 않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나는 이 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가장 좋은 치료는 치료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대신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치료사와 아이숙모와 겁에 질린 소녀조용한 텍사스 경찰과 흥분하기 쉬운 소년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다윗 파의 악몽 후 가장 회복이 빨랐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은 아이도수용소에서 우리와 가장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도 아니었다바로 사건 후 가장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으로 가게 된 아이였다그것이 여전히 다윗 파의 방식을 믿는 가족이든 코레시를 완전히 배척하는 보호자든 마찬가지였다사실 심각한 트라우마 피해 아동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아이의 삶에서 관계와 질의 수를 증가시켜 주는 것이다또한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심지어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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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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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디낡은 누런 표지를 한 지와 사랑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서재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둥지를 틀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데미안보다 먼저 내 손에 쥐인 헤세의 책. 당시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고려하던 내게 이보다 더 먹음직한 책이 있었으려나. 초반부는 밋밋했고 중반부는 힘겨웠으며 후반부가 놀라웠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후반부 대화들이 예리했다. ‘이런 게 예술인가?’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원래 제목이 내 기억을 일깨우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3일 출장의 밤, 서늘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번역의 문제였을까, 편집의 문제일까. 같은 원본을 어떻게 어레인지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알맹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름답다, 반짝인다. 너무나 미묘하다고 탄식하며 책장을 덮었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수도 중인 나르치스는 젊은 골드문트를 만나 바로 알아본다, 그와 자신은 동지(同志)라는 것을. 두 사람은 각기 이성과 열정으로 대비되는 인간이었으나, 둘 다 고귀한 성품을 지니고 재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운명이 선택한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재능은 칼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각기 다른 재능을 주지만 이 재능이 칼이라는 속성은 다르지 않다. 재능있는 인간은 이 칼을 다루어야 하기에 아프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피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재능이다. 그러기에 재능이 큰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러므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르치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기 자신의 숙명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숙명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사람의 영혼을 잘 읽어내는 나르치스는 이 친구가 자기 인생의 한 토막을 잃어버린 그런 유형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P.67)” 그러니 골드문트의 진실을 안 이상 그를 그냥 둘 수 없다. 골드문트가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를 일러줄 수밖에. 이에 모르고 있던 골드문트의 감각은 열린다. 골드문트는 풍부한 감성과 영혼을 타고난 강한 인간에게 볼 수 있는 온갖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가의 기질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어떻든 골드문트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타고난 존재였기에 쉽사리 불붙고 자신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운명이자 행운이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었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타고난 그는 꽃향기라든가 떠오르는 태양, 말이나 새의 비상, 음악 같은 것을 너무나 깊이 체험하고 사랑할 줄 알았다.(P.61)”
 
골드문트는 떠난다. 본성을 시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감각의 극한을 실험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여자를 만나고 희롱하며 사랑의 달콤함을 따먹고 죽음과 비참과 좌절을 경험한다. 방탕과 자유를 기뻐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기사의 성에서 머물다 유혹한 큰딸 리디아와 작은딸 율리아의 이야기, 거절된 쾌락을 경험한 이야기가 골드문트 방랑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번에도 나는 이 부분이 불편했다. 그가 건드리고 떠난 여자들의 이후 모습은 어땠을지, 가부장에게 학대당하지는 않았을지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 안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없을 때에도 뮤즈의 존재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의 누가 내게 뮤즈가 되어주기를 청했을 때의 불쾌함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불편해했다. 물론 골드문트가 남성으로 설정된 인물이어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유혹하고 실망하고 떠나버리고 경멸하는 대상이 너무 많은 수의 여성이었을 때, 이 짧은 시간의 만남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무리 시대나 설정의 한계라 해도, 비유나 상징으로서의 의미라 해도 여성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나중에 골드문트가 만드는 예술 작품의 뮤즈로 여성이 소비된 건 아니냐는 항의를 자신 없는 목소리로 지른다.
 
