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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평점 :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제주도 사람들이 아닐까? 육지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제주도 사람은 제주도를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이라 해서 제주도 전체를 무대로 살아갔던 것도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때까지만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들 얘기를 들어보면 옛날은 태어난 동네에서 평생 살다 죽었다고 한다.
옆동네 조금 가보는 정도이고... 남군 사람이 한라산 넘어서 북군에 가서 뭘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그러니까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4등분 해볼 때... 대부분은 자기가 태어난 그 4등분 된 정도의 땅 안에서 태어나고 살다 죽었다는 것이다. 예외라면 벌초를 다니거나, 군대를 가거나, 유독 시집을 멀리 가거나 하는 경우. 제주도 사람들은 시집, 장가도 그렇게 멀리 가지도 않았다. 우리 외가 집은 불과 몇키로미터 떨어진 같은 지명의 다른 동네.
항파두리가 사실은 항아리의 항에다가, 둘레를 의미하는 바두리를 결합한 항바두리에서 지어낸 말이고... 구상나무가 사실은 토속말인 쿠살낭(쿠살나무)을 가지고 구상이라고 역으로 지어낸 이름이라는 사실 등은 제주도 사람들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이건 전문 학자들의 관련서적이나 논문을 섭렵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오름을 오르는 경우는 벌초를 하러 갈 경우나 있을까… 실제로는 관광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한 비교적 드문 일이다. 우선 매일 보는 오름을 굳이 올라갈 필요를 못느끼는 것이다. 강요배 화백이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살다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랑쉬 오름에 오르고, 곳자왈에 가본다 해도, 별다른 감흥은 못느낄 것 같다. 그게 아마 시야의 각도의 차이가 아닐까? 제주도에서만 나고자란 사람은, 모든 게 그냥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므로.
제주도가 몽고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백년이나 되는 줄은 몰랐었다. 한 30 년 정도가 되었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생각 보다 길었네. 요즘은 그런 욕이 없지만 우리 어렸을 적, 어른들이 즐겨 쓰던, 제주도에서 가장 심하고 치욕스러운 욕이 뭔줄 아시는가? "몽근 놈의 새끼". 바로 몽곳놈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백년 지배를 받았으니 몽근놈의 새끼들도 없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저 욕을 하는 걸 직접 들으며 자랐다.
유홍준 교수는 제주도가 135년을 지배받았다고 했는데, 사실은 대략 삼국시대 정도, 육지 권력이 제주도를 아우를 만큼 커졌을 즈음부터 제주도는 내내 지배당한 역사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게 지배를 당하지 않고 진작에 어딘가로 복속이 빨리 되었다면 지배를 굳이 당한다는 의식은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는데, 그러기가 어려운 것이...
말은 토속어인 제주어가 있고... 왜 '제주'라는 명칭이 붙었는지 그것도 약간은 불만이다. 제주라 함은 물을 건너간 동네라는 뜻으로 철저하게 자기네 입장에서 지은 이름이 아닌가. 어떻든 분명 한국어의 방언이나 한국어의 중세어에 가까운 제주어가 있고, 고유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개신교가 큰 세력을 떨치고 있는데, 제주도만은 예외다. 개신교는 제주도에서 그다지 세력이 크지 못하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보면, 홍역이란 것이 외래에서 들어온 손님이라면, 기독교 역시 손님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 손님에게 그리도 몰두하는가..하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황석영의 문제제기에 충실하게, 기독교에 그리 큰 취미가 없다.
섬이라 인구가 불어나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자체로 비록 미약하나마 자체의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굳이 남의 문화를 흉내낼 필요를 못느낄 정도까지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피지배와 수탈은 약속된 것이 아닐 것인가.
여기서 육지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럼 제주 사람끼리는 지배와 수탈이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제주 토속 성씨 중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제주 고씨의 횡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래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유홍준 교수는 4.3. 사건의 최대 원인이 되었던 서북청년단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 언급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이 책만 보면, 왜 4.3.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1948년4월 3일 남로당 무장대가 12개 경찰지서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지만, 이건 원인이 아니라 사실 결과에 해당한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도대체 뭘 믿고 불과 2, 3백명이 무장봉기를 할 생각을 하였는지를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무장봉기라는 것이 자기만의 목숨만이 아니라 일가친척 모두의 죽음을 각오하는 일인데, 그 정도 인원을 가지고 봉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며 친척, 동료, 같은 제주도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참으로 철없는 무지몽매가 아닌가 말이다. 앞뒤 설명이 없이 이 책만 읽어보면 도대체 왜 그 인원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무장봉기를 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현기영의 순이삼촌만 읽어보더라도, 거기에 다 나와 있다. 다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그걸 언급조차 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매우 아쉽다. 현기영의 소설과 황석영의 소설 '손님'... 이 두 권을 같이 읽어보면, 서북청년단이 어떻게 4.3.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나온다.
