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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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공자인 저자 박보나는 표지 사진의 주인공인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로부터 시작하여, 17개의 주제에 예술가 한 둘씩을 그들의 태도와 연관지어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인, 그리하여 집안 구석으로만 눈알을 굴릴 수밖에 없는 문화생활 영위자들과 뭇 예술가들에게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술이라는 장르를 여전히 캔버스 안 수채화 정도로 인식하는 이들에게 꽤 괜찮은 입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이 책은 근 몇 달 동안 가지 못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풍경들이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각 예술가들이 사회현상이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느끼고 알아낸 편린들을 과감한 방식으로 작품화한다. 그 중엔 일반인들이 보기엔 너무 평범하거나 쉬워보여서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법한 퍼포먼스 혹은 전시 등이 있고, 지나치게 함축되어 있거나 반대로 더는 덜어낼 것이 없는 오브젝트가 덩그러니 놓여 의미를 읽어내기엔 난해하기 그지 없는 것들도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들이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설이 저자의 역할이었다. 해설 또한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지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한 꼭지 읽고 이동하며 곱씹어보기 좋아보인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는 제목과 바스 얀 아더르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의 사진이 표지디자인으로 잘 어우러져, 마치 예술가의 깊은 고민이 녹아져있을 것만 같은 이 책은 나처럼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을 한둘 낚았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실제로 이 책을 읽은 뒤 느낀 온도는 36.7도 쯤이었다. 예상한 온도는 약 37도 이상으로,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상을 기대했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기도 하지만, 무식하면 예상치 못한 현재에 이르는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미간을 찌푸리며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작품에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또다른 사람의 또다른 말을 몇백 페이지에 달해가며 읽진 못했지만, 맛보기처럼 짧게 만난 19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떠올리며 거꾸로 올라가본다. 글이 작가를 숨기지 못하듯, 작품은 예술가를 드러내게 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의 우는 모습을 촬영한 얀 아더르는, 자꾸만 넘어지고 떨어지는 모습을 촬영한 얀 아더르는, 어느날 작은 요트 하나로 대서양을 건너겠다고 말한 뒤 서른 셋의 나이로 사라진 얀 아더르는,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미술 작품은 크고, 예쁘게 잘 만들어져야 하며, 잘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미술은 일상의 순간과 어떻게 다른가? 미술 작품은 미술관 안에 안전하게 설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로즈코는 오렌지를 올려놓는 미세한 제스처로 이 모든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함으로써 전통적인 미술 문법을 흔들고 미술 작품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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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스페셜 에디션)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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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9년 전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나왔기에 다시 정독했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아의 신화'나 '표지'를 하나의 환상처럼 품게했던 코엘료의 연금술은 과연 2020년 현재엔 어떻게 읽힐까.


주인공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여정은 마치 어린이를 위한 동화처럼 펼쳐진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단어들은 상황을 복잡하게 엮거나, 이중삼중의 의미를 내포하느라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산티아고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정말로 '부(돈)'로 직결되는 목표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길을 떠난다. 성직자가 되길 원했던 부모의 바람을 뒤로하고, 양치기로서의 익숙한 삶을 뒤로한다. 전재산인 양들을 다 팔아 사막으로 향하고, 사막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피라미드를 두 눈으로 보게 되는 데 이른다. 오아시스에서 만난 운명 같은 사랑과 함께 예언대로 막대한 돈을 쥐게 된다.


웃어 넘길만한 얘기지만, 이처럼 코엘료식 특유의 단순명료함 때문에 <연금술사>는 론다 번의 <시크릿>과 나란히 희대의 사기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2006년에 다큐멘터리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연이은 베스트셀러 행진으로까지 이어졌던 <시크릿>은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비슷한 구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와준다." 하여 대다수의 믿음 좋은(?) 독자들이 종교생활에서도 그랬듯이 개인의 바람을 단지 간절히 원하며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사기라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핵심은 '자아의 신화'다. 그것은 때로 자신이 운명처럼 만난 상대를 두고도 등지고 길을 떠나는 것을 요구하고, 각자에게 정해진 길을 끝까지 따르지 않을 경우엔 몇 년 사이에 표지가 떠나버리고 마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 한마디로 내가 사사로운 욕망으로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서 다짜고짜 만물이 나를 도와 부귀영화를 안기고 내멋대로의 세상을 펼쳐준다는 마스터키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조차 명확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코엘료식 이야기의 장점은 먼저 언급한 것처럼 복잡하지 않다는데 있는데, 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을 정확히 저자인 코엘료만큼 독자가 1:1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가령 '표지'만 봐도 언제, 무엇으로, 왜, 어떻게 그것을 만나고 반응해야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표지'에 대한 정의가 저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경우는 더 심한데, 저자가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저 현재에 머무르라고 말해도 독자는 이제 막 문장을 읽어낸 머리로 '그렇지, 현재에 살아야겠지' 이상을 넘어가기가 어렵다. 나는 여기에서 독자의 분류가 크게 달라진다고 본다. 이야기를 단순한 문학소설로 읽고 마는 독자, 이야기의 메세지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독자,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수행하는 독자다. 수행을 지향하는 저자가 쓴 단순한 글은 꾸밈이 없지만 직접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해의 영역을 넘어간 가짜 내지는 환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결국 저 이야기와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독자들이 선을 긋게 되는 것이다. "그거 그냥 동화 같던데. 너무 허무맹랑해서 난 별로." 하고.


2020년에 다시 만난 <연금술사>는 드라마를 위해 일부러 부각시킨 부분들이 다소 인위적이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해서 설득력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코엘료가 <연금술사>를 통해 보여준 저력은 그의 경험, 저자의 '앎' 때문이 아닐까. 그가 친근하게 구성한 이야기 사이사이, 넓직한 공간에 배치한 꽤 모호하지만 확신에 찬 문장들이 가리키는 곳. 각자의 운명을 향해 표지를 따라가라는 것, 바로 그곳에 내가 지금껏 원하던 것이 자리하고 있거나, 내가 원한 줄도 몰랐지만 만나보니 가장 바랐던 것이 거기에 있을 거라는 '자아의 신화' 이야기. 저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그 이야기 말이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하지. (...)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사막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는 게지.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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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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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뒤, 그대로 남겨진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직업을 잠시 체험하거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쓴 것이 자신의 생업. 그에게 글이 먼저였는지 생업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문장력으로 볼 때 꽤 오랫동안 글이 그와 함께 해왔던 것 같지만,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문장들, 이야기는 그의 생업이 아니었으면 탄생할 수조차 없었을테니.

이 책이 별나고 희귀하다고 느끼는 것은, 육체노동에 잇댄 삶과 깊은 사색과의 균형 때문이다.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며 생각의 집을 중심으로 삶을 지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육체에 대한 멸시를 의식/무의식적으로 가진다. 반대로 삶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수는 사색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 김완은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에 의해 희생시키지 않았다. 또한 자기 생업을 비호하려고만 들거나, 자기만의 일에 심취해 메세지가 영 다른 곳으로 튀어 나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극히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건강한 보편성을 얻었고, 살아오는 내내 별도로 쌓아왔던 지식의 창고의 힘을 빌려 설득력 또한 갖췄다. 여러 이유로 한국 에세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덤덤히 쓰인 문장들의 온도를 기억할 만큼 신간 중에서 단연 진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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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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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웃고있는 얼굴 속에 감추고, 참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슬픔이 너무 아팠다. 분명 자극적인 내용인데 작위적이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 독자들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지 않을 능력을 키워주는 훌륭한 만화책이다. 존경스러운 사이바라 리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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