역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최고의 아름다움은 후반부다. 만신창이가 된 골드문트를 구하러 온 나르치스, 수도원장이 되어 그에게 예술작품을 만들 환경을 마련해주는 나르치스. 그는 예술 자체에 복종했다. 예술은 얼핏 보면 정신계의 여왕 같지만, 실은 하찮은 것들을 너무 많이 필요로 했다. 예술을 하려면 안정된 작업 공간이 있어야 했고, 작업 도구와 목재, , 물감 따위가 필요했으며, 노동과 인내가 요구되었다. 그는 숲에서 누리던 거친 자유를 예술에 바쳤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 위험을 즐기는 짜릿한 쾌감, 안빈낙도의 자부심을 모두 바쳤다. 그러고도 그는 숨을 죽이고 화를 삭이며 자꾸만 새 제물을 바쳐야만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골드문트지만, 그렇기에 나르치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나르치스 없이는 골드문트는 놀라운 결실을 맺지 못했을 터이므로. 예술가의 삶은 세상에서 유리하다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실 파악에 능한 스폰서가 꼭 필요하다. 나르치스같은 든든한 보호자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나르치스의 섬세한 질문에 골드문트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견고히 정립해 간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어느 것 하나 줄 긋지 않을 곳이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정확히 인식하지 않았지만, 서로 만나지 않았던 시간에도 그들은 서로 생각하며 서로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도록 살아왔다. 존재만으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사람. 그게 그들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자네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네의 학식 때문이 아니라 평정한 마음 때문일세. 자네의 초연함과 평화가 부럽네.”
나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 골드문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아. 물론 평화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그런데 자네는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공부할 때 싸우는 모습도, 기도실에서 싸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 자네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은 좋아.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자네의 경우도 그래.” (P.446)
 
골드문트처럼 살기 바랐지만 그리 못할 거였다면 차라리 나르치스처럼 살아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헤세의 예술론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진짜 예술은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헤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골드문트의 삶을 옹호하고 있지만, 한편 나는 나르치스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 역시 같은 본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기를 쓰고 감추며 투쟁한 사람. 공부실에서 기도실에서 입을 꾹꾹 틀어막으며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투쟁이 예술을 얻으려는 감각의 투쟁, 선을 넘기는 모험보다 어찌 부족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져버린 골드문트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자신이 끝내 갖지 못할 것에 전혀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 그릇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관점,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관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간과 운명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인간은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고, 그리스어를 배우며, 관능을 억제하고, 속세에서 달아나도록 창조되었는가? 애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쾌락과 본능, 핏빛으로 물든 악, 죄와 육욕, 절망에 빠지는 천성으로 창조하신 것은 아닐까?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수도원장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어쩌면 골드문트의 삶이 더 유치하다거나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실제 세상에서 발을 빼고 깨끗한 삶을 살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상의 화원을 꾸며 놓고 안전한 화단 사이로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거니는 것보다, 어쩌면 차라리 현실의 고통스러운 흐름과 혼돈에 빠져들어 죄를 범하고 그 쓰라린 결과를 받아들이는 편이 결국 더 용감하고 숭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덜거리는 신발을 신은 채 숲 속을 헤매며 큰길을 따라 걷고, 햇볕을 쬐고 비를 맞으면서 배고픔과 가난에 절어 시달리기도 하고, 쾌락의 기쁨에 차서 즐기다가는 고통스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고 더 용감하며 더 숭고한 것이리라.
 
고귀한 일을 해낼 운명의 인간은 인생의 피비린내 나고 혼돈스런 세상 밑바닥 깊숙이 빠져들어 먼지와 피가 잔뜩 묻어 더러워지더라도 하찮아지거나 저속해지지 않고, 자기 내부의 신성한 불꽃을 꺼뜨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골드문트의 영혼에서는 성스러운 불빛과 창조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승자는 나르치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애초에 하느님은 인간을 육욕과 애욕에 빠지는 존재로 만들었다. 죄에 절어 쾌락에 탐닉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몇몇만이 예술가가 된다. 그건 선택된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다. 그런 골드문트의 종점이 되어준 건 나르치스뿐이었다, 그는 죽음에 가까이 간 골드문트가 만든 조각 앞에서 자기가 추구하던 진리가 예술로 다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친구에게 감탄한다. ()도 사랑도 하나가 되었다. 골드문트는 떠나고 마지막은 나르치스가 남았다. 

