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스페셜 에디션)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약 19년 전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나왔기에 다시 정독했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아의 신화'나 '표지'를 하나의 환상처럼 품게했던 코엘료의 연금술은 과연 2020년 현재엔 어떻게 읽힐까.


주인공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여정은 마치 어린이를 위한 동화처럼 펼쳐진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단어들은 상황을 복잡하게 엮거나, 이중삼중의 의미를 내포하느라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산티아고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정말로 '부(돈)'로 직결되는 목표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길을 떠난다. 성직자가 되길 원했던 부모의 바람을 뒤로하고, 양치기로서의 익숙한 삶을 뒤로한다. 전재산인 양들을 다 팔아 사막으로 향하고, 사막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피라미드를 두 눈으로 보게 되는 데 이른다. 오아시스에서 만난 운명 같은 사랑과 함께 예언대로 막대한 돈을 쥐게 된다.


웃어 넘길만한 얘기지만, 이처럼 코엘료식 특유의 단순명료함 때문에 <연금술사>는 론다 번의 <시크릿>과 나란히 희대의 사기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2006년에 다큐멘터리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연이은 베스트셀러 행진으로까지 이어졌던 <시크릿>은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비슷한 구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와준다." 하여 대다수의 믿음 좋은(?) 독자들이 종교생활에서도 그랬듯이 개인의 바람을 단지 간절히 원하며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사기라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핵심은 '자아의 신화'다. 그것은 때로 자신이 운명처럼 만난 상대를 두고도 등지고 길을 떠나는 것을 요구하고, 각자에게 정해진 길을 끝까지 따르지 않을 경우엔 몇 년 사이에 표지가 떠나버리고 마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 한마디로 내가 사사로운 욕망으로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서 다짜고짜 만물이 나를 도와 부귀영화를 안기고 내멋대로의 세상을 펼쳐준다는 마스터키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조차 명확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코엘료식 이야기의 장점은 먼저 언급한 것처럼 복잡하지 않다는데 있는데, 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을 정확히 저자인 코엘료만큼 독자가 1:1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가령 '표지'만 봐도 언제, 무엇으로, 왜, 어떻게 그것을 만나고 반응해야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표지'에 대한 정의가 저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경우는 더 심한데, 저자가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저 현재에 머무르라고 말해도 독자는 이제 막 문장을 읽어낸 머리로 '그렇지, 현재에 살아야겠지' 이상을 넘어가기가 어렵다. 나는 여기에서 독자의 분류가 크게 달라진다고 본다. 이야기를 단순한 문학소설로 읽고 마는 독자, 이야기의 메세지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독자,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수행하는 독자다. 수행을 지향하는 저자가 쓴 단순한 글은 꾸밈이 없지만 직접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해의 영역을 넘어간 가짜 내지는 환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결국 저 이야기와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독자들이 선을 긋게 되는 것이다. "그거 그냥 동화 같던데. 너무 허무맹랑해서 난 별로." 하고.


2020년에 다시 만난 <연금술사>는 드라마를 위해 일부러 부각시킨 부분들이 다소 인위적이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해서 설득력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코엘료가 <연금술사>를 통해 보여준 저력은 그의 경험, 저자의 '앎' 때문이 아닐까. 그가 친근하게 구성한 이야기 사이사이, 넓직한 공간에 배치한 꽤 모호하지만 확신에 찬 문장들이 가리키는 곳. 각자의 운명을 향해 표지를 따라가라는 것, 바로 그곳에 내가 지금껏 원하던 것이 자리하고 있거나, 내가 원한 줄도 몰랐지만 만나보니 가장 바랐던 것이 거기에 있을 거라는 '자아의 신화' 이야기. 저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그 이야기 말이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하지. (...)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사막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는 게지.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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