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먼저 밝혀두는게 낫겠다. 이 책에서 번역한 놀이의 의미를. 이 책에서 놀이로 번역한 독이러 'Spiel'에는 '놀이' '게임' '도박' 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각 부분의 '놀이' 라는 개념을 적당히 번갈아 이해하는게 좋겠다. (더 자세한 설명은 p.94 참고)
 
 
한 성공한 변호사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살인' 아니라 굳이 명명하자면 '불가피한 살해' 였다고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바로 지루한 삶에서 유일하게 그를 지탱해주는 '진정한 놀이'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이것이 일생동안 저지른 처음이자 마지막인 불가피한 살해라고 한다. 자신에게도 어쩔 수 없었기에 저지른 일이지, 진정한 놀이꾼으로서는 우아하지 못한 불쾌한 일이었다고. 그리고 그는 감옥안에서까지 마지막까지 새로운 놀이를 준비한다.
 
우리는 이제 이 놀이를 시작해야 합니다. 승리의 쾌감과 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들지 않습니까? 당신도 이 놀이에서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이가 지루함을 몰아낼 겁니다. - p.47
 
그는 이기기 위해서, 혹은 명예나 돈을 위해서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저 놀이를 위한 놀이로서만 즐길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놀이에서 이겨 혹시 누군가를 상하게 했거나 누군가 무언가를 잃게 되더라도 그건 그가 딱히 누군가를 증오해서라거나 분노해서가 아니다. 다만 놀이의 규칙을 즐겼을 뿐이다. 그런 자신이 타인의 눈에 인간적이지 않거나 양심이 없는 괴물로 비춰지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렇다고 딱히 도덕적이지 않거나 인간적이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다음 말을 들어보면 그의 말이 납득은 간다.
 
만약 토스카나의 내 집과 이름도 모르는 아무개 천 명의 목숨 중에서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난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내 집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는 거죠. 반면에 난 그 집을 장만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고, 그 집이 없어진다면 너무나 뼈아픈 손실이자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 p.169 
 
따지고 보면 길가의 노숙자가 그리 많이 보여도 한번도 내 집에서 재워주지 않거나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직접 돕지는 않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고귀하게 타인을 위해 헌신적인 사람들보다 많은건 사실이다. 그의 말처럼 나역시 그처럼 남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웬만큼 도덕적인 사람일 뿐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의 논리가 그저 궤변처럼 보이고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은 그는 모험을 즐기는 놀이꾼(우리에겐 잔인하고 냉정한 살인마로 보이는)이기 때문이다.
 
여론은 법을 모릅니다. 오로지 복수심과 동정 같은 감정밖에 모르죠. 그러나 법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아니, 법은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만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론은 언론에 이리저리 끌러다니면서 대중의 감정을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 p.12
 
그것은 모든 놀이꾼이라면 불러내고 싶어하는 광란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곧 놀이의 끝을 의미하고, 놀이꾼은 매번 죽기 때문이죠. - p.44
 
당연히 그도 게임을 이기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게임 그 자체이고, 우아하고 멋들어진 실력을 선보이며 노는 것입니다. - p.102
 
그가 놀이의 계획을 세울 때 치던 당구에 대한 이야기는 몇일전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포켓볼을 배운 날을 떠올리게 했다. 우습게도 그날 나는 친구들에게 공을 구멍에 넣었을때의 기쁨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치는 각도와 공이 나아가는 방향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우연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기뻤고 재미도 있었다. 우습게도 몇 번 넣은 공의 대부분이 손가락 모양의 긴 막대기를 이용해 어줍잖게 넣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소한 성공에 기뻐했던 내가, 쉽게 뻔히 이기는 놀이보다 자신의 본 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놀이를 더 즐기는 이 주인공 때문에 얼마나 민망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그는 여전히 놀이를 즐기고 나는 그대로 여기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삶의 한복판에 머물러있다.
그런 그의 열정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역자 후기에 이런 말이 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대중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짐이라고, 나 역시 지난달에 동생과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2박 3일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기로 결정하고서도 막상 갈 곳을 찾지 못해 우리는 하루만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흥분과 설렘으로 시작해서 재밌으면서도 힘들었던 하루였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막상 시간이 생기자 어쩔 줄 몰라했던 우리들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진정한 자유로서의 놀이를 즐기는 사람을 질투하는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여지껏 알지 못하던 독일문학을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인 크리스토프 하인을 이틀동안 연거푸 만난 이 이상스런 인연을 신기해하며 마칠까한다. 하나는 <나폴레옹 놀이> 라는 이 책을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기억> 이라는 책에서 스치듯 만나게 된 것이다. 안그래도 나는 앞장에 나와있는 그의 이력에 매우 관심이 가서 그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낯설은 수많은 예술인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그의 이름이 내 눈에 띄였으리라. 우리와 비슷한 분단을 겪었지만 멋진 통일을 이뤄낸 그 양쪽에서 문학활동을 했던 그의 다른 문학작품이 진심으로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