그러나 무엇이라 말해도 너무나 슬프다. 나는 합일하기는커녕 지()에도 사랑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인간, 모든 것이 네 선택이었다 혹은 네 운명이었다 말해도 슬프기 그지없다. 나는 이 정도의 인간임에 비참하지만 한편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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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9
생 텍쥐페리 지음, 윌리엄 리스 해설,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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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생텍쥐페리는 딱 한 가지 이유로 내게 특별한 작가다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본업인 비행기 조종에 충실했다는 것살거나 죽거나 조종사로 살았고하늘을 나는 모든 순간으로 글을 썼다는 것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작가로 기억된다는 것이 생텍쥐페리의 특별함이다그는 젊은 군인으로 중년의 직장인으로처음부터 끝까지 비행기 조종사로 살았다.나는 이런 (바쁘고 복잡한이중생활 작가들을 사랑한다인간의 대지에서는 그가 하늘을 나는 직업인으로서’ 무엇을 가장 많이 고려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누군가는 1939년 발표한 인간의 대지가 1943년 발표한 『어린왕자』를 쓰기 위한 전단계라고 하지만나는 인간의 대지야말로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으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무엇보다 작가 개인의 인간성과 인간애를 잘 드러낸 작품이므로생텍쥐페리는 1장부터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사랑하던 동료 메르모스의 연락이 끊어졌을 때그가 억지로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두려움찬찬히 스며드는 가슴 아리는 슬픔우리가 언젠가 비밀스러운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하는 기대죽은 줄 알았던 기요메가 돌아왔을 때의 놀라움과 환희미래를 걱정하는 사랑에 대한 경이. ‘바로 이곳’에만 발견할 수 있는 일시적 순간그 모든 예리한 감각들을 생텍쥐페리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비행이란 지금도 위험한 직업 중 제일이다툭하면 연료가 부족하고 엔진이 부실해 멈추곤 했던 예전에는 더 치명적으로 위험하지 않았을까실제 젊은 날 생텍쥐페리의 파혼은 그의 비행 직업 때문이었다고 한다두려움을 안고 돌아올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비행을 오르는 그와어려움을 피했을 때 살아있음의 확신과 돌아왔을 때의 기쁨그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를 재회한다는 감격어쩌면 이건 마약처럼 짜릿한 살아있다는 감각이 아니었을까
 
귀족 태생 오만한 생텍쥐페리는 비행을 거듭하면서 겸손해졌겠지만 한편으로는 더 고립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직 홀로 할 수밖에 없는 비행두려움과 고독과 위험과 죽음의 선 가운데를 오가는 이 특별한 직업을 같이 한다 해도 각자는 모두 다르게 변화한다다만 단 하나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한다우정도 사랑도 내일 모를 순간을 귀하게 여겼을 것이다. 실제 에피소드의 곳곳에는 이곳 사막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리와 풍요로움, 침묵, 바람과 별의 나라를 여러 번 언급한다.  

 생텍쥐페리의 담담한 문장을 곳곳이 아름답지만,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와 별 사이에 빈 몸으로 내던져진’ 그가 동료 프레보와 생을 버티며, 말 못하는 사막여우와 이야기를 나눈, 극한의 한계 앞에서 사람 발자국을 찾은 극적인 이야기가 이 책의 메인(7장)이겠지만. (생텍쥐페리가 거기서 살아돌아온 걸 이미 알고 있어서겠지만서도) 인간의 대지』에서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한 에피소드는 역시 (생텍쥐페리보다 먼저 실종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기요메의 이야기였다. 포기하고(죽고) 싶었지만, 아내와 동료를 생각해서 끝까지 살기로 심장을 움직이는. 

