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취향 -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취향 존중 에세이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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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인기는 한동안 시들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에세이를 찾는가, 같은 에세이여도 철학 에세이나 종교 에세이 같은 건 인기가 없다. 심지어 그림 에세이마저도 인기가 시들하다. 큰 삽화가 가득한 만화 에세이가 가장 인기고, 그 다음이 심리 에세이다. 인기 장르는 조금씩 변하고 순환하지만 언제나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에세이 분야는 동일하다. 가장 기본 에세이 장르, 일상 에세이를 찾는 이유는 왜일까, 무엇보다 편안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저자의 능력으로 글의 퀄리티가 오르내리는 투명한 장르. 그래서 '에세이를 쓰고 싶으세요'라는 책과 강좌가 인기를 누릴만큼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은 수도 없고, 자기 가능성을 믿는 장르도 이만큼 없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그닥 에세이를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덜 매력적인 인간인지 보여주는 게 부끄럽기 때문. 『하루의 취향』같은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물론 책을 손에 쥐었을 때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른 구성에 놀라긴 했지만. ‘취향’을 제목으로 둔 책이어도 ‘취향’의 이야기로 구성된 건 아니지만. 그건 에세이에만 주어지는 허용이 아닌가. 글들이 독특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

Again, 매력있는 에세이스트가 되는 방법은 매력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는 걸 확인한다. 김민철의 이전 책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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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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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김애란, 「호텔 니약 따」, 『비행운』)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비행운’이 바로 비(非)행운(幸運)이라는 것을. 행운을 맞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젊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개, 가난하였다. 불행은 가난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불행은 홀로 오지 않았다. 또 다른 불행을 겹겹이 데리고 들어왔다. 불행한 사람은 내내 불행했다.

슬퍼서 처참해서 읽기 괴로운 단편들은 초반부에 많았다. 뒤로 갈수록 가시는 연하고 담담해졌다. 그 중 《큐티클》, 《서른》은 공감(共感) 면에서 압권이었다. 《큐티클》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 삶은 적어도 덜 불행한 터였다. 아주 많이 덜 가난한 터였다. 낭비할 금전이 남아있는 터였다. 불행을 잊기 위해서, 좀 나은 사람인 듯한 느낌을 위해 쓴 ‘허울’이 적당히 벗겨지는 순간 역시 비참했다. 《호텔 니약 따》의 안간힘도 나에게는 예리했다. 나의 질투와 나의 두려움이 정확히 나를 마주보는 순간은 비참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비참했다. 《서른》은… 뭐라할 수 있겠나. 그저 칼날 그 자체인걸.

이 소설가가 인터뷰를 정말로 꼼꼼하게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하루의 축》에서의 인천공항 화장실도 그렇지만 《큐티클》에서의 소비 심리나 《서른》에 등장하는 노량진 및 임용, 네트워크 마케팅 합숙소 이야기도. 언제나처럼 김애란의 단편은 씁쓸하다. 이 작가의 예리한 칼날은 참 아픈 색이구나, 기도서의 색깔 같은 울트라마린 블루.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행복을 기다리는 데 지치다 못해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족속들’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나와 같은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김애란의 명성은 우리가 멸종되기 전까지는 영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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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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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에세이스트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에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에세이가 아니듯이 에세이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에세이스트가 아니다. 지식으로 똘똘 뭉친 글을 쓰는 저자는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유학을 했으니까’ 대단한 실력의 근거 거리라도 있지. 에세이를 쓰는 저자는 그야말로 지식이 아니라 감수성과 표현력으로 쓰는 게 아닌가.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의 한수희가 바로 그런 에세이스트다. 모난 데 없이 편안하게 흐르는 글줄이 돋보인다. 거슬리는 데 없이 자유롭다. 뜨겁지 않고 적당히 온안하다. 그녀의 삶이 왜 특별한가, 누구나 원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있다. 이 소비에 매인 자본주의 사회에 이건 용기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판에 박힌 듯 비슷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참 대단한 용기다.

《담담할 것》, 《씩씩할 것》, 《우아할 것》으로 구분한 차례는 항목 구분보다는 저자가 하고 싶은 세 가지 부탁에 가깝다. 저자가 무엇보다 추구하는 세 가지 가치, 그 아래 무엇으로 표현되면 어떠한가. 그저 살아갈 것일 뿐.