순이삼촌에 보면, 서북청년단, 줄여서 서청. 얘네들이 기독교 청년단체인데, 남으로 쫒겨 왔는데(왜 쫒겨왔는지 등은 황석영의 손님에 나온다), 이승만이 경찰권을 부여해서 제주도로 파견한다. 자,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가족도 없이 제주도로 와서 경찰을 하게 되었으니 결과는 불보듯 뻔한 것이다. 강간 등 성폭행이 예사로 저질러졌다.
당한 여자, 여자의 남편, 여자의 부모...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가? 처벌해달라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들이 바로 경찰이므로. 순이삼촌에 나오지 않는가? 어차피 자기 딸이 서청 애들에게 당할 바에야, 서청 애들 중에 한 명 데려다가, 딸을 줘버리는 것으로 해결하는 일이 있었다고.
이런 일이 앞으로 몇년, 몇십년, 때로는 백년을 넘어.. 언제까지 지속될 지 기약이 없는 상황일 때, 피가 끓는 당시 제주도 청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만 한가?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서 속으로 삭이는 청년도 있을 것이고... 조용히 밤길에서 주먹질 하는 놈도 있을 것이고...
어떻든 이런 와중에 민간인을 향한 발포사건이 일어나고... 일본 유학가서 좌파(당시 신조류였으므로)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북한과 연결이 되고 있었던 것 같고... 당시 유학파 지식인들이 선동했다 하는데, 참으로 그들은 역사에 죄를 지은 자들이다. 이게 순수하게 서청 애들의 강간 등 주민을 상대로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으로만 시작되고 끝이 났으면 명분도 좋았을 텐데, 약간 이상하게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연계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 비극을 키웠다. 물론 당시 제주도 청년들이야, 공산주의가 뭔지, 남북한 총선거가 뭔지...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무식해서), 알았다 한들 그것 때문에 선택이 달라지지도 않았을 것 같다.
육짓 것들이 와서 하는 저지르는 행패를 도저히 계속 볼 수만은 없었을 테니까...
비극이 커진 이유는, 당시 토벌대와 제주도민들 간에 대화가 원활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제주도민들과 아무 불편이 없이 소통이 되는 이유는, 육지사람들이 제주말을 배워서가 아니라, 제주사람들이 육지말을 배우기 때문인데, 당시 제주사람들은 육지말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지 출신 토벌대의 입장에서는 같은 민족이라 생각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논문을 누가 썼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다. 자세히 들어보면, 중세국어인데 그 당시 토벌대의 구성원들에게는 그냥 외국어로 들렸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는 제주어는 우리가 쓰는 제주어와 전혀 다르다. 가을에 추수하여 나온 결과물... 그걸 아래아 발음 고...로 해서 '고슬컷'이라 하고 “꽃”을 “고장”이라 하여, 꽃이 피었다는 말을 ‘고장이 피었다’라고 하는데…. 심하게 아래아 발을을 넣어서 고슬컷.이라 하면, 거의 외국어처럼 들린다. 참고로 제주도의 ‘ㅗ’ 발음은 무조건 다 아래아 발음으로 생각하는 육지사람들이 있는 것 같던데, ‘고장이 피었다’ 할 때의 고장의 고는 그냥 ㅗ 발음이다.
송요찬의 토벌 원칙이 범인을 색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물론. 우물을 아예 말려버리면 다 같이 죽어버리니까 아주 깨끗이 청소가 된다... 그래서 피해가 커진 것이란다. 그런 발상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제주도는 말도 잘 안 통하고, 풍습도 다르고, 뭔가 다르다는 이질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제주도 사람 입장에서도 강한 이질감은 느끼겠지만. 이게 나라가 부강하고 강성하려면 뭔가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다양성을 거부한 것이겠지.
참고로 무리한 진압이었다, 잔인했다 하는데 실감이 안 나실 것 같아서 내 친구의 막내 삼촌 얘기를 적어본다면.... 요사이 구럼비로 유명한 강정. 요사이는 강정마을이라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그냥 강정이라 부른다. 당시 중학교 1학년 정도 나이인 그의 막내삼촌은 어느날 아침 몇 세 이상의 남자는 다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게 된다. 그래서 조반을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금바 갔다 와서 먹겠다고 학교 갔다가 안 돌아왔다고 한다. 순진한 시골 사람들이라서, 남자들만 모이라고 하면 뭔가 수상한 낌새를 챘을 수도 있건만 그게 안 된 것이고... 그냥 공지사항이나 알려주려고 그러는가 하고 모두들 갔다가 몰살당한 것이다.