 눈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이틀사흘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나도 그랬어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나는 아내를 생각했네내 보험증서가 있으니 아내는 가난을 면하겠지아무렴그런데 보험이…….” 실종의 경우법률상 사망은 4년 후로 연기되네이 사실이 여타 환영을 지워 없애고 번쩍하며 떠오른 거야그런데 그때 자네는 급경사진 눈밭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어여름이 오면 자네 몸뚱이는 진흙에 뒤섞여 안데스산맥의 수많은 크레바스 중 하나로 굴러떨어지겠지자네는 그 점을 알고 있었어하지만 자네는 바위 하나가 전방 50미터에 솟아 있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지. “나는 생각했네. ‘만약 내가 다시 일어나면 저기까지 갈 수 있을지 몰라그리고 저 돌덩어리에 내 몸을 기대두면 여름이 왔을 때 사람들이 날 발견하게 될 테지.’라고.” 
 
난 말이지비행을 하면서도 그때만큼그 몇 분 동안 내 심장에 매달렸던 그 순간만큼 엔진에 바짝 매달린 적이 없었다네한 번도단 한 번도나는 심장에게 말했지. ‘조금만 더 노력해 봐조금만 더 뛰어보란 말이야…….’ 그런데 내 심장은 정말 대단했다네멈칫하다가도 언제나 다시 뛰기 시작했거든……내가 이 심장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자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이 생에 확실한 건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희한하리만치 운이 따라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는 말. 저자의 마음은 그가 사랑한 별처럼 약간 차갑고, 천천히 반짝거리며, 굉장히 아름답다

물론 책의 말미에서 생텍쥐페리는 무엇보다 감탄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터전을 만들어준 대지라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붙여본다. ‘인간의 대지가 아니라 인간과 대지는 어떠한가이 책에는 인간과 대지가 모두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인간의 대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다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역시 대지(진흙)이 인간보다 딱히 중요하지 않다.  책을 읽다보면 높고 깊은 하늘이드넓은 대지가거대한 세상이 인간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 이 책의 부제는 ‘바람과 모래와 별’이다. 대지와 대지를 비추는 빛이 인간을 감싼다.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한낱 작은 인간일 뿐이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일 뿐인간은언제 꺼질지 모르도록 명멸(明滅)하는 별빛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저는 당신을 잘 알아요당신의 갈망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강해서 당신이 떠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당신은 총알과 포탄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깨끗해지기를 바라죠.”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에 참가하는 생텍쥐페리를 배웅하며 아내인 콩쉬엘로는 이렇게 말했다나를 잃지 마세요당신을 잃어서는 안 돼요.” 1944년 7월 31그날 생텍쥐페리를 태운 비행기 ‘P38라이트닝은 생존신고를 보내지 못한다그의 마지막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대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마지막 마음만큼은 조금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대지로 돌아갔다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는 이미 오랫동안 그래왔기에 따로 결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분명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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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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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독서모임 덕에 오래된 책들을 다시 펼쳐본다어떻게 해도 손이 가지 않는 고전을 다시혹은 억지로 읽을 수 있다니 복된 일이다대지인간의 대지죄와 벌도 좋았지만 성장소설의 대명사고등학생 때 읽었던 데미안의 충격이 초로(初老)의 나이에 가까워진 이제는 경이로 다가온다열여섯의 나는 데미안을 읽고서도 내내 모범생이었다밍밍한 듯 싶어 조금 덧붙이자면 끼가 넘치는’ 모범생데미안이 장교로 복무하며 사회에서 적당히 섞여주고 싶어했듯 나 역시 그러했다내 생각을 주장하고 행동하고 튀면 귀찮을 게 뻔했다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고 뛰어난 손재주를 감추지 않았다공부도 꽤 잘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예의도 바른 척 했다질투도 받아 괴롭히는 이들도 많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어디에나 잘난 존재로 있고 싶었다누구든 나를 만나면 수이 잊지 못했다. 내면 역시 거대한 존재여야 했지만 외면마저도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간으로 있고 싶었다그래서일까나는 내면 외면 모두 실패한 어른으로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을 에밀 싱클레어에 대입할 것이다한 사람의 성장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성숙하다우습다평생 그의 친구인 막스 데미안은 너무너무너무너무나 성숙하다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싱클레어다노년이 되어도 내가 데미안 같다거나 에바 부인 같다는 자뻑을 요만큼도 가질 수 없을 거다이번 생은 망했지만 그게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건 왜일까나는 주제 파악을 제일 잘 하는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웃픈 대답일까
 