왜 이 에세이스트가 그렇게 호평을 얻는지 알겠다. 그녀는 무엇보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렇게 물 흐르듯 살고 싶은 사람들이, 담담하고 씩씩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그녀의 에세이를 찾아 읽는다는 것.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에세이 아래 깔린 가장 큰 정조는 ‘담백함’. 이처럼 기쁨과 슬픔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

덧) 다음에는 이 책에서 소개한 김애란의 『비행운』을 , 이자벨 위페르의 『다가오는 것들』을 읽고 보겠다. 역시, 이런 게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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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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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데 부드러운 문체(文體), ‘유시민 스타일’. 참 유시민답구나. 글은 글쓰는 이 그대로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언젠가 예리하고 단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편 ‘간단하게나마’ 유시민의 책 쓰는 방법을 엿보았다는 데 내게 『표현의 기술』은 충분히 좋았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제 자신이 국가의 본질과 진화 과정을 알고 싶어서 공부하면서 썼죠. 국회도서관에서 국가론 관련 책을 검색해서 100권 넘게 빌렸습니다. 하나씩 읽으면서 흥미로운 대목마다 색종이를 붙여 표시했어요. 하나라도 색종이가 붙은 책은 따로 추려서 표시한 대목들을 발췌했습니다. 발췌한 인용문을 큰 주제로 나누어 관련성이 있는 것끼리 묶은 다음 작은 주제로 또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의 목차를 만들었고, 엮어 놓은 인용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제 생각을 보태 본문을 썼지요. 이런 식으로 썼기 때문에 인용 표시가 촘촘하고 각주에 같은 자료 제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 ‘같은 책 ○쪽’, ‘앞의 책 ○쪽’, 뭐 그런 것 말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순전히 표절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인용 표시입니다.

《나의 한국현대사》는 정반대였습니다. 먼저 아무 참고자료 없이 생각나는 대로 제가 겪은 현대사 55년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초고를 쓴 다음, 내용이 사실과 맞는지 자료를 찾아 가며 한 단락씩 확인했어요. 국회도서관 자료를 키워드로 검색해 연표, 백서, 연구서, 보고서, 단행본 책을 찾고 통계청 홈페이지에서 인구통계와 경제사회통계 데이터를 가져왔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죠.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예전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그런 식으로 원고를 보충하고 수정하고 다듬었기 때문에 《나의 한국현대사》에는 단순한 출처 표시가 아니라 참고자료를 소개하고 해석하는 각주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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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빅퀘스천 -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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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추천 동영상으로 김대식 교수의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가 뜬 김에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김대식의 빅 퀘스천』이라니 그것참 과감하다, 자기 이름을 제목에 걸고 책을 낸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저자인가. 그는 이미 인공지능의 정보처리와 분석 능력이 곧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우스개로 한 이야기가 ‘데이터교’라는 것. 한편 인공지능이야말로 인류가 현명하게 거듭나야 한다는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여기까지가 책을 읽기 전 내가 그에 대해 알던 정보였다.

의외로 『김대식의 빅 퀘스천』에서 뇌과학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봐주려야 10프로 미만이랄까. 오히려 이 책은 저자의 광대한 지식을 엮고 엮어 서술한 철학, 역사, 인문서에 가깝다. 제목 그대로 읽으면 된다. ‘과학을 전공했지만 온 지식 만물사전인 김대식이 던지는 질문’이라고. 워낙 아는 게 많아서 낯선 철학‧과학‧수학 개념도 많지만 저자의 설명은 명확하고 쉽다. 대단하기 그지없다. 빽빽한 밀도가 부담스럽다면 힘들 뿐, 쉽게 설명하는 글솜씨는 저자의 능력이다.

책은 크게 3부로,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로 구분되지만 각 부의 제목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질문들,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이라는 부제가 보다 적확한 구성이다.

서른한 개 질문들은 모두 동등한 무게를 지니고 있지만, 읽는 이에게 모두 동일하지는 않으리라.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내게 중요한 질문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등이었다. 책을 읽는 각자에게 중요한 질문들은 나와 또 다르리라 믿는다.

“결국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차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이다.”

“인간이 시시포스와 같은 벌을 받는 이유는 장미와 거북이와 달리 우리는 자아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고, ‘왜’라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짊어진 무거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보편성은 플라톤의 ‘고매한’ 이데아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화’라는 긴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눈을 뜨고 장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수천만 년 동안 태어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실망하고 사라진 우리들 모두의 조상과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죽음을 슬퍼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당장 누릴 수는 없지만 수백 또는 수천 년 후 누군가 다른 이가 가지게 될 영원한 삶을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상만 돌고 도는 것이 아니다. 정말 돌고 도는 것은 주인 없는 책임들이다.”

“모든 인간은 원본입니다. 자신을 톱니바퀴 같은 복제품이 아닌 우주에 단 하나뿐인 원본임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원본의 아우라 중 하나가 바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이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겁니다.”

같은 글들에 줄을 그으면서 길을 헤매다 돌아오고 다시 찾아간다. 김대식이 원한 것은 바로 이런 헤맴이었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며 헤맨 독자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는. 저자가 확실한 답을 내린 질문은 몇 없지만 그중에서 인상적인 게 여기 있다. “지금 우리에게 ‘사랑은 왜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간’이기 때문이다.”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과학』에서처럼 『김대식의 빅 퀘스천』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 뇌과학자는 다시금 강조한다. “슬퍼한다고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 여름에는 친구들과 야외로 나가서 삼겹살 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겨울에는 사랑하는 애인과 첫눈을 구경하거라. 인생에는 더 이상의 의미도, 더 이하의 비밀도 없단다.” 뇌과학이고 뭐고, 그냥 현재를 아름답게 살면 된다. 행복은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 지금 나의 빅 퀘스천 하나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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