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악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5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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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나이 서른도 채 안 됐는데 짙은 머리칼이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은 백발이다. 이런 이상한 젊은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 p.11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스로 밝힌대로 아직 젊은 '나' 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백발이다. 게다가 그의 아내 또한 오른쪽 허벅지 위쪽에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흉터가 있다. 이 이상한 부부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밝히고자 이 책을 펴냈다고 책 속 화자인 '나' 는 말한다. 말하자면 책 속의 책, 읽는 독자로 하여금 책 속 주인공이 실제인물의 실제경험담인 것처럼 느끼게 하여 좀 더 현실감있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그래서 책 속 주인공인 그는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 작중 화자가 '나' 라는 점도 읽는 독자가 그의 이야기에 좀 더 빠져들게 도와준다.
 
'나' 가 이야기하는 과거의 끔찍하고 괴이한 이야기는 두 달쯤의 사이를 두고 일어난 두 건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첫번째 살해된 사람은 바로 그녀가 사랑하던 연인 하쓰요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따분한 사무원의 일상을 4년간 보내던 그 앞에 나타난 그의 완벽한 이상형의 그녀 기자키 하쓰요가 '나' 와 사귄지 9개월째의 어느 날 밤, 완벽한 밀실이었던 자신의 방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그녀의 출생에 대한 여러 비밀은 이후 주인공 '나' 가 겪게 될 끔찍한 모험들과 관계가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아득하게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마치 소가 누운듯한 모양의 육지가 보이던 섬' 이 바로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녀는 사실 친부모는 누군지 모르고 선착장에 버려진 그녀를 데려와 지금까지 길러준 양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죽기 직전, 그녀는 친부모와 연결되는 단 하나의 소중한 물건인 족보를 '나' 에게 결혼예물로 건내주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난데없이 새로운 구혼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다름아닌 '나' 의 친구 (라기보다는 '나' 를 짝사랑한다고 하던) 모로토 미치오였다. 평소 남자, 특히 '나' 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던 그가 여자, 그것도 '나' 의 약혼녀에게 청혼을 하자 '나' 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소유욕과 질투에서 일어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녀가 죽기 직전 그녀 곁을 배회하던 80세 정도 되는 등이 굽은 괴노인의 정체도 매우 의심스럽다.
 
"마술에는 수가 있어. 구경꾼들에게는 전혀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마술사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거야. 이번 사건이 곧 밀폐된 마술 상자야. 실제로 보지 않고는 모르지만, 경찰은 소중한 마술의 수를 빼놓은 거야. 그 수가 바로 눈 앞에 있어도  생각의 방향이 고정되어 버리면 전혀 알아 내지 못하는 법이야. 마술의 수 같은 것은 대개 구경꾼 앞에 드러나 있는 법이야. 그것은 말이야, 아마 출입구라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 곳일 거야. 그러나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면 매우 큰 출입구야. (중략) 마술의 수는 언제나 시시한 것이니까."  - p.58
 
두번째로 살해당한 친구 미야마기 고키치의 말이다. 미야마기 고키치는 연인의 죽음 후, '나' 가 독자적으로 살인범을 잡고자 사건해결을 의뢰했던 아마추어 탐정이다. 그는 어느 정도 사건을 푼 듯 했으나 미처 그 비밀을 이야기해주기 전에 '나' 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하고 안그래도 의심스러웠던 모로토를 사건현장에서 본 '나' 는 자신의 연인과 친구인 탐정의 살해범으로 모로토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사건의 비밀은 모로토에 의해 정말이지 죽은 탐정 미야마기의 말처럼 너무나도 손쉽게 풀리게 되고 후에 주인공인 나(미노우라)와 모로토는 함께 끔찍한 모험을 겪고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신(神)과 불(佛)이 만난다면 / 동남방 귀신을 때려 부수고 / 아미타(阿彌陀)의 공덕을 찾을 것이다. / 6도(六道) 네거리에 혼동되지 말라. - p.134~5
 
연인이 남겨주었던 족보에서 발견한 바로 이 묘한 암호문이 바로 연인과 친구의 이상한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추리' 의 단계에서 '보물' 을 찾는 모험의 시작을 알란다.
추리와 모험, 이 둘의 결합이 이 책의 큰 줄기이고 재미이다. 비록 그 모험이 매우 끔찍한 모험이긴 하지만...
 
'보물찾기' 결국 이것이었다. 두 건의 살인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게다가 그 후에 알게 될 사실들은 더 끔찍스럽다. 추악한 외모로 세상을 인간을 저주하는 그 사악하고 비뚤어진 마음,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잔악한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고, 더 나아가서는 반윤리적인 '불구자 제조' 라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고... 정말이지 끊임없이 그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함에 계속 놀랐다.
일전에 '황새' 라는 소설을 읽고 인간의 잔인성에 치를 떨었는데 이 책의 살인귀도 그에 못지 않다. 정말이지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와닿는다. 외딴섬 악마, 그건 바로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나는 그 글의 내용을 반쯤은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내가 이해한게 맞다면 그는 그가 가진 문학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에겐 외면당한 비극적 작가라는 것이다. 그의 작가로서의 자질은 망상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추구하던 작품의 세계와 실제로 그가 써낸 작품의 세계는 많이 달랐다. 대중의 성원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던 작품과는 다른 작품들을 출간하게 된 그는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절망하고 비관했다. 그런 상황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새로운 성격의 작품들도 발표한다. 그렇게 자칮 잊혀질 뻔한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저자에 대한 엮은이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설명된 그의 작품들은 꽤 많았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번역된 작품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도 최근 그의 작품들이 여러편 번역되고 있다. 장르문학 출판사의 대표인 황금가지에서도 몇권 출간되었고 도서출판두드림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편자리 시리즈물을 번역, 출간할 계획으로 벌써 그 1편은 이미 출간이 되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더 많은 그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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