동양사상특히 인도에 관심이 많았다는 헤세의 취향은 데미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유명해진 건 처음부터 끝까지 헤르만 헤세 덕이다왜 예민한 사람에게 인생의 우여곡절은 더 여러 번 겹치고 또 겹칠까운명이 잔인하고 생이 기구하다는 생각은 더 굳건해진다자살 시도사회성 부족, 1차 세계대전아버지 사망정신분열증 아내몇 번의 이혼아들의 뇌막염 고통 등 하나만 해도 견디기 힘들 예민종자 헤세에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시련이다당연히 모든 걸 끊고 싶었을 것이고인간의 운명을 원망하고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며보이지 않은 정신세계에 구석구석 들어가 헤매고 또 헤맸을 것이다며칠 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흔적도 떠오른다모순과 모순을 말하는 데미안의 세계는나의 세계에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하는 모순(矛盾)’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모순을 알아도 모른 척’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모순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데미안을 읽고 가슴이 뛰었던 청소년 중에 어른이 되어 데미안을 다시 펼치는 사람 중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라면 개중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우리가 더는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실제로 우리 모두를 제각기 단 한 방의 총알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다면이야기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장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한때 내 가슴을 총알로 뻥 뚫었다이제는 나를 힘없게 한다이십 년간 나는 저 말과는 가장 반대편에서 무엇보다 멍청하게 살았다그렇다고 이제 저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두렵다.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 정말 있을까용기 있는 사람은 그 길을 찾아 헤맨다나처럼 용기 없는 사람은 그 길을 이미애저녁에 포기한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요구와 주변 세계가 가장 가혹하게 갈등을 빚는 지점, 앞을 향한 길을 가장 혹독하게 쟁취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체험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평생 단 한 번 겪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이 바스러지면서 서서히 붕괴된다. 모든 정겨운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우리는 돌연히 우주의 고독과 치명적인 냉기에 에워싸인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그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으며,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낙원의 꿈, 모든 꿈들 중에서 가장 고약하고 가장 살인적인 꿈에 일생 동안 고통스럽게 집착한다.”

이번에도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애매하여 정말 데미안은 현실이었을까 궁금하다. 정말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이 되었나 알 수 없다. 어쩌면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만들어낸 환상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정말 존재한다고? 정말로 말도 안 된다. 

그래도 
데미안이 내 평생에 준 가장 큰 선물은 그거다사는 내내 데미안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는 걸물론 그 사람이 나를 받아들여주기도 하고 그리하지 않기도 했으며나중에는 실망하는 일도 몇 번 있었지만언제나 나의 데미안들은 나를 성장시켰다나의 데미안들은 스승선배친구동료제자 혹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책의 저자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내 삶이 그나마 요로코롬 봐줄만 한 건 다 내 인생의 데미안들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번 독서에는 에바 부인같은 분위기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역시 나란 인간은 현실적이다되도 안 될 꿈같은 건 꾸지 않고멋진 부인의 실체’ 말고 분위기는 모방 살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라니역시 나란 인간은 이 정도의 생물학적 어른이다하하이번 생은 역시 망했다’.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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