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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김애란, 「호텔 니약 따」, 『비행운』)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비행운’이 바로 비(非)행운(幸運)이라는 것을. 행운을 맞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젊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개, 가난하였다. 불행은 가난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불행은 홀로 오지 않았다. 또 다른 불행을 겹겹이 데리고 들어왔다. 불행한 사람은 내내 불행했다.
슬퍼서 처참해서 읽기 괴로운 단편들은 초반부에 많았다. 뒤로 갈수록 가시는 연하고 담담해졌다. 그 중 《큐티클》, 《서른》은 공감(共感) 면에서 압권이었다. 《큐티클》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 삶은 적어도 덜 불행한 터였다. 아주 많이 덜 가난한 터였다. 낭비할 금전이 남아있는 터였다. 불행을 잊기 위해서, 좀 나은 사람인 듯한 느낌을 위해 쓴 ‘허울’이 적당히 벗겨지는 순간 역시 비참했다. 《호텔 니약 따》의 안간힘도 나에게는 예리했다. 나의 질투와 나의 두려움이 정확히 나를 마주보는 순간은 비참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비참했다. 《서른》은… 뭐라할 수 있겠나. 그저 칼날 그 자체인걸.
이 소설가가 인터뷰를 정말로 꼼꼼하게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하루의 축》에서의 인천공항 화장실도 그렇지만 《큐티클》에서의 소비 심리나 《서른》에 등장하는 노량진 및 임용, 네트워크 마케팅 합숙소 이야기도. 언제나처럼 김애란의 단편은 씁쓸하다. 이 작가의 예리한 칼날은 참 아픈 색이구나, 기도서의 색깔 같은 울트라마린 블루.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행복을 기다리는 데 지치다 못해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족속들’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나와 같은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김애란의 명성은 우리가 멸종되기 전까지는 영원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