당시 해안선에서 5 km 위쪽을 통행금지로 정했는데 강정은 해안마을이니 그런 원칙 때문도 아니다. 그 때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도 가끔씩 학교 운동장 땅파기 공사를 하다가 시체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올 때가 있다고 한다. 강정마을의 상황처럼, 마을로 불러모은 다음, 전원 총살하고 멀리갈 것도 없이 그냥 현장 즉, 학교 운동장에 파묻었는데, 잡혀간 제주도 사람을 다 죽여버렸으니, 학교운동장 밑에 시체가 가득하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것. 이런 식의 대응은 이민족에게 흔히 저질러지는 것이지 동족에게는 꽤 드문 일에 속하지 않을까? 가히 제주도판 킬링필드라 할 만 하다.
지금 당시 그런 흉악한 일을 저질렀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상을 파악하는데 지장이 있다. 역사에 묻어두고, 단지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은 소상히 파악하고 기록에 남겨야 하지 않나 한다.
필자의 경우 친할아버지와 그의 동생 그리고 외할아버지, 세 분은 당시 선택가능한 세 가지 중에서 제각각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양민으로 조용히 침묵하면서 자기와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 산에 오르는 것. 토벌대 편에 서서 토벌에 참가하는 것.
그렇게 제각각 다른 길을 걸었다 해도, 나중에 그 때문에 반목을 한다든가 편을 가른다든가 하는 일은 일체 없었다. 당시 토벌대에 가담했었다 해서 누가 뭐라 하는 일도 없었고 그 반대편에 섰다 해서 나중에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제주도 사람끼리는 그랬다. 그냥 같은 제주도 사람이라는 거 외에는 다른 편가르기는 일체 없었다.
그러나 4.3. 관련자 가족, 친척은 모두 연좌제로 오랫 동안 관직에 진출이 봉쇄되어서, 귤이 나오기 전까지 제주도가 가난한 섬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었다. 육사, 해사 등 사관학교 입학이 불허되고, 공무원이 금지되고 등등... 제주도 사람 중에 친인척이 관련되지 않은 집안은 일부 군경 가족 외에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제주도민의 공직제한금지법에 제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조선시대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을 과거에 급제시키지 않는 불문율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 후 연좌제가 풀리면서 제주도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게 되었다.
어떻든 제주도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예민할 수 있는 4.3. 사건을 다소 무신경하게 처리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좀 있다. 제주도 얘기를 쓰면서4.3.을 빼버리면 굳이 쓸 필요가 있는가 할 정도로 중요한 이슈인데... 제주도에2기 연속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안 나오는 이유가 바로4.3.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 때문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요배 화백을 알게 되었고... 파도를 의미하는 제주어 ‘절’.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좀 생각하다 보니까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등대지기를 제주말로 옮긴 거. 물결위에 차고의 ‘차고’는 차다, 차갑다는 뜻으로 생각했었는데, 이게 가득차다의 뜻으로 옮겨져 있던데...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거룩하다는 ‘훌륭지다’라고 되어 있던데, 제주말로 훌륭지다는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를 들어, 소나 말이면, 살찌고 체격이 좋다는 뜻이다. 사람의 경우도 해당된다.
그냥 거룩하다로 해야할 것 같고… 아름다운을 ‘곱들락헌’이라고 옮겼는데 ‘곱들락헌’은 제주말 중에서도 약간 방언에 해당한다. 거의 그런 말 쓰지도 않을 뿐더러, 약간 조롱조의 의미가 있다. ‘고운’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아래아를 넣어서 사랑의 모심을... 이라고 했는데, 육지말로 마음은 제주말로 모심이라기 보다는 모슴(모에 아래아)에 가깝다.
그런데 제주말에 사랑하다,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다. 남녀가 사랑하는 것은 좋아한다, 눈이 맞았다로 표현하고, 어린애를 사랑하는 경우는 괴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아이는 괴는 데로 간다” = 아이는 자기를 아껴주는 데로 간다.
사랑하다에 가까운 말이 있다면, “불쌍하게 군다”, “불쌍하게 굴어준다”..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불쌍하다.는 말이, 지금은 무슨 연민의 감정, 동정심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추적해본다면 아마 중세국어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의 사랑하다는 뜻으로, ‘불쌍하게 군다’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손자에 대해서 지극한 마음을 낸다… 이건, “소르륵 해지더라”라고 표현한다. 자기 마음이 소르륵 움직인다는 뜻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걸, 의태어 형태로, 소르륵.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자기 아이가 갑자기 귀여운 느낌이 들 때,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가? 바로 그 때 “소르륵 해지더라”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여러 단어는 있으나, 이걸 종합해서 사랑한다.라는 말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굳이 그런 표현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게 필요가 없는 것이… 예를 들어, 아프리카나 동남아, 아마존 원주민들 말을 연구해보면 아마 ‘사랑하다’라는 말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어에는 ‘쌍커플’이라는 단어도 개념도 없다고 한다. 왜냐? 거기는 모두가 다 쌍커풀이므로 그걸 따로 용어로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든다 해도 그걸 쓸 일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원주민들끼리 사는 동네는 사랑하다..라는 말이 잘 없을 수 있는 이유가, 굳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자기네끼리 사랑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동네에서는 사랑한다는 취지의 말이 필요가 없고, 그런 말을 쓰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건 마치, 영어에서는 연인끼리 “I love you”라고 말로 하지만, 한국사람끼리는, 요즘은 아닐지 몰라도, 그런 말을 굳이 하는 것이 쑥스러운 것과 같다. 연인끼리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런 말은 달리 돌려서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을까.
