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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 를 읽고 바로 티베트 여행 에세이인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일까? 아님 필연일까?
마침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고 초보여행 주제에 벌서부터 티베트로 떠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보다는 가까운 경주나 춘천을 생각하기에도 나는 아직 버겁다.
아직 나는 발걸음이 낯선 곳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저자의 경지에 오르기는 한참을 멀었으니
이번엔 그저 조금은 생소한 지명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티베트는 나에게 매우 생소한 지역이다. 그저 꿈같은 동경의 곳
전에 어떤 책에서 잠깐 티베트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티베트를 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고 했었다.
티베트는 아름다운 곳이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과 쓸쓸함.. 텅 빈, 어찌보연 처연하게 느껴질만큼 고독한 아름다움...
그래서 그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저자처럼 숨죽이며 울음을 찾고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홀로 고독히 어둠의 거리를 걷는걸까?
작가도 가도가도 끝없는 티베트 고원길,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황량한 모래와 바람도 머물지 않는 그 길을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어 아름다운 길(p.26)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티베트의 풍경이, 건물이, 사람이 참 쓸쓸했다고 말하면서도 그곳을 다시 찾는다.
그는 어디가 그렇게 절박해서 그곳을 계속 찾는것일까?
고백하건데 나는 분명 술보다 외로운 그 밤길을 즐겼다.
그러나 나의 기억에 더 진하게 양각되어 있는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라싸의 밤길보다,
더욱 싸늘했던 내 마음이다. - p.117
티베트는 내가 알던 것처럼 신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그곳은 그저 중국에 예속되어 저항의 의지조차 상실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아픈 도시였다.
그러나 오체투지의 순례자들과 조용히 저항의 생각을 품고있던 여든두 살의 할아버지..
그들이 있는한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은 끊기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들의 아픔이 작가처럼 절박한 사람들이 티베트를 찾게 만들고 그들이 그 아픔을 그곳에 쏟아내어
티베트를 쓸쓸한 아름다움이 간직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오체투지의 순례자들과 시체를 조류에게 맡기는 장례법, 조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p.140) 조장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 말대로 글도 사진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문화적으로 편협한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누구라도 이러한 문화를
처음 접하면 놀라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무엇을 느꼈든 직접 보고 느끼지 않은 나로서는
(직접 보는 일이 더 좋을지 나쁠진 아직 모르겠다) 동물에게 흡사 먹이를 주는 것 같은 이 장례식에서
무얼 느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 중에 몇이 또 그렇게 떠났고 여전히 나는 남았으니 삶은 아직 나의 편.
사는 것이 구차해도 얼마나 좋은가.
여전히 나에게는 보장되지 않은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휴지처럼 구겨도 죄 없음 - p.146
점점 중국화 되어가고 있는 티베트, 하지만 고행의 길을 기꺼이 행복이라 믿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용기있던 판첸라마,
그리고 구름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아름답던 파란 하늘과 어디가 산인지 물인지 알 수 없던 맑은 호수,
석벽 가득 누군가의 얼굴을 조각해놓은 것 같은 언제나 그자리에 있을 경건한 산들이 있는한
티베트의 앞날이 그리 아프지만은 않을 듯 하다.
나는 그곳의 모습이 점점 도시화되어 변한다 하더라도
그곳 사람들만은 세상에 때묻지 않고 계속해서 순수성을 유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물질의 편리함과 신을 경배하는 것 외에 세속의 다른 즐거움을 그들은 모르기를 바란다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곳이 현대문명에 익숙해지고 약삭빠른 사람들 투성인데 이 넓은 세상 중 이 한곳만큼은
그만큼 순수하고 바보같이 더디게 사는 사람들이 남아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모름지기 세상은 '다양성' 때문에 더 아름다운거니까... 그리고 부유할수록 행복해지기 더 어려운 고통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지 싶다. 그들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말이다.
이제 곧 티베트에는 짧은 풀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이다.
나도 이때쯤 티베트의 황량한 고원 어느 곳을 걷고 있다면 좋을것이지만, 아직은 다음으로 남겨두고 싶다.
세상의 끝, 아니 중심이라는 그 곳에 가기에는 나는 아직 작가처럼 그렇게 아프지 않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영원히 꿈으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아름다운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