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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맙소사.. 나는 우선 이 책의 결말에 대해 잘 나타낸 다음 구절을 소개해야겠다.
도저히 한문장도 빠트릴 수 없는... 지금 나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낸 구절
서스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미스터리 속에서 해답을 모색했던 독자에게 결말 부분에 가서 밋밋하고 엉성한 설명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보다 더 불쾌한 일은 없다. 동시에, 조립에 능한 작가에게는 서스펜스를 유지해가며 줄거리를 전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가 결말 부분에 안배해둬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전은 그의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의 진정한 서스펜스는 '살인범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 p.322~323
그렇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다. 이 책의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개를 돌봐줘" 는 책 속의 책이다. 나는 아직도 이 글 본래의 형식인 일기나 편지, 진정서 외에 툭툭 나오던 서술적인 글들은 누구의 글인지 헷갈린다? 저자인가? 책 속의 살인범인가? 하긴 그 둘이 동일인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이 책에 솔직히 제정신인 사람이 있는가? 그러니 누가 누구인지 정도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지. 모두가 똑같이 이상한걸
이 책에서는 연거푸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그 묘사가 매우 희극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지붕에서 밧줄이 늘어져 있고, 그 끝에 내가 무엇인지 금세 알아보지 못한 알록달록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밧줄에 묶인 발과 그 아래 매달려 있는 불그죽죽한 살 덩어리로 보아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홀랑 뒤집혀 오렌지색 속옷으로 요염하게 치장한 무른 살을 드러내는 연보라색 원피스로 보아 그건 분명 여자였다. - p.184
갑자기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 영웅적인 인턴 구급대원은...... 새로운 추진력을 얻은 브리숑 부인이 비계를 출렁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계추,......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지만 브리숑은 시체가 되어서도 고집이 세고 비협조적이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형사가 줄을 끊었다. 대기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떨어지는 브리숑을 받았다. 군중이 영웅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 p. 186~188
끔찍한 죽음에 대한 애도는 없고 그저 하나의 쇼로 묘사될 뿐이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똑같은 구조로 지어여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다. 특히 라디오 작가 코른누르와 계란 세밀화가 플뢰슈의 일기를 중심으로 아파트 다른 세입자들에 대한 사건과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아파트 인물들은 묘하게 대칭적이고 이상하게 서로를 미워한다. 소설 중반까지 이어지는 코른누르와 플뢰슈의 소심한 대립들을 보면 참 기도 안차게 유치하다. 서로의 공격에 대한 그들의 방어와 공격은 (공격이라 하기에도 우습지만) 서로는 점잖고 멋있는 방법이라 믿고 있지만, 글쎄.. 둘이 실제적으로 마주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끔찍한 결말까지는 안가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주요사건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힌트를 주자면 바로 아래 문장을 유심히 보고 생각하라. 또 각 캐릭터 중 설명되지 않은 신비한 인물이 또 누가 있는지... 더 중요한 힌트는 320쪽과 저자만큼 유쾌한 역자 후기에도 나와있지만 이건 너무 결말유출적이라 통과.
그래도 대사만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발췌된 장면들은 자모라가 구상한 시나리오에 따라 선택되었다. 따라서 관객의 정신 건강은 아랑곳않은 채, 대사가 한 배우의 입에서 시작되어 다른 배우의 입에서 끝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건 미치광이의 작업이다. 폭주하는 미치광이. - p.46
책의 구성은 단순한데 복잡하게 대립적인 정신나간 사람들 사이에서 두 시간쯤 씁쓸한 블랙유머에 웃고 즐기고 나면 어느덧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되어질지도 모르겠다.
지루하지는 않겠지만 이 정신나간 캐릭터들과 온종일 살기에는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저 이렇게 가끔 소설로나 만난다면 무척 반가울것 같다. 그럴때면 그의 책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겠지.
나는 그의 삶을 채우고 있다. 그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