말 나온 김에 한라산을 원래 할로산이라 불렀다고 이 책 어딘가 나온 거 같던데... 우리 어렸을 적에는 ‘할락산’이라 불렀다. 이걸 또 한자로 고친답시고 지금의 한라산이 된 것 같은데, 이것도 다시 원래 지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산북지역에서는 뭐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한라산이 아니라 할락산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선생님들이 극구 할락산이라 부르지 못하게, 한라산이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토속어의 아름다움 같은 걸 음미할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니 어쩔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면 어떨까?
아무 의미도, 울림도 없는 인공이름인 한라산 말고… 원주민들이 부르던 할락산으로… 구상나무라 하지 말고, 쿠살낭이라 하고, 항파두리라 하지 말고, 항바두리, 또는 항아리바두리라 했으면 더 운치가 있었지 않을까… 한자로 구상나무라 하고, 항파두리라 하면 더 유식해지는 것은 아니질 않은가? 제주도의 상당수 지명을 원래대로 돌려놓았으면 좋겠다.
파도의 제주말인 '절'. 박완서의 산문을 읽다 보니, '백절치듯 사람이 몰린다'라는 구절이 나오던데... 박완서 선생도 ‘백차일’ 즉 하얀 차일이 여러 개 쳐져서 사람이 몰리는 듯한 장면을 뜻하는 말로 설명을 하셨던 것으로 대략 기억이 난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백절 1 [白-] [명사] ‘백차일(햇볕을 가리려고 치는 하얀 빛깔의 포장)’(白遮日)의 잘못.
네이버 용례는 이렇게 나온다.
백절치는 문상객들을 대접해야 하는 음식물들은....
사람들이 백절치는 시정의 장바닥을 연상시키리만치산객과 불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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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백차일의 잘못이 아니라 '절'은 제주말로 파도이므로, '백절'은흰 파도. 흰파도가 끊임 없이 밀려오듯한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가? 백차일의 잘못이라 하는 것은, 그냥 모르니까 둘러대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지, 백차일의 잘못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둑둔다’할 때의 바둑의 어원도 학자들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말로는 지금도 나이든 사람들은 ‘그 가게는 바둑이 좋아서 장사가 잘 된다’, ‘뭐니 뭐니 해도 바둑이 좋아야 한다’라고 한다. 즉 위치가 좋다는 말이다. ‘바둑’을 한자말 ‘위치’를 가리키는 말로 써오고 있는 것이다.
요새 외모가 아주 중요해지고 있는데, ‘체격’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뭘까? 제주도말로는 ‘닥지’라고 한다. ‘닥지’는 육지말로 ‘딱지’가 될 텐데… 게의 딱지 속에 게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몸 속에 사람이 있으니, 체격을 ‘닥지’라고 하는 것이다.
즉.... 제주말은 중세국어가 거의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으므로, 우리말 연구의 보고이며... 아주 장기적으로 우리가 한자어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순우리말을 많이 되찾으려면 제주말을 필수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본어의 어미, '데스', '마스'도 제주말과 연관이 있다. 이름이 뭡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옛날에는 '홍길동 됨수다'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었고, '홍길동 맞슴'이라고 답하기도 했었다. 이런 말은 지금도 쓴다. 물론, ‘홍길동이우다’ = ‘홍길동입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건 경어체고, 해라체로 하면, ‘홍길동 됨서’가 된다. 이 ‘됨서’에서 일본어 데스, ‘맞슴’에서 일본어 ‘마스’가 나온 게 아닐까… ‘됨수다’는 ‘됩니다’이고, ‘맞슴’은 ‘맞습니다’라는 뜻이다.
고향을 떠난지 30 년이 되었지만, 제주도 사람으로서 유홍준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연구하는 데만도 몇 년은 걸렸을 것 같다. 그 수고로움은 제주도에 대한 소르륵 하는 모슴이 없으면 쓰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심을 볼 때, 이런 분들이 학자가 되고,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이 얼마나 국가에 큰 이익이자 국민에게 큰 은혜인가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