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이다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장과 퇴행을 반복하고 80만원만 벌면 여한이 없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정말 솔직한 작가 소개를 보고 나와 비슷한 점들에 공감이 가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대인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책을 펼치자 왠지 두려운 그림들이 한가득... 하지만 용기를 내서 막상 집중해 읽기 시작하자 적당히 유며도 있고 나와 비슷한 점도 많고 ㅡ 스스로 동굴에 은둔하는 스타일에 나와 같이 좁은 인관관계, 무언가 하나에 꽃이면 한동안 무한버닝한다는 점 등 ㅡ 매우 사색적이거나 시적인 글들과 날카롭게 사회를 비판하는 글들도 참 많았다. 물론 이다스러운 이다만의 독특한 생각들도 많았다. 특히 돼지바에 대한 그 독특하면서도 시적인 날카로운 통찰이라니.. 감탄했다.
그리고 나도 부러워하는 여고생, 책 표지에 있는 여고생을 보며 '이다씨는 정말이지 여고생을 많이 생각하는구나' 하고 웃음이 났다.
 
일단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이다씨의 전공이 신학이라는게 신기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편견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한게 아니라 나는 그녀가 당연히 미술과 관련된 과목을 전공으로 했으리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편견인가?
 
그녀의 책은 좀 놀랍다. 그녀 말대로 좀 무섭게 느껴지는 그림과 어수선한 글들이 가득하다거나 지나친 솔직함으로 가득찬 글이라서든가는 둘째치고 그렇게 한풀이로 가득한 책을 냈다는 그 자체가 나는 놀라웠다. 나는 아니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실패나 오점들을 다른 이에게 말하는 걸 부끄러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 의지하는 사람에게 고민을 상담하거나 인터넷의 익명성만을 믿고 괴로움을 토로하기는 하지만 그녀처럼 꾸준히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가장 하고 싶은 말, 가장 힘든 점, 나의 가장 부끄러운 실패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나도 자주 생각한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이루어 놓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고, 도대체 내 인생은 이게 뭔가? 나는 그야말로 몸만 컸지, 영원히 자라지 않는 바보같은 어린아이같다구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단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혼자 괴로워한다는게 이다와의 차이점이다. 게다가 이다는 괴로워하면서도, 고민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더 나은 이다가 되기 위해서,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서.
 
나는 끊임없이 한풀이를 해대는 이다가 중반까지는 그래도 참 부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몸만 큰 어린아이로 머물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계속 자신의 성장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세상엔 자신의 미래와 성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또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하고싶은 것에 열심히 노력한다. 비록 그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가 될까봐 걱정은 좀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녀는 세상의 종말이 오면 자신이 젤 먼저 죽을까봐 걱정하지, 힘들다고 종말이 오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떻게든 살고 싶은거지, 도망가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계속되는 그녀의 푸념이 마지막엔 조금 지겹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개인적 푸념이 가득한 책을 낼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누구나 이런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역시나 먼저 책을 낸 건 이다씨니 여긴 더 할 말 없음.
 
그저 부럽다. 한평생 하고싶은 일이 있는 이다씨가. 나도 바보같은 내 인생 이다처럼 평생 하고픈 일이 있다면 좋을텐데, 아직도 방황만 하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 책 '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는 '안네의 일기' 이후, 책을 읽고 다시금 일기가 쓰고 싶어지게 만든 두 번째 책이 되었다.
 
조금 그림이 무서운들, 그녀의 우울한 푸념을 좀 들어준들 어떠랴
그래도 변함없이 앞으로도 그렇게 언제까지나 그녀는 그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을텐데..
항상 누군가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거. 그 자체가 어쩔땐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는거 같다.
가끔 돌아볼 테니, 앞으로도 변치말고 거기 있어줘, 이다
 
그래 노력이 부족한거면 다행이지. 재능없다는 말보다 천배는 나아. 인생 올인했는데 알고보니 재능없었다면 난 죽어버릴테다. - p.45
 
진짜 내 모습을 몰랐기 때문에 솔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진짜 내 모습을 제외하고는 다 보여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나는. - p.51
 
선을 정해놓고 그 선이상으로 다가오면 밀쳐낸다. 즐겁게 친한척 해놓고 다음에 또 친한척하면 밀쳐낸다. 숨기는거 없는 척 해놓고 숨긴걸 들키면 밀쳐낸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밀쳐내지면 상처받는다. 드럽고 편협한 밀어내기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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