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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주요인물은 세 명이다.
냉혹한 살인마 시거, 우연히 돈가방을 주워 들어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모스
그리고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늙은 보안관 벨.
이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사건을 담담하게 묘사해 나간다.
나는 영화를 먼저 봤는데 영화에서는 조금 이해가 안되던 장면들이
책을 보고 자세히 이해가 되기도 하고
세 명의 화자에 의해 번갈아 묘사되는 어떤 부분은 시간순서가 엇갈려 조금 이해가 어렵기도 했다.
책 제목과 연관된 시 구절이 지나가면 어떤 사람의 눈의 그림과 차례가 나오는데
이는 그 뒷장 벨의 서술 부분에 나오는 말 때문에 왠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든다.
흔히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무엇을 내다보는 창인지 나는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 p.12
이 말은 벨의 성격이 조금은 드러나는 부분이다.
벨은 마을의 정의를 지키고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부모님 세대와는 점점 다르게 더욱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변하는 세상에 대해
매우 방관적이고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는 마을에 마약과 관련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마을 주민 모스의 실종,
그리고 계속 벌어지는 살인들을 조사하며 그 행적을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딱히 무언가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엔 그는 그 유령같은 살인자를 끝까지 쫓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포기란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가 한 다음 말은 이러한 그의 성격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은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었다는 얘기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 p.76
그는 악마를 믿지 않는다면 지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작 40년 전 학교에선 겨우 수업중 떠드는 아이, 복도를 뛰는 아이, 숙제를 베끼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마약,강간,살인,방화,자살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려는 부모들, 범죄를 모른채 하는 사람들과, 비리 경찰들..
그는 진정으로 앞날을 걱정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것에 대한 대책이나 준비 또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항상 다루던 놈들과 다를 바 없겠지. 내 할아버지가 다루던 놈들과도 같을 테고.
그 놈들은 가축을 훔쳤지. 지금은 마약을 거래하고. - p.92
내 생각에 그래서 이 책에 제목이 이해가 된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늙은 벨과 늙어갔어야 했던 모스와 시저의 자리는 없다.
벨은 방관자로 그렇게 죽을 테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려고 돈을 가져갔던 모스는 죽어버렸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를 없에고 살인자 시저 역시 죽을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무슨 짓을 했건 지금은 다만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 뿐이야. - p.86
영화는 영상으로 인해 잔인함이 좀 더 강조되고 책은 잔혹하거나 끔찍한 장면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세심하게 묘사하여
현실의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자세한 묘사라 어떤 부분은 너무 끔찍해 읽기 싫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 차분하게 묘사되는 잔인한 장면들을 상상하며 읽노라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나까지도 담담해졌다.
모스의 부인과 보안관 벨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모스 부인의 말처럼 모스는 변하지 않았기에 죽었고 벨의 회의적 태도도 시저의 냉혹한 모습도
이 소설의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이를 잘 알아요. / 알았던 거겠죠.
지금도 잘 알아요. 그는 변하지 않아요. / 아마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 솔직히 말하면 돈이 사람을 바꾸지 않는 경우는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 p.144
이 책에서 시저는 분명한 악이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무조건 선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책을 다 읽었지만 뭔가 답답한 이 기분은 도대체 뭘까?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 계속 떠오른다.
사실 지금 내가 있는 이 현실도 피가 튀지 않을뿐, 모스와 벨과 시저가 살고 있는
노인을 위하지 않는 나라임에는 맞는 것 같다.
하나 재밌는건 쫓고 쫓기는 관계인 모스와 시저가 공통된 생각 하나를 한다는 점이다.
살아가면서 선택했던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것.과연 지금 우리의 선택은 어떤 미래로 나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선택일까...
아주 작은 거라도. 심지어는 당신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도 있소.
그것들은 손에서 손으로 떠돌아 다니지만 사람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
그리고 어느날 결산이 이루어지는 거요. - p.68~69 (시저)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 p.248 (모스)
나에겐 결정권이 없어.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다 거기서 초래된 일이지. 결산은 꼼꼼하고 조금의 빈틈도 없어.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 p.283 (시저)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 p.249~250 (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